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67)
관존 이강진 (167)
“응. 그동안 미뤄 뒀던 일도 처리해야지.”
“미뤄 뒀던 일요?”
“아일 형제 일도 있고, 정화랑 혼인 문제도 있고. 할 거 많아.”
“바쁘신데도 부인 한 명 더 두는 건 잊지 않으시는군요.”
미영이 질투하듯이 하는 말에 강진은 웃었다.
“난 내게 이득이 되는 건 잊지 않아. 왜, 예전에는 신경 좀 쓰라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을 삐죽이는 미영을 보고 강진은 침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올라와. 행복이 동생 만들어야지.”
“싫어요. 행복이 동생은 정화 동생에게서 찾…… 어머나!”
미영은 얼굴을 붉히며 거부하다, 곧바로 강진의 손에 끌려 침상에 올라갔다.
밤이 되었다.
강진은 미영이 완전히 곯아떨어진 걸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이게 맞는 거지? 옳은 선택을 한 거지?’
강진은 침상을 벗어나 행복이가 자고 있는 바구니를 통째로 들었다.
‘행복아, 이 아비가 부끄럽지 않지? 그치?’
강진은 상처 입은 손을 행복이의 눈앞에 갖다 대었다.
‘보기 흉하지? 하지만 네게 부끄럽지 않을 다짐이 필요했다. 항상 보면서 경계해야 할 다짐. 그 다짐의 증거가 이 손이다.’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편이 되어 줄 딸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강진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비가 병이 있다. 곽 할아버지는 특별하다고 했지만, 특별한 게 아니라 미친 거다. 내 뜻대로 미친 건 아니니 그냥 병이라고 해 두자.’
강진은 중얼거렸다.
“그래, 이건 병이다. 그리고 이 손은 병을 방치하기 싫은 아비의 발악이다. 그래도 너는 이 아비의 발악을 이해해 줘야 한다.”
강진은 손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에게, 내 사람들에게, 내 딸에게 떳떳하고 싶어 만든 거다. 이걸로 괜찮을 거다.”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속 괜찮을 거라는 약속은 못 하겠구나. 아비의 병은 정말 깊고도 깊어 이런 겉가죽에 증표를 남긴 것만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으니까.”
그 순간 행복이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행복이의 손이 강진의 상처 입은 손을 잡았다.
“하하.”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해해 주는 것이냐? 괜찮다고 해 주는 것이냐?”
강진은 순간 눈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뜨거움이 뺨을 따라 흘러내리며 차가워짐을 느꼈다.
“계속 괜찮으리라고는 약속 못 하지만, 절대 병 따위에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발악을 해서라도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건 약속해 줄 수 있다. 그러니 너는 계속 내 편 해야 한다.”
“으어어어.”
행복이 울음을 터트리자 강진은 급히 행복이를 품에 안았다.
“아비가 몹쓸 소리를 했구나. 약속은 무슨 약속이냐. 당연한 걸 약속하는 아비도 있다더냐. 걱정하지 마라. 네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
어느새 행복이는 다시 잠이 들었고, 강진은 외로워졌다. 미영이 그리고 행복이가 있음에도 외로웠다.
이 빌어먹을 병에 대해서 어떠한 계산도 없이 대화하고 이해해 줄 사람이 없었다.
* * *
“흐으읍!”
강진은 길게 호흡을 뱉어 내며 손을 뻗었다.
“음!”
순간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신음을 내었다.
혈도에 굳은 피가 섞여 있어 진기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데 기운마저 신통치 않았다.
내상이 생각보다 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천단공의 효능 중 제일은 진기를 중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고통만 참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치료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
강진은 계속 일주천을 시도했고, 그의 전신에는 노린내 나는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고통도 배가되었다.
하지만 빨리 나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적은 강하다.
이미 자신을 계획적으로 노렸는데, 자신이 집에 머물 때 습격을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럴 경우 식솔을 지킬 사람이 없었다.
부친이나 정 총관은 집을 비우고 있었고, 고 무사는 강진보다 내상이 심했다. 그나마 향아가 있고 정 총관이 자리를 비우면서 일류급으로 보이는 호위 무사 스물을 배치해 둔 것이 다행이었다.
계속 운기를 하던 강진의 몸에서 악취가 점점 심해졌다. 악취가 심할수록 좋다. 몸에 있던 나쁜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강진은 천단공의 효능에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십 단의 효능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구 단을 뛰어넘어 십 단에 입문할 수만 있다면, 복면인을 다시 만나도 그렇게 크게 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운기에 집중하다가 인기척을 느꼈다.
“어이쿠! 냄새가 지독하구나. 뭐 하는 거냐?”
잠시 후 곽노가 산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자 강진은 진기를 단전으로 거둬들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내려갈 건데 뭐하러 올라오세요?”
“집보단 여기가 낫지 않냐?”
“궁금해서 잠은 어찌 주무셨대요?”
“잔말 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강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곽노가 알면 대경할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들, 자신의 행위, 그리고 생각을 가감 없이 전부 털어놓은 건 상대가 곽노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항상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한 계산된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곽노 때문에 자신이 그나마 사람 구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은 이야기를 하면서 곽노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을 제일 이해해 주었던, 아니 이해해 주는 척이라도 했던 곽노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다행히 곽노는 두려워하거나 동정 어린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아주 찰나 안타까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건 강진이 이해해야 할 범위.
곽노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표정을 살피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강진의 말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아주 가끔씩 힘들다고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제나 네가 선택할 문제라고 강요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강진의 이야기가 끝나자 곽노는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휴! 사부가 미안하다.”
“사부가 뭐가요?”
“네 속도 모르고 가볍게 생각하고 말한 것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닌데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지만 심각해지지 않았느냐? 아니냐?”
“…….”
아니라고 대답 못 하는 강진을 보며 곽노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일단 몸조리부터 해라. 이 사부가 다른 방법을 연구해 볼 테니.”
강진은 고개를 젓고 왼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 손의 상처가 저를 잡아 줄 테니까요.”
“확신 못 한다면서?”
“세상에 확신이라는 게 있나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강진의 대답을 들으며 곽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힘이 빠졌다.
‘나도 늙었구나. 아니, 네가 너무 큰 건가?’
강진이 어릴 때라면 무슨 핑계를 대든지 다독이며 응원했을 것이다. 그 핑계가 말이 되든 안 되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방법은 한계였다.
강진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상상할 수 없는 살기를 억누르며 지내왔다. 그건 곽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일 터.
‘그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여태 그렇게 해 왔는데 늙었다고 못 할까?’
곽노는 자신이 너무 편히 지내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잠시 머리가 굳은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는 강진의 사부다. 제자가 이리 힘들어하는데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곽노는 어제 하루 종일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이 세운 방법에 확신은 없었지만, 여태 언제 확신에 차서 한 소리가 있었던가?
곽노는 말하기로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힘들다면, 어디 사부가 말한 대로 해 볼 테냐?”
“뭐 좋은 수라도 있으세요?”
“좋은 수라기보다는,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사부에게 특별한 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
강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전장에서 지낸다는 그분 말이죠.”
“그래.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떠냐고. 그 친구의 답변은 이랬다.”
곽노가 뒷말을 할 새도 없이 강진이 먼저 말해 버렸다.
“아무 이유 없이 적의를 품게 되거나 호의를 품겠지요.”
“…….”
“저도 경험했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사부 친구분도 그렇게 말했어요?”
곽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 아니면 동료가 되었을 거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더구나.”
곽노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판단은 빨라야 한다고. 그리고 판단보다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강진의 얼굴이 굳었다.
언제나 쉽게 말하는 곽노였지만 이번 말은 어려웠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
‘동료라면…… 아니, 적이라면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그런 강진을 보며 곽노가 물었다.
“너는 어느 쪽이냐?”
“원래 죽이려 했지요.”
“망설였구나.”
“네. 조건에 맞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알기로는 그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지,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망치지는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럼 더 고민할 게 없구나. 녀석과 동료가 되어라.”
강진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一. 놈이 싫다.
二. 그러나 죽일 수는 없다.
三. 그렇다고 동료가 된다?
四. 놈과?
五. 내가?
六. 동료가 되면?
七. 내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八. 놈이 내 편이 될 수나 있는 건가?
九. 아니, 그 전에 나와 같은 놈을 내 주변에 둔다고?
十. 사부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十一. 어차피 적 아니면 동료다.
十二. 죽이지 못할 거면, 나는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강진은 머릿속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잠깐, 놈이 나와 같다면…… 놈도 통제 못하는 순간이 있을 텐데. 놈은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 걸까? 나와 같다면…… 나와 같다면…….’
호기심이 생겼다.
어쩌면 이 빌어먹을 병을 억누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놈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보다 더 훌륭하게 이 병을 억제할 수 있다면.’
옆에 두고 사귀어도 되지 않을까?
이 미친병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같이 연구할 수 있다면…….
‘그러면 친구가 될 수도 있지. 만약 그렇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강진의 생각이 확장되고 있을 때였다.
“나리! 나리!”
이가장에서 일하는 하인 하나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산을 올라왔다.
“덕범아, 숨넘어가겠다.”
곽노가 뭐라 말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덕범이는 헐레벌떡 올라오며 급히 말했다.
“어르신, 그리고 작은나리! 빨리 내려가셔야 합니다. 빨리요!”
“이놈아, 무슨 일인데 그리 숨이 넘어가?”
“큰나리랑 총관님이 오셨는데, 크게 다치셨습니다.”
“사부, 먼저 갑니다.”
덕범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진은 그대로 산 아래로 쏟아지듯이 내려갔다.
* * *
‘기회인 것 같은데. 지금 처리해야 할까?’
복면인은 고민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의 일 처리는 완벽했다. 관은 자신의 조직은커녕 구매자였던 정해걸도 잡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정해걸의 존재가 밝혀졌다. 말로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놈은 절대 찾을 수 없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 탓에 복면은 정해걸을 급히 처리하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에 흥미가 일었다. 그래서 놔두었다.
그런데 놈은 죽일 줄 알았던 정해걸을 살려 두었다.
께름칙한 기분에 복면은 다시 직접 정해걸을 처리하려 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자신을 쫓아 배에까지 오른 놈이 나타났다.
처음 놈과는 다른 재미.
하지만 놈은 처리해야 했다.
재미도 좋지만, 재미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완벽한 통제의 날들이 불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조직이 놈에게 한번 노출되었다.
그런데 보통 놈이 아니었다.
뭔 일이 있었던 듯 손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의 공격을 훌륭히 막아 내었다.
이제 스물이 갓 넘어 보이는 애송이가 말이다.
거기다 그 무지막지한 내력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 번째 놈이 돕는 바람에 결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흥분이 되었다.
오랜만이었다.
머리를 쓰고 상대를 조사하고 어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은 말이다.
두 놈 모두 나름 대단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복면인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놈일수록 더 짜릿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놈을 쫓았고, 결국 찾아내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이가장을 보고 있던 복면의 눈빛이 급격히 떨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