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3)
관존 이강진 (3)
“그냥 말뿐인 것 같지는 않네요.”
옆에서 강진이 하는 말에 곽노가 그를 보며 물었다.
“뭐가 말이냐?”
“사부가 저를 가르친다는 거요.”
곽노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강진을 보자 그가 계속해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부자예요.”
“그런데?”
“사람을 잘 파악하고, 절대 헛돈 쓸 리가 없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부에게 방을 내주고 하인까지 하나 내준다는 건, 사부에게 뭔가 있다는 소리잖아요.”
강진의 논리 정연한 말에 곽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허리에 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 쥐뿔도 없이 너를 돕겠다고 한 건 줄 아냐?”
“반신반의했거든요.”
“내 차림새 때문이냐?”
“누가 봐도 누구를 가르칠 학사라고 보지는 않겠지요.”
“학사? 하하하하!”
곽노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너에게 글이라도 가르칠 줄 알았느냐?”
“어울려 사는 법을 알려 준다면서요?”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름 높은 성인들의 이야기를 가르치려는 줄 알았느냔 말이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하!”
곽노는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말마따나 내 차림새가 어디 그런 걸 가르칠 사람으로 보이느냐? 이 사부는 한평생 이름 석 자 아는 걸로도 충분했다.”
“그럼 뭘 가르치실 건데요?”
“내가 아는 걸 가르쳐야지. 이 사부가 이래 보여도 이것저것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 모두 가르치려면 몇 년은 걸릴 게다.”
“그 몇 년 동안은 무전취식이 가능하시겠군요.”
곽노는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 사부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
“네,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에휴, 됐다. 내가 어린 너를 데리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
“잘 가르쳐 주셔야죠.”
곽노는 사지를 주무르며 말했다.
“내 오랜 시간 길을 걸었더니 여행의 피로가 너무 심하구나. 수련은 여독을 풀고 나서다.”
“얼마나 쉬시려고요?”
“이 녀석아, 잘 가르쳐 준대도. 가서 한 상 거하게 차리라고 해라. 뱃가죽이 짝 달라붙은 게, 쓰러지겠다.”
강진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며 말했다.
“사부, 뭘 가르쳐 준다는 건 다 거짓말이고 정말 무전취식하려는 거 아니에요?”
“이 사부를 어찌 보고. 이 사부도 나름 은퇴 준비가 잘되어 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무전취식할 필요 따위는 없다.”
“그래도 여기서 먹고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걸요.”
곽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그건 그렇다만. 네 말마따나 사람 잘 보는 네 부친이, 이 사부를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아! 그랬지요.”
“그 말투부터 고쳐야겠구나. 사람들은 그런 말투를 아주아주 싫어한단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려 주셔야죠.”
곽노는 히죽 웃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일단 밥부터 먹고 말이지.”
* * *
삐악삐악.
강진은 손바닥 위에 놓인 걸 보며 멍하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보고도 모르냐? 병아리잖아.”
곽노의 대답에 강진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건 아는데요, 그러니까 이걸로 뭘 하라고요?”
“뭘 하라고 할 것 같냐?”
“제 마음대로 하자고 하면!”
순간 강진의 눈빛에 살기가 도는 걸 보고 곽노는 급히 소리쳤다.
“이놈아! 눈 안 감아! 눈빛만으로도 병아리를 죽이고도 남겠구나.”
“그럼 뭘 바라셨는데요?”
“이놈아, 생각을 해 봐라. 내가 병아리를 저번 토끼처럼 갈기갈기 찢으라고 줬겠냐?”
강진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一. 사부가 병아리를 줬다.
二. 죽이라고 준 건 아니다.
三. 먹으라고 준 걸까? 아니다, 이 병아리를 먹는다고 가정해도 그야말로 한입 거리도 안 된다. 그러니 먹으라고 준 건 아니다.
四. 병아리를 먹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이걸 가지고 놀라는 걸까? 뭘 하고 놀지?
강진은 일각을 넘게 생각했으나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그 모습에 곽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아이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할 걸 강진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일부러 말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곽노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며 그를 불렀다.
“강진아.”
“네, 사부.”
“병아리를 가지고 뭘 할지가 그리 생각이 나지 않느냐?”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지고 놀란 것도 아니면 뭘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병아리가 크면 뭐가 되냐?”
강진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닭이 되지요.”
“그래, 닭이 된다. 너는 이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볼 생각은 하지 못했느냐?”
“으음…… 병아리를 이용하는 방법 중에 키우는 것도 있었군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게 네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넌 평생 혼자일 거야.”
곽노가 손을 뻗어 강진의 손을 꽉 잡았다.
“사부, 왜 그러세요?”
“따뜻하지?”
“차가워요.”
“기다려 봐라. 따뜻해질 테니까.”
강진은 손을 잡힌 채로 곽노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게 필요한 건가요?”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놈은 필요하다고 하더구나.”
“그놈요?”
“있다, 그런 녀석이. 특별한 것이 이상한 게 아니란 걸 알려 준 녀석이 말이다.”
강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저랑 비슷했나 보죠?”
곽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보다 더 특별한 녀석이었지. 별의별 표현을 다 갖다 붙일 만큼 특별했다.”
“그럼 그도 저처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아니.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타인과 잘 어울렸어. 그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거든.”
곽노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말 특별했던 그 녀석이 살아갈 수 있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강진은 한 손에 놓인 병아리를 보며 말했다.
“이걸 키워야 한단 말씀이지요?”
“그래. 이 녀석이 커서 달걀을 낳을 때까지 안전하게 키워야 한다.”
“그러죠,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생명 하나를 책임진다는 것, 비록 그것이 병아리라고 해도 쉽지만은 않을 거다.”
곽노의 말에 강진은 다시 병아리를 보았다.
삐악삐악.
병아리는 자신과 눈을 마주하려는 강진의 시선을 피하며 그의 손바닥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사부, 그럼 이게 첫 번째 교육입니까?”
“그래. 첫 번째 교육이자 임무다.”
“임무요?”
“그래. 사람은 목적이 있고 끝이 있는 거면 집중을 더 잘하게 되거든. 그래서 너에게 임무를 내리는 것이다. 너는 이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뭔가 새로운데요.”
“새로울 건 없다. 내 생각이 맞다면 넌 많이 힘들 테니까.”
“이걸 키우는 게 뭐가 힘들다고요.”
“글쎄, 키워 보면 안다니까.”
곽노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강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 *
실수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건 확실히 실수가 맞았다.
고작 병아리 하나 키우는 데 이리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 키우는 것도 이리 힘든데 많이 키우는 사람들은 어찌 키우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아니 특별하게 보일 정도로 강진은 병아리를 키우는 데 애를 먹었다.
자신이 밥을 먹을 때 병아리도 밥을 줘야 했고, 지켜보지 않으면 개나 고양이가 병아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듯했다.
병아리를 노리는 건 놈들뿐만이 아니다. 이가장 주변을 빙빙 맴도는 맹금류도 있었다.
‘이건 정말 방심을 못 하잖아.’
강진은 그 사실에 매우 화가 났다.
병아리를 노리는 놈들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병아리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다.
귀찮다. 짜증이 난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진의 마음은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사부의 말대로 이게 임무라는 강제성을 띠지 않았다면 정말 참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그 임무라는 것도 내가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건가?’
딱 사흘 만에 그런 생각을 품는 순간 곽노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귀찮지? 귀찮아서 다 때려치우고 싶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긴. 표정에 ‘나 귀찮아 죽겠어요!’라고 쓰여 있는데?”
“아니라니까요.”
순간 강진의 눈빛에서 다시 살기가 돋는 걸 곽노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놈아.’
곽노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라면 잘 키워야지?”
“잘 키울 거예요, 어떻게든.”
“어떻게 키우든 그건 네 마음이지만,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조건이지.”
“그렇게 할 거라니까요.”
곽노는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람은 의지도 강한 법이거든.”
“아! 정말. 좀 가만 냅 두래도요.”
강진이 성질을 벌컥 내자 곽노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몇 마디 했다고 그리 화를 내는 것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지.”
“알았다는데도 사부가 자꾸 뭐라 하시는 거잖아요.”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인데 그리 화를 내서 어쩌냐?”
“그러니까 가만히 계시래도요.”
순간 곽노는 강진을 번쩍 안아 들었다.
“뭐 하는 거예요?”
곽노는 강진을 안은 팔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네가 나에게 화를 낼 때마다 이렇게 할 거다.”
“징그러워요.”
“따뜻하잖냐.”
“닭살 돋잖아요.”
곽노는 강진이 여보란 듯이 들이미는 팔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정말 돋았냐? 없잖아?”
“잘 봐요. 있잖아요.”
과연 아주 조그맣게 피부에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녀석은 가능성이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곽노는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강진은 분명 정상, 아니 보통 사람들처럼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닭살이 돋았다는 게 그 증거다.
‘하나씩 가르치다 보면 될 거야.’
곽노는 그렇게 강진을 어르고 달래며 녀석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도왔다. 아니, 중간중간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강진의 이유 없는 분노, 아니 그 스스로에게는 당연하고 일상적인 즐거움이 사라진 데 대한 압박감으로 인한 분노 때문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는 데에 대해서 오는 엄청난 신체적·심리적 긴장 상태는 조만간 폭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진은 또다시 괴물로 불리게 될 일을 저지르고 말 것이다.
병아리가 어느새 약병아리라 불릴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때 결국 강진의 긴장감은 폭발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채 자라지도 않은 털이 생으로 뽑혀 나가는 고통에 병아리가 몸부림을 쳤지만 강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털을 뽑아 댔다. 결국 병아리는 죽고 말았다.
“강진아!”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벌어진 일에 곽노가 놀라 소리쳤다.
“아! 이거 키워야 했던 거지.”
마치 뭔가를 깜빡 잊어 먹은 것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강진을 보며, 곽노는 그를 단순하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말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건가?’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이 나를 괴물이라 부르게 만드는 그것들은, 나에게 있어서 사람이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거든. 아니, 자연스러움을 넘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안 할 수가 없는 거지.”
곽노는 녀석의 말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강진의 긴장감을 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말로만 안 된다고 해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녀석이 말한 방법을 써 봐야 하는 것인가?’
곽노는 강진을 쳐다보았다.
방금 병아리 하나를 잔인하게 죽인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