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1)
관존 이강진 (21)
“끝났습니다.”
“저 소는 모두 이가장으로 보내 주시게. 대금은 여기 있고.”
곽노의 손에서 전낭 하나가 사내에게 건네졌고, 사내들은 고깃덩어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부, 저도 해 보는 건가요?”
강진이 기이한 기대를 나타내며 하는 말에 곽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물었다.
“해 보고 싶으냐?”
“네. 그것 때문에 데리고 온 거 아니셨어요?”
“맞다. 하지만 그 전에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다.”
“이야기하세요.”
“저 소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더냐?”
강진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던데요. 고기를 저렇게 만드는구나, 정도? 오히려 그 백정의 기술이 신기하던데요. 단숨에 소를 잡아서 해체하는 게요.”
“곡해하지 말고 듣거라. 보통 네 또래라면 백정의 기술을 신기해하기 전에 저 소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하겠지?”
“자기들도 고기를 먹으면서 그렇게 생각해요? 소가 불쌍할 거면 애초에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요.”
“네 말도 맞다. 하지만 보통 아이라면 그렇게 생각한다.”
“으음, 사부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시나요?”
곽노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난 네가 저 사내들이 저 소를 잡기 전에 했던 말과, 소를 한번에 죽일 수 있도록 수련하는 기술에 대해 알았으면 한다.”
“하긴 좀 이상하긴 했네요. 어차피 죽일 거면서 그런 말은 왜 했는지. 그런데 소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기술을 수련도 해요?”
“소도 살아 있고, 생명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의 고통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
곽노의 평상시와는 다른 표정과 말투에 강진도 약간 생각하더니 말했다.
“으음,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야 한다기보다는 저 소가 죽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바로 우리가 먹기 위해서이고, 또 그걸 위해서 저 사람들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도축을 하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강진의 표정을 곽노는 이해했다. 그러고는 최대한 머리를 써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그걸 전해 주려 노력했다.
“이유가 있어서 저 사내들은 소를 죽였다. 이 사부도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였다. 뭔가를 죽일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하다못해 모기 한 마리를 죽이더라도, 모기가 내 피를 빨아 내가 귀찮아지기 때문에 죽이는 거지. 모기와 나방이 있으면 모기를 죽이지, 나방은 죽이지 않지? 왜? 나방은 모기보다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길게도 말씀하시네요. 이제 알아들었어요.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뭔가를 죽일 때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사부가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토끼나 닭을 죽였을 때는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고요. 지금도 이유 없이 뭔가를 죽이고 싶어 하고.”
곽노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사부가 잘못 알고 계신 게 있어요.”
“뭘 말이냐?”
“저도 이유가 있어요.”
곽노는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이유냐?”
순간 강진의 표정에 곽노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순간 강진을 때려서라도 그 표정을 짓지 못하게 하고 싶어졌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
마치 백만 마귀 같은 표정이 강진의 얼굴에 들어 있었다.
강진은 그렇게 기이한 흥분 어린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두 손에서 뭔가를 이뤄 낸다는 것, 이 안에 있는 것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엄청난 기분. 마치 내가 조물주가 된 것 같은 그 느낌.”
짜악!
강진이 말을 마치고 곽노를 보는 순간, 곽노는 스스로의 얼굴을 때렸다.
“어, 사부! 왜 그래요?”
강진이 놀라 외치는 소리에 곽노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펴 보였다.
“모기 이야기를 했다고 모기가 얼굴을 물잖냐. 그래서 때려잡았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곽노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이제 늙어서 모기 한 마리도 못 잡는구나. 서글퍼지네.”
“이제 추워서 모기도 없는데…….”
“있었다. 이 사부가 아직 눈은 환하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냐?”
“사부는 그런 생각 해 보신 적 없으세요?”
“사부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와서 그런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으음! 오늘 들으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죠?”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라니까.”
곽노는 강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면서 이야기하자. 이 빌어먹을 피 냄새를 또 맡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지 않다.”
곽노는 강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킬 뻔했다.
절로 떠오른, 강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그 표정을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이놈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 줘서는 안 돼. 이 녀석도 내가 가장 무표정하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준 거였잖아.’
강진도 아직은 애다.
애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자기를 두려워한다고 느끼면 지금처럼 자신을 따르고 의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강진이 자신을 본 순간 얼굴을 친 것이다. 그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곽노는 말했다.
“네 이유는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 그 특별한 이유를 이해해 줄 것 같지 않구나.”
“알아요. 그래서 애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거잖아요.”
“지금은 아니잖냐. 강진아.”
“네, 사부.”
“이건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선택요?”
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택이다. 네가 조물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느냐,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려서 남들처럼 그렇게 사느냐의 선택.”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별로 재미있지는 않지만, 나를 따돌리는 건 싫어요.”
“바로 그거다. 네게 앞으로 뭔가를 죽이고 싶은 욕구가 느껴질 때마다 선택을 하는 거다. 그러면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겠냐?”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사부 말이 옳아요. 하지만 아는데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까 문제인 거죠.”
“그럴 때는 이 도축장에서 가축을 잡는 거다. 단, 그 순간에도 너는 선택을 하는 거다.”
“어떤 선택요?”
“다른 사람들이 가축을 잡는 이유와 네가 가축을 죽이는 이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말이다. 물론 네 욕구를 해소하려면 죽이는 거겠지만, 그 차이는 계속 염두에 둬야 한다.”
“네.”
두 사제는 그렇게 걸었다.
잠시 후 곽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로 물었다.
“하나 더 있는데 말이지.”
“뭐가요?”
“네가 뭔가를 죽이고 싶어 할 때 말이다.”
“네.”
“그 대상은 가축으로 한정해야 한다.”
강진은 대답 대신 곽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말이다…….”
곽노가 뭔가를 말하려 하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어요. 사부가 오늘 한 말들을 종합하면 답이 나오거든요.”
“답이 나오더냐?”
“저 똑똑하잖아요.”
“그래, 너는 아주 총명한 아이지. 그러니 네게 유리한 것이 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거고.”
“사부가 종종 이야기하던 그 아저씨도 가축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사람을 죽였나요?”
곽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금방 추스르고는 말했다.
“그랬다고 하더구나.”
“그 아저씨도 무척 똑똑한 사람인 게 맞군요.”
“그래, 무척 똑똑했지.”
“그 아저씨는 자신의 욕구를 풀고자 전쟁터를 선택한 거예요.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는 대신 상을 받잖아요. 맞죠?”
곽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유를 정확히 맞힌 것이다.
“사부가 그랬잖아요, 저는 사부가 있으니까 훨씬 낫다고. 혹시라도 제가 그런 마음이 들면 사부한테 이야기할게요. 그리고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생각해 봤는데 말이다, 아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의, 천만의 하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면 말이다, 그 대상이 나라고 생각해라.”
갑자기 강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 그러냐?”
곽노가 묻는 말에 강진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정말 상상해 버렸잖아요. 그리고 그건 끔찍했어요.”
곽노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끔찍했냐?”
“그럼 좋아라 했겠어요? 사부 없으면 심심할 텐데.”
“그래, 바로 그거다. 네가 죽일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끔찍한 느낌을 준다는 걸 생각하는 거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역……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역지사지(易地思之), 남과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이에요.”
“그렇지. 역시 너는 똑똑해. 그 역지사지라는 거 한 백 번쯤 생각해 보면 안 될까?”
“그 전에 사부가 그렇게까지 안 가게 해 주면 되잖아요. 요새 들어 느낀 건데, 사부 말이 틀린 건 별로 없더라고요. 스스로도 좀 바뀐 것 같고.”
곽노는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냐?”
“네. 그리고 이해 가기 쉽게 말하잖아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남들은 제가 토끼를 잡으면 토끼가 불쌍하지도 않냐 하면서 저더러 잔인한 새끼라고 했지만, 사부는…….”
“살아 있는 걸 괴롭히면 남들이 싫어한다고 가르쳐 줬지.”
“네, 그거예요. 사부 말은 알아듣기가 쉬워요. 나를 좀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이 귀여운 녀석. 이러니 우리가 사부와 제자인 거다.”
“아! 그 드러운 얼굴로.”
곽노가 대뜸 강진을 안고는 얼굴을 부비며 하는 말에 강진은 짜증을 내었다.
하지만 끝까지 곽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