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59)
관존 이강진 (159)
노예 매매선
“너를 보러 왔지. 그런데 그건 뭐냐?”
서문우람은 흔들리고 있는 궤짝을 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버려야 할 게 있어서.”
강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지만, 서문우람은 단호했다.
“보여 줬으면 좋겠다.”
강진은 노려보듯이 서문우람을 봤다.
“왜, 내가 봐서는 안 될 거라도 있냐?”
하지만 서문우람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강진은 궤짝을 떨어트리듯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 위에 발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볼 필요 없는데?”
“이강진 대장! 명령이다!”
서문우람의 호통에 이강진의 눈빛이 변했다.
서문우람이 직위로 자신을 압박한 것이다.
서문우람은 태수의 보좌관 개념인 군승.
문관과 무관의 구분이 있고 명령 계통이 다르긴 하지만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광주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지위였다.
당연히 현령보다 높은 신분이니, 현령보다 낮은 포도대장이 어찌할 수 없는 신분은 아니다.
서문우람이 그 지위를 가지고 호통을 치니 강진으로서는 비위가 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진은 황실포두로 누구의 명령도 받을 필요가 없지만, 그 사정을 뻔히 아는 서문우람에게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위로 누르는 거냐? 그 지위, 누구 덕분에 얻은 건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강진의 심상치 않은 말투에 서문우람은 가슴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려도 자신이 화를 내면 언제나 슬쩍 양보하던 강진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고작 궤짝 하나 보자고 하는데 이리 화를 내는 강진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어르신의 우려가 사실인가?’
얼마 전 미영에게서, 정확히는 곽노에게서 서신 한 통을 받은 서문우람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강진을 잘 살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강진이 애도 아니고 자신이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하지만 서문우람은 개의치 않았다.
군승으로 태수를 도와 각 현 내의 상황을 잘 아는 그였다.
강진은 포도대장 노릇과 포졸 노릇을 놀랄 만큼 잘하고 있었다.
신의현은 물론이고 성내 치안율은 다른 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두 강진의 공이었다.
극광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강진은 그 엄청난 이기심만큼이나 의지력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곽노가 한 말이기에 항상 예의 주시해 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고가 들어왔다.
광주 흑사회의 두령이었던 자가 강진에게 끌려갔고, 그 후로 볼 수 없다는 보고였다.
서문우람은 설마설마하고 왔다가 흔들리는 궤짝을 들고 나오는 강진을 발견했다.
흔들리는 궤짝.
저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열어라. 뭐가 들어 있는지 봐야겠다.”
서문우람이 물러나지 않고 하는 말에 강진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기분이 좋았다. 근래 짜증 나는 일만 있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서문우람이 방해하려고 한다.
하나뿐인 친구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강진은 다시 한 번 참을성을 발휘했다.
하나뿐인 친구이니 그 정도의 인내는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걸 열면 내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놔야 할 거고, 그러면 기분이 무척 좋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꼭 봐야 되겠어?”
“그래도 봐야겠다.”
하지만 서문우람 역시 단호했다.
그가 강진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것처럼, 그에게도 강진은 하나밖에 없는 친구였다. 절대 잘못된 길을 가게 둘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강진이 발로 궤짝을 툭 차는 순간, 궤짝이 그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강진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진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서문우람이 급히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급히 뒤를 쫓았지만 강진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아!”
서문우람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하다 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강진이 돌아왔다.
“야! 뭐 하는 거냐!”
서문우람이 화가 나 소리치자 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한번 놀래 봤다.”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강진을 보다가, 서문우람은 궤짝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야겠다.”
“그래, 봐라, 봐!”
강진이 궤짝을 바닥에 내려놓자 서문우람은 속으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고는 궤짝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끄으으응. 끄으으응.
개 한 마리가 궤짝 안에서 신음을 내고 있었다.
서문우람은 고개를 들어 강진을 보며 물었다.
“이건 뭐냐?”
“보고 있으면서 뭘 물어? 개 처음 봐?”
“그러니까 이 개가 왜 여기에 있냐고.”
강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날이 더워졌잖냐. 몸보신 좀 하려고 그러지.”
서문우람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믿으라고 한 말 아니지?”
“믿어 줬으면 하고 한 말이지.”
“능글대지 말고.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기로 한 약속 잊었냐?”
“정말이래도. 뭐, 많이는 먹지 않을 테지만 내가 잡으려고 그런 거다.”
“네가 머물고 있는 객잔에 숙수가 몇인데 네가 왜 이걸 직접 잡냐?”
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궤짝에 몰래 넣어 놓은 거야. 내가 잡고 싶은데 남들 보기에는 좀 이상할 테니까.”
“…….”
“봐 봐. 너부터 이상하게 보고 있잖냐? 내가 개 좀 잡는 게 그리 이상한 거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학당에서의 강진의 기행은 서문우람도 잘 알고 있었다. 닭은 물론이고, 개를 잡아서 학우들 앞에서 해부를 한 건 학당에서 유명한 일화다.
그런 강진이 변한 건 곽 노사를 만난 이후다.
‘노사가 걱정하는 게 내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
서문우람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강진을 향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다.
서문우람은 궤짝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너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고 나라의 녹으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남 보기 흉한 짓 하면 좋을 게 없다.”
“그래서 이렇게 숨긴 거라니까.”
“숨기지 말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취미인 걸 어쩌냐? 고약하긴 하지만.”
서문우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 송두이라는 자 알지?”
“알지. 내가 직접 잡아 처넣으려고 했던 적도 있는 왈패니까. 그런데 넌 그놈을 어떻게 아냐?”
“군승이잖냐. 흑사회의 일도 알고 있어야 뭔 일이 생기면 태수님께 보고하고 답변할 수도 있지 않냐.”
“아, 그렇겠군. 걱정하지 마. 성에서 분탕질하는 놈들은 내가 다 잡아넣을 테니까.”
“약속하는 거냐?”
“당연히 약속하지. 내가 임관한 후 치안율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서문우람은 강진을 직시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다 잡아넣을 거라는 약속 말이다.”
“…….”
“너는 신의현 포도대장이고, 황실포두다. 네 임무는 민생에 해를 끼치는 놈들을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집행자 맞지?”
재차 계속되는 서문우람의 물음에 강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반문했다.
“증거가 없거나, 아니면 심판할 필요도 없이 죽일 놈이라도 그래야 하는 거냐? 예를 들면 사천의 그 미친 새끼처럼 말이다.”
서문우람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증거가 없으면 찾으면 되고, 심판할 필요도 없는 죽일 놈이라면 법으로도 죽게 된다.”
“…….”
“그런 놈은 나한테 말해라. 이 서문우람이 반드시 증거를 찾고 죄에 걸맞는 벌을 받게 만들겠다.”
“…….”
“너도 인정했지? 머리 쓰는 건 내가 너보다 낫다고!”
무표정하던 강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내가 잡고, 네가 심판하는 거다.”
서문우람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또 한 사람도 웃었다.
* * *
서문우람과 헤어진 강진은 곧바로 송두이를 던져뒀던 골목으로 향했다.
“어디 갔지?”
강진은 주변을 뒤졌지만 송두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광주 뒷골목이 아무리 복잡해도 한번 본 건 잊지 않는 자신이 잘못 기억할 리도 없을 터.
“하! 이 새끼, 운은 정말 타고났구나.”
강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새삼 감탄했다.
기어가기도 힘든 상태였을 텐데 무슨 정신력으로 움직여 도망쳤는지 기가 막힌 것이다.
“뭐, 다시 잡으면 될 터.”
서문우람과 약속한 게 있었지만 강진은 절대 송두이를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와의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다. 이건 정말 별개의 문제였다.
‘이놈은 어동을 건드렸으니 예외인 거야. 다른 나쁜 놈들은 죄다 잡아 처넣어 주겠지만 말이지.’
일단 한번 놓쳤으니 다시 잡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 분명했다.
‘일단 그 생명매매라는 놈부터 잡아 볼까?’
강진은 신법을 전개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감사합니다, 나리.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송두이는 자신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구진호를 향해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구진호는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구진호는 송두이를 안고 마을에서 외떨어진 산으로 올랐다. 극광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사람들은 발길조차 주지 않는 곳이었다.
“기발하시군요. 이리로 도망쳤다는 건 놈도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송두이가 감탄하는 순간 구진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죽은 나뭇가지와 수풀 더미가 가득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손을 휘저어 나뭇가지들과 수풀 더미를 치워 내자 거기에는 작은 토굴 하나가 있었다.
송두이는 순간 등골이 싸해짐을 느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신처까지 마련해 두신 거군요. 감사합니다, 나리. 소인,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구진호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허리를 숙여 토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휘젓자 나뭇가지들과 수풀 더미가 입구를 가렸다.
구진호는 화섭자를 켜고는 토굴 안을 걷기 시작했다.
토굴은 깊었고, 마치 미로처럼 많은 입구와 길을 가지고 있었다.
구진호는 익숙하게 앞으로 나아가더니 여덟 개의 굴을 가진 공터에 송두이를 내려놓았다.
“나리, 이곳은…….”
송두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눈에 보이는 건 여덟 개의 굴과…… 인형이었다.
사람 인형.
사람이 어떤 것들로 이루어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한 사람 인형.
“나……리! 이게…….”
송두이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구진호가 아혈을 짚은 것이다.
쓱삭. 쓱삭.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찢자, 찢자. 예쁘게, 아름답게 찢어 보자.”
흥분 가득한 눈으로 칼을 가는 구진호를 보는 송두이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왼손부터 오른손까지, 두근두근 생명의 소리까지.”
구진호의 콧노래 소리처럼 송두이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구진호는 두근거리는 물건에 손을 대면서 같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야! 바로 이거!’
구진호는 극으로 치닫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그 물건의 움직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언제나 쾌감은 빠르게 끝나는 법이지.’
두근거리던 물건이 굳어 가기 시작하자 구진호는 손을 떼며 아쉬움에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하면 더 재미있을 텐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병신이 막았다.
“군승이라고 했지? 골치 아플 것 같은데…….”
구진호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쾌감을 상상했다.
상상은 거부할 수 없었고,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에는 어찌할 수 없을 경지까지 이르렀다.
구진호는 자신의 규칙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