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4)
관존 이강진 (44)
“너는?”
가명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강진이 약간 놀란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저를 아십니까? 그러고 보니 눈에 익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아! 그때 회시에서 뵌 분이로군요.”
상대가 예의를 갖추자 강진은 자신이 방금 너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말했다.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회시에서 눈빛 몇 번 스친 것이 다인데.”
청년은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구진호라고 합니다. 이 공자야말로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너무나도 정중하게 대해 오자 강진도 마지못해 포권을 하며 물었다.
“구 공자께서도 전시 때문에 오신 겁니까?”
“아! 준비가 모자라 이번 시험은 치르지 못하고 다음 시험에 응시할 생각입니다. 개봉에는 다른 일이 있어 잠시 들렀지요. 강 공자께서는 이번에 응시하신 모양이군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공자의 나이가 저보다 몇 살은 어리신 듯한데 벌써 전시라니, 놀라울 뿐입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구진호는 미소를 보이고는 가명을 향해 물었다.
“가명, 이분은 광동성의 위명 높은 이가장의 자제분으로 회시까지 급제한 학사님이신데 그런 분을 상대로 무공을 펼치려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명은 초조해졌다.
한 번의 정사대전과 황궁의 무림말살정책 시도 그리고 관존의 통제까지, 그동안의 무림은 수난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밟을수록 억세어지는 잡초처럼, 강호라 불리는 곳의 무림인들은 다시 그들만의 시대를 열고 있었다.
무림방파와 가문 그리고 무관들까지 전력을 다해 각 성의 패권을 쥐기 위해, 그리고 천하로 발돋움하기 위해 질주하는 시대.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소림사에서 천하무림대회가 열렸다.
주최하는 곳이 소림사인 만큼 천하무림대회는 그 어떤 무림대회보다 큰 관심을 끌었고, 그만큼 수많은 고수들이 소림사로 몰렸다.
이미 무림에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천하오존과 칠마, 구괴의 몇몇 인사마저도 참관할 정도로 큰 대회였다.
중견 고수들에게는 친목을 다지고 앞으로 어떤 방파가 무림을 이끌어 갈지 엿보는 자리였지만, 젊은 고수들은 아무래도 좀 달랐다.
가문과 문파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비무대회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여덟 사람의 신진 고수가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비교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은 오룡삼봉이라 불렸다.
가명은 개봉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명인방의 소방주로, 오룡삼봉에 끼지는 못했지만 나름 선전을 하며 간신히 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이번에 이 오룡삼봉과 그 일행을 초대해 큰 연회를 벌였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각 사문의 어른들이 있는 자리는 아무래도 불편한 법. 그래서 따로 객잔 후원을 통째로 빌려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려고 하던 찰나에 강진과 휘말린 것이다.
‘하필이면 구가와 친분이 있는 자인가?’
가명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아, 그게…… 이 후원을 몇 사람이 쓰기에 양보를 부탁했더니 너무 방자하게 구는군. 기녀를 백 명 불러 놀 테니 그냥 가라고 했던가? 그래서 잠시 화가 났던 것뿐이라네.”
교묘하게 말을 바꾼 가명의 변명에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기녀 백 명을 부르든 천 명을 부르든 이곳은 내가 전세를 냈는데 무슨 상관이신가? 그냥 돌아가라 했더니 주먹부터 휘두르니 개봉의 인심이 참으로 고약하지.”
구진호도 강진의 편을 들며 말했다.
“가명,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군. 먼저 후원을 빌렸는데 비우라고 하면 나라도 그냥 있지는 않겠네. 또한 사내가 풍류를 아는 게 그리 탓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말이네.”
“그게…….”
가명이 진땀을 흘리며 대답할 말을 찾는 사이 구룡삼봉의 다른 사람들도 다가왔다.
“모두 잘 왔네. 인사들 하시게. 여기는 이 공자로, 광동성에서 유명한 이가장의 후계자시라네. 학문도 뛰어나 회시에 합격해 이번에 전시를 치르려고 오신 분이네.”
구진호는 오룡삼봉에게 이강진을 소개시켜 주며 강진에게도 그들을 소개시켰다.
“이 공자, 혹시 무림이란 곳을 알고 있습니까?”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설명하기 편하겠군요. 이분들은 모두 명망 높은 문파의 제자들로, 사귀어 두시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분들입니다.”
구진호의 말에 강진은 허리를 약간 숙이고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강진의 인사에 다른 사람들 모두 포권을 하며 이름을 밝혔다.
무당파, 화산파, 남궁세가와 팽씨세가까지, 모두 쟁쟁한 가문의 젊은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전시를 치른 젊은 학사에게 호의를 드러냈다.
거대 문파일수록 관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저 나이에 전시를 치렀다면 훗날 그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중에 떠도는 전표 중 십분의 일을 발행하고 관리한다 할 정도로 이가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상단을 보유한 가문이었다.
실력과 배경까지 갖추고 있으니 사귀어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중 삼봉에 속하는 세 여인은 특히 강진에게 더한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실력과 배경은 상관없이 강진의 외모 때문이었다.
강진은 보통 사람보다 작은 체격인 데다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 통 힘밖에 모르는 무인만 보고 자란 세 여인에게 강진은 무척 특별해 보이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자리를 옮기지. 이 공자, 어떠십니까?”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니 자연스럽게 자리는 후원으로 옮겨졌고, 새로운 음식과 술들이 상에 차려졌다.
아차 하면 자신은 관심 밖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명이 강진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이 공자, 아까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뭘 몰랐다는 겁니까?”
“네? 그게…….”
가명이 당황하자 강진이 말했다.
“제가 아니었어도 그 상황은 귀하가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면 그 후의 일은 어찌하실 생각이었습니까?”
그제야 가명은 큰일 하나를 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오룡삼봉과의 관계보다도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개봉에서 명인방이 나름 알려진 곳이긴 해도 천하에서 손꼽히는 이가장의 책임 추궁을 모두 감당하기는 무리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무공을 모르는 서생을 때렸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까지 난다면 자신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는 신세가 될 뻔했다.
“자, 자! 이 공자께서는 화를 푸십시오. 저리 사과를 하는데 받아 주지 않으면 이 공자의 도량이 작다고 소문날 겁니다.”
옆에서 구진호가 던져 오는 말에 강진은 입을 다물고 가명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셨다.
분위기는 점점 좋아졌고, 모두 무공을 아는 젊은이들이라 은근히 호승심을 드러내며 자기 자랑하기 바빴다.
“확실히 곤륜 도사의 공격은 매섭더군. 사량발천근으로 그 힘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오룡의 명예는 없었을지도 몰랐을 거네.”
팽씨세가 팽효명의 말에 남궁세가의 남궁정수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때 보고 있었네. 그리고 깜짝 놀랐지. 그리 적절한 사량발천근이라니. 그리고 나도 무인인지라 자네의 공격을 어찌 받을지 고민했지. 내 제왕검으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무리를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거든.”
“나는 아직도 이유제강과 유능제강의 차이를 잘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분발해야겠구먼. 자네들과 같은 친구들을 사귀려면 말이네.”
속가이면서도 그 뛰어난 재질 때문에 무당파의 본산 기명제자가 된 이찬우가 겸양을 떨자 팽효명이 말했다.
“수많은 무당의 후지기수들 중 무당검의 후발선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네가 할 말은 아닌 듯하군.”
모두가 떠들고 있는 사이 강진과 구진호는 사람들의 말만 들을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유는 달랐다.
구진호는 관찰을 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 거였고, 강진은 알지 못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유능제강? 도덕경의 말이 왜 여기서 나오지? 이유제강? 후발선제?’
강진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림에 대해 잘 모르는 강진도 소림사와 무당파는 알고 있었다. 신선과 신승이 살고 있는 곳이고, 고수 아닌 자들이 없다는 곳.
그런 곳에서 열린 무림대회에서 수위에 오른 인물들이니 이들도 고수라는 말.
강진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은 맑았으며,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노련한 어떤 기운이 풍기는 듯했다. 또한 거침없이 자기 자랑을 하면서도 예의가 있어 나 혼자 잘났다고 나서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
‘이게 무림 명문가의 사람들이란 말이지?’
강진은 왠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그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똑똑하다고 위로했지만, 구진호라는 자도 회시에 급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했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좌정관천坐井觀天)**이었군.’
[*정저지와井底之蛙 : 우물 안 개구리.**좌정관천坐井觀天 : 식견이 좁음.]
부족한 것 없이 자랐으며 공부도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고 또한 사부가 말한 것처럼 천재라고 생각했던 강진에게, 이 자리는 굴욕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모든 걸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진은 잘 몰랐다.
여태 이걸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대부분 해낸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공부도 무공도 남들에게 뒤지는 건 싫었다. 이렇게 알아듣지도 못해 굴욕을 느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호승심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부족할 강진에게 그건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다.
‘과거에도 급제하고 무공도 고수, 천하제일의 고수가 될 거야.’
강진은 속으로 이를 갈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