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6)
관존 이강진 (16)
무명검법
스윽. 스윽.
곽노는 바닥에 작은 원들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이거면 시간을 벌 수 있으려나?’
처음 가르칠 때에는 멋모르고 엉터리 이론으로 가르치긴 했지만 그래도 될 법한,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론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로지 시간을 벌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아무리 봐도 트집 잡힐 것 같은데…….’
어떻게 우기면 되겠지만 영악한 녀석이라 쉽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에휴, 놀고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배우잖아.”
곽노가 한숨을 쉬며 자신이 바닥에 그린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장주님.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옆에서 다가오는 이는 이제원이었다.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네.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요.”
곽노의 대답에 이제원은 슬쩍 곽노가 그린 그림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그게…….”
잠시 어찌 대답할지 모르던 곽노가 입을 열었다.
“보법을 그려 보고 싶었는데 배운 게 짧아 좀 고민 중이었습니다.”
“보법요?”
“네. 군대 시절에 진법 변화에 따른 이동에 대해 주워들은 걸 바탕으로 하려니 무리인가 싶습니다.”
이제원은 곽노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팔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장주님도 진법에 대해 아십니까?”
“평생을 장사만 해서 그런 건 잘 모릅니다. 다만 상단에 도움을 주고 있는 역술인이 있어 좀 듣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곽노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움을 털기 위해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역시 무리인 것 같군요. 이제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이제원은 그런 곽노를 직시하며 물었다.
“혹시 강진이 때문에 그리신 겁니까?”
“하하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거라면 가르쳐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제원이 묘한 눈웃음을 짓자 곽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아이고, 괜한 일을 벌였다가 쫓겨나는 건가?’
하지만 곽노의 걱정과는 반대로 이제원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들 녀석 때문에 노사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이라니요. 장주님의 배려 덕분에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는걸요.”
“요새 강진이 녀석이 많이 변한 게 느껴집니다. 모두 노사의 가르침 덕분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쫓겨날 것 같진 않으니 곽노는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네, 장주. 말씀하십시오.”
“제가 잠깐 손을 봐도 될는지?”
곽노는 다시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뭘 말입니까?”
이제원이 곽노가 그린 작은 원들을 가리키자 곽노는 다시 안도하며 말했다.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이제원은 작은 원들 수십 개를 지우더니 새롭게 수십 개의 원을 추가시킨 후 말했다.
“저도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대충 이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법이라면 말이지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괜히 늙은이 소일거리에 장주님의 시간을 뺏은 것 같아서 죄송스럽군요.”
“아닙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럼 쉬십시오. 저는 이만.”
“네네, 살펴 가십시오.”
이제원이 사라지자 곽노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이제원이 수정한 그림을 보았다. 그러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건 될 것 같은데…….’
* * *
꼬끼오!
새벽을 알리는 삐악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이가장 식구들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 수련을 시작하려는 강진에게 곽노가 자신의 걸작품을 보여 주자 강진이 보인 반응.
“이게 뭐예요?”
“뭐긴. 오늘부터 다른 수련을 한다고 했잖냐.”
“그림 그리기 수업이에요? 그런데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걸요.”
“그리는 게 아니다. 밟는 거지.”
“저 원을요?”
“그래. 일단 올라가 봐라.”
곽노의 재촉에 강진은 가장 앞에 보이는 두 원을 밟았다. 그러고는 곽노를 쳐다보았다.
“그다음은요?”
“그 원을 따라 움직이는 거다. 순서대로 말이지. 단, 오른발과 왼발을 한 번씩 번갈아 써야 하고, 원에 그려진 화살표에 발가락을 맞춰야 한다.”
왠지 자신만만한 듯한 곽노의 목소리에 강진은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몇 걸음 움직이기도 전에 다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렵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도저히 밟기 힘든 자세에서 발을 번갈아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예요?”
결국 발이 꼬여 주저앉은 강진이 곽노를 보며 물었다.
“하하하, 쉽지 않지? 이건 인체의 균형을 맞추는 수련이기에 그리 쉽지 않을 거다. 하체 힘도 더 수련하지 않으면 다리는 계속 후들거릴 거고.”
곽노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에 강진은 원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강진은 머릿속으로 원을 따라가며 상상으로 자신을 움직였다.
‘여기는 다리를 구부리며 힘을 줘야 할 테고, 여기는 밟자마자 몸을 바로 비틀면 될 것 같은데.’
일각이나 그림을 노려보던 강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곽노를 보며 물었다.
“이게 그렇게 어렵다는 말씀이세요?”
“당연하지. 사부가 군에서 기본 진법에 맞춰 이동하는 법을 배울 때에도 꼬박 두 달은 넘게 걸렸다.”
“그럼 제가 한 번에 성공하면 뭐 주실래요?”
“내가 줄 게 뭐 있냐? 아니,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할래?”
“한 번에 못 하면 제 용돈 모두 사부 드릴게요.”
“성공하면?”
“혼자 하기 심심하니 사부도 옆에서 같이 해요.”
“야, 야, 이 사부도 곧 쉰이다. 꼭 이 사부의 노구를 그리 움직이게 하고 싶으냐?”
“내기잖아요. 자신 없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곽노는 생각했다.
‘어제 수십 번 해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제원이 손을 본 후로 그도 도전해 봤다. 그것도 수십 번이나.
하지만 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다리가 꼬여 번번이 주저앉았다.
‘덕분에 무릎도 이리 시큰거리는데.’
곽노는 생각을 정하고 말했다.
“좋다, 사부도 같이 하마. 대신, 도중에 잠깐이라도 멈추면 실패인 거다.”
“좋아요, 사부.”
강진은 키득거리며 출발선에 섰다.
“시작합니다.”
그리고 왼발을 먼저 내밀었다.
왼발, 오른발, 껑충 뛰어 왼발, 몸을 뒤집으며 오른발, 물구나무를 서서 왼발.
강진은 종종 기이한 자세를 연출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핫!”
그리고 끝의 점에서 몸을 크게 띄워 그림의 끝에 도달했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몸을 날리더니 거꾸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부, 제가 이긴 거죠?”
강진의 완벽한 움직임에 곽노는 속으로 아차 했다.
‘하늘도 날아 걷는 놈인데 저런 움직임은 예상했어야지.’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꼼짝없이 강진과 땀을 흘릴 생각을 하니 곽노는 앞이 캄캄해졌다.
“이것도 배웠으니 놈을 때려잡으러 가도 되는 거죠?”
순간 강진의 말에 곽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급히 말했다.
“아니지.”
“왜요? 다른 거 배우면 된다고 했잖아요.”
“너는 그냥 움직인 거고. 사실 이건 네 보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다.”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데 뭐하러 또 해요?”
“그냥 움직였잖아. 사실 이건 봉을 들고 찌르고 베면서 움직이는 거야.”
강진은 무술을 하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엑! 그게 말이 돼요?”
“된다. 움직일 수도 있는데 봉을 휘두르면서 움직이지 못할까?”
“그럼 사부가 한번 해 봐요.”
곽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이 사부가 십 년만 젊었더라면 멋지게 보여 줄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뼈마디가 시큰거리니 골병들 거다.”
“툭하면 그 핑계 대시더라.”
“잔말 말고 해 봐라. 그것만 제대로 하면 두서넛은 끄떡없을 테니.”
“치!”
강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봉을 들고 와 섰다. 그러고는 봉을 찌르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발자국 진행할 때 곽노가 소리쳤다.
“그 상태에서 뒤에서 적이 나타났다. 그대로 얻어맞을 셈이냐?”
강진은 몸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오른발을 착지시키며 뒤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그때 왼쪽에서 또 적이 나타났어. 어떻게 할 거냐?”
강진은 왼발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도저히 나올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것 봐라. 방금 넌 꼼짝없이 적에게 옆구리를 내준 거야. 이제 왜 이걸 훈련하는지 알겠지?”
곽노의 말에 강진은 수긍했다.
“사부 말이 맞아요. 그런데 이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요?”
“잘…… 움직여야지.”
“잘 어떻게요?”
“그것도 이 사부가 가르쳐 줘야 하냐?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쯧쯧쯧.”
“그러니까 한번 시범을 보여 달라고요.”
보여 줄 수가 없다. 자신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곽노는 걱정하지 않았다.
“숙제다. 그럼 이 사부는 밥 먹으러 간다.”
몸을 홱 돌리는 곽노를 보며 강진은 바른 자세로 서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