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3)
관존 이강진 (43)
정저지와 좌정관천
“종류별로 다 가지고 와 봐.”
강진이 호기롭게 주문하자 점소이가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모든 음식을 다 말입니까?”
“그래. 개봉의 음식은 어떤지 맛 좀 봐야겠다.”
그때 서문우람이 그런 강진을 말렸다.
“사람은 열도 되지 않는데 종류별로 다 시키면 많이 남는다. 학문을 배운 자로서 절제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 과하면 좋지 않다.”
“우람의 말이 맞아. 유명한 요리만 몇 개 시키자. 거기에 술 몇 병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음식값이라고 해 봤자 후원을 하루 빌리는 값도 되지 않아.”
강진의 말에 서문우람이 대답했다.
“그때는 우리가 정말 필요해서였지만, 음식은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잖아. 사실 시험이 끝난 지금도 여기를 통째로 빌리고 있다는 게 부담스럽다.”
“이번 한 번이다. 언제 여기 와서 이렇게 먹겠냐고. 그리고 후원은 모레까지 빌렸고 그다음에는 일반 객실로 옮길 테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이 놀러나 다니자.”
강진이 곧바로 점소이를 재촉해 음식을 가지고 오게 하자 서문우람과 곽재형은 서로를 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물주는 강진인 것이다.
술과 음식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자 서문우람이 술잔을 들어 정중하게 서 노사에게 권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스승님 덕분에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후회 없을 정도로 쏟아 냈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모두 꼭 급제를 해서 고향과 우리 학당 그리고 집안을 빛내길 바란다.”
모두가 약간 들뜬 상태에서 먹고 마시는 사이에도 음식은 계속 나왔고, 서른 개가 넘은 이후부터는 누구도 젓가락 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거봐라, 남는다고 했잖아. 아까워서 어떡하냐?”
이날만큼은 긴장을 풀었는지 술에 취한 서문우람이 식어 가는 음식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이깟 음식들이 대수냐. 네가 장원급제만 하면 매일 이런 음식을 먹을 텐데.”
“장원급제라…….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급제만 했으면 좋겠다.”
“사내자식이 쪼잔하기는. 내가 인정하잖아. 네가 장원급제를 하지 못하면 뭔가 비리가 있는 거야.”
“말만 늘었다. 한잔 마셔라, 친구야.”
계속해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어느새 강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쓰러졌다.
“이리 술이 약해서야.”
그 어떤 사람보다 배는 더 마신 강진이었지만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술은 좋아하지 않는 강진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곽노와 대작을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하인들마저도 모두 쓰러지자 강진은 점소이를 불러 저마다 객실에 눕히라고 지시하고는 자신은 혼자 앉아 술병을 기울였다.
“쩝, 사부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개봉 음식은 드셔 보셨으려나?”
이 자리에 곽노가 없다는 사실에 강진은 진한 아쉬움을 느끼며, 사부 대신 더 많이 마셔 주기로 작정하고는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많이 마셨다.
주기(酒氣)가 오르는 걸 느끼며 강진은 기지개를 크게 폈다. 그러다 칼 생각이 났다.
“시험도 끝났으니까 우람이 녀석도 이제 뭐라고 하진 않겠지.”
강진은 서문우람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한편에 세워 둔 칼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술 한 모금을 들이켜고는 칼을 천천히 뺐다.
“하아!”
볼수록 아름다운 칼이었다.
‘돌아가면 제일 먼저 무명검법을 무명도법으로 바꿔야겠어. 이걸 제대로 쓰면 무척이나 멋질 거야.’
강진은 칼을 잡고 허공을 향해 천천히 휘둘러 보았다.
휘이이이!
힘도 주지 않고 느릿한 속도로 휘둘렀음에도, 마치 칼에서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렇게 강진이 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을 때, 후원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 큰 객잔에 후원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여기는 뭔가,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이곳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오신 서생분들이 전세를 낸 곳입니다.”
강진은 칼을 몽둥이에 집어넣고는 후원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과거? 아! 그건 오늘 끝나지 않았나? 몇 명이나 되는데?”
“몸종들까지 열 분이지만 일단 통째로 빌리셨으니…….”
“열 명이면 다른 후원으로 옮겨도 되잖아. 나 몰라? 아무리 천하객잔이라고 해도 나에게 이런 푸대접을 하면 제대로 장사하기 힘들 텐데?”
강진이 보니 객잔의 총관과 젊은 사내 하나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공자님! 사정 좀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틀 후에는 비워질 테니 연회는 그때 하시면…….”
짝!
젊은 사내가 쉰은 되어 보이는 총관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너 따위의 말에 내가 계획을 바꿔야 하나? 이분들을 모시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빨리 가서 전해라. 돈은 충분히 보상할 터이니 얼른 후원을 비우라고.”
총관은 맞은 뺨을 감싸며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후원을 돌아보다가 강진을 발견했다.
“공자님.”
그리고 급히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오늘 후원을 비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강진은 총관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자신을 보는 젊은 사내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모레 아침까지는 내가 빌렸을 텐데. 조용한 곳이 필요해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는데 이게 뭐지?”
“공자님, 죄송합니다. 그게, 사정이 생겨서……. 과거는 끝났으니 제가 조용한 객실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틀치에 대한 대금과 새로운 객실의 비용은 저희 객잔에서 부담하겠습니다.”
“개봉은 장사를 이렇게 하나?”
총관은 연신 굽실거리며 사정을 호소했다.
“죄송합니다. 한번만 사정을 좀 봐주시면…….”
강진은 여전히 젊은 사내를 보며 대답했다.
“부탁이란 건 당사자가 와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젊은 사내가 강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가 사정이 있어 그러니 양보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과거가 끝났으니 이리 큰 곳도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죄송하니 이후 며칠을 묵으시든, 귀하와 동료분들의 값은 제가 치르겠습니다.”
강진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죄송하면 부탁을 하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숨기려면 제대로 숨기든가. 입꼬리가 올라간 그 웃음은 어찌 설명하지?”
“그럴 리가요.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드리지요.”
젊은 사내는 그리 변명하고는 총관을 보며 말했다.
“어서 특실로 이분과 동료분들을 모시게. 계산은 내가 나중에 다 할 테니.”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이 돌아가려는 순간 강진이 그를 불렀다.
“누가 마음대로 방을 바꾼다고 하는 거지?”
“저기, 공자님…….”
총관이 난처한 눈빛으로 강진을 보았다.
“바꾸기 싫어. 내일모레까지 계약을 했으니 그때까지는 여기에 머무를 거야. 더는 쓰잘데기없는 일로 소란 피우지 말고. 쉬어야 하니.”
강진은 젊은 사내를 향해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고 서생이라 하여 예의로 대하려 했는데 너무 방자하구나!”
젊은 사내가 뒤에서 소리를 지르자 강진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방자? 예의? 당사자의 뜻도 묻지 않은 채 마음대로 바꾸려고 한 사람이 방자와 예의를 입에 담나? 연회를 벌일 시간에 글 한 줄이나 더 읽는 게 낫겠네.”
“이놈이!”
젊은 사내가 강진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 대가는 충분히 치러 주겠다고 했으니 좋은 말 할 때 나가거라.”
“대가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돈 많아? 내 소비를 감당할 수 있겠어?”
강진은 총관을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모두 지불하겠다 하니 내가 마음대로 소비해도 되겠나? 나중에 딴말하지는 않을 테고?”
총관이 젊은 사내의 눈치를 보고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일단 개봉 기녀들의 자태를 보도록 할까? 일 층을 통째로 전세 내라. 그리고 유명한 기루에 가서 기생 백 명만 불러라. 기예가 출중하고 절색이 아니면 모두 퇴짜를 놓을 테니 꼭 그런 기녀를 불러야 한다.”
총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젊은 사내를 보았다. 강진이 말한 대로 기녀들을 백 명이나 부른다면 젊은 사내도 감당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놈이!”
젊은 사내도 놀라 외치자 강진이 피식 웃으며 사내에게 말했다.
“그 정도 능력이 없으면 입 닥치고 가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누가 들어줄 것 같으냐?”
“말이 돼. 지금 입 닥치고 물러가면 내가 그리해 줄게. 총관, 방금 내가 한 말대로 해. 거기서 뭔 주접을 떨어도 상관하지 않을 테니 조용하게만 해. 친구들이 자고 있으니.”
강진의 말에 사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건방진 놈이!”
사내는 주먹을 들어 강진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도 이 지역에서는 나름 평판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고, 후원을 통째로 빌린 데다 회시에 통과할 정도라면 강진 역시 유력 가문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여 겁만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눈앞까지 온 사내의 주먹을 보며 말했다.
“거기서 더 까딱하면 잘린다.”
“이…….”
사내가 분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 뒤에서 일행이 다가왔다.
“가명, 아직 멀었나?”
말끔한 차림의 청년 다섯과 여인 세 명이었다.
“뭐 하는 건가?”
그중 한 청년이 가명이라는 젊은 사내를 보며 물었다.
“아니네. 잠시만 기다리게.”
가명은 다시 강진을 보며 소리를 낮춰 말했다.
“오만방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마지막 경고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면 내 가만있지 않겠다.”
“누가 가만있으라고 했나? 아니, 내가 가만있으라고 하면 가만있는 건가? 그럼 가만히 있어라.”
강진은 더 볼일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내 잠시 체면을 잃더라도 네 오만방자함을 고치고 말겠다.”
말과 동시에 가명이 순식간에 강진의 앞을 막더니 주먹을 휘둘렀으나, 강진은 가볍게 피하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가명 역시 무공을 배운 이였는지, 몸을 뒤로 젖혀 피하며 발을 내뻗었다.
강진은 흥미롭다는 듯 몽둥이로 가명의 발바닥을 막고는 오른발을 내밀어 그의 넓적다리에 어깨를 부딪쳤다.
“무공을 아는 놈이로구나!”
고집 센 서생으로만 알았던 강진이 절도 있는 반격을 하자 가명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로 날려 강진의 어깨에 서려 있던 경력을 풀었다.
가명은 강진이 발경까지 제대로 하는 걸 깨닫고는, 조급함은 버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내력을 모았다. 자신의 절기인 연환각으로 단숨에 짓밟을 생각이었다.
강진 역시 그의 걸음을 보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몽둥이, 정확히는 몽둥이에 꽂힌 칼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청년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