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69)
관존 이강진 (169)
“우리가 무뢰배도 아니고, 굳이 숨어서 이가장을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중하게 요청을 합시다. 군사께서는 나타난 사람들이 이가장의 인물이라 확신하시니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또한 아실 터. 너무 어렵게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거짓을 말한다면 군사의 말대로 이번 일에 의혹이 너무 많이 생기겠지요. 맹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왔으나, 소림은 이번 일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신도가 무얼 얼마나 숨겼는지 모르나 그게 없어도 소림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대사…….”
“부족함이 없는데도 탐한다는 것은 욕심. 여기 계신 분들이, 지난 세월 무림에서 벌어진 혈사들이 모두 욕심에서 기인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악자가 말했다.
“대사, 하지만 마교와 추밀원도 나선 일입니다. 우리만 가만히 있는다면…….”
“소승은 마교 교주인 선유 시주를 만난 적이 있다오.”
순간 수뇌부가 경악하는 표정으로 일제히 공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으나 근 이십 년 동안 마교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중원에 걸음을 하지 않았소이다. 추밀원 또한 마찬가지요. 관존은 예전 세외무림의 침략을 겪고는 중원무림의 원기를 보존하겠다 했지요.”
“…….”
“요새 무림의 잦은 분쟁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에게 종종 피해가 미침이, 산속에 있는 제 귀에도 들어옵디다.”
몇몇 수뇌부의 안색이 붉어졌다.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고, 다수의 민간인들이 부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그런 사정이 하나씩은 있는지라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공선이 그걸 짚고 나선 것이다.
“마교도 추밀원도, 움직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구려. 소승의 생각에는, 이번 신도의 일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사람들만 남겨 두고 모두 철수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구려.”
욕심 때문에, 먼저 나서기 싫어서, 그럴 경우 벌어질 일에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곤륜의 허륜 진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대사도 그런 건 진작 알려 주셔서 이 늙은 도사가 여기까지 오지 않게 해 주셨어야지요.”
공선도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이미 거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승이 뭐라 한들 들으셨겠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된 게 다행입니다. 모두 잠시 욕심을 버리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서 말입니다.”
허륜 진인은 크게 공감하는 표정으로 수뇌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곤륜의 생각도 소림과 같습니다. 무림이 안정된 이후로 젊은이들이 도를 닦겠답시고 올라오는데, 설득해서 돌려보는 데에도 매우 바쁘더구려.”
모두가 소림과 곤륜의 의견을 심각히 생각했지만, 제갈교과는 의혹이 있는데도 풀지 못하면 성질이 안 풀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됐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가 만든 겁니다. 이가장이 정말 보도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겁니다. 이가장이 정말 우리도 장보도에 관심이 있어서 끼어들었는데 무림맹이 힘으로 뺏으려 했다고 주장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오히려 덮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 힘으로 뺏으려 한 거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
“그리고 상황이 너무 흉흉하지 않습니까? 장보도를 완성하려면 여덟 조각으로 나뉜 보도를 모두 모아야 하는데, 마교에도 몇 개 있고, 우리에게도 있고, 추밀원에도 있습니다. 그들 손에 있는 조각들은 어떻게 손에 넣겠습니까? 정말 장보도를 완성하기 위해 그들과 충돌이라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멸입니다.”
공선의 긴 이야기에,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문제가 튀어나왔다.
“운이 좋다면 하는 막연한 기대 심리도 있을 테고, 어떻게든 될 거라는 심리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
“사람의 욕심이란 이리도 무섭습니다. 그것 하나에 다른 것들을 돌아보지 않지요. 백 년간의 두 번의 혈사가 그걸 증명합니다. 세 번은 되지 않아야겠지요.”
욕심이, 환상이 걷혔다. 그리고 눈이 환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물러섭시다. 없어도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러나면 마교와 추밀원도 물러날 겁니다. 군사의 말씀대로 누군가 이 일을 꾸몄다 하더라도,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정말이라면…… 정말이라면 두고 볼 수만도…….”
아직도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듯한 제갈교과의 말에 허륜이 대답했다.
“정말 있다면 죽은 신도의 유언대로 전생에 천만 명쯤 구한 사람에게 연이 이어지는 것도 나쁠 건 없지 않겠나? 전생에 천만 명을 구한 사람이 현생에서 나쁜 짓을 하려고. 하하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 듯 보였다.
회의가 끝나고 수뇌부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세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 * *
강진은 바빴다.
부친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정 총관도 어느 정도 거동은 가능했으나, 아직 제대로 움직일 처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그가 처리하고 결정해야 했다.
다행인 게 있다면 내상을 다 치료했다는 것.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자각한 강진은 치료하던 시간을 모두 천단공 수련에 쏟아부었다.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집중이 되던 강진이 마음먹고 집중하니 몸 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른 강진이었지만, 이제는 예전에 추구했던 대로 마음이 가는 순간 발기(發氣)되는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강진은 몰랐지만 그건 예전에 이제원이 깜짝 놀랐던 의기상인의 경지.
‘어쩌면 탈진 상태에까지 이른 경험이 컸을지도 모르지. 선천지기란 건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단련되는 게 아닐까? 사용하면 없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강진이 몸의 변화를 그렇게 받아들이며 좀 더 심도 깊은 고민을 할 때쯤이었다.
인기척.
곽노나 이가장의 식구들이 아니었던지라, 강진은 경계의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나를 뛰어넘을 기세로구나.”
순식간에 나타난 인물을 보며 강진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 사부!”
“천단공 구 단 입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정말 제자 하나는 잘 둔 것 같구나.”
소양풍은 크게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잘 오셨어요. 미리 연락이라도 해 주셨으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내가 연락하러 온 거다. 우리 사문에는 나보다 빠른 자가 없으니까. 준비는 당연히 해 뒀겠지?”
준비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사문의 인원이라고 해 봤자 쉰이 넘지 않았고, 이가장의 능력은 쉰이 아니라 그 열 배라 해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사부가 떠나신 그다음 날 준비는 끝내 뒀지요.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원 하나를 마련해 뒀습니다. 하인들은 금방 구할 수 있을 거고요.”
“하인은 무슨. 두 손 두 발 다 멀쩡한데.”
“그보다 사부, 정말 딱 잘 맞춰 오셨습니다. 당분간 사부랑 사문의 사람들은 이가장에서 머무르세요.”
“마흔다섯 명이나 되니 복잡할 거다. 아직 이곳은 낯설 테니 적응 기간도 필요하고.”
“사부가 필요해요.”
소양풍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
“있어요. 그래서 사부가 필요해요.”
소양풍이 더 진한 의문을 나타낼 무렵, 곽노도 그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 맞지? 나문경, 자네 맞는 거지?”
때에 찌들고 낡아 빠진 장포를 입었지만, 단정히 머리를 올리고 짧은 수염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한 턱 선을 가진 중년 사내.
“한번에 알아보겠는가, 이 친구야!”
사내가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하는 말에 곽노의 노안에 물기가 어렸다.
수십 년 넘게 전장에서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운도 있었겠지만 눈앞의 사내의 도움이 훨씬 컸다는 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친구야! 언제…….”
곽노는 나문경이라는 사내를 덥석 껴안았다.
“허허, 이리 반갑게 맞아 주니 내가 더 고맙네.”
나문경도 힘껏 곽노를 껴안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한동안 그렇게 나문경을 껴안고 있던 곽노는 그를 밀어내고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대로네. 이십 년이 훨씬 넘게 흘렀는데도 그대로야. 자네는 나이를 먹지 않는구먼.”
“자네는 많이 늙었어. 내 한번에 자네를 못 알아볼 뻔했지. 이 야박한 친구야, 어떻게 제대하는데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가 버릴 수가 있나?”
“그때 자네는 특수병으로 반년 넘게 작전에 투입 중이었잖아. 그리고 나는 일반병이었고. 위에서 나가라 하는데 버틸 재간이 있나? 내 자리 잡고 몇 번이나 자네 소식을 알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있어야지.”
나문경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전우는 있었지만 친구라고 할 사람은 몇 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그들도 전쟁에서 뒈져 버리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세.”
“자네는 여기에 자리를 완전히 잡았나 보구먼.”
“흐흐, 깜짝 놀랄 걸세. 이 곽노, 말년에 복이 터졌네. 부인도 있고, 딸도 있고, 제자도…….”
순간 곽노는 강진을 생각하며 말문이 막혔다.
나문경.
그와의 대화가 없었다면 강진을 이해할 수 없었을 테고, 지금의 자신도 없을 터였다.
맞다.
나문경은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었고, 또 곽노에게 특별한 사람에 대해 알려 준 사람.
곽노는 순간 굳은 표정이었지만,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여하간 요새는 걱정 없이 살고 있네. 들어가세. 밥부터 먹세. 어떻게 몸이 군에 있을 때보다 더 빠졌나?”
나문경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집 밥이라는 걸 먹어 볼 수 있겠구먼. 내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아.”
“자네가 나를 살려 준 게 몇 번인데. 뭐 하나, 빨리 따라오지 않고? 내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게 뭔지 보여 주지.”
“껄껄껄! 자네 정말 성공했구먼. 부러우이.”
곽노의 손에 손목이 붙들려 끌려가다시피 하며 나문경은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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