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37)
관존 이강진 (37)
“이 사부가 좋은 거 가르쳐 주마.”
기분 좋게 마셨는지 웃음 가득한 홍안으로 곽노는 강진이 오자마자 그를 뒷산으로 끌고 갔다.
“사부, 너무 마신 거 아니에요? 내일 알려 줘도 돼요. 저도 깨달은 게 있으니까요.”
“아니야, 아니야. 이건 나도 몰랐던 거야. 황룡무관의 관장이라는 놈, 어찌나 유세를 떠는지. 내공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놈은 모를 거다, 내가 바로 너 같은 제자를 두고 있는 사부라는 걸 말이다. 하하하!”
술을 많이 마시긴 했는지 어디서 배워 왔는지까지 이야기하며 곽노가 나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배울 건 말이다, 촌경(寸勁)이라는 거다.”
“촌경요?”
“그래, 발경을 세분화한 건데, 거리에 따라 그걸 구분한다. 척경, 촌경, 분경인데, 그 관장이라는 놈 제법이더구나. 내공도 없는 주제에 어깨로 툭 친 것뿐인데 삼 장이나 날려 가서 이 사부 죽을 뻔했지 뭐냐. 뭐, 아주 조금은 있는 놈이려나?”
“죽을 뻔해요? 황룡무관이라고 했지요? 내 당장 가서 패 주고 올게요.”
곽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히히, 역시 제자는 잘나고 봐야 해. 하지만 아서라. 그래도 혼자 그 경지까지 공부하느라 참 힘들게 살았더라. 이제는 관도 수가 좀 늘어서 먹고살 만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그런 생각은 버려. 오히려 도움을 줘야지. 덕분에 우리 제자에게 이런 좋은 걸 가르쳐 줄 수 있는데.”
곽노는 나무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나무와 곽노의 주먹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보다 짧았고, 그 상태로 곽노는 몸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팔을 뻗어 나무를 쳤다.
톡.
“봤느냐?”
갑작스러운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뭘 봐요?”
“이거 봤냐고.”
“나무 건드리는 거요?”
“건드린 게 아니라 친 거다. 몸을 부르르 떨었잖아. 거리가 짧으니 스스로 힘을 만들어 내 주먹으로 연결해 낸 거지. 경력(經力)이라고 했던가? 하여간 그걸 만들어 내서 잡힌 상태에서도 충분한 힘을 내는 거지.”
“그게 뭐예요?”
“촌경이지. 일단 한번 해 봐.”
곽노의 말에 강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곽노와 같은 자세로 나무를 쳤다.
톡.
“애기가 때려도 이것보단 낫겠네요.”
강진의 말에 곽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련해야지. 그 관장이라는 녀석, 똑같이 했는데 나무가 울리더니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더라.”
“이 상태에서 쳤는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요?”
강진이 놀라 묻는 말에 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믿기지 않지? 하지만 내 눈으로 봤다. 관장이 말하길 촌경, 분경은 암경이라고도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그걸 뿌려 낼 수 있게 되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더라. 생각해 봐라, 내가 저놈하고 주먹을 주고받고 있는데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면 필승 아니겠냐?”
곽노의 말에 강진은 생각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부 말대로 필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리하긴 할 거야. 하지만 저걸 적이 쓰면 어떻게 막지? 아! 둘 다 암경을 쓸 정도의 고수면 그것마저도 막아 내겠구나. 하여간 사실이라면 대단한 건데.’
강진은 곽노에게 말했다.
“한 번 더 보여 줘 봐요.”
“그러자. 뭐 그리 어렵다고.”
약간은 비틀거리면서도 곽노는 아까와 같이 자세를 잡은 후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뻗었다.
톡.
결과는 같았지만 강진은 곽노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사부, 분명 그런 자세였어요?”
“그랬지. 그놈은 형만 알아 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했지만, 분명 이렇게 나무를 쳤다.”
“다른 건 없어요? 그걸로 어떻게 배워요?”
“그야 하면…….”
“하면 된다는 거지요?”
곽노는 다시 실실 웃으며 강진의 볼을 잡고는 말했다.
“우리 제자, 역시 똑똑하다. 하긴, 하늘을 날아 걷는데 이딴 거 하나 못할까? 이 사부는 너를 믿는다.”
강진은 곽노의 손목을 잡아 내리며 말했다.
“그런 건 믿지 않으셔도 돼요. 이 술 냄새 좀 봐. 뭘 그리 많이 드셨어요? 일단 들어가서 쉬세요.”
“쉬기는. 너 하는 거 지켜봐야지.”
“괜찮으니까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보세요. 술 냄새 때문에 나까지 취하겠네.”
“그럼 그럴까?”
강진은 곽노를 부축하다가 곽노가 너무 심하게 비틀거리자 아예 곽노를 업었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좀 불었지만 아직 곽노보다는 훨씬 작았다. 하지만 강진은 별달리 어렵지 않게 곽노를 업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드셨는데 그렇게 먹은 거 다 어디 갔어요? 원, 나보다 더 가볍겠네. 정 총관한테 이제 보약도 올리라고 할 테니 꼭 챙겨 드세요.”
“왜? 걱정되냐?”
“걱정되죠.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았는데 사부가 죽어 버리면 배우지 못할까 봐 무지하게 걱정됩니다.”
“이런 이기적인 놈!”
“원래 사람은 다 이기적인 거래요. 그러니까 꼭 챙겨 드세요. 보약 먹을 땐 술 먹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나한텐…… 술이 보약이다……. 음…….”
“사람들한테 이야기해 놓을 거예요. 밥상에 반주 올리지 말라고. 그러니까 제 말 들으세요.”
“…….”
잠이 들어 버렸는지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강진은 등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곽노의 몸을 추슬려 올렸다.
‘정말 가볍네.’
강진은 잊지 않고 보약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 * *
쿵. 쿵. 쿵.
강진의 손은 계속해서 나무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묘한 장면이었다. 강진의 주먹과 나무 사이의 거리는 고작 손가락 하나 정도였던 것이다.
나무를 친다기보다는 건드리는 것 같은 모습.
하지만 건드릴 때마다 큰 소리가 나니, 평범한 사람이 그걸 보았다면 의아해했을 터였다.
‘이게 촌경이란 말이지. 신기하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지만 집중하고 힘을 옮긴다는 마음으로 계속 시도하니 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묵직한 소리가 났다.
‘하체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로구나. 하체가 중심을 잡아야 힘을 전달할 수 있으니.’
강진은 계속 생각했다.
‘촌경이 이러하니 분경이라는 건 몸이 닿은 상태에서 힘을 낼 수도 있다는 뜻일 테고…… 그런데 동작이 크니 금방 알아차릴 텐데, 어떡하지?’
발경이라는 건 전신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몸을 부르르 떠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뭘 고민하냐? 줄이면 되는걸.’
일단은 힘을 제대로 내는 게 우선이다. 힘을 제대로 낼 줄 알고 요령이 생기면 동작도 줄어들 터.
‘아! 조금 더 하고 싶은데.’
어느새 무공이라는 재미에 빠진 강진은 학당에 가기가 싫어졌다.
‘으으, 아버님만 아니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는데 말이지.’
이가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요새는 집안에 훈풍이 돈다 할 정도로 이제원은 크게 변한 상태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이제는 사람다운 얼굴로 변하고, 월봉도 크게 올랐다.
이게 다 강진이 회시에 급제를 한 후에 생긴 변화였다.
“하아! 공부를 하면서도 수련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가만.”
강진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암경 수련은 몸을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잖아. 앉아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나무 대신 탁상을 쳐도 되고, 아! 부서질 수도 있으니 바닥을 칠까?’
강진은 곧바로 학당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책을 읽으면서도 쉴 새 없이 진기를 움직이고, 손 하나는 바닥으로 내렸다. 그리고 실오라기 한 올 정도 띄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바닥을 내려쳤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래 하지 못했다.
쿵!
“이게 무슨 소리냐?”
갑작스러운 소리에 전인문은 물론이고 서문우람과 곽재형이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이리 빨리 돼? 별 감각도 안 왔구먼.’
스스로 만들어 낸 소리지만 강진은 시치미를 떼며 자신도 주변을 둘러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자 수업은 다시 진행되었고, 강진은 책상 아래로 손목을 돌리며 생각했다.
‘이 감각을 확실히 수련하고 목검을 휘두르면서 그대로 써 봐야지. 그러고 보니 그때 그놈이 쓰던 것도 이런 게 아닐까?’
강진은 복면인이 자신의 봉을 손안에 가두고 움직이는 순간 거대한 힘에 의해 봉이 산산조각 났던 것을 떠올렸다. 봉을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밀려왔던 거대한 힘.
‘두 번 당하지는 않아.’
강진은 속으로 다짐하며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련이야 하고 싶지만, 지금은 할 수 없으니 빨리 책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학당이 끝나자마자 강진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에 학당에서 깨달은 분경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퍽! 퍽!
강진의 몸통만 한 크기의 나무에서 육중한 충격음이 들려오며 이제 싹트기 시작한 씨눈을 가진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강진은 나무를 칠 때마다 단전의 진기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먹은 김에 그 진기마저 발경에 이용했다.
파앙! 파앙!
진기를 이용한 것만으로도 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파아아앙! 파아아아앙!
그리고 어느 순간, 여기에 힘을 조금 더하면 나무를 부러트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흐읍. 흐읍. 흐읍.”
또다시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니 전신의 근육들이 잔경련을 일으켰다.
‘진기를 사용하면 빨리 지치네. 근육들이 떨리는 기분도 좋지 않고.’
강진은 잠시 나무를 치는 것을 멈추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생각했다.
‘하긴 놈과 상대할 때도 금방 지쳤어. 내공이 생기면 하루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나는 내공을 사용하면 오히려 더 빨리 지치는 거지?’
강진은 새로운 문제점을 찾고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호흡의 진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
얼마큼의 지속력으로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하느냐?
이건 무림이란 단어가 생기고 무인, 내가 고수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부터 많은 무인들이 고민해 온 문제였다.
무인들은 그래서 효과적으로 내공을 사용하기 위해 무공 초식을 만들고 그걸 보완해 왔다.
몇몇 무리는 그 고민을 자신의 대에서 끝내지 않고 아들과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해 왔고, 그 아들과 제자들이 다시 공부해서 후대로 전수했다.
그리고 그것이 긴 세월 반복되어 온 어느 순간부터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방파들이 생겼다.
전통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똑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고 같은 시기에 공부를 시작했어도 점점 차이가 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강진의 무공은 그야말로 사막에 갑자기 생겨난 녹초라고 할 정도로 기연에 가까웠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내공을 만들었고, 몸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런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발경과 초식은 좀 다른 문제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넣어야 했고, 강진은 딱 그리해야 이 발경의 공부를 넘길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스승의 지도 없이 함부로 진기를 돌렸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강진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