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4)
관존 이강진 (24)
의문
얼떨결에 털보 일당에게 납치를 당한 강진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충격에 빠졌다.
‘와! 우람이네보다 못한 집도 있구나.’
화전민촌을 처음 본 강진은 여기서도 감자 따위를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따라온 거지?’
그제야 강진은 왜 자신이 여기에 따라왔는지, 그 이유를 심각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없고, 사부와 서문우람과 놀 수도 없으며, 학당에 나갈 수도 없다.
‘도대체 왜?’
처음에는 재미였던 것 같다. 그게 꼬이고 꼬여서 여기까지 오고 보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확 그냥 가 버릴까?’
재미가 있을 것 같지만, 그게 이 입에도 맞지 않는 옥수수를 먹고 빈대가 드글거리는 잠자리에서 잘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 가자. 여기서 더 뭐 하냐? 뭔가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으니 사부랑도 이야기해 보고.’
강진은 결정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납치라면 감시인이라도 세워 둘 것이지.’
자신을 이 방에 두고 옥수수 두 개만 달랑 주고는 사라진 사내들, 아니 마을 사람들이 참 미련스러워 보였다.
덜컥.
“뭐냐?”
강진은 문을 열자마자 뒤로 나가떨어지려는 여자아이 하나를 반사적으로 잡았다.
“너희 뭐냐고?”
이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둘.
친구라도 되는지, 세 아이는 꼭 달라붙어 겁먹은 표정으로 강진과 뒤쪽을 보고 있었다.
강진은 그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 설마 저 옥수수 때문에 여기에 달라붙어 있었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기가 막혔는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크응, 일루 와 봐.”
아이들이 머뭇거리자 강진은 옥수수를 가지고 와 그들에게 내밀며 말했다.
“먹어. 배고픈 거지?”
아이들이 옥수수를 받아 반쪽으로 쪼개 저마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며 강진은 물었다.
“몇 끼나 굶은 거냐?”
“어제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사내아이 하나가 입을 열자 다른 아이도 대답했다.
“전 그제 점심부터요.”
“난 어젯밤부터.”
세 아이가 저마다 대답을 하자 강진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다 보니까 밭도 제법 많던데 그렇게까지 굶어야 한단 말이야?”
“원랜 안 그랬어요.”
“이게 다 흑살대 놈들 때문이야.”
“흑살대?”
강진의 물음에 여아가 옥수수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산적들이래요. 워낙 흉악해서 포졸 아저씨들도 어쩌지 못한대요.”
“그놈들이 여기 와서 양식을 다 뺏어 갔어요. 황구도 그놈들이 가져가 버렸다니까요.”
“황구?”
“우리 집 소예요. 그놈들이 황구를 가져가서 엄마 아빠가 그날 하루 종일 우셨어요.”
강진은 농사는 잘 모르지만 이런 화전민촌에서 소의 존재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마을에서 제일 값나가는 재산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쁜 놈들이에요. 크면…… 크면…….”
그때 생각이 나는 듯 여아가 옥수수를 입에 문 채 울기 시작하자 덩달아 사내아이들도 훌쩍거렸다.
“시끄러워! 고만 울지 못해!”
강진의 외침에 아이들은 딸꾹 하며 울음을 멈췄다.
“어른들은 어디 있어?”
“어른들은 회의를 하러 갔어요.”
“거기가 어딘데? 앞장서라. 거기로 가자.”
강진의 말에 아이들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거의 다 먹은 옥수수를 꼭 쥐고 말이다.
“여기예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원래 있던 곳에서 멀지 않았다. 바로 산등성이 하나를 돌자 개간하고 있는 밭에 모여 있었다.
“여기서 뭣들 하세요?”
강진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은 놀람과 미안함의 얼굴로 강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강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더더욱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 거참. 그리 미안하면 일을 벌이질 말든가, 독하게 마음먹었으면 인질 관리라도 잘하시든가. 털보 아저씨, 아저씨가 말해 봐요. 어찌 정했어요?”
털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네 몸값을 요구할 생각이다. 집은 잘살지……?”
“잘살아요. 아저씨들이 상상도 못 할 만큼. 그래서 얼마나 요구할 건데요?”
“금 아홉 냥…… 괜찮을까?”
“도대체 그 돈으로 뭘 하려고요?”
“흑살대 놈들에게 줘야 할 돈이거든…….”
“흑살대라면, 요 녀석들이 말한 산적들인가요?”
강진이 아이들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털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도 보통 산적이 아니다. 얼마나 흉악무도한지, 원하는 돈을 안 주면 다 죽여 버린다더라……. 놈들이 금 열 냥을 요구했는데, 보다시피 우리 마을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서…… 너에게…….”
“됐고요. 열 냥이라면서 몸값은 왜 아홉 냥을 요구해요?”
“네게서 뺏은 은자 열 냥하고 또 마을 사람들끼리 걷은 은 열 냥이면 금 한 냥이 되니까…….”
“그래서 아홉 냥이 필요하다?”
“그렇지.”
“휴, 기왕이면 금 열 냥 다 부르지. 어차피 나쁜 짓 하는데 아홉 냥이 뭐예요, 아홉 냥이. 쪼잔한 것도 정도가 있지.”
강진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털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됐고요, 그래서 어떻게 몸값을 요구할 건데요?”
털보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우리 중 한 명이 네 집을 찾아가서 몸값을 요구하려고.”
“그냥 찾아가서요?”
“응…….”
“미쳤어요?”
강진은 털보의 말을 자르며 소리쳤다.
“죽고 싶어요? 귀한 집 아들내미 잡아 두고 그 집에 찾아가서 몸값을 요구하면 우리 아버지가 ‘아, 그러십니까?’ 하고 돈을 내줄 것 같아요? 아저씨들 목 날아가는 거 순식간이에요. 현감이 우리 아버지한테 돈을 얼마나 받는데.”
“그럼 어떻게…….”
“신고 못 하게 준비를 하고 가야죠. 이렇게 순해 빠져서 뭘 한다고.”
“…….”
강진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그 전에 하나만 물을게요. 그 흑살대란 놈들, 돈만 주면 살려는 준대요?”
“일단 돈을 주고 봐야지. 설마 돈을 주는데 해코지하겠냐…….”
“이런 곳에서 금 열 냥이나 구했는데 그놈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아요? 분명 더 요구하지. 이번엔 저 납치해서 넘어간다고 치고, 다음에는 어쩔 건데요?”
“그건 그때 가서…….”
“에휴, 됐고요. 관아에 이야기는 해 봤어요?”
이번엔 털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나라 세금이 무서워 숨어서 농사를 짓는 게 화전민들이다. 관아에 갈 형편이 안 돼.”
“결국 여기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래서 너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구나.”
강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는 저에게 죄 못 지어요.”
강진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만 기다려 봐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할 테니까요.”
* * *
방에는 탁상과 의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강진이 모두 밖으로 빼내고 청소해 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먹는 건 참아도 잠만은 제대로 자야 할 것 같아서였다.
‘자,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하지?’
괜한 짓을 벌였나 싶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일단 아버님에게는 알려야 하나?’
강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짜 납치극을 안다면 아버지의 성격상 구리 돈 한 푼 내놓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안 알리면 그것도 큰일인데…….’
그렇다고 알리지 않는 것은 더 위험했다. 부자간의 정은 별로 없을지 몰라도 자신은 이가 댁의 장손이자 외동아들.
아버지는 분명히 자신을 찾을 것이고, 온 성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낼 능력도 있었다.
‘속전속결.’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눈치채기 전에 돈을 뜯어야 했다, 그것도 안전하게.
강진은 급히 책보자기를 풀어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다 적은 후에는 자신의 머리카락 끝 부분을 조금 자르고 또 옷소매도 찢어 냈다.
찢어 낸 옷소매에 머리카락을 감싸고는 털보를 불렀다.
“이걸 가지고 바로 현 내에 있는 이가장으로 가세요. 가장 큰 집이니 보시면 어딘지 아실 거예요.”
“지금 이 시간에 말이냐?”
“아저씨들은 운이 좋았어요. 오늘은 아버님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라서 빈틈이 있단 말이에요. 지금 바로 달려가요. 빨리 갈수록 좋아요.”
이미 달이 중천에 떴는데도 달려가라는 말에 털보는 떨떠름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털보가 달려가고, 강진은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왜 자신이 이들을 도와주는지 말이다.
‘이건 역지사지도 아닌데. 아! 측은지심. 맞아, 측은지심이라는 게 생긴 거야. 사부가 아주 좋아하겠는데.’
강진이 그렇게 키득거리고 있을 때, 털보는 밤길을 쉴 새 없이 달렸다.
강진이 말한 이가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가장 큰 집이었고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털보가 이가장의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누구냐, 이 시간에?”
이가장의 호위 무사들의 등장에 털보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저기 잠시만. 이걸 정 총관님에게…….”
“지금 이 시간에?”
“급한 문제입니다. 정 총관님이 이 서신을 보면 아실 겁니다.”
호위 무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털보를 보았다. 그러더니 편지를 받고는 말했다.
“그럼 기다리고 계십시오. 총관님에게 전해 드릴 터이니.”
“네네, 빨리만 전해 주십시오.”
호위 무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털보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무섭게 정 총관이라는 자가 버선발로 튀어나왔다.
“우리 도련님은 어디 계시오?”
“저도 잘……. 그 서찰을 드리면 정 총관님이 알아서 하실 거라 했는뎁쇼.”
털보의 대답에 정 총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하필 장주님이 안 계실 때에……. 잠시만 기다리시오.”
정 총관이 안으로 들어가고 털보가 다시 이각 정도 기다린 후였다. 정 총관이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커다란 보따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금은 마련했으나 내 당신을 어떻게 믿고 주겠소?”
“그건 저도 잘……. 전 심부름만 하는 사람이라서.”
“당신에게 이 서찰을 가져다주라고 한 사람에게 전하시오. 우리 도련님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부러져 나갈 거라고.”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리 전하고, 약속도 반드시 지키라고 하시오.”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털보는 보자기를 받자마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잡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털보는 크게 소리를 질러 돌아왔다는 걸 알렸다.
“왔다!”
털보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돈은 가지고 왔나?”
“그 보따리에 돈이 들어 있는 거야?”
마을 사람들이 흥분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자 털보는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 아직 안 열어 봐서.”
“빨리 열어 보게.”
“그래, 궁금해 죽겠으니 일단 열어 보고 이야기하세.”
고개를 끄덕이며 보따리를 열자 누런 금원보 아홉 개가 들어 있었다.
평생 처음 보는 큰돈이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봤다가 금을 봤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봐 봐요.”
그때 강진이 나타났다.
강진은 금원보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럼, 이 돈을 그 흑살댄지 뭔지 하는 나부랭이들에게 주면 괜찮은 거죠?”
“그래. 고맙다, 정말 고맙다.”
털보가 고맙다고 연신 말하자 마을 사람들도 강진의 앞에서 허리까지 숙여 가며 감사를 표했다.
“됐어요. 혹시라도 놈들이 또 그런 요구를 하면 그 집으로 나를 찾아와요. 그땐 놈들을 아주 혼꾸멍을 내 줄 방법을 알려 줄 테니까.”
강진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환하게 웃을 때였다.
“아하! 너희가 어디서 돈을 구해 오겠다고 큰소리쳤나 봤더니 이런 재신이 있었구나.”
한 흑의인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잽싸게 금원보가 들어 있는 보따리를 낚아채며 말했다.
“이런 재신이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너희만 먹고 입을 싹 씻으려고 그랬나?”
시퍼렇게 날이 선 칼에 탄탄한 몸매, 거기다 사람 몇쯤은 죽여 봤을 듯한 살기까지.
‘저 아저씨들이 이런 강도 짓을 한 게 네놈들 때문이란 말이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털보는 혹여라도 강진이 다칠까 두려워 급히 말했다.
“아이고, 섬멸 님! 이 아이는 그냥 아는 아이입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잠시 이 아이에게 빌린 것뿐입니다.”
흑의인이 쥐를 앞에 둔 고양이 눈빛을 하자 털보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주먹뿐이었다.
퍽! 퍽! 퍽!
“섬멸 님, 살려, 살려 주세요!”
털보가 바닥에 몸을 웅크리며 흑의인의 발길질을 맞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털보를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인데 저렇게 당한단 말이지. 어지간히 괴롭힘을 당했나 보군. 아니면 덤비지 못할 이유가 있거나.’
강진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거 좀, 그만해라.”
순간 섬멸이라 불린 흑의인의 발길질이 멈췄다.
“뭐라 그랬냐, 꼬마야?”
“뒈지게 맞기 싫으면 그 발 치우라고.”
섬멸이 살기 어린 눈으로 강진에게 다가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