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33)
관존 이강진 (33)
존재
“그게, 까먹어 버렸다.”
“엥?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분명 오 단계까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하지만 잊어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음 단계를 어찌 수련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걸 어쩌냐? 사실 삼 단계도 간신히 생각해 낸 거다.”
곽노의 변명에 강진은 화를 냈다.
“사부! 그러면 어떻게 해요? 배우려면 제대로 다 배워야지, 이리 되어 버리면 여태 했던 게 다 물거품이 되잖아요.”
“사실 삼 단계로도 충분해. 강물 속에서도 움직임만큼은 땅에서 걷는 것같이 되었으니. 지금도 네가 가끔씩 유령처럼 다가가는 통에 모두 깜짝깜짝 놀라지 않냐?”
“몰라요! 얼른 생각해 내세요. 두 달이나 걸려서 해냈는데 그다음 걸 안 배우면, 안 하느니만 못한 거 아니에요?”
곽노는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변명하면서 생각했다.
‘아니,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내가 은자를 얼마나 썼는데. 아! 그렇게 한꺼번에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했거늘.’
강진의 삼 단계 수련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자 곽노는 만복다루의 설객을 찾았지만 다루의 그 누구도 그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곽노는 안달이 나 신의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찻집을 뒤져 봤지만 그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리 잊어 먹었다고 강진에게 변명을 하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강진의 성화에 곽노는 다시 스스로 그럴듯한 말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대충은 생각나지만 정확하지가 않아서. 괜한 헛수고가 될지도 모르는데…….”
“말해 보세요. 뭘 해야 하는지만 알면 방법은 생각해 내면 되잖아요.”
“그럼 며칠만 더 생각해 보자.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니까.”
결국 강진은 며칠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곽노는 머리를 싸매고 그럴듯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며칠 후.
“생각났다.”
“그래요? 빨리 알려 주세요.”
강진이 반색을 하며 하는 말에 곽노는 준비한 곳으로 그를 끌고 갔다.
“이게 뭐예요? 저번에 했던 거 아니에요?”
곽노가 준비한 것은 빛 한 점 통하지 않는 밀실이었다.
이전에도 이미 두려움을 알려 주려는 곽노의 의도에 따라 밀실에 며칠 동안 갇혀 봤던 강진이다.
“그때보단 더 크잖아. 그리고 이번엔 이 사부도 들어갈 거다.”
밀실에 마련된 단 하나의 작은 문이 열리고 강진이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표시한 부분 있지? 거기에 서라.”
강진이 서자, 곽노는 준비한 쥐 한 마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빛 한 줄기도 없는 곳에서 이 쥐를 잡는 거다. 쥐를 잡는 게 사 단계 수련이다.”
“그거 잡는 거랑 움직임이랑 뭔 상관이 있다고요.”
“빛 한 점 없는 곳에서 본능적인 움직임을 배우는 거지. 생각하기에는 이 쥐를 잡는 게 쉬울 것 같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게다.”
이미 자신이 직접 시험해 본 곽노였고, 그는 수십 번을 시도했지만 쥐 꼬리 한 번 만지지 못했다. 거기에 밖으로 나오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며 헤매기도 했다.
“알았어요. 그럼 문 닫으세요.”
곽노가 문을 닫자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방 안을 감쌌다.
‘고생 좀 할 거다.’
곽노가 밀실 앞에 주저앉으며 술이 담겨 있는 호리병 마개를 열었을 때였다.
“문 열어요, 사부.”
“응?”
곽노가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강진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찍찍.
그리고 그의 손에는 자신이 넣었던 쥐 한 마리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
“뭐냐?”
곽노가 놀라 묻는 말에 강진은 오히려 반문했다.
“이게 뭐예요? 시장에서도 원하는 방향의 소리는 다 들었는데 이깟 쥐 한 마리가 움직이는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아서요? 너무 쉽잖아요.”
“그래도 쥐 새끼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저 좁은 방구석에서 잡는 게 뭐 어렵다고. 이거 정말 사 단계 수련법 맞아요?”
강진의 물음에 곽노는 급히 대답했다.
“준비였다, 준비. 사 단계가 이럴 거라는 준비.”
“준비 필요 없으니 제대로 해요.”
“그게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다. 일단 밀실 크기를 많이 넓히고, 쥐도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잡는 거다.”
“그것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말대로 좁은 방구석이라 쉬운 거였지, 공간이 무지하게 크면 너도 쉽지 않을 거다.”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강진은 그리 말하면서도 곽노의 말을 따랐다.
이가장에서 비어 있는 전각 하나를 통째로 밀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창문과 문을 판자와 두꺼운 천 등으로 막아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쥐도 한 마리가 아닌 스무 마리를 풀었다.
“이거 다 잡으면 마지막 단계인 거예요.”
강진이 확인하듯이 하는 말에 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쾅.
전각의 문이 닫히자 곽노는 급히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강진이 잡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곽노가 생각지 못한 게, 강진은 이미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안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강진은 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쥐들은 강진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강진은 너무나도 수월하게 스무 마리의 쥐를 잡고는 밖으로 나왔다.
“거봐요. 어떻게 사 단계가 삼 단계보다 쉬워요? 그것도 백배는 더요.”
강진이 죽은 쥐들을 밖으로 던지며 하는 말에 곽노는 변명했다.
“사 단계는 여태 배운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이라서 그런 거다. 봐라, 다른 사람들은 몇 달을 가도 잡지 못했을걸. 여태 배운 게 헛수고는 아니지 않냐?”
“그건 그러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 단계네요. 마지막 단계는 뭐예요?”
마지막 단계는 아직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곽노였다. 강진이 사 단계를 하는 사이에 생각해 내려고 했는데 한 시진도 버티지 못했으니 계획이 완전 어긋난 것이다.
“그게 말이다…….”
곽노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말부터 꺼냈다.
“저기 다시 서라.”
“또 이곳에서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 저기 벽에 가서 서라.”
강진이 다시 벽에 서자 곽노는 하인들을 불러 떡을 부탁했다.
“먹고 하시려고요?”
강진의 물음에 곽노가 고개를 저었다.
“수련에 필요한 거다.”
잠시 후 하인들이 떡 한 쟁반을 가지고 오자 곽노는 그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천 조각으로 강진의 눈을 가리게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지?”
“네. 그런데 뭐 하시려고요?”
“이제 내가 떡을 던질 테니 너는 그걸 피해야 하는 거다.”
“으음, 한번 해 보세요.”
곽노는 애기 주먹만 한 떡을 집어 들고 강진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휙.
강진은 소리를 듣고 몸을 움직였지만 허리에 떡을 맞고 말았다.
“마지막 단계는 힘들겠지?”
일단 저지르고 봤지만 기똥찬 방법인 것 같은지라 곽노가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으음, 확실히 쉽지 않네요. 하지만 방향은 아니까 삼 단계보다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그건 두고 보면 알 테고.”
곽노는 계속 떡을 던졌고, 강진은 신경을 집중해 떡을 피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곽노가 잘못 던진 것은 제외하고라도 강진은 다섯 개 중 한 개를 피해 내고 있었다.
삼십여 개의 떡을 모두 던진 곽노가 떡을 주워 다시 던지기 시작했고, 강진은 계속 피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
‘어떻게 피해야 하지?’
떡가루가 잔뜩 묻은 옷을 벗으며 강진은 생각했다.
다섯 개 중 한 개는 피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약간의 운이 필요했다.
‘방향은 아는데 말이지…….’
곽노의 걸음 소리, 그리고 떡이 날아오는 소리까지 모두 들렸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너무 컸다. 그래도 상체로 날아오는지 하체로 날아오는지 구분할 수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육감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위치를 더 세분화해야 해.’
육감.
새로운 감각, 훈련할 수 없는 감각이긴 했지만, 분명 이걸로 그 육감도 수련이 가능했다.
사실 육감은 운동신경과 본능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시간을 수련해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세분화하지? 떡 크기와 내 신체 면적을 나누는 게 완벽한 건데…….’
이 정도면 거의 불가능한 감각을 수련하는 것이지만, 강진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어려울 뿐이었다.
‘하면 된다.’
곽노의 진리인 하면 된다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강진은 진심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시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몸을 풀고 떡 던지기 수련을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학당에서도 서문우람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건드리라는 부탁까지 했다.
‘하면 돼!’
동시에 강진은 뭔가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삼 단계 수련을 할 때에도 물살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의 몸에 부딪치는 물결을 가로지르는 느낌도 실현해 냈는데 고작 떡 따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상체에서 하체.
머리와 가슴 그리고 허벅지와 종아리.
머리와 가슴, 배,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
강진의 느낌은 점점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음, 더 이상은 무리인가?’
자신을 여섯 개로 나눈 감각은 더 이상 세분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섯 군데로 나눈 것만으로도, 곽노가 던진 열 개의 떡 중 아홉 개를 피해 낼 수 있었다.
“사부, 오 단계도 이제 다 배운 것 같은데요?”
강진이 운이 좋을 때 열 개의 떡을 다 피하는 경지에 이르고 말하자 곽노는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도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눈을 아직 발견해 내지 못했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계속 주변을 살폈지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는 알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봐도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게 아닐까? 너도 이제 기척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고 또한 그걸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말이다.”
“떡은 미약한 소리가 나잖아요. 아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그래서 제가 못 찾는 것일 수도 있고.”
“기척 없는 존재를 발견한다. 그럼 너도 기척이 없는 걸 느껴야 하는데, 그걸 무슨 방법으로?”
강진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해 봐야죠. 사부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두 사제는 바로 생각을 실험해 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자리를 잡은 후 곽노는 실에 깃털 하나를 매달고는 강진의 주변을 천천히 움직이게 했다.
깃털에서 소리가 날 리는 없으니 이 깃털을 잡을 수 있다면 기척 없는 소리도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 강진의 이론.
그냥 마구잡이로 손을 뻗으면 한 번은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이 수련은 불용하기에 강진은 허투루 손을 뻗지 않았다.
‘잡을 수 있다. 잡을 수 있다.’
강진은 천천히 호흡을 하며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 강진은 단 한 번도 손을 뻗어 내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