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5)
관존 이강진 (25)
“하하하, 어이가 없으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더니. 이 새끼가 뭐…… 우욱!”
순간 섬멸은 낭심을 움켜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꼬마가 뭐? 애송이가 뭐? 나 이렇게 크는 데 보태 준 거 있어?”
한번 물을 때마다 강진이 낭심을 걷어차니 섬멸은 게거품을 물면서 바닥만 길 뿐이었다.
그렇게 구타가 끝난 후에 강진은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섬멸의 등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들을 향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뭣들 하세요?”
“아니다. 그게…….”
털보가 조심스럽게 강진에게 말했다.
“어쩌자고 이렇게 했냐…….”
“그럼 맞고 있을까요?”
털보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돈은 마련했지만 저놈이 저리됐으니…….”
강진이 물었다.
“그 흑살대가 몇 명이나 되는데요?”
“백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
“그럼 싸우는 건 무리인데…… 일단 저놈은 여기 없던 걸로 하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
강진은 섬멸을 발로 톡톡 차며 말했다.
“묻어 버리자고요. 우리는 이놈에게 돈을 주었고,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요.”
“죽이자는 말이냐?”
“그럼 다른 방법 있어요?”
태연스럽게 죽이자고, 그것도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생매장하자는 말에 털보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강진이 마을 사람들을 재촉했다.
“뭐 해요? 빨리 땅 파세요.”
“하지만 산 사람을 묻는 건…….”
“아! 이제 화가 나려 하네. 지금 이게 제 일인가요? 아저씨네들 일이잖아요. 저 그만 갈까요?”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만 보다가 결국 털보가 먼저 나서자 모두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가 완성되고 사람들이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는 순간 섬멸이 정신을 차렸다.
“이게 뭐…… 아악!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섬멸은 금세 무슨 일이 벌어질지 파악하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길래 좀 착하게 살지 그랬어. 최소 돈만 받고 그냥 가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안 생겼잖아.”
강진은 직접 모래를 한 삽 한 삽 떠 내 섬멸에게 뿌렸다.
“살려 다오. 살려 주세요.”
섬멸은 급기야 울고불고 사정했지만 강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섬멸의 머리만을 남기고 구덩이가 거의 메워진 상태에서 강진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살길을 열어 줄까?”
“살려만 주십시오. 뭐든 말할 테니 살려만 주십시오.”
“너희 패거리 몇 명이냐?”
“한 이백 명은…….”
섬멸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흙 한 움큼이 날아왔다.
“이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다니. 살 가치가 없구나, 너.”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섬멸이 기겁을 하며 애원하자 강진은 손을 멈추며 말했다.
“또 거짓말하면 그냥 묻어 버린다. 다시 묻는다. 너희 패거리 몇 명이냐?”
“모두 쉰 명이 조금 넘습니다.”
“니네들 사는 곳은 어딘데?”
“이곳에서 꽤 멉니다.”
강진은 손을 들어 보이며 위협했다.
“꽤 먼 게 얼마나인데? 똑바로 말 안 하면 묻어 버린다.”
“말을 타면 하루 거리 정도 됩니다.”
“그렇게나 멀리 떨어졌는데 여기까진 왜 온 거야?”
“원정 나온 겁니다.”
“강도 주제에 무슨 원정까지나. 그럼 수준은 어느 정도 되냐?”
“수준요?”
“싸움 말이야. 다 너 같은 놈들만 모여 있느냔 말이다. 아니, 너는 그중에 몇 등 정도 되냐?”
섬멸은 잠깐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중간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소두목들은 무척 강해서, 저 정도 실력으로 서너 명이 있어야 한번 해볼 만하고요.”
“너 정도 서넛은 나도 상대하겠다. 도움이 못 되네. 마지막으로, 여기 몇 명이나 왔어? 원정 왔다면서.”
“열 명입니다. 소두목도 한 명 왔고요.”
“음, 좋아. 대답하느라 수고했어.”
강진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멸의 머리에 흙을 뿌리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편히 받아들여. 너도 솔직히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안 했잖아.”
“말을 하면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제? 살길을 열어 준다고 했지, 살려 준다고는 말 안 했다.”
섬멸은 피를 토할 정도로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이 씹어 버릴 잡놈의 새끼! 어린 녀석이 악독하기가 이루…….”
순간 섬멸의 입에 흙이 들어왔다.
“너 살려 주면 보복밖에 더 하겠냐? 그리고 네가 살아 있으면 아주 곤란해져. 그러니까 그냥 죽어.”
섬멸이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강진은 묵묵히 흙을 쌓아 올렸다.
어느새 구덩이는 메워지고 섬멸의 머리도 흙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묘하게 변해 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이놈이 살아남으면 아! 이제부터는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겠습니다, 할 것 같아요? 당장에라도 자기 동료들한테 달려가서 이 마을을 몰살시키러 올걸요.”
틀린 말은 아니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아니 약간은 재미있다는 듯이 사람 하나를 생매장시키는 것이 도저히 어린아이, 아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아무도 못 본 겁니다. 누구 하나 말실수하면 아저씨 아줌마들 다 죽을 테니.”
강진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 * *
‘왜 그렇게 봤을까?’
강진은 방 안에 누워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잖아.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있는 건데. 그리고 반드시 죽여야 살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봤던 거냐고.’
강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곽노를 만나고 서문우람을 사귄 후로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오늘 그 눈빛을 또 만난 것이다.
‘몰라.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준 건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도와줄 생각은 없어.’
생각을 그리하니 강진은 이 일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가자. 뭘 더 바라고 여기 있나.’
강진은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실행은 곧바로 이어졌다.
“가면 아버지한테 혼나려나?”
슬슬 자신이 벌인 일을 걱정하며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도련님, 들어오셨습니까?”
한바탕 난리를 칠 줄 알았던 정 총관이 자신을 보며 평상시처럼 말을 하자 강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게, 어제 일 말이야…….”
“아! 그놈들이 약속을 잘 지켰군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주님께 말씀드려 호위 무사라도 붙여야겠습니다.”
강진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라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정 총관이 왜 그렇게 느긋하게 자신을 맞이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며칠 후 우람이네 집에서였다.
“오라버니, 그 마적 떼 있잖아요, 모두 죽었대요.”
그날도 정화가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이야기해 주자 강진이 물었다.
“어쩌다가?”
“관군이 몰려가서 토벌했다는데요.”
“관군도 손대지 못한다는 악독한 놈들 아니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협객들이 관군을 도왔대요. 그래서 관군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는데요.”
강진은 다시 물었다.
“화전민촌은 어떻게 됐대?”
“어?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무슨 말이 있었구나.”
“네. 알고 보니 화전민촌에 마적 떼랑 한패가 있었대요. 그래서 몇 명이 관아로 잡혀가서 벌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랬단 말이지.”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거지? 정 총관이 사람을 붙였나? 그래서 그리 안심한 표정을 지었나? 그런데 언제?’
털보에겐 사람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가 산을 올라오는 건 자신이 확인했다.
‘그럼 납치 전에도 사람이 붙어 있었단 건가? 언제부터? 누가?’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고,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왜 그러냐?”
서문우람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먼저 가 봐야겠다.”
“벌써 가게?”
“일이 있어서.”
“요 앞까지 배웅해 줄게.”
“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강진은 서문우람의 집에서 나와 곧바로 화전민촌으로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강진은 우두커니 섰다.
화전민촌이 있던 그곳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인 없는 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강진은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찾았다.
…….
정적만이 흘렀다. 아무도 없었다.
청각 수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이제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진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부한테 물어봐야겠어.’
강진은 무슨 문제든 일단 답을 주는 곽노에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강진은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곽노를 찾았다.
“사부!”
강진이 큰 소리로 부르자 곽노가 방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 잠도 못 자게? 사부 피곤하다.”
어디서 한잔 마신 듯 붉은 얼굴로 곽노가 투덜거렸지만, 강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사부, 사부.”
“그래, 무슨 일이냐고.”
“사부가 듣는 수련을 하면 무슨 소리든 다 들을 수 있다고 했지요?”
“네가 그랬잖냐. 일 리 떨어진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제가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을까요?”
강진의 표정에 곽노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강진의 저 기이한 표정.
곽노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잠깐만 기다려라.”
곽노는 방으로 들어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비벼 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뭔 소리예요? 제가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냐고 물었더니.”
“이놈아, 똑바로 말해라. 요새 좀 이상하긴 했어. 외박이라고는 안 하던 놈이 동트고 나서야 들어오기도 하고. 무슨 일이냐?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지?”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잠시 고민하다 여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이놈아!”
곽노는 사색이 돼 강진에게 소리쳤다. 그러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사람을 죽였다는 거냐?”
“측은지심.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려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에요.”
“역지사지. 그 죽은 놈의 입장에서도 생각했어야지. 내가 그리 부탁하지 않았더냐!”
“그놈을 살리면 더 많은 사람이 죽잖아요. 제 말이 틀렸어요?”
곽노는 머리를 굴려 할 말을 찾았다.
“네 말이 맞지만, 그래도 이 사부에게는 미리 이야기했어야 했다. 도적놈들보다 이 사부가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 사부에게 알리기만 했었어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거야.”
“다른 방법 뭐요?”
“이미 끝난 일이니 지금 물어도 소용없지. 아이고, 녀석아! 사부가 그리 부탁한 일인데.”
어쩔 줄 모르는 곽노를 보며 강진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측은지심이 먼저예요, 역지사지가 먼저예요? 이번엔 죽이는 이유가 확실히 있었던 거잖아요. 제 말이 틀려요?”
“안 틀리지만 그래도……. 어떡하노. 이 일을 어떡하노!”
강진이 다시 한 번 화를 내려는 순간 곽노가 갑자기 그를 잡아 품에 품었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다.
“우어어엉! 이 일을 어떡할까? 어떡할까?”
곽노의 눈물이 머리 위로 떨어지자 강진은 화내는 것을 포기했다.
‘남을 위해서 울어 주는 건 그 사람을 엄청 좋아한다는 뜻이라던데…… 역시 사부가 나를 제일 좋아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니 그에게 화내는 것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은 곽노를 위로하기로 했다.
“에이,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우어어어어엉.”
“다음에는 꼭 역지사지하면 될 거 아니에요.”
“우엉, 이 일을 어떡하면 좋냐?”
“아, 다음에는 꼭 사부랑 상의한다니까요. 약속할게요. 절대로!”
순간 곽노의 울음이 뚝 그쳤다.
“약속한 거다? 절대라는 말도 붙여서?”
“알았어요. 다음에는 꼭 사부랑 이야기할게요. 죽일 놈이 있으면 사부랑 상의하면 되는 거죠?”
“그래, 그러면 된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좋아, 믿으마. 그리고 아까 물어본 게 뭐였지?”
“제가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냐고요.”
“아! 누가 널 감시하는 것 같다고?”
“네. 그래서 묻는 거예요.”
곽노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글쎄.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인다면 너라고 해도 들을 방법이 없지 않겠냐?”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여요? 그런 방법도 있어요?”
“자객들이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이잖냐.”
“그럼 그걸 알아낼 방법은요?”
“기감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키우면 소리와는 별개의 기척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거 가르쳐 줘요.”
“응?”
“그거 가르쳐 달라고요. 알아내려면 저도 알아야 하잖아요.”
강진의 말에 곽노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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