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68)
관존 이강진 (168)
우선순위
“소주…….”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강진의 모습에, 정 총관은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강진은 손을 뻗어 그런 정 총관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말했다.
“누워 있어. 이렇게 멀쩡히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으니까.”
“소주, 주인어른은…….”
“아버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아버지가 정 총관보다 강하지 않아? 그런데 뭘 어떻게 보필해. 그것보다 빨리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말씀하십시오.”
“어디 다녀왔는지는 대충 짐작해. 그 일 제대로 안 됐지? 소 사부한테 경고했던.”
“네. 어디서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정 총관이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 강진이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실패했단 거지. 그럼 일이 실패함으로써 내가 준비해야 할 게 있어? 그것부터 말해.”
정 총관은 순식간에 강진이 염려하는 일을 깨달았다. 그의 말대로, 실패한 이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리가 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평상시처럼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집안사람들에게는 주인어른이 운남을 다녀오며 풍토병에 걸려 급히 귀환한 걸로 알려 주십시오.”
“운남?”
“만의 하나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 실패하긴 했지만 다행히 주인어른과 제 정체가 드러난 건 아니니 그걸로 우리의 행적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또?”
“우리의 일이 성공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광주 상단에 연락해 미곡을 낙양으로 보내라 하십시오.”
“그렇게만 전하면 되는 건가?”
“네. 미곡을 전달함으로써 일이 보류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또?”
“다음 일은 주인어른께 직접 지시받으셔야 할 겁니다. 계획을 계속 진행할 건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혼수상태셔.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지만 기력이 회복되면 알아서 깨어나실 거라 하더군.”
정 총관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신교와 추밀원에 연락해야 합니다.”
강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들과도 연관이 되었나?”
“무림맹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이 필요했으니까요.”
“어떻게 연락하지?”
정 총관이 그 방법을 말하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궁금한 게 많지만 일단 필요한 조치부터 하고 나서 다시 올게. 그때까지 몸조리 잘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소주.”
“내 어머니 복수를 해 주고 있는데 정 총관이 죄송할 이유는 없지.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쉬고 있어.”
강진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의문을 풀 때가 아니라 안전을 도모해야 할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군. 하필 내 상태가 이 모양인 때에.’
물론 강진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무림맹 전체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심리적으로는 달라진다.
‘여차하면 모두 버릴 각오도 해야겠군.’
들키지 않았다고 하나 실패를 했다는 건 계획에 구멍이 있다는 것.
강진은 실패가 또 다른 구멍을 불러올 거라 생각했다. 살무방의 모든 사람들이 부친과 정 총관처럼 아직도 복수심에 불타오르리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도 있지만, 반대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편함을 추구하여 망각하게 되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강진의 계산은 빨랐다.
살아 있는 게 우선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가장의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최악의 사태까지 상상하며, 강진은 정 총관이 말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거 또 미영이와의 약속을 어기겠군.’
강진은 집 밖으로 나섰다.
* * *
무림맹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천라지망이 뚫렸다.
그 탓에 무림맹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특히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교과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사실 고작 두 사람을 잡기 위해서 천라지망을 펼친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라지망이 펼쳐진 건 제갈교과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서였다.
냄새가 풀풀 나는 의혹을 풀기 위해서. 어쩌면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펼쳐진 천라지망이 뚫린 것이다.
무림맹의 수뇌부끼리 모여 회의하는 그 순간까지도 제갈교과는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빌어먹을! 산속에 너무 오래 박혀 있어서 머리가 굳은 게야. 아니, 욕심 부릴 때 부려야지. 각파의 정예만 보냈더라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제갈교과는 각파의 대표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굳은 표정만으로 자신의 불만을 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아직 무림맹의 단합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
서로를 탓하는 순간 무림맹은 와해될 것이 뻔하다.
근 백 년 사이 무림인들은 맹의 이름으로 자주 뭉쳤지만, 원래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예를 투입했어도 잡을 수 있었겠냐는 점이었다.
방해를 한 자들이 바로 추밀원과 마교였기 때문이다.
수뇌부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제갈교과와는 이유가 달랐다. 천라지망이 뚫린 것보다, 추밀원과 마교가 이 일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서로 소 닭 보듯이 지낸 세월이 이십 년이다. 그런데 뻔히 자신들이 펼친 천라지망에 개입하고 방해를 놓았다. 일이 복잡해진 것이다.
정사대전. 그리고 관의 전 무림에 대한 개입.
이제 막 원기를 회복한 입장에서는 절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모두 입을 열지 않으시니 본 맹주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모두의 침묵을 깨고 무림맹주 팽척돈이 입을 열었다.
“제갈 군사가 천라지망을 펼쳐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본 맹주는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좌중은 침묵했다.
하지만 침묵도 훌륭한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리고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사, 뭐라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팽척돈이 자신을 콕 집어 하는 말에 제갈교과는 입을 열었다.
“뭔 말을 하겠습니까? 천라지망이 뚫렸고, 이번 일에 중요할지도 모르는, 아니 이제 중요한 게 확실한 사람들을 놓친 사실 이외에 말입니다.”
“그럼 군사께서는 그들과 전면전이라도 해야 했다는 뜻입니까?”
점창의 장로 이수묵이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묻는 말에 제갈교과는 대답했다.
“전면전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공간을 내줘서는 안 됐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들과 싸우지 않고 어떻게 지키냐는 말입니다. 군사는 지금 지키지 못한 곳의 사람들을 힐난하는 것 같구려.”
이번엔 화산 장문 나경문이 입을 열었다.
점창과 화산 그리고 공동은 추밀원과 마교의 개입으로 천라지망의 공간을 비워 버린 문파였다. 제갈교과가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니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반드시 잡아야 할 사람을 놓쳤기에…….”
“그러니까 그들과 충돌을 하지 않고도 지킬 방법이 있었다는 것이오? 그 방법을 듣고 싶소이다.”
공동의 무악자까지 나서서 하는 말에 제갈교과는 입을 다물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적극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제갈교과를 구한 것은 팽척돈이었다.
“싸우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지 않소. 앞으로의 대책을 상의해야 하오. 그들이 왜 나섰는지, 정말 우리와 충돌할 생각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말입니다.”
“일단 문제의 심각성은 깨달았으니 이제 우리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경문이 입을 열더니 제갈교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군사가 갑자기 천라지망을 강력히 주장했으니 분명 연유를 알 터. 어찌 거기에 보도를 가진 자들이 나타날지 알고 계셨소?”
“한 맹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았습니다. 그 정보는 가설일 뿐이지만 매우 그럴듯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이번 일은 다시 생각해야 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맹원이 누구냐는 말이오. 그리고 나타난 자들은 누군지 속 시원히 이야기해 보시오.”
“그게…….”
제갈교과는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구진호가 이가장과 구룡무관은 같은 곳에 근거지를 둔 사이이니 자신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알려 왔던 탓이다.
구진호가 오룡삼봉의 후배라 하지만, 그 가진 능력은 절대 아래가 아니었다. 그 본인이 문무를 겸비한 것은 물론이고, 구룡무관은 광동에서 제일세력이기도 했다. 알리지 말라고 했음에도 알린다면 그와의 관계는 크게 어긋날 터였다.
그 탓에 제갈교과가 입을 다물자 무림맹 수뇌부가 한마디씩 하며 정보의 출처를 압박해 왔다.
제갈교과는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가설을 세운 사람이 누군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도를 가지고 나타난 사람은 이가상단의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가상단?”
몇몇 수뇌부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천하에 이가상단이란 이름은 많았지만, 제갈교과의 입에서 나올 이가상단은 하나뿐일 터였다.
하지만 이가상단이라 하면 천하를 상대로 하는 거대 상단이긴 하나 무림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보통 거대 상단들은 구파일방, 그것도 아니면 각 성의 유력한 무림 문파와 협력하는 관계지만 이가장은 낭인만을 살 뿐 그런 관계를 구축하지는 않은 곳이었다.
“이가장도 이번 일에 끼어들었다는 말입니까?”
나경문의 물음에 제갈교과는 대답했다.
“복잡합니다. 이가장이 이 일에 끼어든 건지 아니면 이 일을 만든 건지 아니면…… 마교와 추밀원을 돕기 위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뇌부가 말의 진의를 생각할 때 제갈교과는 계속 말했다.
“정말 매우 복잡합니다. 저도 왜, 라는 의문을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가장의 금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런 일에는 특별히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 아니오? 좀 억측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 장문의 말이 맞소. 실력 좋은 낭인들을 다수 보유했다 하나 방파가 아닌 상단.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 텐데 나설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이수묵이 동조하자 제갈교과가 말했다.
“단순한 상단이었다면 천라지망에서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마교와 추밀원이 개입하기도 전에 잡혔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제갈교과의 말이 맞다. 단순히 상단의 인물이라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터였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나였다면!’
자신이었다면 천라지망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지 말이다.
제갈교과가 말했다.
“상단을 운용하는 데 낭인들만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건, 여기 계신 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 중 이가장과 손을 잡은 분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
“그렇다는 건, 이가장이 다른 거대 무림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세력은 세외, 아니면 마교, 아니면 추밀원뿐입니다. 문제는 이가장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마교 내지는 추밀원의 요청을 받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최악의 경우, 지선양의 무덤이 잘 만들어진 함정이라면 어쩌실 겁니까?”
수뇌부의 안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근 백 년 동안 너무 많은 일에 시달렸다. 그리고 시작은 언제나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음에도 천라지망을 유지하고 이가장의 인물들을 잡으려 했던 겁니다. 진실을 알아야 어떻게든 움직일 테니까요.”
“의심이 나면 확인하면 될 터. 무림맹의 이름으로 이가장에 사실을 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소림의 공선이 입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