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3)
관존 이강진 (23)
“으으.”
폭포수 아래에서의 추위에 단련됐다 하더라도 싸늘한 산바람의 추위는 성질이 다른 듯, 몸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왜 이리 춥지? 내일부터는 좀 따뜻하게 입어야겠군. 옷 때문은 아닌가?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 걸지도. 가자마자 인삼차 한잔 마시면 따뜻해지려나.”
꽤나 심심한 듯 혼자 묻고 답하며 그렇게 산을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직 애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옷 좀 보라고. 있는 집 자식이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애는 좀…….”
“우리가 지금 애 어른 따지게 생겼어? 후딱 처리하자고.”
들리는 목소리에 강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좀 조용히나 말하든가, 잡고 나서 말하든가. 설마 이놈들이 소문의 그 마적 떼는 아니겠지?’
설마설마하고 있을 때 강진의 앞으로 네 사람의 사내가 등장했다.
순간 강진은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들의 차림은 강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뭐랄까, 촌스럽고 안쓰러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진 가죽옷에 칼이라고 하나씩 들고는 있는데, 이 칼도 잘 벼려진 게 아니라 녹슨 철 덩어리를 대충 칼 모양으로 갈아 둔 듯해서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말도 하나씩 데리고 있고. 정말 소문은 부풀려진다더니.’
네 명이 열 명으로, 어디서 밭이나 갈던 말이 마적들이 타고 다니는 말로 변신한 소문의 진실에 강진은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저게 웃는데?”
“이 녀석아,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으냐?”
어설프게 칼을 들이밀며 하는 사내들의 말에 강진은 그제야 웃음을 멈췄다.
“누구세요?”
강진은 열넷이지만 체구가 작은 데다 얼굴까지 어려 보여 처음 보는 사람은 아직 열 살도 넘지 않은 꼬마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강진이 겁먹은 연기까지 하자 사내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너 혼자냐?”
사내들 중 목젖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가진 사내의 물음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근처에 계시냐?”
그 한마디의 물음으로도 강진은 사내들이 강도 짓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일단 말투부터가 강도답지 못했다.
‘부모님이라니…… 이건 동네 아저씨가 옆집 꼬마에게 묻는 말투잖아.’
하지만 강진은 여전히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는 길이에요. 집은 현 내에 있고요.”
수염 사내는 동료를 힐끗 보고는 다시 강진에게 물었다.
“부잣집 아이이니 가진 돈이 좀 있겠구나?”
원래라면 있었겠지만 지금은 서문우람 집에서 모두 쓰고 오는 길.
“지금은 없어요. 하지만 오늘 저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시면 내일은 꼭 돈을 갖다 드릴게요.”
강진의 대답에 수염 사내는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을 보았다.
“어떡하지, 지금은 없다는데?”
“어떡하긴 어떻게 해. 보내야지.”
“그래. 애 부모도 걱정하고 있을 텐데.”
동료들의 말에 수염 사내는 강진을 보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보내 주겠다. 하지만 내일은 꼭 돈을 들고 나와야 한다.”
강진은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짐을 느꼈다.
‘뭔 강도가 이러냐고. 애초에 강도질을 하지 말든가.’
보통 강도였다면 약간 골려 준 후 배운 걸 시험할 겸 흠씬 두들겨 패 주려고 했는데 그냥 보내 준다고 하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내일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면 어찌 되는 건가요?”
강진이 지금이라도 강도답게 행동하길 바라며 물었지만, 사내들의 대답은 기대에 어긋났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에는 국물도 없다.”
“맞아. 다음에라도 잡으면 그때는 아주 죽는 거다.”
‘에휴.’
강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러니 오늘은 보내 주세요.”
“그래, 잘 가라.”
“밤길이 어두우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밤길까지 걱정해 주는 강도들 덕분인지 강진은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진은 잠이 들며 생각했다.
‘설마 내일 나올까?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은근히 기대되는 강진이었다.
* * *
“네가 웬일이냐, 이 꼭두새벽부터 혼자 수련을 다 하고?”
곽노는 동이 트기도 전에 폭포수 아래로 들어가는 강진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냥 주무시라고 했는데 왜 따라 나오셔서 잔소리세요.”
“하도 신기해서 그런다.”
“집중에 방해되니까 조용히 계세요.”
“알았다. 오늘이 그 드디어구나.”
“사부!”
“알았대도.”
곽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 걸 보고 강진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성공한다.’
어제 강도 소동 때문에 시간이 조금 늦어 시도하지 못한 걸 지금 하려 했다.
바로 이 좁쌀을 정수리까지 보내는 것.
사부가 가르쳐 준 건 어렵지 않게 다 해냈지만 이건 아니었다.
보통 하다가 안 되는 건 포기했지만 이건 왠지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래서 쉴 틈 없이 노력했고, 얼마 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어제 다시 한 번 제대로 도전해 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가자. 그대로 가자.’
좁쌀이 스멀스멀 단전에서 올라가더니 배꼽 위까지 도착하자 강진은 좁쌀을 정지시켰다. 그러고는 좁쌀의 존재에 집중했다.
배꼽 위까지는 여태 잘 올라왔고, 몇 번뿐이지만 가슴까지 올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가슴으로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후욱후욱!”
들숨날숨 열 번에 좁쌀은 새끼손가락 반 마디만큼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가자. 사라지지 마라.’
어느새 좁쌀이 가슴까지 올라오자 강진은 초조함보다는 짜릿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 지루한 싸움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이걸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로에서 벌어지는 이 짜릿한 기분 때문이었다.
“후우우우우.”
긴 날숨과 동시에 좁쌀이 드디어 가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후우후훅!”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위로 올렸다.
흔들흔들.
좁쌀 크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이 가슴에서 느껴지기 시작했고, 강진은 급히 숨을 몰아쉬며 좁쌀이 사라지지 않게 노력했다.
잠시 후 좁쌀의 흔들거림이 멈추었지만 강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조급해하면 사라지니까.’
강진은 좁쌀을 확실하게 인식시킨 후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집중하자.’
좁쌀이 머리 쪽으로 서서히 올라갈수록 강진의 흥분은 더더욱 커져 갔다.
스팟!
그 순간 좁쌀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에 강진은 자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라진 게 아니야!’
갑자기 맹렬한 속도로 가슴을 통과하여 목덜미 그리고 머리 쪽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기운에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으으으으.”
그리고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강진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는 순간.
콰아아앙!
마치 머리가 그대로 폭발해 나가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세상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전신이 폭발하는 것처럼 요동쳤고, 강진은 그 충격에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풍덩!
그 탓에 그대로 물웅덩이에 빠졌고, 곽노가 놀라 소리치며 물로 뛰어들었다.
“강진아!”
곽노는 단숨에 강진을 건져 올리고는 급히 상태를 살폈다.
“쿨럭쿨럭. 사부!”
다행히 강진은 크게 문제가 없었던 듯 입에 고여 있는 물을 내뱉고 곽노를 불렀다.
“그래, 괜찮으냐? 어디 이상한 곳은?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런 거야?”
“하나씩 물어봐요. 일단 괜찮은 것 같고, 몸도 멀쩡하고. 갑자기 그런 건 사부 때문이잖아요. 깜짝 놀랐네.”
“뭐가 나 때문이란 거냐? 어서 말해 봐라.”
“그 좁쌀 때문에……. 아,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네.”
“좁쌀이 뭐? 설마 머리까지 끌어 올린 거냐?”
“끌어 올린 게 아니라 가슴 위까지 올린 순간 지가 처올라갔어요. 덕분에 죽을 뻔했다고 생각했고요.”
“정말 정수리까지 올린 거냐?”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그를 쏘아보며 물었다.
“정말이냐니요? 사부가 올리면 되는 거라고 해 놓고, 정말이냐니요?”
곽노는 순간 뜨끔하며 대답했다.
“네가 이리 빨리 해낼 줄 몰라서, 놀라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좁쌀은 어찌 됐냐?”
“어찌 되긴요. 펑 하며 사라져…… 어?”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좁쌀이 열을 내며 아직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배꼽 아래에 좁쌀이 사는 곳이라는 듯한 공간에서 말이다.
“있네요. 사부, 있어요.”
강진이 신 나 하는 말에 곽노는 더 신 나 하며 말했다.
“축하한다. 너도 드디어 내공이 생겼구나.”
“신기하네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사라지던 게……. 사부, 이게 정말 그 내공이라는 건가요?”
“그래, 그게 바로 내공이라는 거다. 그걸 단전과 머리를 왔다 갔다 시키면 천기를 받아 점점 커져 가는 거다. 고수일수록 그 좁쌀이 크다.”
내공이라는 걸 가져 보지 못한 곽노가 어찌 알겠느냐마는 그래도 말만은 청산유수였다.
“너도 이제 부지런히 수련하면 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하하하.”
“그런데 사부.”
“왜 그러냐?”
“하늘을 날려면 얼마나 커져야 해요?”
“그건 말이다…… 아랫배 전부를 감쌀 만큼 커져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고수라는 소리를 듣고, 하늘을 날 수도 있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어떤 고수도 단전을 그리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절정이라 불리는 고수들도 보통 어린아이 주먹만 한 진원지기로 내공을 운용한다.
그런데 아랫배 전부를 감싸면 고수 소리를 듣는다니.
곽노의 지식의 한계를 보여 주는 말이었지만, 강진이 그걸 알 턱이 없었다.
강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좁쌀 하나 만드는 것도 몇 달이 걸렸는데 아랫배 전부를 감싸야 한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넌 애초에 그 좁쌀도 못 믿지 않았더냐? 그리고 고수가 어디 그리 하루아침에 되는 건 줄 알았냐? 부단한 노력과…….”
“부단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 고수라면 반드시 가지고…….”
“알았으니 그만 가요.”
“어디를 말이냐?”
“밥 먹으러 가야지요. 아침부터 힘을 쓰니 배가 고프네요.”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곽노는 흐뭇하게 웃었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가장의 밥이라면 웃음부터 나오는 곽노였다.
* * *
‘나올까, 아님 나오지 않을까?’
산 중턱에서 강진은 여유를 갖고 기다렸다.
혹시 자신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런 촌사람들 상대로라면 수백이라고 해도 자신 있었고, 만의 하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도망칠 자신도 있었다.
여기는 자신이 올라탈 나무가 숱하게 많은 산이지 않은가 말이다.
“거봐,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렇게 기다린 지 이각이 채 안 돼 사내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어제 봤던 사내들이 나타났다.
“그래, 약속을 지켰군. 자, 꼬마야, 돈 내놔라.”
수염 사내의 말에 강진이 준비해 온 은자 열 냥을 꺼내자 사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을 가지고 나올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은자 열 냥이란 거금일 줄은 몰랐다.
“은 열 냥……. 꼬마야, 너 도대체 뭘 한 거냐?”
“아무리 있는 집 자식 같다 해도 은 열 냥은……. 너 혹시 어디서 도둑질이라도 한 거냐?”
강도들은 은 열 냥에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강진이 나쁜 짓이라도 했을까 봐 걱정을 해 댔다.
그 소리를 듣고 강진은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역시 이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아니 소위 말하는 착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이거면 약속도 지킨 거고, 아저씨들도 다른 곳으로 강도질 안 해도 되는 거죠?”
강진의 물음에 사내들 중 하나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면 봐줄 수도……. 어차피 우리가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올 거라고는 생각 못 할 테니.”
“맞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사내들의 말에 털보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강진의 앞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하다, 꼬마야.”
순간 강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 사내들은 놀란 표정으로 털보에게 말했다.
“자네 뭐 하는 건가?”
“그래, 빨리 돌아가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털보가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그놈들이 이걸로 만족할 것 같아?”
“그럼 어쩌자고.”
“이 아이는 이미 은 열 냥이나 갖고 왔는데 어떻게 돈을 더 구해 오라고 하나.”
털보의 말에 동료 사내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며 말리기 시작했지만, 털보는 강진을 보다 얼굴을 바닥에 붙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 애들 살리려고 너를 괴롭혀서…… 정말 미안하다.”
털보는 말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고, 다른 사내들도 이내 울상을 짓더니 강진 앞에 무릎 꿇으며 울면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래?’
네 사내의 울음에 강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