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34)
관존 이강진 (34)
이 년 후에 있을 전시 준비로, 명안학당에서 조금 떨어진 명안정은 종종 새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대애앵!
작은 종소리와 함께 강진과 서문우람 그리고 또 다른 젊은 서생이 책에서 눈을 떼었다.
“후우! 아, 단지 읽는 건데 왜 이리 힘드냐?”
강진이 투덜거렸고, 서문우람 역시 힘이 들었는지 몸을 약간 뒤로 하며 말했다.
“나도 공부하는 게 이리 힘든 건 처음이다. 그래도 실감이 나네, 전시를 본다는 게.”
회시가 광동성 수재들을 모아서 치러진 시험이라면, 과거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 치르는 시험.
아무리 똑똑한 서문우람이라 해도, 암기에 자신하는 강진도, 전인문의 가르침을 따르는 건 벅찰 지경이었다.
글을 읽고 전인문이 풍부한 학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제자들에게 묻는 것이 전부였지만, 충실하게 복습과 예습을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수련을 포기하기 싫은 강진은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했다.
“휴, 그래도 너희 둘은 곧잘 따라가는구나. 나는 자신이 없는데.”
다른 한 명의 과거 준비생인 곽재형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이 답했다.
“재형, 너도 훌륭한걸. 스승님의 질문에도 한 번의 막힘도 없었잖아.”
“창피할 뿐이다. 나야 집에서도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까스로 따라잡는 거지만, 너희는 그게 아니잖아.”
곽재형의 집안은 재상도 몇 배출해 낸 전통 있는 학사 가문이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는데 강진과 서문우람은 그게 아니었기에 부끄럽다는 말이었다.
곱지 않게 들으면 자랑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곽재형이 그런 뜻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님을 강진과 서문우람은 잘 알고 있었다.
강진마저도 친구는 서문우람 하나뿐이지만 곽재형이라면 그냥 알고 지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문우람처럼 가깝게 지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너도 금숟가락 물고 태어난 놈이니 배울 게 없어.’
부자는 아니지만 몇백 석의 소출을 내는 토지를 가지고 있고, 광동에서 명망도 높은 집안이라 환경에 어려움이 없는 곽재형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문우람처럼 반드시 입신양명하겠다는 치열함이 없었다.
단지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청년일 뿐이었다.
“따라가기는. 오늘도 스승님에게 꾸짖음을 받았잖아. 그렇게 공부해 왔는데도 따라가기가 벅차다.”
서문우람도 힘이 들긴 했는지 그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짧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학당에서 일하는 사람 하나가 급히 오며 말했다.
“서문 학사님, 급히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문우람이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하인이 계속 말했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에…….”
하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문우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집안 사정을 아는 강진도 따라 일어섰다.
“눈을 감으셨다고…….”
하인이 말끝을 흐리는 순간 서문우람이 비틀거렸고, 강진은 급히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학당에 누가 왔느냐?”
“서문 학사님의 아우가 된다는 사내아이가 하나 와 있습니다.”
강진의 몸에 기대고 있던 서문우람이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 자리에서 나서자 강진과 곽재형이 그 뒤를 따랐다.
“형!”
눈물과 콧물을 잔뜩 쏟아 내고 있는 서문훈이 서문우람에게 달려왔다.
“어머님은…….”
“어젯밤까지는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보니까…….”
서문훈이 울음을 터트리고, 서문우람은 서문훈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러고는 강진과 곽재형을 보며 말했다.
“스승님에게 말씀드려 줘. 먼저 돌아가 봐야겠다.”
“걱정하지 말고 먼저 돌아가. 나도 곧 뒤따라가마.”
자신이 서문우람과 훨씬 친한데 곽재형이 먼저 그렇게 말을 해 버리자 강진은 왠지 화가 나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가자. 지금 그런 거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스승님께 말씀부터 드려. 그리고 공부가 끝나고 천천히 와도 돼.”
서문우람의 말에 강진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건 섭섭하다는 감정이었지만, 남들에게 감정이라고는 없었던 강진은 그 기분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강진은 서문우람에게 큰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지금 그게 뭔 소리야? 내가 가는 게 싫어? 천천히 오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인데?”
서문우람도 평상시라면 강진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차분히 설명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가 볼게.”
별다른 대답도 없이 서문훈을 데리고 나가 버리는 서문우람을 보며 강진은 씩씩거렸다.
“왜 그래? 내가 못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강진, 왜 그래? 지금 모친상을 당한 서문우람이 제정신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옆에서 곽재형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하는 말에 강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러고는 책도 남겨 둔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집에서 술을 마시며 흥얼거리고 있던 곽노가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강진을 보고 놀라 물었다.
“어? 왜 벌써 왔냐?”
전시 준비생들은 이레에 닷새를 학당에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강진은 수련 때문에 해 떨어질 때까지 공부하는 것으로 간신히 집에서 자는 걸 허락받은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해가 중천이지 않은가?
“말 시키지 마요, 사부!”
강진의 화난 표정에, 지금 시간에 돌아온 걸 보면 뭔가 큰일이 났을 거라고 생각한 곽노가 따라붙으며 물었다.
“뭔데? 왜 그러냐?”
“말 시키지 말라니까요.”
“이놈아, 사부하고는 모두 이야기하고 상의하기로 하지 않았더냐.”
그제야 강진이 심술 난 표정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하자 곽노가 탄식하며 말했다.
“하아! 강진아, 그건 화날 일이 아니다.”
“친구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같이 있어 주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같이 있어 줘야 하지. 우람이 녀석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마음은 네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랄 거다. 든든할 테니까.”
“그런데 말은 왜 그렇게 하냐고요.”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생각할…….”
곽노는 말을 바꿨다.
“사람들은 속마음과는 달리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일단 자신 때문에 네 학업에 방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거다. 그래서 있어 주길 바라면서도 말은 그렇게 하는 거지.”
“속마음이 그렇다면 친구에게 왜 거짓말을 하나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말해도 네가 바로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테고.”
“그러니까 왜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냐고요!”
곽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이건 설명을 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부가 배움이 짧아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예를 들어 주마. 그래, 사람들이 누군가의 집에 찾아갈 때에는 선물을 들고 간다. 그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손님이 선물을 들고 가면 ‘뭘 이런 걸, 그냥 오셔도 되는데.’ 하면서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것 같으냐?”
“잘 몰라요.”
“왜 그렇게 불필요한 말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시되면서, 그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남들이 자신을 흉볼 것 같은 마음이 드니 꼭 그런 말을 챙기게 되는 거지.”
“이해가 안 가요.”
곽노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거니, 너도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면 된다. 이런 겉치레의 말을 언제 해야 하는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살면서 아!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될 테고, 그럼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이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 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그래, 모두가 그렇게 한다. 우람이도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람이의 속마음은 네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는 사실이지.”
“왜요?”
곽노는 강진의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너희는 친구니까. 게다가 너는 친구가 그 애 하나뿐이니 더 잘해야지.”
“그래도 화낸 걸 사과하기는 싫어요.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네가 사과하면 우람이 녀석은 더 뻘쭘해할 거다. 친구라면 그냥 가서 도와줄 걸 찾아서 도와주면 되는 거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야겠어요. 녀석, 찢어지게 가난해서 상 치를 돈도 없을 텐데.”
“자존심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하는 거 잊지 말고. 그리고 우람이와 상의하지 말고 네가 관이니 사람들을 맞이할 음식들이니 모두 준비해라. 우람이도 이번에는 네 도움을 고맙게 받을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관은 어디서 맞춰야 하고, 음, 묘지도 준비해야 할 텐데…… 관을 들 사람도 필요할 테고…… 음식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지?”
곽노는 그런 강진을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부가 도와주마. 똑똑하지만 공부밖에 모르는 녀석이니 그런 건 잘 모를 거다. 집안에 어른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럼 빨리 가요.”
강진은 곧바로 곽노를 재촉했다.
* * *
상은 조용히 치러졌다.
친지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문우람이 아직 관리가 된 것도 아니니 올 사람이라고는 마을 사람들과 명안학당의 서생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손님이 적다고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염을 해야 했고, 관이나 묘지를 알아봐야 했으며, 상복도 준비해야 했다.
곽노가 하나씩 준비를 하며 서문우람이 상을 무사히 끝내도록 도왔다.
강진은 그 모습을 하나씩 지켜보며 왜 죽은 사람을 위해 이리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도 남들이 하는 거라 하는 건가?’
특히 상을 치르면서 물만 몇 모금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 않는 서문우람을 보며 강진은 걱정과 함께 의아해했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많은 절차를 가지고 있는 상을 치르고, 이후에도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는 배웠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지만, 실제적으로 보니 무척 비효율적인 듯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이렇게 큰 인내를 가져야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상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관이며 묘지며, 관을 들 사람과 울어 줄 사람들도 모두 돈을 주고 사 왔기에 꽤 많은 비용이 들었음에도, 곽노의 말대로 서문우람은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고맙다.”
상이 끝나고 강진과 둘이 있을 때 조용히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강진은 며칠 더 집에 있어 주려 했지만 서문우람이 남을 대하는 것처럼 정중히 사양했다.
또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곽노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서문우람의 진지한 표정에, 스스로 혼자 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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