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2)
관존 이강진 (42)
그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양호가 말했다.
“곧 죽을 생각을 하니 실성을 한 모양이로구나. 계속 웃는 걸 보니 말이다.”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유가 생겨서 기쁜 거야.”
“이유?”
“나는 사람은 죽이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 하지만 그게 나를 죽이려는 놈까지 죽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거든. 이유가 생겼으니 사부도 나를 탓하지 않겠지.”
“그게 뭔 개소리냐?”
순간 양호가 소리를 지르며 먼저 커다란 칼을 들고 강진에게 달려들었다.
휘이익!
강진은 제법 날이 선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대도를 오른쪽으로 가볍게 피해 흘리고는 양호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가격했다.
빠악!
양호가 바닥에 대자로 쓰러지자, 여유 있게 바라보던 동정사호의 다른 사내가 놀라며 무기를 뽑았다.
“야, 이 새끼야! 한 방에 그리 뻗으면 어떡해!”
강진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소리를 내며 쓰러진 양호의 등을 짓밟았다.
“이 새끼가! 죽어라!”
그때 동정사호의 다른 사내들이 칼을 휘두르며 강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진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그 바닥에서는 흉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를 부르는 존재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은 일반인.
강진의 일격을 견디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새끼들이!”
강진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를 냈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몸을 크게 쓰지 못해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서 화끈한 싸움을 하고 싶어서 일부러 순진한 척하며 상대를 꼬드겼고, 거기에 마음 놓고 패도 상관없는 상대여서 크게 기뻤는데 한 방에 모두 떨어져 나가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손 대협이 말한 게 다 거짓말 아니야? 엉터리로 배웠는데 모두 한 방에 나가떨어지잖아.’
강진은 동정사호를 신 나게 밟으며 이런저런 화풀이를 해 댔다.
“꺼억! 살려…….”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지 바닥을 기면서 사정하는 동정사호를 강진은 더더욱 밟아 댔다.
처음에는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밟을수록 점점 속이 시원해지더니 쾌락이 전신을 감싸는 듯했다.
“사람을 죽이지는 말거라. 죽일 놈이 있다면 반드시 사부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정말 기적같이 곽노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강진은 쾌락에 몸을 맡긴 채 동정사호를 그대로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강진은 발길질을 멈추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생각했다.
一. 나를 죽이려 했으니 나는 그들을 죽일 이유를 찾았다.
二. 죽일까?
三. 역지사지. 하지만 나를 죽이려 했으니 해당 사항이 없다.
四. 측은지심. 나를 죽이려 한 놈들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게 거짓이 아닐까?
五. 역시 죽일까?
六. 사부가 또 울지 모른다.
七. 죽이고 모른 척할까?
八. 사부를 속이는 건 기분이 더럽다. 약속도 했고.
九. 하지만 살려 주기는 싫다.
강진은 곽노에게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가 아무런 말도 못 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죽이면 살려 줄 수도 있었는데 죽였다고 화를 낼 것이다.
강진에게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놈들의 생명은 그의 손에 있었다. 죽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행복한 고민은 강진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
그리고 마침내 이유를 찾았다.
‘놈들을 살려 두면 또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까? 저 동정호 바닥에 가라앉은, 놈들이 전에 죽인 다른 사람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고. 이거라면 사부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강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몽둥이를 높게 치켜올렸다.
“선택이다, 죽일지 말지는. 하지만 나는 네가 죽인다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곽노의 말에 강진의 몽둥이가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죽여야 해.’
강진의 몽둥이가 다시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저기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자 강진은 갈대숲에 몸을 숨기며 주변을 살폈다.
이쪽으로 한 무리의 사내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한 복면인이 먼저 이쪽으로 달려왔다.
복면인은 쓰러져 있는 동정사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눈빛을 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도를 빼어 그대로 양호의 정수리부터 몸 아래로 꽂아 넣었다.
그리 힘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고, 찌르는 물건은 아니었음에도 도는 마치 두부라도 찌르는 듯 쑥 양호의 몸에 들어갔다.
복면인은 양호를 동정호로 던지고는 몸을 날리려 했다.
그 순간 강진과 복면인의 눈이 마주쳤다.
강진은 신기한 듯 바라보고 복면인은 깜짝 놀라는 순간, 추격하던 무리가 가까워져 왔다.
복면인은 다시 한 번 강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그대로 신형을 날려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뒤를 이어 추격하던 사내들이 당도했다.
“놈이 여기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시체들은……?”
양호의 배를 보고 죽어 있는 듯한 동정사호의 나머지를 보며 말을 하자 다른 사내가 말했다.
“뭔가 일이 있었나 보군. 배를 띄울 시간이 없었던 게 다행이야. 계속 쫓아가자. 놈이 칼을 들고 있는 걸 봤다.”
사내들이 다시 달려가고 강진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사내 중 하나가 빠져서 다시 돌아왔다.
강진은 다시 몸을 숙였고, 돌아온 사내는 동정사호의 남은 세 사람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그러고는 양호의 배에 올라타 뭔가를 찾는 듯 뒤지다가 소득이 없자 다시 일행을 쫓아갔다.
강진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철저하네.”
사내들이 떠난 방향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물가에 잠긴 양호를 꺼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나 보네. 마지막에는 동정호 바닥에 내려 줄 테니 여태 네놈들이 죽인 사람들과 안부 인사라도 하라고.”
강진은 양호의 정수리에 꽂힌 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쑤욱.
도는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에도 수월하게 뽑혀 나왔다.
“하아!”
그리고 저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성.
방금까지 사람의 몸에 꽂혀 있던 것이건만 칼날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삼 척이 조금 넘는 길이에 일 촌의 폭을 가지고 있는 도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도의 날의 곡선은 강진으로 하여금 일각 이상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멋지네.”
한참 후에야 간신히 강진은 입을 뗄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들고 있던 몽둥이에 도를 꽂아 넣었다. 이번에도 도는 별 저항감 없이 몽둥이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동정사호 중 하나의 바지 자락을 찢어 내고는 도병을 둘둘 감았다.
‘이건 이제부터 내 거야.’
강진은 몽둥이를 품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 * *
그다음 날 바로 강진은 서문우람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서문우람과 개봉을 향해 떠났다.
마차 안에서 강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칼을 빼냈다.
밤에도 아름다웠지만 낮에는 더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무슨 칼이냐?”
서문우람이 책에서 눈을 떼며 물었다. 하지만 강진은 도신에 정신이 빼앗겼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서문우람이 강진을 보니 눈이 몽롱하니 정신이 풀린 것 같아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냈다.
“강진아!”
“응, 응?”
그제야 강진이 자신을 보자 서문우람은 말했다.
“웬 칼이냐고? 동정호 구경 가서 사 온 거냐?”
“산 건 아니지만……. 어때? 아름답지 않냐?”
서문우람은 칼끝이 자신에게 향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험하니 치워라. 진짜 무기는 고수가 된 후에 쓴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 녀석을 쓰기 위해 고수가 돼야지.”
“뭔 칼이 그리 요사스럽냐?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게,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니 더더욱 아름답지. 이 도신을 좀 봐. 미녀의 몸 선이 아름답다고 해도 이보다 더하겠냐?”
서문우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걸 볼 시간에 책이라도 한 번 더 봐라. 전시는 천하의 수재들이 다 모이는데……. 부친께 반드시 급제한다고 큰소리쳤다면서.”
“조금만 더 보고. 하! 볼수록 예쁘네.”
서문우람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기를 반 시진.
뭔가 이상한 생각에 고개를 들어 보니 강진은 여전히 도를 보고 있었다.
탁.
서문우람은 책을 덮고는 손을 내밀었다.
“칼 집어넣고 내놔.”
“왜 그래?”
“과거가 끝나고 돌려줄 테니 내놔라.”
“이제 책 보려고 했어.”
강진이 칼을 몽둥이에 꽂으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를 하루 이틀 보냐? 네 눈빛을 보니 하루 이틀 해서 끝날 게 아니야. 넌 그 칼 때문에 시험을 망칠 테고, 난 그런 꼴 보기 싫다. 내놔라. 보관하고 있다가 시험이 끝나면 돌려주마.”
“이제 정말 안 본대도.”
“나도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네가 잘못되는 꼴은 못 보겠다. 내놔라.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내려 혼자 갈 테다.”
“우람아!”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내놔.”
서문우람은 흔들리지 않고 칼을 요구했다.
강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데다 칼에서 전해지는 서늘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강진에게 맡겨 둔다면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안 본대도.”
강진이 칼을 등 뒤에 놓으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은 몸을 일으키며 칼을 꽂아 넣은 몽둥이를 잡았다.
“야!”
저도 모르게 서문우람을 와락 밀친 강진이 스스로도 놀라 급히 사과하며 변명했다.
“아! 미안하다. 안 본다는데 왜 그리 고집을 부리냐?”
서문우람은 아무런 말 없이 강진을 쳐다보다가 소리쳤다.
“서 아저씨, 마차를 세워 주세요!”
마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 서자 서문우람이 문을 열고 내렸다.
“야! 왜 그러는데?”
강진이 놀라 묻는 말에 서문우람이 말했다.
“나에게 맡기면 같이 가겠지만, 그러지 않겠다면 여기서부터 나 혼자 가겠다.”
“개봉이 어딘 줄 알고. 노잣돈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가겠지.”
서문우람이 미련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며 길을 따라가자 강진은 입술을 꽉 깨물며 손에 쥔 칼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서문우람을 쫓아갔다.
“맡기면 되잖아. 갑자기 왜 그런대?”
강진이 자신을 잡으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은 씩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점괘를 보니 불길한 괘가 나와서 뭔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칼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그런다. 과거 끝나고 돌아가면 너도 수련을 실컷 할 수 있으니 이건 그때 사용하자.”
서문우람이 강진의 손에 쥐인 칼을 잡으며 하는 말에 강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건네주며 말했다.
“언제부터 점괘 같은 걸 믿었다고.”
“다 너 때문이잖아. 무명검법인가 뭔가를 만들어 내느라 역경을 몇 번이나 읽는 바람에 좀 파고들었다. 그래서 알았지. 점괘란 건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쁘면 몸조심하면 되는 거라는 걸.”
“잘났다.”
강진이 입술을 삐죽이며 뒤돌아가 마차를 타자, 서문우람은 미소를 지으며 뒤따라갔다.
마차는 다시 움직여 하남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진을 태운 마차는 하남성을 들어가 개봉에 도착했다.
천하의 상인들과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처럼, 개봉의 인파는 강진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서문우람마저 그 혼잡함에 놀라 책보다는 바깥을 보는 시간이 많을 정도였다.
천하객잔.
거창한 이름만큼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객잔이었다.
강진과 서문우람이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곽재형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들 와. 내가 미리 방을 잡아 두었어.”
곽재형이 안내하는 방을 보니 일반 객실인지라 강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 후원을 통째로 빌리라고 지시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머물 곳도 조용하니 괜찮아.”
곽재형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기왕이면 좋은 곳에서 공부를 해야지. 가뜩이나 책 읽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좀 넓은 곳에서 하는 게 좋지. 서로 이야기를 할 때도 좋고.”
사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배운 바를 점검하는 데 작은 방보다는 사방이 트이고 경치가 좋은 곳이 훨씬 나을 터.
곽재형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자 서문우람 역시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강진은 그렇게 천하객잔이 보유하고 있는 네 개의 후원 중 한 개를 통째로 빌렸다.
제반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온 글 선생, 서 노사가 자주 바깥을 출입할 때 세 사람은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은 강진도 무공과 칼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었다. 막상 개봉에 도착하니 걱정이 조금 된 것이다.
그렇게 전인문이 예상해 본 문제를 서로 점검하고 토론하며 전시의 날은 가까워졌다.
드디어 전시 전날.
서 노사가 세 사람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는 격려에 곽재형이 물었다.
“스승님, 이번에 응시자가 몇이나 된다고 하는지요?”
“알아본 바로는 만 명이 약간 넘을 것 같다고 한다. 그중에서 이삼백 명을 뽑을 테고. 계산상으로는 백 명에 두세 명꼴이로구나. 너희의 실력은 알지만, 이곳에 모인 자들 역시 회시를 통과한 자들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장을 만듦에 있어 치장하지 말고, 글을 씀에 있어 멋을 부리지 말거라.”
“네.”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하자 서 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은 푹 쉬거라. 맑은 정신으로 들어가야 하니.”
서 노사가 마지막 당부를 하고는 사라지자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서문우람과 곽재형은 바로 내일이 그동안 참고 배워 왔던 것들을 풀어낼 시간이라는 압박감에 입이 열리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와는 좀 다르게, 강진은 이제 곧 고생 끝이라는 생각에 기뻐하느라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세 사람은 전시를 치르기 위해 황궁으로 들어갔고, 다시 사흘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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