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
관존 이강진 (2)
곽노
“아이고, 천하가 좁다 하며 뛰어다니던 나도 이제 다 늙었구나. 안 쑤시는 곳이 없어.”
아닌 게 아니라 산 두 개를 쉬지 않고 넘어왔더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곽노는 스스로도 큰일 나겠다 싶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강남이 좋아. 햇볕도 따땃하니 바람도 시원하고.”
곽노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이름 모를 작은 산이지만 나무와 풀 그리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거기에 땀을 식혀 줄 만한 바람까지 솔솔 부니 피로가 절로 풀어지는 듯했다.
끼이이이이!
그렇게 휴식을 하고 있던 중 바람결에 들리는 괴이한 소리에 곽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끼이이이!
다시 소리가 들리자 곽노는 소리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거기에서 별로 보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열 살도 되지 않았을 사내아이 하나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토끼의 상태가 무척 좋지 못했다. 털이 이곳저곳 뽑혀 있고 뒷다리 두 개는 반쯤 찢어져 있었다.
아이가 그 사이로 나뭇가지를 꾹꾹 누르자 토끼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끼이이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으련만 토끼는 죽지도 못한 채 괴이한 음성만 계속 냈다.
“이놈아! 뭐 하느냐?”
뒤에서 갑작스럽게 부르는 소리에 놀랄 법도 하련만 소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허허, 토끼 같은 녀석이로고.’
토끼처럼 눈은 동그랗고 볼에는 살이 포동포동 찐 귀여운 아이였다.
“뭐 하느냐고 묻고 있지 않으냐?”
“토끼 잡고 있는데요.”
아이의 반문에 곽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먹으려면 제대로 목을 따고 털을 깨끗이 뽑아야지.”
“먹을 거 아닌데요.”
“응? 그럼 뭐 하려고?”
“그냥 가지고 놀고 있는 건데요.”
곽노는 아이의 말투에서, 그가 기이한 흥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너만 할 때는 개미집도 부수고 개미 위에 침도 뱉고 파리 날개도 떼어서 놀았다만, 이건 좀 심하지 않으냐?”
“뭐가요?”
“먹지도 않을 토끼를 왜 그리 괴롭히느냐 말이다.”
“그래선 안 되나요?”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말에 곽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당연히 안 되지. 금수라 해도 엄연히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이거늘.”
“그럼 사람들은 모두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네요.”
“그 말이 아니지 않으냐.”
“그 말이 그 말이지요.”
“그게 아니래도.”
아이가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왜 아닌지 설명을 해 보래도요.”
“어른이 그러면 그런 갑다 해야지, 끝까지 말대꾸하기는.”
“어른들은 불리하면 꼭 그런 말을 하더라.”
곽노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런 버르장머리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고는 아주 가볍게 아이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이 늙은이가!”
그 순간 아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곽노에게 달려들었다.
“헛!”
아이라고 방심한 데다 너무 가까웠는지라 아이의 주먹은 그대로 곽노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커억!”
곽노는 숨이 꽉 막혀 오는 걸 느끼며 헛숨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아이를 밀쳐 내고 기침을 하며 숨통을 틔웠다.
그나마 주먹이 작아서 다행이었지 아이가 몇 살만 더 컸더라도 그대로 혼절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맹랑한 녀석 같으니라고.”
곽노는 아이를 때릴 것처럼 손을 들다가 소년의 눈을 보았다.
‘허허, 뭔 꼬맹이의 눈빛이…….’
먹이를 앞에 둔 백 일 굶은 맹수의 눈빛도 저리 살벌하지는 않을 터였다.
‘눈이 참…….’
곽노는 소년의 눈빛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순간 진저리를 쳤다.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네 집은 어디냐?”
곽노의 물음에 소년은 여전히 그를 노려보며 반문했다.
“그건 왜요?”
“네 부친과…….”
곽노는 ‘네 부친과 이야기를 하려고.’라는 말을 꺼내려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줬다면 지금보다야 아주, 아주아주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지.”
순간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겠지.’
어차피 정착해야 한다면 한 소년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끼도 살아 있는 거다.”
“뭐요?”
“토끼도 살아 있는 거라고.”
“그런데요?”
아이의 물음에 곽노는 짓이겨진 토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프지 않겠니?”
“그래서요?”
“사람들은 그걸 아주 싫어한단다.”
“무슨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은 아픈 걸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것도 아주 싫어하지.”
소년의 눈이 빛났다.
“그거랑 저랑 상관이 있나요?”
“있지. 너도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살려면 말이다.”
곽노의 말에 소년은 충격이라도 받은 양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거 아무도 설명 안 해 줬지?”
“…….”
“너는 괴물이 아니야.”
“…….”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곽노는 쭈그리고 앉아 소년과 눈높이를 맞췄다.
“네가 조금 특별한 거다.”
곽노는 소년이 대답 없이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였으니 이제는 기다려야 한다.
“그럼…….”
마침내 소년의 입이 열렸다. 이해의 시작이고, 대화의 첫걸음이다.
“제가…….”
소년이 우물쭈물해도 곽노는 기다렸다.
“제가 이상한 게 아니란 말인가요?”
“이상한 게 뭔데?”
“모두 저보고 마귀래요. 저만 보면 더러운 걸 본 것처럼 피해요.”
“내가 봤을 때도 너는 이상하다.”
소년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어리는 걸 보며 곽노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너에게 있어서는 이상한 게 아니야. 그리고 틀린 것도 아니고.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거야. 정확히 말하면,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지.”
“특별해요?”
“그래.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다.”
“특별한 거…….”
“그래, 넌 특별한 거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특별한 아이지.”
곽노의 말에 소년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그게 싫어요.”
“특별한 게 싫어?”
“특별한 건 좋지만 나를 마귀 취급하니까요.”
“그게 싫으냐?”
“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가끔씩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소년의 대답에 곽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 이 녀석은 그 미친 녀석과는 다르게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곽노는 잠시 소년과 눈빛을 마주하고는 말했다.
“알려 줄까?”
“…….”
“남들이 너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방법. 너를 마귀라고 하지 게 하않는 방법.”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그런 게 있나요?”
곽노는 미소를 지었다.
“있다. 네가 내 말을 따라 준다면 말이지.”
“할게요. 말해 줘요.”
“네 이름이 뭐냐?”
“그건 알아서 뭐하게요?”
“이름을 알려 준다고 너에게 손해날 건 없지 않으냐? 그리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하면 상대는 그걸 불편해한단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이름을 묻는다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단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격적인 사람을 경계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요?”
“그래서 뭘? 다른 사람들이 널 이상하게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럼 너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야 할 거 아니냐?”
소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찮은걸요.”
“이것 봐라.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걸 넌 귀찮아해. 아주 간단히 이름을 알려 줬다면 안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너는 굳이 귀찮음을 만들었지. 사람들은 또 그걸 피곤해하고, 그럴 바에는 너와 알고 지내려 하지 않겠지.”
“음…….”
“다르다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주아주 불편한 요소거든. 너는 배워야 해. 그래야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 거야.”
곽노는 다시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강진. 이강진.”
“강진이구나. 반갑구나. 나는 곽노라고 한다.”
곽노가 손을 내밀자 강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그 손을 잡았다.
“잘 지내보자꾸나.”
곽노는 강진의 작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 * *
“이게 너희 집이냐?”
문은 고개를 잔뜩 치켜들어야 끝이 보일 정도로 높고 담벼락 끝은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커다란 집이었다. 이 집 자체만으로도 마을 하나는 될 법한 크기였다.
“네, 우리 집이에요.”
“너희 집 좀 사는구나.”
“좀이 아니라 잘사는 거예요.”
“그래, 잘사는구나. 그럼 이 사부가 머무를 방 한 칸도 흔쾌히 마련해 주실 수 있겠구나.”
곽노가 이가장이라는 커다란 현판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사부요?”
“앞으로 내가 너를 가르칠 거잖냐.”
“그건 그렇죠.”
“그럼 당연히 사부가 되는 게 아니겠느냐?”
“뭐, 그렇다고 해 두지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러라 하시지 않을 거예요.”
곽노는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렇게 큰데 설마 빈방 하나 없으려고.”
“그건 노인장이…….”
“사부라니까.”
강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사부가 우리 아버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사부 말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무척 특별한 사람이거든요.”
곽노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혹시 너희 아버님도 너랑 비슷하게 특별하시냐?”
“좀 다른 특별함이지요. 저기 오시네요.”
마치 궐처럼 겹겹이 있는 집 안의 몇 개의 문 중 하나가 열리며 중년이라고 불리기에는 약간 젊어 보이는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강진아.”
“아버지.”
약간은 껄렁대던 강진은 어느새 아이 같지 않은 말투와 몸가짐을 보였다.
“어디 다녀오는 거냐? 이분은 누구시고?”
사내의 말에 곽노는 그를 보며 말했다.
“강진의 아버님이 되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말 자체도 그렇지만 억양이 무척이나 건조하여 곽노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인지라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잊지 않았다.
곽노는 정중히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곽노라고 합니다.”
“이제원이라 하오. 근데 노인장께서는…….”
“아! 오늘 강진이와 인연이 닿아, 장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잠시 머무르며 그와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제원은 곽노의 전신을 살피며 물었다.
“실례지만 노인장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차림으로 보아서는 도사분은 아니신 것 같고, 낭인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허허허, 장주의 안목이 대단히 훌륭하시군요. 하지만 낭인은 아니고 군인이었습니다.”
“군역이 그리 길지는 않을 텐데요?”
“열여섯에 군문에 들었는데 나름 적성에 맞더군요. 그렇게 십 년이 지나니 나가서 먹고살 자신도 없고 해서 말뚝을 박았지요. 하지만 몇십 년 지나니 쓸모가 없어졌다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이제원은 살짝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런데 강진이와 머무르시겠다는 뜻은?”
“강진이의 성격이 좀 특별하더군요. 장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
“군에서 오래 머무르다 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강진이와 비슷한, 아주아주 비슷한 사람도 있더란 말입니다.”
순간 이제원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거의 찰나의 시간인지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원은 다시 물었다.
“고칠 수 있겠소?”
“사람의 성격은 고치는 게 아니지요. 그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자신을 아는 것뿐.”
곽노의 대답에 이제원은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잠시 곽노와 강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다시 곽노를 보며 물었다.
“그게 가능하시겠소?”
“강진이가 똑똑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또한 노부가 최대한 도울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곽노의 대답에 이제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고는 사람을 하나 불러 곽노가 머무를 방과 하인 하나를 붙여 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