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27)
관존 이강진 (27)
곽노는 젊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걸음의 바른 자세를 배워야 한다.”
“무슨 자세요?”
“걸음의 바른 자세. 소리가 나지 않으려면 평상시에도 그렇게 걷는 수련을 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바른 자세라는 말이다.”
곽노는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너도 걸어 봐라.”
강진이 뒤따라 걷기 시작했고 곽노는 계속해 말했다.
“봐 봐라. 발을 옮길 때 어떠냐?”
“어떻긴요?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이죠.”
“그게 아니라 높이가 말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다른 쪽 발목 높이 이상으로 걷지 않느냔 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걷는 걸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세히 살피는 사람은 없다. 강진도 마찬가지인지라 곽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그러네요. 발목을 약간 넘어요.”
“바로 그거다!”
“뭐가요?”
“그래서 소리가 나는 거라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소리가 나잖냐. 의도적으로 조심히 걸을 때에는 소리가 작아지지만.”
“네. 그렇지만 소리가 아예 안 나는 건 아니잖아요.”
곽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최소 나한테는 걷는다는 느낌의 소리가 나지.”
“느낌의 소리? 사부, 그런 소리도 있어요?”
“들리는 건지 아닌지 구분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있잖냐. 집중해 보면 들려오는 그 소리 말이다.”
강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빠르게 걷고, 매우 느리게도 걸어 보았다.
확실히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 느낌의 소리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네요.”
“그렇지?”
곽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지라 강진의 수긍에 반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발목 아래로, 아니 땅을 스치듯이 걸으면 그 느낌의 소리도 줄일 수 있다더라.”
“있다더라? 사부가 아는 거 아니에요?”
“물론 알지. 하지만 나도 누구한테 이걸 배운 거고, 가르쳐 준 놈이 그리 이야기했다는 소리다.”
“그럼 결국 사부도 못한다는 소리잖아요.”
“못하는 거와 안 하는 건 다른 거지. 이 사부가 소리 안 나게 걸을 이유가 없는데 뭣하러 배우냐? 그냥 알고만 있는 거지.”
틀린 말이 아닌지라 강진은 이번에도 수긍하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걸으면 소리가 전혀 안 난단 말이죠?”
“걷는 게 아니라 미끄러진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수련하면 된다고 했다. 얼음 위에 미끄러질 때 소리가 안 나듯이 말이다.”
“미끄러지는 느낌의 소리는 나겠죠.”
“흠흠, 어찌 됐든, 걷는 느낌의 소리는 안 나지 않겠냐?”
“뭐, 알았어요. 해 볼게요.”
“따로 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리 걸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다.”
“네. 그렇게 하죠, 뭐.”
강진은 곧바로 발목 아래 높이로 걸음을 옮겨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잘 된다 싶더니 종종 아예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 경우가 생겼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좋아. 그게 첫 번째 단계이니 부지런히 수련하거라.”
“첫 번째 단계요? 그럼 다음 단계는 뭔데요?”
“그건 첫 번째 단계를 끝내면 말해 주마.”
“지금 아나 나중에 아나 똑같잖아요. 같이 연습하게 이야기하세요.”
강진이 재촉했지만 곽노 역시 이야기꾼에게 아직 첫 번째 단계 수련밖에 듣지 못한 상황. 알려 주고 싶어도 알려 줄 말이 없었다.
“그걸 먼저 해야 한대도. 나중에 알려 줄게.”
“이것도 별게 없는데 뭐 특별한 거 가르쳐 주는 것처럼 구시네요.”
“그 별거 아닌 걸 몰라서 물어본 거 아니냐? 요새 들어 이 사부에게 말대꾸를 너무 많이 한다. 약속을 벌써 잊었냐? 시키면 한다는 약속.”
“알았어요.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알려 주셔야 해요.”
“이번 단계를 완벽히 해내면 바로 알려 주마.”
곽노의 대답에 강진은 곧바로 좀 묘한 자세의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아! 내 피 같은 은자를 또 써야 하나? 아니지, 찻값까지 포함하면 도대체 얼마야? 확 그냥 내가 대충 만들어 봐?’
고민하는 곽노였다.
* * *
곽노의 소리 안 나게 걷는 강의는 사흘 후에 계속되었다.
일 단계로 최소 보름은 가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곽노의 큰 착각이었다. 기척 없이 다가와 등을 탁! 치는 바람에 십년감수할 뻔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마치 귀신처럼 움직이는 강진의 모습에 곽노는 혀를 내두르며 그다음 단계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강가로 가자.”
지금은 싸늘한 겨울.
광동성의 위치가 남방이라 더운 곳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약간의 추위도 큰 추위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했고 난방시설도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다.
하여간 그런 추운 날씨에 강가로 가자는 말에, 강진은 뭐라고 할 법도 했지만 용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곽노를 따랐다.
새로 배운 걸음걸이 때문에 학당에서 나름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북방에서 오랜 세월 군 생활을 해 온 곽노 역시 광동의 겨울을 춥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두 사제는 매서운 강바람에도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이제 여길 걷는 거다.”
“이 돌밭을 걸으라고요?”
“그래. 거기에 맨발로.”
강가의 자갈밭을 맨발로 걸으라는 말에 강진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신발을 벗었다.
“물론 여기서도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겠죠?”
“두말 안 하게 해서 편하구나. 걸어라, 제자야.”
곽노는 준비해 온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으며 술이 담겨 있는 호로병을 들었다.
“유람 나오셨어요? 제자는 이 추운 겨울에 맨발로 움직이는데.”
“내가 하자고 한 건 아니잖냐.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거지. 싫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에요.”
강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맨발로 자갈밭을 디뎠다.
다각.
돌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발바닥에서부터 한기가 쑥 올라왔다.
“아, 씨! 동상이라도 걸리면 사부가 책임져요.”
강진의 투덜거림에 곽노가 흐물흐물 웃으며 말했다.
“책임지마. 물도 얼지 않을 이 정도의 추위에는 동상 안 걸린다. 그러니 잔말 말고 걸어라.”
다각. 다각. 다각.
천천히 조심히 움직인다고 했지만 자갈들은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사부, 계속 소리가 나잖아요.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야지요.”
“잘 걸으면 된다. 중요한 건, 발을 내디딜 때 상체의 앞뒤의 균형과 두 발의 힘의 균형을 잘 조절하는 거다. 물론 일 단계처럼 걸으면서 말이지.”
“아, 그게 뭐예요? 그런 말은 나라도 다 하겠다. 사부가 한번 시범을 보여 주시든가요.”
“못하는 거와 안 하는 건 다르다고 했다. 나도 수련을 안 했으니 그렇게 못 걷는다. 싫으면 그냥 돌아가든지.”
강진이 다시 입술을 삐죽이며 걸음을 옮겼지만, 위에서 가해지는 무게 때문에 소리가 나는 건 당연했다.
“사부!”
“그게 다라니까. 균형을 맞춰. 그럼 돼.”
좌우와 앞뒤의 균형을 맞추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꾼의 말을 곽노는 계속해서 우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믿지는 않았지만 아는 게 그게 전부이고, 또한 자신이 수련을 할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강진은 발이 시뻘게질 때까지 계속 자갈밭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 포기할까?’
어느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화전민촌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뒤의 균형, 좌우의 균형. 상체를 꼿꼿이 세워서 걸어가야 할까?’
나름 조심히 걷는다고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던 강진이다.
하지만 앞뒤의 균형을 잡으려면 상체를 세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강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정면을 보며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사각.
효과가 있었다. 소리는 났지만 그 크기가 확연히 준 것이다.
가능성을 본 강진은 의욕이 솟구침을 느끼며 계속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깜빡 잠이 든 곽노가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어느새 달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강진아!”
곽노는 자신도 모르게 번쩍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왜요, 사부?”
강진은 여전히 자갈밭을 걷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곽노를 보았다.
“이노무 시키!”
곽노는 곧바로 강진에게 달려가 그를 번쩍 안았다.
“이놈아! 발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걸으면 어떡하냐? 좀 쉬면서 했어야지.”
강진의 발은 시뻘겋다 못해 마치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검은빛마저 흐르고 있었다.
곽노는 곧바로 그를 강가 밖으로 끌어내 앉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강진의 발을 쥐고는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사부. 처음에는 좀 아팠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게 안 괜찮은 거다, 이놈아. 아프면 아프다고 느끼는 게 정상이지.”
곽노는 자신의 상의를 걷어 올리더니 강진의 발바닥을 배에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발을 몇 번 더 주무르고는 그대로 상의를 벗어 강진의 발을 감쌌다.
“아아!”
그제야 통증이 오는지 강진이 소리를 내자, 곽노는 자신이 다친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아픈 게 좋은 거야. 감각이 돌아왔다는 거니까. 내일 학당에는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덕분에 한번 쉬는 거죠.”
“그래, 쉬어라. 괜히 상처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곽노는 강진을 번쩍 안아 일으켰다.
강진도 이제 꽤 자라서 무거울 법만도 했지만, 곽노는 조금도 힘든 표정을 짓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진이 물었다.
“사부, 안 무거워요?”
“예전에 이야기했잖냐. 전우 둘도 업고 달렸다고. 아직 끄떡없다.”
“그건 젊을 적 이야기죠. 만날 뼈마디가 쑤신다고 하시면서.”
“아직 너 하나 정도는 괜찮아.”
솔직히 무거웠다.
하지만 강진이 진심으로 자신을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에 곽노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