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1)
관존 이강진 (41)
칼
어느덧 강진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부터 집에 돌아오는 날보다 학당에서 숙식을 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시 준비는 그야말로 혹독해서, 강진마저도 얼굴이 핼쑥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무공 수련을 등한시한 건 아니었다.
수련이라기보다는 몸이 찌뿌둥하니 견딜 수 없어 몸을 푸는 것에 불과했지만, 하루에 한 시진은 그렇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내력은, 나름 조심한다고 했으나 어느새 다시 콩알만 한 크기로 자라 있는 상태였다.
삼재심법은 곽노의 호흡법과 효과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나았다.
곽노의 호흡법으로도 내공을 만들어 낸 강진이 다시 내공을 만드는 건 너무나 쉬운 일.
단지 집중해서 수련하는 시간만 없다 뿐이었다.
그렇게 날이 지나고 전시까지 약 세 달 남짓 남았을 무렵, 명안학당의 전시 응시자 셋이 개봉으로 가는 날이 잡혔다.
신안현에서 하남에 있는 송의 수도 개봉으로 가는 길은 족히 삼천 리가 넘는 길이었기에 여유 있게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워낙 길이 멀기에 노쇠한 전인문은 따라가지 않았고, 응시자 셋이 개봉에서 제반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와주고자 글 선생 하나가 같이 가기로 결정되었다.
곽재형이 글 선생과 함께 먼저 출발했고, 강진은 서문우람과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이제원은 마차 하나와 시녀와 하인 둘을 붙여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이 사부가 따라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진작 건강관리 좀 하셨어야죠. 술 드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주병(酒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병을 앓으시다니…….”
“이게 다 너 때문이잖냐. 이 나이에 무관을 다니는 게 눈치가 보여 술 좀 사느라 얻은 병인데.”
“꿈보단 해몽이라는 말이 딱이네요.”
몇 달 전부터 강진의 과거길에 따라나선다고 노래를 부르던 곽노였다. 하지만 그날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술을 마시다 쓰러졌고, 의원이 급히 불려 왔다.
곽노를 진찰한 의원은, 병명은 모르지만 원인은 술 때문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주병이라는 괴기한 병명을 붙이고 치료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먼 여행길이 될 강진의 과거행을 따라나설 체력이 없었다.
“얌전히 치료 잘 받고 계세요. 자칫하다가 더 나빠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지난번에 정 총관이 챙겨 준 고려 인삼을 먹고 나니 훨씬 나아진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약 드시고 계실 땐 술 좀 작작 하세요. 마셔야 할 일이 생기면 싸구려 화주 말고 주정이 좋은 놈으로다가 비싼 술로 드시고요.”
“작작이 뭐냐, 사부한테.”
“그러니까 몸 좀 챙기시라고요. 어제처럼 곧 죽을 것처럼 연기하면 앞으로 국물도 없어요.”
곽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네놈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길 기다렸다 호의호식하련다.”
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 드릴 테니 몸조리 잘하고 계세요.”
강진이 짐을 들고 일어설 때 곽노가 말했다.
“이 사부가 한 말 잊지 마라. 개봉은 화려하지만 눈뜬 채로 코 베인다는 곳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이 제자를 뭐로 보고. 제 코 베어 가려는 놈의 코를 베어 버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강진은 곽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학당으로 가니 서문우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늦었지? 우리 사부 좀 챙기느라 늦었다.”
“어르신이 같이 가면 참 재미있을 텐데 말이다.”
“누가 아니래냐. 먹을 거 좋아하시니 각 성의 진미들을 맛보여 드리려 했더니만.”
서문우람이 웃으며 말했다.
“급제하고 돌아와서 유람 한번 보내 드리면 되지.”
“그래야겠다. 타자.”
두 사람이 오르자 마차는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서문우람은 마차에 오르자마자 책을 폈고, 강진은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마차는 관도를 따라 순조롭게 광동성을 벗어나 호남성으로 진입했다.
처음으로 광동성을 벗어난다는 흥분에 강진은 창밖을 주시했고, 서문우람 역시 약간의 설렘에 바깥을 지켜보았다.
마차는 여성, 다릉, 례릉, 장사를 거쳐 악양현으로 들어갔다.
장사성 커다란 객잔에 방을 잡고 짐을 푼 강진이 물었다.
“동정호 구경할 시간이 있을까?”
서문우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동정호는 내려오면서 봐도 충분해. 빨리 올라가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
“사람 일 어찌 될지 알고 이런 기회를 놓쳐. 구경할 수 있으면 구경하고 가야지. 소문대로 좋은 곳이면 내려올 때 한 번 더 오는 거고.”
“걱정도 안 되냐?”
“걱정할 게 뭐 있어. 지금 머릿속에 책 몇 권을 외우고 있는데. 가끔씩 머리도 쉬어 줘야 더 팽팽 잘 돈다고.”
서문우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부친께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호의를 주셨는데 배신하면 안 되지. 내려올 때 들르자.”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시진이면 간다는데 하루 이틀 들러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가자.”
강진의 떼에 서문우람은 정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하루 이틀 때문에 시험을 망치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거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다녀와라. 여기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 혼자라도 간다.”
“그래, 다녀와라.”
서문우람의 단호한 대답에 강진은 객실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좀생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공부했으면 하루 이틀 쉬어도 되잖아.”
강진은 투덜거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 각 정도 서문우람의 객실 주변을 서성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대로 객잔을 나와 버렸다.
“좀 쉬게 둘까?”
강진은 마부와 하녀를 불러 동정호로 가려 했으나 그들도 무척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기 일에 충실해야지. 내려가서 정 총관한테 수고했다고 말해 주면 돈도 두둑이 받을 텐데.”
강진은 마부만 불러 마차를 타고 동정호로 향했다.
“와아! 정말 크네.”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동정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크기와 특유의 풍취에 취한다 하지만, 강진은 단지 큰 호수구나 할 뿐 별다른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밤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등을 매단 작은 배들이 호수에 가득한 게 신기할 뿐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강진은 객잔 하나를 잡고는 마부를 두고 혼자 동정호 구경에 나섰다.
야시장에서는 갖가지 먹을거리와 사람의 눈을 끄는 장식품들을 팔고 있었다.
강진은 그것들을 하나씩 찬찬히 구경하고, 몇 가지 음식은 직접 먹어 보며 선착장으로 갔다. 그리고 배 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 사공에게 물었다.
“배 타는 데 얼맙니까?”
젊은 사공은 강진이 혼자 있는 걸 보며 대답했다.
“이건 전세를 내는 배입니다. 공자는 저기 사람들이 타는 곳으로 가 보십시오.”
“전세를 내는 데 얼맙니까?”
젊은 사공은 강진을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원래는 은 두 냥을 받는데 내 특별히…….”
은 한 냥에 해 주겠다고 하려는 순간 젊은 사공은 강진의 손에 놓인 은 두 냥을 발견했다.
“잘 모시지요. 어서 오르십시오, 공자.”
강진이 건넨 은 두 냥에 젊은 사공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해졌다.
사실 그의 배는 은 서른 푼이면 하루 종일 써도 괜찮았다. 좋은 나무와 꽃으로 장식된 배들도 하루 대여하는 데 은 한 냥이면 충분한데 두 냥이나 주고 자신의 배를 타는 강진은 그야말로 멋모르는 애송이였다.
배가 천천히 선착장을 떠나 동정호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배들이 많은 곳을 지나니 금과 피리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하더니 기녀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까지 어울려 들려왔다.
“저런 건 얼마나 합니까?”
강진의 물음에 뱃사공은 되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저기 기녀들 말입니다.”
“아! 기녀들도 급이 있어 액수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떤 기녀들은 흥정만 잘하면 은 몇 푼으로도 태울 수 있고, 또 천금을 줘야 타는 기녀들도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미모와 기예에 따라 다 다르지요.”
뱃사공은 네 마음 다 안다는 듯한 눈빛을 하며 물었다.
“공자도 필요하시면 제가 아는 기녀들이 몇 있으니 태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배만 타는 게 아니라 끝나고 나서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데리고 가서 뭐하게요.”
강진의 대답에 뱃사공은 약간은 당황하며 말했다.
“하하하, 그냥 예기를 태우셔도 됩니다.”
강진의 나이가 열여덟이니 여자에 관심을 가질 만한 때였으나 학당과 집만 오가는 생활에, 유일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서문우람이니 그쪽으로 알 리 없었다. 때문에 사공의 제안이 뭔지 깨닫지 못했다.
“기왕 태울 거면 예쁘고 노래 잘 부르는 기녀가 좋지요.”
강진은 그리 말하며 전낭을 꺼냈다.
이제원이 주는 용돈은 많지만 쓸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릴 때는 학우들에게 돈을 막 썼다지만, 요새는 서문우람네 집에 닭을 사 가는 것과 곽노가 좋아하는 술과 안줏거리를 사 가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 이번에 노잣돈이라면서 이제원이 두둑이 챙겨 준 상태였는지라, 전낭 안에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은두와 금두가 가득했다. 또 품에 따로 은자 백 냥짜리 전표도 다섯 장이나 있었다.
“얼마면 됩니까?”
뱃사공은 다시 탐욕 어린 눈으로 전낭을 보며 말했다.
“수준에 따라 다릅니다. 공자께서 예산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알아서 모십죠.”
강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은자 열 냥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뱃사공은 재빨리 은자를 챙기며 말했다.
“열 냥 정도면, 뛰어난 기녀를 태울 수는 없지만 공자께서 원하시는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를 정도의 기녀는 태울 수 있습지요.”
강진은 뱃사공의 눈을 보고는 다시 전낭을 열어 금두 십여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하루 놀고 갈 거니 괜찮은 기녀로 하지요.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사실 은 스무 냥이 넘어가면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금두의 힘이었는지, 뱃사공은 힘차게 배를 저어 뭍으로 가더니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데리고 오겠습니다.”
뱃사공이 급히 달려가자 강진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수준은 상관 안 하니 기녀만 데려와라. 하지만 이런 으슥한 곳에 배를 대고도 정말 의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강진은 배 안을 살피더니 이내 나무 막대 한 개를 발견하고는 손에 쥐었다.
잠시 후 뱃사공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군. 그러고 보면 나도 성격이 그리 좋지는 않아. 사부 말씀대로 평범하게 했어야 했는데.”
시세를 모를 뿐이지 돈의 가치도 모르진 않았다. 은 두 냥을 달라고 했을 때 바가지를 씌우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아까워 그냥 주고 말았다.
하지만 기녀를 부르는 값이 터무니없이 올라가고, 그 탐욕 어린 눈빛에 뱃사공이 딴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동정호의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은 열 냥은 너무하잖아.”
그래서 일부러 금두를 꺼내 뱃사공의 눈치를 살피니 놈은 인적이 드문 곳에 배를 댔다.
그다음 일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또 기녀라면 달려올 필요는 없지.”
강진은 몽둥이 하나를 잡고 배에 내렸다. 좁은 곳에서는 아무래도 몸을 쓰기 불편해서였다.
“아이고, 공자님! 왜 내려와 계십니까?”
뱃사공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동정호에서는 기녀가 모두 남자이던가? 그것도 하나를 불렀는데 셋이 오네?”
“흐흐흐흐, 이제 알았으면 가진 거 모두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마.”
뱃사공이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본색을 드러내자 강진도 똑같이 웃으며 물었다.
“흐흐흐흐, 정말 살려 주게? 그냥 물에 빠트려 죽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어느새 뱃사공과 그가 데리고 온 세 명의 사내가 강진을 포위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부모 잘 만나 여태 호의호식했을 테니, 가지고 있는 건 이 어르신들에게 보태 주고 조용히 죽어 다오.”
뱃사공의 말에 강진은 몽둥이를 쥔 손목을 서서히 돌리며 말했다.
“배우지 못해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진작 네 생각을 눈치챘는데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급하니 수를 써 보려 하는 모양인데, 너무 늦었다. 네 녀석이 뭔가 한 수를 배웠다고 해도 우리 동정사호에게는 안될 것이다.”
“오호! 그러고 보니 탐욕 때문에 갑자기 일을 벌인 게 아니라 원래 주업이 이쪽이었구나. 그렇지?”
강진이 기뻐하며 묻는 말에 뱃사공, 아니 동정사호의 둘째 양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건 이제 네가 동정호 바닥에 가라앉으면 알겠지.”
이쯤 되면 겁을 먹을 만도 했지만 강진의 입가에는 더더욱 짙은 미소가 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