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8)
관존 이강진 (18)
“사부 눈이 왜 벌게요? 며칠 잠도 못 주무신 것처럼?”
자신의 휑하고 붉게 충혈된 눈을 보며 강진이 묻자 곽노는 심통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만 벌건 줄 아냐? 관절이란 관절, 아니 뼈란 뼈는 모두 쑤셔서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까 왜요?”
“에휴, 아니다. 오늘은 성공했냐?”
“아직요. 그런데 이거 계속해야 해요?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은데.”
“그게 제일 중요한 거다. 잠시 쉬는 건 좋지만 포기해서는 절대 안 돼.”
“이제 춥다고요. 겨울이잖아요, 겨울.”
곽노는 단호하게 말했다.
“폭포가 얼어도 해야 해. 다른 곳에서라도 말이지.”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은 시작하는 건가요?”
“내일부터.”
“뭔 준비 기간이 그리 길어요. 그냥 하면 될걸. 기다리느라 힘들잖아요.”
“내가 더 힘들다, 이놈아. 너는 이 사부가 불쌍하지도 않냐?”
강진은 피식 웃었다.
“사부가 공부를 해요? 몸을 움직여요? 삼시 세끼 다 드시고 방에 누워 뒹굴거리시면서.”
“에고, 내가 이런 녀석을 위해서 그 고생을 했다니. 오늘은 푹 쉬어야 하니 어여 가라.”
“내일은 꼭이에요.”
다짐하듯이 하는 말에 곽노는 손을 홱홱 젓고 방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며칠 동안 서적을 보느라, 정확히는 서적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곽노였다. 거기에 빨리 시작하자고 보채는 강진에게 시달리자니 전신의 진이 쏘옥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쓸 만한 것들도 건진 것 같으니.”
곽노는 히죽 웃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원에 맞춰 그럴듯한 검법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효과까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겉보기에는 제법 모양새가 좋았다.
‘가르쳐 주면 뭐든 하는 녀석이니 이번에도 잘하겠지.’
곽노는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곽노는 학당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온 강진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부가 피땀 흘리며 만든 것이니 잘 배워야 한다.”
“정말 피땀이 나셨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피땀이 나는 거예요?”
“녀석아, 네가 그리 말하면 힘이 빠지잖냐. 좀 그냥 들어라.”
“네네, 계속하세요.”
“됐다. 잘 보기나 해라.”
곽노는 목검을 들고 성큼성큼 그림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할 테니 잘 봐라. 첫 초식은 광충유영(光蟲遊泳)이다.”
곽노는 원을 밟고는 검을 마구 흔들어 댔다.
“그리고 왼발을 내밀고, 팔도 쭉 내미는 거다. 이건 전진검(前進劍)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다시 오른발을 이렇게 뒷발질을 하며 검을 내려친다. 이건…….”
곽노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강진은 옆에서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크게 검을 휘두른다. 아직 이름은 못 붙였고. 어떠냐, 잘 봤느냐?”
기대에 찬 목소리로 강진을 돌아보는 순간 곽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존경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거라 생각했던 강진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냐, 그 표정은?”
“사부야말로 뭐예요, 그 엉터리 검법은?”
“엉터리라니. 이 사부가 수백 권의 책을 사서 며칠을 고생하며 만든 건데.”
“보기에는 그럴듯한 것 같지만 대부분 투로가 없잖아요. 그때그때 발을 맞춘 자세만 있고요. 거기다 이름도 통일성이 있어야지, 저마다 다 다르고.”
“그거야 네가 할 일이지. 같이 만들자면서? 사부가 이렇게 멋진 자세를 만들었으니 거기까지 연결하는 건 네가 해야지.”
강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효, 기대한 내가 바보지.”
“이놈이 사부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자세만 그럴듯하면 뭐해요? 그런 거는 나도 만들겠다.”
“그럼 만들어 봐라. 얼마나 힘든지 아냐?”
억울한 듯이 말하는 곽노에게, 강진은 눈곱만큼의 동정도 보이지 않으며 물었다.
“보셨다는 그 수백 권의 책은 어디 있어요?”
“내 방에 있지.”
“저도 한번 봐요. 그게 나을 것 같네요.”
강진은 곽노의 방에 달려가 그의 방에 쌓여 있는 서적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권 보기도 전에 말했다.
“도대체 뭐예요, 시장에서 약 파는 아저씨들 것보다도 못한 이것들은?”
“네가 잘 몰라서 그런 거지, 다 도움이 된 거다.”
“그림만 보고요?”
“그래. 그 원에 맞는 자세를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강진은 곽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남은 서적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그나마 무관에서 만들어 냈다는 서적은 좀 쓸 만했지만 나머지는 그냥 불쏘시개였다.
‘이건 뭐야?’
강진은 글자 한 자 없이 오로지 그림만 있는 서적을 발견하고는 책 표지를 보았다.
무명검법(無名劍法).
‘뭔 놈의 책이 딱 네 글자밖에 없어. 그림책에도 이보단 글자가 더 적혀 있겠다.’
강진은 무명검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장씩 넘겨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이 책에서 베끼셨구먼. 그래도 이 책에는 투로가 조금은 남아 있네.’
강진은 책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외워 보고는 책을 들고 다시 그림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원을 밟고, 그림의 자세를 하나씩 실행해 보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움직이는 건가? 그럼 발이 조금 어긋나는데. 이렇게 움직여 볼까?’
강진은 열심히 하는 거였지만 곽노가 보았을 때는 흐느적거리는 수준이었다.
“뭐 하냐? 꼭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사부도 이리 와서 연구해 보세요. 자세와 자세가 연결이 안 되잖아요.”
“다른 것도 있는데 왜 굳이 그걸?”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자세잖아요. 그래서 사부도 여기서 자세를 따온 거 아니에요?”
“뼈마디가 쑤셔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곽노는 투덜거리면서도 슬그머니 원에 서서 책의 자세들을 따라 해 보기 시작했다.
두 사제가 그렇게 하기를 한 시진.
곽노는 힘들어 죽겠다며 나가떨어졌고, 강진만이 묵묵히 연구에 연구를 계속할 뿐이었다.
‘일단 투로부터 완성하고 원에 맞춰 봐야겠다.’
자꾸 손발이 어긋나자 강진은 일단 원에 발을 맞추는 건 포기하고 투로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로도 그냥 만들어서는 안 됐다. 원이 팔괘를 기본으로 하듯 무명검법도 팔괘의 방향을 기본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역경을 더 공부해야겠어. 알고는 있는데 어떻게 운용할지 손이 헷갈리잖아.’
강진은 곰곰이 생각하다 좋은 생각을 해냈다.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강진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말 한 필을 꺼내어 놀라 말리는 하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탔다.
즐기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말을 타고 달릴 줄은 알았다.
“으랴!”
강진이 그렇게 말을 타고 달려간 곳은 바로 서문우람의 집.
“우람아!”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강진은 그를 찾았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오늘은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서문우람이 문을 열고 나오며 하는 말에 강진은 곧바로 그의 손에 무명검법이 그려져 있는 서적을 넘겨주며 말했다.
“빨리 봐 봐.”
“뭔데?”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서문우람이 서적을 살피고는 말했다.
“검법이냐? 하지만 난 몸 쓰는 건 잘 모른다.”
“너는 생각만 해. 몸은 내가 쓸 테니.”
“무슨 생각?”
“이 그림의 자세로 이 원을 밟으며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해 보니 가능성은 있는 것 같은데 꽤나 걸리적거리네.”
강진의 말에 서문우람은 다시 서적을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보았지만 이제는 이유를 알았으니 거기에 맞춰 살펴봐야 할 터였다.
“으음.”
한참 동안 서적을 보던 서문우람의 입이 열렸다.
“비슷하긴 하다. 하체를 맞추고 난 후에 상체를 맞추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
“하체의 자세만 굳건히 한다면 상체는 조금 이상하더라도 균형은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럼 해 봐.”
서문우람은 오늘 반드시 봐야 할 책이 있었지만 강진의 기대 어린 표정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체의 움직임은 내가 만들어 볼 테니 너는 상체의 움직임을 만들어 봐. 그게 빠르겠다.”
“알았으니까 해 봐.”
서문우람은 쓴웃음을 지으며 서적을 든 채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냥 움직이는 거라면 편하게 만들겠지만 상체의 움직임도 고려해야 하니 서문우람의 걷는 속도는 한없이 느렸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발자국씩 움직였고, 강진은 서문우람을 따라 하며 그림과 비슷한 자세의 투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달이 중천에 떠오르고 대기는 쌀쌀해졌지만 서문우람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하자.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못 하겠다.”
“이제 열몇 개 했는데?”
“자연스럽게 만들려면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주역을 다시 봐야 할 것 같고. 나도 머리로만 배운 거지 그걸 써먹어 보는 건 처음이니까.”
강진은 더 하고 싶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서문우람을 더 보챌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지만 이거 끝낼 때까지는 네가 도와줘야 해.”
“알았다. 하지만 오래는 못 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아! 그렇지…….”
서문우람의 꿈이 입신양명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이렇게 하자. 네 시간을 뺏은 만큼 내가 시간을 보충해 줄게. 성도로 올라갈 때 내가 따라가 주마. 괜히 길에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는 편안하고 빠르게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이건 아주 정당한 거래이니 거절할 필요는 없다.”
서문우람이 씩 웃으며 제안을 수락하자 강진은 다시 말에 올랐다.
“자고 가라. 너무 늦었다.”
“그럴까? 그럼 좀 쉬고 난 후에 몇 개만 더 하는 거다?”
서문우람은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