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31)
관존 이강진 (31)
수련
“아! 힘들어. 그래도 살 것 같다!”
몸을 움직이지 않은 티가 확실히 났다.
평상시라면 산을 두 번 오르락내리락하면 그저 조금 덥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지금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아니,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근육이 잘게 경련하는 게 ‘너 살아 있는 사람이야.’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원래는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말이지.”
스스로도 신기하게 생각되는 감각에 강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 좀이 쑤셨냐?”
옆에서 곽노가 웃으며 묻는 말에 강진이 대답했다.
“사부도 한 달 동안, 아니 하루만이라도 책 펴고 지루하게 그걸 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는 사양한다. 하루는커녕 한 시진도 그리 있지 못할 거다.”
“그렇다니까요. 아! 대인이 되는 길은 참 힘들어요.”
“허허허, 그래, 보는 나도 힘들다.”
강진은 곽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무 봉을 잡았다. 그간 해 왔던 것들을 점검도 할 겸 모두 해 볼 참이었다.
씨이이잉! 씨이이잉!
봉에서 듣기 힘든 파공음이 들렸고, 나무 하나가 기어코 부러지고 말았다.
강진은 만족한 표정으로 이제 목검을 잡았다. 그리고 무명검법을 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멋있구나. 멋있어.”
자신이 만든 것과는 한참 달랐지만 그래도 자신의 노력이 무척이나 들어간 검법이었다. 그런 검법을 강진이 멋들어지게 펼치자 곽노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신 감탄했다.
“사부.”
무명검법을 다 펼친 강진이 말했다.
“이제 강가로 가요. 이 단계도 제대로 수련해야지요.”
“이 단계? 아! 그러자꾸나.”
곽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이 쓰려 왔다. 이제 다시 돈 나갈 일이 생긴 것이다.
강가에 도착한 강진은 맨발로 다시 자갈밭을 걷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무리하면 안 된다. 일각만 걷고 반 각은 발을 따뜻하게 하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자.”
강진은 발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시릴 때 녹여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저번에 사색이 되었던 곽노의 얼굴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강진이 학당으로 간 사이 곽노는 다시 만복다루로 갔다.
삼 단계의 방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어르신 오셨군요.”
점소이가 곽노를 반겼고, 곽노는 곧바로 제일 싼 차 하나를 시키고 이야기꾼을 불렀다.
“어르신,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젊은 이야기꾼은 자연스럽게 곽노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이제 삼 단계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거죠?”
“그렇지. 이번에는 좀 시원스럽게, 한 번에 가르쳐 주게. 매번 찔끔찔끔 가르쳐 주니 간지러워서, 원.”
“하하, 제 밑천이 드러나면 어르신은 더 이상 절 찾지 않으실 테니 당연히 아껴야죠.”
“자네 말도 맞네만…….”
이야기꾼은 슬쩍 곽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어르신, 솔직히 이야기해 보십시오. 이 이야기, 어르신이 들으려고 하는 거 아니죠?”
“그게 뭔 소린가?”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말입니다. 사실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무척이나 떨어지는데 매번 비싼 찻값에 이야깃값을 지불하시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설마하니 제 이야기를 토대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아닐 테고 말입니다.”
곽노는 순간 뜨끔하며 말했다.
“그런 걸 누구에게 가르치게. 그런 일 없네. 이야기나 하게. 그다음 삼 단계는 어찌 배우는 건가?”
이야기꾼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불산 구룡무관?”
강진이 확인하듯이 묻자 사내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관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 있는 불산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관입니다. 흔히 불산제일 광동제일이라고, 광동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무력 단체입니다.”
“그 사람은 거기 관주 외동아들이고?”
“네. 모두가 신기해했답니다. 광동제일고수의 후계자가 관직에 뜻을 두었다고 말입니다.”
“그럼 무공을 못한다는 말이야?”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아니랍니다. 관주 구태성이 자신의 아들을 두고 서른이 되기 전에 자신을 뛰어넘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을 정도로 무재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뭐야, 그럼 무공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불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불산의 자랑으로 여긴답니다.”
“명성까지 있다는 말이네.”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잘났으니까요.”
“으음, 잘나서 명성을 얻었단 말이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남에게 주목받길 원하는 강진이었다.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거기에 심성도 착해, 재작년에는 구룡관주 몰래 가산을 빼돌려 황하 수해 지역에 거액의 기부금까지 냈다고 합니다. 구룡관주는 속이 쓰렸겠지만, 그 덕분에 구룡관의 명성이 하늘을 찔러 허허 웃고 말았답니다.”
강진이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 새끼 뭐야, 완전 엄친아잖아!”
“네?”
“엄친아. 엄마 친구 아들이라고, 칠덕이가 만날 푸념하는 말이 있어.”
“아…… 네.”
강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또 다른 건 없어?”
“특별한 건 없습니다. 학당에서는 수재라 불려서 조만간 전시에 응시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종종 빈민촌에 가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다 똑같은 이야기네. 알았어, 그만 가 봐.”
사내가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사라지자 강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뭐 그런 새끼가 있어? 나랑 비슷한 사람이 아니었어? 나랑 열 살 차이도 안 날 것 같은데. 모두 위장 아냐? 사부도 그랬잖아, 당신의 전우도 그런 성격을 숨기기 위해 그 누구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 보였다고.’
강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눈빛.
너무나 친숙해서 오히려 생소했던 그 눈빛.
분명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놈이 뭐든 간에 나보다 뛰어난 건 인정할 수 없어. 뛰어나면 따라잡아 주면 되지. 그런데 따라잡을 수 있을까? 책이라면 나도 더 집중하면 더 빨리 외울 수 있어. 그런데 무공도 잘한다고? 그놈도 좁쌀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나보다 더 클까?’
강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一.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二. 내가 그 정도 나이가 되면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우게 된다.
三. 나의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보다 더 부자이니, 아버지 몰래 재산을 훔쳐다가 기부하면 된다.
四. 공부에 더 신경을 쓰고 좁쌀로 배 밑을 전부 채워 버리면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五. 하지만 많이 지루한 생활이 될 것이다.
六. 그래도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결론을 내린 강진은 더 이상 생각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학문으로 서문우람에게 뒤져서 화가 나는데 그딴 녀석에게마저 뒤처질 수는 없었다.
* * *
그날 신의현에 사는 사람들은 이가장으로 몰려들었다.
오백여 명이 치렀던 회시에서 강진이 여덟 명 안에 들어 급제를 했기 때문이다.
회시 급제자들은 전시 응시 자격이 주어짐은 물론이고, 자리가 난다면 광동성 내의 말단 관리직에 임명되어 관청에서 일할 수도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수백만 인구의 광동성에서 수재 소리를 듣는 오백여 명 가운데 다시 여덟 명 안에 들어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원은 그 사실을 명안학당보다 더 빨리 알았지만, 체면을 생각해 학당에서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신의현 곳곳에 방문을 붙여 이가장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거리를 생각해 무려 여드레에 걸쳐 잔치를 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고기는 한 달에 한 번 먹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렸지만 이가장의 준비는 완벽하여,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 사실에 신의현 사람들보다 좋아한 건 강진이었다.
원래는 기분이 나빠 있었다.
급제는 당연한 거고, 그 순위가 중요했다.
서문우람보다 잘할 자신은 없었고, 사실 서문우람은 그 시험에 장원을 하였다.
그럼 자신은 당연히 방안이니 탐화라는 특별한 수식어가 붙는 이삼 등일 줄 알았는데 그냥 급제자라니,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을 칭찬하자 조금씩 마음이 풀렸고, 또 아버지가 자신의 급제 사실 때문에 그토록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기분이 확 바뀌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던 터라 강진은 아예 전시까지 치를 마음을 먹었다.
“전시도 도전해 볼 생각이냐?”
그런 생각이 전해진 건지 이제원이 식사 시간에 묻는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전시를 치르려면 아무리 강진이라고 해도 몇 년을 제대로 준비해야 할 터였다. 물론 무공 수련도 함께하면서지만 말이다.
이제원이 말했다.
“글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하는 일이라고는 없어 보여서 걱정이 컸는데, 이 아비가 이제 기대를 가져 보아도 되겠느냐?”
세 살 이후의 일은 대부분 기억하는 강진이었다.
세 살부터 지금까지 이제원으로부터 이런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강진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신기한 경험까지 했다.
“저 아버지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그리하라 하시면 당연히 할 겁니다.”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오늘이 바로 내 인생에서 제일 기쁜 날 중 하나가 될 것 같구나.”
“다른 기쁜 날도 있으셨나요?”
평상시라면 감히 묻지 못할 말이었지만, 그의 표정에 힘입어 강진이 묻는 말에 이제원은 답했다.
“네 어머니, 그녀와 혼인한 날도 이리 기뻤다. 보살 같은 사람이었지.”
유모인 칠덕네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이제원의 입에서는 처음 듣는 강진이었다.
“어떤 분이셨어요, 어머니는?”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보살 같은 사람이었다고. 아니, 보살이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마음은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집에 어머님 초상화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건 필요 없다. 그저 머릿속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떠올리면 된다. 그게 네 어머니다!”
“네.”
“그 보살 같은 사람이…….”
점점 이제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성이 높아져 갔다.
“그리 가지만 않았어도 나와 너의 생활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리 가지만 않았어도.”
그 표정과 말투에, 강진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칠덕네에게 물었을 때, 칠덕네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냥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너무 어릴 때라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황한 표정이 이상했다.
그사이 이제원은 야차와 같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살기까지 풍겼다.
“장주님, 곽노입니다.”
그때 곽노가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강진은 두려움이라는 걸 경험해 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곽 선생, 들어오십시오.”
이제원은 어느새 평상시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곽노를 맞이했다. 그리고 곽노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이번에 강진이 급제에 곽 선생의 공이 큽니다. 그냥 있어서는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이리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전 노사가 가르치신 거지, 저는 몇 글자 모르는 무식쟁입니다.”
“곽 선생이 오시기 전에는 글에 흥미가 없었던 아이입니다. 곽 선생이 잘 타일렀기 때문에 이 녀석이 공부에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냐?”
강진은 자신을 보며 묻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부에 흥미를 가진 건 아니지만, 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 건 맞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사부의 공이 커요.”
두 부자가 자신을 치켜세우자 곽노는 머쓱한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강진이가 똑똑해서 그런 거지, 이 급제에 관해서는 제가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저는 그저 나은 삶이 뭔지 알려 준 것뿐이지요.”
“그게 아주 큰 거지요. 앞으로도 우리 강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주께서 이리 신경을 써 주시니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몸까지 편해져 강진이 다 자란 후에는 어찌 살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필요 없어지면 어쩌냐는 물음을 알아듣지 못할 이제원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곽 선생의 고향은 어디신지?”
“기억이 있을 때부터 고아인지라 그런 건 없습니다. 발 닿는 곳이 바로 제 고향이지요.”
“그럼 이곳에 사셔도 별문제는 없겠군요.”
“이미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이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정 총관을 불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 총관이 뭔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뭡니까, 장주?”
정 총관의 손에서 이제원의 손으로,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보며 곽노가 물었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땅문서입니다. 위치도 그리고 토질도 좋은 곳이라, 소작농 구하기도 쉬울 겁니다.”
“그럼?”
곽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제원을 보았다.
사실 이제원이 자신을 불렀다고 했을 때부터 은근히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은자가 아닌 이런 선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의현에서, 그것도 이가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면 땅값이 꽤나 될 것이고, 이제원이 토질도 좋다고 했으니 옥토일 것이 분명했다.
이제원이 미소를 짓자 곽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걸…… 제가 받아도 될지…….”
“받으실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또한 앞으로는 녀석의 수업료도 확실히 지급해 드릴 것이니 노후 준비로는 충분하실 겁니다.”
수시로 하인을 시켜 용돈으로 쓰라면서 은자를 전해 줬지만 이제는 정확히 돈을 지불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미 많이 주고 계시는데 그러실 것까지는…….”
“아닙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곽 선생이 오신 후로 제가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 녀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허, 이거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갑자기 부가 몰려오는 듯한 느낌에 곽노가 어찌 대답할지 모르고 있을 때 강진이 말했다.
“사부! 패 제대로 잡으셨네요. 이제 제 용돈 뺏지 않아도 충분하시겠어요.”
“이놈아, 내가 언제 네놈 돈을 뺏었다고 그래? 그리고, 네가 빼앗는다고 뺏길 놈이냐?”
곽노는 평상시처럼 강진에게 놈이라고 하다가 이제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그를 슬쩍 보았지만, 그 역시 미소를 짓고 있는지라 안심하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강진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가 무척 똑똑하고,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으니 장주께서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원은 곽노의 눈을 직시했다.
곽노도 알고 자신도 알고 있는 그 사실이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 거론된 적이 없는데, 지금 거론이 되었다.
곽노가 순간 아차 하는 순간 이제원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곽노는 서늘한 이제원의 눈빛을 상기하며 헛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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