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5)
관존 이강진 (15)
“청각을 단련하면 어두운 곳에서 싸우기도 용이하다. 특히 뒤에서 다가오는 적을 상대하려면 청각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네, 그럴 것 같아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세요. 어떻게 수련하면 되나요?”
“사부가 말하면 좀 진득하니 들어라. 자꾸 말 끊어 먹으니까 할 말을 자꾸 까먹지 않느냐.”
“그러니까 본론부터 말씀하시라고요. 어떻게 할까요?”
곽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끙, 사부 공경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제부터 여기서 네가 할 일은, 사람들의 소리를 구분해 내는 것이다.”
“소리를 구분해 내요?”
“너 저기 저 장사꾼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겠냐?”
강진이 곽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젊은 상인 하나가 중년 부인 몇을 상대로 한창 흥정을 하고 있었다.
“잘 안 들리는데요. 웅성거리는 소리밖에는.”
“바로 그거다. 우리 귀에는 그저 웅성거리는 소리로만 들리지만 모두 저마다 정확한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너는 이 웅성거림 속에서 저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잡아내는 거다. 이게 듣는 수련이다.”
“사부는 다 분간해서 들을 수 있으세요?”
당연히 분간해 낼 리가 없는 곽노였다. 하지만 자신은 가르치는 사람이지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 한때는 분간해서 들을 수 있었지만 나이가 먹으니 잘 안 들리는구나.”
“거짓말.”
“정말이래도. 너도 나이 먹어 봐라. 이 사부 말이 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다.”
“알았어요. 믿어 드릴게요. 그럼 저 상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만 알아내면 되는 건가요?”
“그게 첫 번째지. 이게 숙달이 되면 이 웅성거림 속에서도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로,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게다.”
“알았어요. 해 볼게요.”
강진이 상인 쪽을 유심히 바라보며 신경을 쓰고 있을 때, 곽노는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흠흠, 그럼 사부는 잠시 쉬고 올 테니 열심히 해 봐라.”
“만진루 가시게요?”
“녀석이, 아니래도! 이 햇볕 아래 우두커니 서 있으면 나 같은 늙은이는 쓰러진다. 그저 그늘에서 쉬려고 그런다.”
“술을 마시면서 말이죠.”
“네 일에나 집중해라. 고얀 녀석.”
곽노가 황급히 걸음을 옮기자 강진은 씩 웃고는 이내 상인에게 집중했다.
웅성웅성.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려니 소리 구별해 내기가 힘들었다. 바로 옆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만 드문드문 들릴 뿐이었다.
‘들린다고 생각하면 들린다.’
못 들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며, 강진은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우라샤아르아아아.”
하지만 쉽진 않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강진은 결국 상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상인들이 하나 둘 철수할 때쯤에야 드문드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때, 쉽지 않지?”
많이 마신 듯 곽노가 붉은 얼굴로 다가오며 묻자 강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일은 될 거예요.”
“큰소리는. 최소 한 달은 걸려야 드문드문 들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그걸 정확히 듣냐?”
“누가 그래요, 최소 한 달이라고?”
“이 사부가 아는 사람이 그랬지.”
“그럼 사부도 못한다는 소리네요. 사부도 못하는 걸 저한테 가르쳐 주셨던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곽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이고, 너무 마셨나? 이런 실수를 하다니.’
곽노는 급히 말을 에둘렀다.
“물론 이 사부는 할 줄 알지. 내가 가르쳐 준 다른 사람이 그랬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 누구요? 한평생 전장에 계셨다면서요?”
“이놈아, 전우에게 가르쳐 준 거야.”
“저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사부가 거짓말을 하려고 하세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강진의 말에 곽노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좋다, 인정하마. 사부도 잘 못 듣는다. 하지만 듣는 건 무척 중요해. 이건 사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해.”
“사부도 같이 해요.”
“뭐라고?”
“사부도 못하시면, 이번 기회에 같이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이 사부 나이가 몇인데. 가까이에서 말하는 것도 잘 안 들릴 나이다.”
곽노의 궁색한 변명에 강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글 스승님이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시던데요. 사부도 그랬잖아요, 글을 배우면 세상 살기 좋아진다고. 그러니 사부도 지켜야죠.”
“그게…….”
그다음 날부터 곽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강진의 옆에서 심드렁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스윽스윽.
하얀 종이에 거침없이 난을 쳐 나가던 사내는 갑자기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장발 머리의 사내가 부복해 있었다.
“마무리는 잘하였고?”
“네. 사지의 힘줄을 모두 끊고 오지에 버려두었습니다.”
장발 머리의 보고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난을 치기 시작했다.
“주인어른.”
그때 장발 머리가 입을 열자 사내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생각은 내가 한다.”
“주제넘었습니다, 주인어른.”
장발 머리가 급히 머리를 바닥에 대자 사내는 난을 치며 말했다.
“나쁘진 않아. 그게 네 충성심의 증거이니.”
“네, 주인어른.”
사내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자 장발 머리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스윽스윽.
“살기가……. 난 안되는 것인가?”
사내는 자신이 친 난을 구겨 버렸다.
* * *
탁탁탁탁.
힘찬 발돋움 소리가 나며 강진은 멋지게 허공을 날았다. 그러고는 떨어졌다.
“아이고.”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 더미를 데구루루 구른 강진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사부, 안 아프게 내려앉는 법은 없어요?”
“그렇게 올라갔으면 내려앉는 법은 스스로 터득해야지.”
“혹시 모르는 건 아니죠?”
곽노는 속으로 뜨끔해하며 대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면 발전이 없는 거다, 발전이. 언제까지 숟가락 들고 다니며 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냐?”
강진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족히 이 장은 됨 직한 나무를 넘어가는 건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착지였다. 착지할 때마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다리 전체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우, 씨! 아파서 써먹지도 못하겠네.”
강진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곽노도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내려앉아야 아프지 않지? 이러다가 정말 무릎뼈가 빠개지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론을 강진이 완벽하게 실행해 내는 건 좋은데, 내려앉는 이론은 아직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구르는 방법 이외에는 말이다.
강진이 계속 투덜거리며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곽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거 기똥차네. 올라갈 때도 그렇게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도 그렇게 못 하리란 법은 없잖아?’
곽노는 화색을 띠며 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왜 불러요, 사부.”
“네 녀석이 우둔해 어쩔 수 없이 이 사부가 나서야 하지 않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네 짝이 딱 그런 꼴이다.”
“다들 저보고 천재라고 하는데 왜 사부만 멍청하다고 그래요. 사부는 글자도 모르면서.”
곽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이 사부는 한 우물만 파는 장인 정신이 있어서지. 내가 멍청하면 너 같은 제자를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냐?”
“흰소리 그만하시고요. 빨리 방법이나 알려 주세요.”
“너 나무에 올라갈 때는 어떻게 올라갔냐?”
“그야 발을 빠르게 굴러서 올라갔지요.”
“그럼 내려올 때는 왜 그냥 내려오는 건데?”
“그야…….”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내려올 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떨어지니까 그렇죠. 저절로 떨어지잖아요.”
“쯧쯧쯧, 그래서 네가 미련하다는 거다. 저절로 떨어지면 저절로 안 떨어지게 하면 될 거 아니냐?”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저절로 안 떨어지는데요?”
“그야 허공을 발로 차면서 내려오면 저절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네가 내려오는 게 되지 않느냐?”
강진은 인상을 확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너 올라갈 때도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
곽노의 반문에 강진은 대답을 못 하고 나무를 보았다. 사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속는 셈치고 해 보지.’
강진은 아직도 얼얼한 다리를 마구 주무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 모르니까 사부가 받아 줘요. 내려오다가 짚더미 밖으로 떨어지면 어떡해요?”
“네가 잘하면 그런 일도 없을 것을.”
곽노는 구시렁거리면서도 혹시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짚더미 바깥쪽에 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럼 갑니다.”
강진이 곽노에게 알리고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핫!”
그리고 기합성과 함께 바닥을 힘껏 굴러 나무에 발을 들이밀었다.
탁. 탁. 탁. 탁.
한 발자국마다 이 척 정도의 높이를 뛰어올라 간 강진은 나무 꼭대기를 밟고 멋지게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달려라! 달려!”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요.’
강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허공에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부웅.
오른발과 왼발이 교차되는 순간 떨어지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에 강진은 크게 흥분했다.
부웅. 부웅. 부웅.
발길질을 계속하며 허공에서 서서히 내려오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강진의 모습을 곽노는 입을 헤벌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된다, 돼! 나는 역시 가르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거야.’
곽노도 흥분하여 뒷걸음질 하여 강진을 따라가다가 발이 꼬여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눈만큼은 여전히 강진을 좇고 있었다.
부웅. 부웅.
사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며 강진은 하늘을 날고, 아니 걷고 있었다.
탁. 타타타타타타.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강진은 몸을 구르는 대신 계속 달려 나갔다.
우뚝.
그리고 멈춰 선 강진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하며 고개를 돌려 곽노를 봤다.
“사부, 봤어요?”
“봤다, 봤어!”
두 사제는 크게 흥분하여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거봐라. 사부 말대로 하니까 하늘을 날지 않았느냐?”
“정확히는 난 건 아니고 걸은 거죠. 하지만 이제 곧 날 수도 있는 거겠죠?”
“그럼. 이제 내공만 익히면 그 내공을 이용하여 좀 더 멋지게 걸어 날아갈 수 있을 거다.”
걸어 난다라는 이상한 말까지 해 가며 곽노도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내공으로 어떻게 하는 건데요?”
“어떻게 하긴. 내공을 발에다 보내서 날아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강진은 그 말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어찌 됐든 사부가 하는 말은 다 이뤄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 걸어 나는 방법은 알았으니까 이제 이 수련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왜, 지겹냐?”
“아니요. 이제 놀이로만 하고, 무술을 시간 정해 놓고 하려고요.”
곽노는 흥분이 싹 가라앉음을 느꼈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아하니 여전히 복수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두려울 정도로 봉을 휘둘러 대니 웬만한 왈패는 뼈도 못 추릴 텐데……. 괜히 다 가르쳤나.’
사실 병사들의 무공이란 건 별거 없다. 군영에서 하는 훈련도 진법에 맞춰 움직이는 법과 찌르고 베는 것뿐이다.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창술.
변화는 없지만 그만큼 속도와 힘이 있다.
그래서 일류 고수도 어중이떠중이 무림인들 오십은 상대하기 쉽지만 군인 오십을 상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최소한 하나의 방향과 공간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이 군인들의 창법이니까.
이미 강진의 찌르기와 베기는 곽노를 넘어선 터였다.
나무로 만든 봉으로 찌름에도 나무에 홈이 나고, 베기 한번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거기에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머리가 좀 여문 뒤라면 모를까, 지금 나이에 사람을 상하게 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야.’
곽노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이제 찌르기와 베기도 서서히 다 익혀 가니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주마.”
“어? 찌르기와 베기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요?”
“충분하지. 하지만 이미 잘할 수 있는 걸 수련해 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지 않느냐? 못하는 걸 해야지.”
“그럼 이제 놈에게 복수를 해도 되는 건가요?”
곽노는 속으로 아차 하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 동네 왈패라 하더라도 너보다 신체도 크고 힘도 좋을 텐데 찌르기와 베기만으로 어떻게 상대하려고? 좀 더 배우고 상대해야지.”
“나무에 구멍도 내는데, 사람 몸이 나무보다 튼튼하려고요.”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은 움직이지 않느냐? 피해 버리면 그뿐이다.”
“그래서 빠르게 찌르는 법을 익힌 거잖아요.”
“그놈도 빠르게 피하는 법을 익혔다면? 거기다 너, 듣는 수련도 아직 못 끝냈는데 놈에게 동료가 있어 뒤에서 덮치기라도 한다면?”
강진은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곽노를 믿기로 했다. 어차피 복수를 해도 멋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 다른 거 배워요. 듣는 수련도 열심히 할 테니까요.”
강진의 힘찬 대답에 곽노는 뭘 가르쳐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