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9)
관존 이강진 (19)
두려움
“후욱! 후욱!”
호흡 소리와 함께 강진은 힘차게 발을 굴렀다.
타악!
발 내딛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휘둘리는 목검에서 부웅 소리가 났고, 강진은 계속 발과 손을 절도 있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타악! 부웅! 탁!
그런 소리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걸음을 멈춘 강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옆에서 지켜보던 서문우람의 입에도 웃음이 걸렸다.
“됐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네 덕분이다.”
강진은 이마의 땀을 한번 훔친 후 목검을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 산에 한번 올라갔다 내려온 것만큼 힘들어.”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까 그럴 거야.”
어느새 서문우람도 목검을 잡고 강진과 같은 자세로 움직였지만, 반 각도 못 돼서 검을 내려놓으며 숨을 헐떡였다.
“허억, 이거 정말 운동은 되겠는데? 이걸로 체력 단련해야겠다.”
“그래, 넌 몸을 좀 움직여야 할 필요성이 있어. 남자가 그리 비실비실해서야.”
“걱정하지 마라. 급제하면 알아서 살이 찔 테니까.”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아직 좀 어색하지?”
“하면서 조금 더 편안한 자세가 될 수 있도록 해야지. 모든 게 학문과 똑같은 거 아니겠냐? 하면 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늘어난다는 건.”
“책벌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래도 네 말이 맞긴 해.”
강진은 서문우람의 말에 수긍하며 생각했다.
‘자세가 나오긴 하는데, 사부가 가르쳐 준 찌르기와 베기에 비해 실전에 써먹긴 많이 힘들 것 같은데. 발 움직이는 법 배우다가 이상한 걸 배워 버렸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친구와 함께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이것도 하면 할수록 힘과 속도가 붙겠지. 아니면 공격은 찌르기와 베기로 하고, 방어할 때는 이걸 쓰면 될 테고.’
강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사부에게 보여 주러 가야겠다.”
“가려고?”
“요새 너랑만 있어서 심통이 나신 것 같으니 용돈도 좀 쥐여 드려야지.”
“사부한테 잘해 드려라. 솔직히 옛날의 너는 보기가 많이 좋지 않았거든.”
강진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가 좋지 않았는데?”
“뭐랄까, 음침하다고 해야 할까? 좀 유별나긴 했잖아. 다른 애들과 말도 섞지 않고 이상한 것만 좋아하고. 그런데 너 사부를 만난 후부터 많이 달라졌잖아.”
“그때랑 많이 달라 보이냐, 내가?”
“옛날이라면 내가 애들한테 맞더라도 넌 상관하지 않았을 거야. 너 스스로가 그랬잖아, 사부가 나를 배워 보라고 했다고. 그래서 너는 내 일에 끼어든 거고, 지금 이렇게 친구가 됐잖아.”
“아, 그랬지.”
강진은 몰랐던 걸 깨달은 것처럼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사부가 거짓말은 안 해.’
“다르지만 다른 사람처럼 살게 해 주겠다.”
“넌 괴물이 아니야. 조금 특별한 것뿐이지.”
곽노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들이 이상하게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강진은 갑자기 사부에 대해 괜히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뭐랄까? 미안하다는 감정일까?’
자신에게는 생소한 감정.
그저 그와 같이 있으면 자신이 별로 괴물 같아 보이지 않아 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 되짚어 보니 상상 이상으로 자신에게 뭔가를 알려 준 것 같았다.
“나 먼저 간다.”
강진은 이 이상한 감정 상태를 친구에게 들키기 싫어 곧바로 서문우람의 집을 나와 달렸다.
‘가면서 구운 오리 한 마리랑 술 몇 병 사다 드리면 좋아라 하시겠지?’
남들이 말하는 배려, 위해 주는 마음 역시 생소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술 한 잔에 오리 다리를 뜯으며 흥얼거릴 사부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강진은 곧바로 장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주점을 찾을 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온 김에 아예 그놈을 묵사발 내 버리면 되잖아. 배울 건 다 배웠는데.’
강진은 순간 가슴에서 불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단 하루도 잊지는 않고 있었지만, 사부의 떠벌림과 서문우람과 무명검법을 수련해 가는 과정이 즐거워 놈을 등한시한 것 같았다.
‘그래, 오늘 아주 죽여 버릴 테닷!’
강진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목검을 손에 들고는 장거리를 돌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싸구려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강진은 놈을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 기름진 머리카락과 체격, 말소리와 걸을 때의 몸짓. 단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장거리를 훑고 다녔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객잔과 주점, 상점 들까지 하나씩 들어가서 모조리 확인해 보았지만 놈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 있지? 본새를 보아하니 시장 왈패 녀석이 분명했는데.”
주변을 살피며 걷던 중 문득 도박장에 생각이 미쳤다. 도박장이라면 시장 안에는 없고 바깥쪽에 수십 군데가 있다.
강진은 곧바로 도박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만복마작, 진래마작, 간판도 없는 주사위 도박장.
수많은 도박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웃고 있는 사람과 울상인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날 번 돈을 날린 자도 있을 것이며, 크게 한탕 하고 주점으로 달려가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강진이 찾는 자는 없었다.
만복마작.
‘모두가 만복이면 마작 치는 사람 모두 시간만 날리는 거지. 이름 하고는.’
모순된 마작방의 이름을 비웃으며 강진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어, 여기는 애새끼가 오는 곳이 아니다. 여기 니 어미 아비는 없을 것이니 어여 가라!”
마작방을 관리하는 왈패 하나가 강진을 발견하고는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밀어냈다.
손을 얼마나 안 씻었는지 굳은 때가 덕지덕지 끼고 거기에 골초 냄새까지 확 풍기자 강진이 눈을 부라리며 욕을 내뱉었다.
“어디에 손을 대는 거야? 하류 잡배 같은 녀석이!”
강진의 반응에 왈패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짓다가 손을 들며 말했다.
“아나, 이 애새끼가 지금 누구보고…….”
“손모가지 부러지고 싶구나? 한번 내려쳐 봐!”
눈동자만 치켜뜨며 싸늘하게 내뱉는 강진의 말에 왈패는 순간 멈칫했다.
나름 뒷골목 짬밥이라는 걸 오랫동안 먹은 왈패의 직감이 손을 내려치지 못하게 했다.
‘뭔 애새끼가 이런 기운을…….’
하지만 이내 상대가 꼬맹이라는 걸 재인식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갈등했다.
그의 직감은 꼬마를 달래 내보내라고 했지만, 현실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이 바닥은 소문이 중요한데 어린아이한테 밀려서 힘도 못 썼다는 소문이 나면 먹고살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사내는 현실을 선택했다.
빠악!
사내가 강진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려고 손을 내리치는 순간, 강렬한 소리와 함께 무릎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으아악!”
그리고 뒤따르는 고통에 사내는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을 잡고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손모가지 부러진다고 했지?”
강진은 쓰러져 구르고 있는 사내에게 냉랭하게 말하고는 다가갔다.
타아악!
“아아아아악!”
그리고 단 한 방에 목검으로 사내의 손목을 분질러 버렸다.
순간 사내의 비명을 제외한 마작방의 모든 소리가 죽어 버렸다. 잠시 후 뒤늦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오는 사람들의 소리만 들릴 뿐.
“없네.”
강진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이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작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다른 마작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명 소리가 울리는 마작방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마작방도 있었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강진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여섯 군데의 마작방과 도박장을 들어갔다 나온 강진의 앞을 막는 사내들이 있었다.
“뭐야, 이 꼬맹이한테 다들 나가떨어졌다는 거야?”
사내들 중 하나가 강진을 손가락질하더니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런 병신들을 믿고 어디 사업하겠어? 애새끼 하나 어쩌지 못해서…….”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귀신같이 다가와 턱 밑에서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는 강진을 발견한 것이다.
최소 다섯 개 이상의 관절을 아작 낸 목검을 돌리며 자신을 훑어보는 강진의 시선에 사내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 왔다.
‘뉘미!’
그리고 그 역시 뼈마디가 부러진 다른 사내들과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도 보고 있는데.’
그의 직감 역시 강진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 그냥 있어. 너는 아닌 것 같으니까.”
강진이 목검을 거두고 돌아서는 순간, 사내는 이대로 그를 보냈다가는 이 바닥에서 비웃음을 살 거라는 초조함에 대뜸 강진의 뒷덜미를 잡으려 했다.
“경고했다.”
새로 배운 보법으로 하체의 균형을 잡는 것과 동시에 강진의 몸이 홱 돌아갔다. 그러고는 무명검법의 한 초식을 시전해 사내의 손목을 젖혔다.
강진의 눈에 사내의 옆구리가 훤하게 들어왔고, 거기에 힘차게 목검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도련님!”
뒷덜미를 잡으려는 사내에게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소리였으며, 강진에게 있어서는 귀찮음의 목소리였다.
“정 총관.”
강진은 목검을 거두며 자신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팔자수염에 마른 몸매를 가진 사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는 아직 도련님이 오실 곳이 아닙니다. 장주께서 아시면 큰일 납니다.”
“호들갑 떨지 마. 정 총관이야말로 여기는 무슨 일이야?”
“여기에도 사업장이 몇 개 있습니다. 잠시 일이 있어서요. 도련님이야말로 정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도련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찾을 사람이 있어.”
“누구 말입니까?”
강진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있어, 내게 모욕감을 준 놈. 오늘 그놈을 꼭 찾아서 아작을 내고 말 거야.”
“그런 놈이 있다면 저에게 이야기하시면 될 것을, 도련님이 이곳까지 직접 오신 겁니까? 누굽니까, 그 뼈를 바숴 버릴 놈이?”
정 총관의 시선이 갈비뼈가 부러질 뻔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너냐, 감히 우리 도련님을 건드린 놈이?”
정 총관의 물음에 사내는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어르신이 모시고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으면 언감생심 말도 붙이지 못했을 겁니다.”
사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정 총관 앞에서 비굴함을 보였다. 그리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 죽일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누구냐, 우리 도련님이 찾고 있는 놈이?”
그때 강진이 나섰다.
“나도 알고 있으면 이렇게 찾아 헤매지 않지.”
“이름이나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냥 보면 아는 놈이야.”
정 총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곳은 엄청 큽니다. 움직이는 사람도 수백 단위를 넘어가고요. 그렇게는 못 찾으십니다.”
“오늘 못 찾으면 내일, 내일 못 찾으면 그다음 날에라도 찾을 거야.”
강진의 단호한 말에 정 총관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제가 이곳을 좀 압니다. 아마 왈패 놈 중 하나가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으니 저랑 함께 왈패 놈들을 모두 보십시다. 다만 그중에서도 찾지 못하신다면, 이곳에 살지 않는 놈이니 그냥 잊어버리십시오.”
“이곳을 그리 잘 알아?”
“이런 곳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려면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도련님도 성인이 되시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정 총관의 말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불가능한 일을 계속할 정도로 한가롭지도, 그리고 멍청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
강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 총관은 겁먹고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내에게 말했다.
“모두 불러 모아. 일하고 있는 놈들도, 집에 있는 놈도, 아파 나오지 못할 놈들도 모조리 끌고 데리고 와. 소남이, 애꾸, 쌍칼 놈들에게도 똑같이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사내가 황급히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지자 강진이 말했다.
“정 총관도 제법이네. 집에서는 여자처럼 행동하고 말하면서.”
“집에서는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듣지만 이곳 놈들한테는 이 정도 목소리는 내 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도련님.”
“왜?”
“오늘 일을 장주님이 아시면 저는 죽습니다. 그러니 오늘 일은…….”
“나도 아버지 눈 밖에 나는 건 좋아하지 않아. 정 총관이야말로 입단속들 잘 시켜.”
정 총관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여기서 이러고 계시지 말고 저기 안에서 기다리시지요.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 아, 그런데 그 마작이라는 게 그리 재미있나? 사부님도 종종 오시는 것 같던데.”
“네, 종종 오십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 싶지만 장주님이 아시면…….”
“됐어. 알고 싶으면 진작 알아냈어. 하는 거 몇 번 보면 되는걸.”
강진과 정 총관이 작은 찻집에서 차를 몇 잔 마시며 기다리는 사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충 봐도 백은 훨씬 넘을 듯한 사내들이 오자마자 강진과 정 총관의 앞에 넙죽 무릎을 꿇었다.
“다 모인 거냐?”
정 총관의 물음에 맨 앞에 서 있는 다섯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어르신.”
“도련님, 다 모였답니다. 찾으시는 놈이 있는지 한번 보십시오.”
“모두 일어나게 해. 그렇게 무릎 꿇고 있으면 못 찾아.”
사내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강진은 사내들을 헤집으며 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내들을 모두 훑어본 강진이 입을 열었다.
“정 총관.”
“네, 도련님.”
“정말 이놈들이 다야?”
“모두 모였습니다. 제가 목을 걸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가자. 여기 없다.”
“없습니까?”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 총관은 사내들을 해산시키고는 말했다.
“여기는 뜨내기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용모파기라도 알려 주시면 놈이 나타나는 순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됐어. 모든 걸 내가 할 거야. 그냥 가자. 일 더 봐야 해?”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강진은 정 총관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에이, 괜히 그런다.’
강진은 평상시처럼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깨끗이 포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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