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75)
관존 이강진 (마지막 회)
종장
부러울 것이 없었다.
집에는 등 긁어 주는 부인이 있고, 매일 아침저녁마다 찾아와 인사를 하는 딸과 제자가 있다.
그뿐인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어깨를 주물러 주는 손녀도 있다.
자고 싶을 때는 잤고, 먹고 싶을 때는 먹었다.
주머니는 항상 두둑해, 밖에 나가서 영감탱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마음 편히 돈을 쓸 수 있었다.
반평생 전장을 돌며 언제 목이 떨어질까 하루하루 두려워하던 그 생활을 늙어서 보상받는 것 같았다.
“부잣집 양반네들도 칠순 챙겨 먹기 힘들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
그래,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행복한 인생이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만 없다면 말이다.
“뭘 그렇게 우거지상을 짓고 그러세요? 보는 사람 다 체하게.”
강진이 무릎에 추궁과혈을 해 주다 곽노의 우거지상을 보며 한마디 했다.
“걱정돼서 그런다.”
“뭐가요?”
“나도 곧 죽을 텐데.”
“그런 사람이 꼭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던데. 오래 사시겠네요, 뭐.”
“이놈이. 사부가 말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도 안 하고.”
강진은 다시 무릎에 손을 대며 말했다.
“진지하게 들을 말을 하셔야 진지해지죠. 뜬금없이 왜 죽는 타령이에요?”
“이 사부도 이제 곧 일흔하고도 셋이다. 오늘이 어제 같지 않고…….”
“듣자니 어떤 도사 영감이 있는데 백 살이 넘게 살았대요. 아직 삼십 년은 남았는데요, 뭘.”
곽노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허! 정말 백 살이나 살았다더냐?”
“정확히는 백열몇 살 때까지 살았다던데. 잘 챙겨 드시고, 때마다 보약까지 잘 드시니까 사부도 거뜬해요. 제가 가르쳐 드린 호흡법도 빼먹지 않고 하시는 거죠?”
“아침저녁으로 빼먹지 않는다.”
“그럼 사부도 백 살 때까지는 끄떡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곽노는 강진이 손에 힘을 줄 때마다 무릎이 시원해짐을 느끼며 말했다.
“앞으로 삼십 년을 더 살면 너도 환갑이 다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징그럽네.”
“그때부터는 같이 늙어 가는 거죠.”
“이놈은 잘나가다 꼭 한 번씩 초를 치려고 해.”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순이면 저도 증손 볼 나이이니 같이 늙어 가는 거 맞죠.”
“행복이 벌써 시집보내려고?”
강진은 홱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흐흐, 언제까지 품속에 자식일 것 같으냐?”
“그렇지 않아도 요새 들어 부쩍 반항을 하더라고요. 같이 안 다니려고 그러고. 저는 안 그랬는데 말이에요.”
“얼어 죽을. 자기는 안 그랬단다.”
“알아서 잘 컸죠, 뭐. 행복이가 반항해도 이제 소망이가 있으니까.”
곽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내새끼 이름이 소망이가 뭐냐, 소망이가?”
“소망이가 어때서요. 바라는 대로 이뤄지라는 이름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내다운 이름도 많은데. 분명 널 원망할 거다.”
“제 놈에게 줄 재산이 얼만데 감히 원망을 해요.”
곽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생각난 듯 물었다.
“정화도 태기가 있다면서?”
“항상 그 일 때문에 조마조마해하더니, 다행이죠, 뭐.”
“잘해라. 너밖에 없잖냐.”
“나밖에 없다니요. 우람이는 이제 추밀원에 들어가서 권력이 무지막지해졌고, 훈이는 상단의 상두로 잘나가고 있고, 미아는 대장군부로 시집을 갔는데. 형제 하나 없는 저보다 백배 낫죠.”
곽노는 강진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놈은 고분고분 듣는 법이 없어.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냐? 그래도 이 집엔 너밖에 없지 않냐?”
“그걸 아시면 미영이 단속이나 해 주세요.”
“뭔 단속?”
“사부 딸내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미영이가 저보다 더 정화를 끔찍이 여겨 줘요. 가끔씩 그게 더 살벌하게 느껴질 정도라니까요.”
“투기 없이 잘 지내면 좋지, 뭐가 살벌하다고.”
강진은 곽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딸이라고 편들어 주시는 것 좀 봐. 정말 정화에게는 나밖에 없는 것 같네.”
“흠흠.”
“적당히 하라고 하세요. 제 앞에서는 그런 낌새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 뭐라 한마디 해 줄 수도 없다고요. 점점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곽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나 미영이나 그래서 천생연분이란 거다. 너도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잖냐. 그래도 도리는 알고 있으니, 네가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 아니냐?”
“정화가 순진해서 미영이의 상대가 안 되니까 걱정할 건 없겠죠. 그래도 내 집 식구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사부가 한마디만 해 주면 다 평온해질 거예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너도 균형은 잘 잡아야 할 거다.”
“이 나이에, 이 능력에, 이 외모에, 이 정력에 첩을 들이지 않는 게 다 그놈의 균형 때문이라니까요. 딸 편 너무 들어 주시네.”
“껄껄껄,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산다.”
대화가 잠시 끊겼지만, 강진의 손만은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늘해지는 가슴 한편을 막기 위해서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쓰지 마라. 후회 없고, 미련 없다.”
“…….”
“정말이다. 누구도 부럽지 않아.”
곽노의 계속되는 말에, 강진은 입을 꽉 다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덥석.
곽노가 그런 강진의 손목을 잡았다.
“힘들다. 가서 쉬어라.”
“조금만 더 있다가요.”
강진은 곽노에게 손목을 잡힌 채 그대로 추궁과혈을 계속했다. 하지만 아무리 추궁과혈을 해도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사모…… 알지?”
“아따! 사모건 장모건 걱정하실 거 없대도요. 미영이도 있잖아요.”
“안다, 알아. 아무 걱정도 없는데, 그래도 내 마누라는 걸린다. 알잖냐, 네 장모 아직 젊다.”
“…….”
“그래서 내가 모은 건 다 주고 싶다. 너한테도, 미영이한테도, 그리고 우리 행복이, 소망이한테도 골고루 주고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내 마누라가 최고다.”
강진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모은 돈이라고 해 봤자 자신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보다 못하다는 것을 사부가 모를 리 없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말을 하는 곽노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서 쉬어라. 네 사모 불러 주고.”
“조금만 더……요…….”
강진은 눈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천단공을 운용해 흘러내리려는 것을 날려야 했다.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내 마누라가 제일 좋대도.”
그제야 강진의 손이 멈췄다.
손은 멈췄지만 몸은 떨리기 시작했다.
강진은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떨림을 멈추기 위해 싸워야 했다.
마침내 강진이 눈을 뜨고는, 웃으며 물었다.
“두 번째는 저죠?”
“껄껄껄, 두 번째는 행복이지. 그다음이 소망이고, 그다음이 미영이고……. 뭐, 네놈도 열 손가락 안에는 있을 테니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라.”
“흐흐흐, 치사해서. 기다리세요.”
강진은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억누르며 문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사모, 들어가 보세요.”
강진의 말에 이 씨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고, 강진은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전신이 떨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을 찰나, 미영과 정화가 급히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도련님…….”
그리고 칠덕네가 조심스레 부르는 소리에, 강진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칠덕네는 절대 약해지지 마. 내 팔순은 남부럽지 않게 해 줄게.”
“도련님…….”
강진이 양옆의 미영과 정화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향아와 고순이 들어왔다.
둘은 혼인한 지 벌써 팔 년째였고, 정 총관의 뒤를 이어 이가장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향아가 조심스레 강진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뭔 말을 하고 싶은 듯 우물쭈물했지만 정작 말은 하지 못했다.
강진은 그런 향아를 보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 기다려. 끝까지…….”
강진이 말을 잇기도 전에 안에서 이 씨의 비명에 가까운 통곡이 들렸다.
“여보! 여보!”
강진은 다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먹이 저절로 꽉 쥐였다. 가슴이 미친놈 발광하듯이 요동치고, 눈에서는 뭔가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콰아앙!
강진의 주먹에 화강암으로 깔린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앙! 콰아앙!
화강암 바닥에 핏자국이 묻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강진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콰아앙! 콰아아앙!
‘후회돼?’
정말 최선을 다해 모셨고, 어떻게든 편안히 모시기 위해 노력했다.
‘후회하는 거냐, 더 잘 모시지 못한 걸?’
최선을 다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곁에 있었다. 하지만 더 잘 모시는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콰아앙! 콰아아아!
그리고 그 후회를 바닥을 깨부수는 것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부지!”
행복이와 소망이가 울며 달려들지 않았다면, 그 소리는 언제 멈출지 몰랐을 터였다.
강진은 두 아이를 안고는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으음.”
그리고 어느 순간 짧은 심호흡과 함께 강진의 떨림이 멈췄다.
“어이차!”
두 아이를 안고 일어서는 강진의 얼굴은 어느새 평상시처럼 약간 냉랭해 보이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강진은 향아와 고순을 보며 물었다.
“향아, 고 무사, 준비는 끝난 거지?”
“네.”
“그럼, 시작해.”
강진이 두 아이를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향아와 고 무사는 하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수백 명의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이가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아이고!”
그러고는 일제히 엎어지며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 *
천하제일스승 곽노지묘.
모두를 돌려보낸 뒤, 강진은 봉분의 묘비를 쉴 새 없이 어루만졌다.
해가 질 때쯤 시작해서 달이 중천에 달릴 때까지, 강진은 반복적으로 묘비를 만졌다.
“고생하셨어요, 사부님.”
강진은 중얼거렸다.
“편히 쉬세요. 거기에서는 나 같은 놈 만나서 골치 썩지 마시고요.”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일 올 건데 괜히 청승 떨기 싫어요. 할 일도 있고. 아, 며칠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네요.”
이제 해야 할 일을 할 시간.
강진은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산에서 멈추자, 수백 명의 검은 무복의 사내들이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방주를 뵙습니다!”
곽노 때문에 미뤄 뒀던 일들.
“준비는 끝났어.”
자신의 폭주를 막기 위한 최후의 대책.
“시작해도 될 것 같아.”
자신의 규칙에는 어긋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리의 실행.
“정의를 실현해 보자.”
준비했다.
곽노가 죽고 서문우람마저 없는 순간, 자신이 위험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 손에 들어온 날파리들마저도 풀어 줬다.
“단, 그놈들은 내 몫이니 건들 생각 하지 말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
곽노가 사라지는 순간 복수를 실행한다. 피의 갈증을 해소할 정정당당한 이유도 있다.
“시작하자.”
강진이 움직이고, 살무방의 무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完
^공^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