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6)
관존 이강진 (46)
두 번째 무림인
“사부!”
“내 새끼 왔구나.”
“아따! 난 사부 새끼가 아니라니까요.”
“새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좋으면 장땡이지.”
“다른 사람들은 출사했다고 작은나리라고 부르는데 사부님은 새끼라고 부르시네요.”
“아, 또 그렇게 되나? 하긴 이제 전시에 급제를 했으니 어엿한 관리이시니……. 이 사부도 작은나리라고 불러 주랴?”
“됐어요. 이거나 받으세요.”
곽노가 전낭을 받아 확인하니 은자도 아닌 금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
“정 총관이 주더라고요. 아버님이 이제 돈 쓸 곳도 많아진다고, 용돈을 받는 게 아니라 정 총관에게 알아서 갖다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날리라나? 그래서 그냥 정 총관에게 돈 달라고 했더니 그 정도로 챙겨 주더라고요.”
곽노가 액수를 확인하니 근 열 냥은 되어 보였다.
금 열 냥이면 은으로는 이백 냥이고, 이백 냥이면 평범한 가족들이라면 십 년은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큰 액수.
“야! 됐다. 네 부친 말씀대로 앞으로 돈 쓸 곳이 많아질 테니 가지고 다녀라.”
“웬일이시래요, 돈을 다 마다하시고?”
“가늘고 길게 살련다. 또 네 부친이 땅을 더 줬다. 소작료를 적게 받아도 내 술값은 나오더라.”
“싸구려 화주 그만 드시라고 했죠?”
곽노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요새는 한 근에 은 열 푼짜리만 마신다. 이 정도면 나도 출세한 거 아니냐?”
“그냥 받아 두세요. 쓸 곳도 없어요.”
“왜 쓸 곳이 없어? 너도 이제 밑에 사람들이 생기는데, 그 사람들 경조사 챙기고 때때로 술 한잔이라도 사 먹이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전낭을 도로 건네받은 강진은 이내 금 두 냥을 꺼내 곽노의 품에 넣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쪼잔하게 굴지 마시고 이걸로 아는 분들 모아 크게 노세요. 기녀들도 불러서. 그러고 보니 사부는 장가갈 생각 없으세요?”
“갑자기 웬 장가 타령이냐?”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사부 총각이잖아요? 늙은 총각.”
“이놈이! 이 사부를 뭐로 보고. 내 이래 보여도 아침마다 불끈하는 게……. 내가 뭔 말을 하는 거냐. 이놈아, 사부 놀리지 말고 너나 잘해라. 장가간다면서?”
강진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그리하라 하시네요.”
“너는 생각이 전혀 없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정식 발령 받으면 바빠질 테고 무공도 익혀야 하는데. 그나저나 저 없는 동안 잘 배워 두셨죠?”
“흠흠, 그게, 뼈마디가 굵어져서 별 효과가 없다더구나.”
“그래도 이론적으로 배운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진도가 나가야 배우든 말든 하지. 그래도 들은 건 있으니까 어찌 될 거다.”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부가 그리 설렁설렁 배우시니 엉터리 무공이라는 소리 듣죠.”
“그래도 잘만 가르치는데 뭐가 문제냐? 너는 가르쳐 준 거 다 하잖아.”
“에휴, 나니까 하는 거예요, 나니까.”
“나니까 너를 이 정도로 가르쳐 주는 거지. 흰소리하지 말고 혼인을 할 거면 잘 보고 선택해라. 칠덕네한테 무조건 예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면서?”
“그럼 여자가 예뻐야 여자죠. 사부 같으면 못생긴 여자한테 장가가고 싶으시겠어요?”
곽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래서 내가 필요한 거다. 이놈아, 옛말에도 미인 소박은 있어도 음식 잘하는 여자 소박은 없다고 했다. 예쁜 거? 그거 잠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똑같아지는 거야. 음식 잘하고 마음 착한 여자를 골라야지.”
“사부도 총각이면서 말은 잘하시네요. 말 나온 김에 칠덕네한테 물어볼까요?”
곽노도 영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듯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흠흠, 어디 참한 과부라도 있으면 사귀어 봄도 나쁘진 않겠지?”
“사부가 나이가 많긴 하지만 엄연히 총각인데 처녀장가 가야죠. 이제 제법 재산도 있고 나 같은 제자도 있는데, 처녀장가 못 가라는 법도 없죠.”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그런 천벌 받은 짓은 안 하련다.”
“알았어요. 칠덕네한테 이야기해 볼게요. 자, 이제 배운 거 풀어 보세요.”
“무공 잘 배우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겠더라. 뭔 놈의 외워야 할 게 그리 많은지. 기본적인 혈도만 백여 개를 외워야 하고 자잘하게 들어가면 삼백 개도 넘는다. 또 뭔 무리는 그리 많은지.”
“고민은 제가 할 테니 일단 알려나 주세요.”
곽노는 얕은 지식을 말하기 시작했고, 강진은 그의 말을 잘 들으며 단어의 뜻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쉽지는 않겠네.’
정말 쉽지 않은 고수의 길이었다.
* * *
“으암!”
백의의 노인은 크게 하품을 하며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 내었다.
“도대체 어디에 꼭꼭 숨었길래 이리 안 나오는 거냐?”
“사부님, 저도 있는데 꼭 제자를 구해야 하는 겁니까?”
옆에서 심통 난 표정으로 청년 하나가 묻는 말에 노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디서 사부라고 그래! 네가 내 제자냐? 제자야? 싫다고 했는데도 죽자고 쫓아다니는 게 불쌍해 거둬 줬더니. 그딴 말 할 거면 가라. 안 잡는다.”
“사부님, 그래도 쫓아다닌 세월이 얼만데 그리 섭섭하게 말씀하십니까?”
“나는 네 사부 아니래도. 그리고 너는 너무 둔해서 내 심오한 무학을 전수받을 수 없어. 천단공 입문도 아직 못한 주제에, 제자가 왜 필요하냐고?”
“그거야 사부님이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시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던지시니까 그런 거죠.”
“툭툭 던졌어도 입문공은 다 가르쳐 줬다. 그런데도 못하는 건 네 자질이 부족한 거야. 일찌감치 무공의 뜻은 접고 딴 길 찾는 게 네 녀석에게는 훨씬 좋을 게다.”
“반드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 양손에 미녀를 안고 잘 먹고 잘 살 겁니다.”
“돈 벌어서 그리 살아. 무공은 도저히 안 되니까.”
노인과 청년이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 걸을 때였다.
“으응?”
노인이 갑자기 길을 벗어나 산속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부, 어딜 가요?”
노인이 날아가듯이 올라가는 데 반해 청년은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하며 가까스로 뒤를 쫓았다.
타타타타타.
“야후!”
앳된 청년 하나가 환호성과 함께 허공을 걷고 있었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벌써 허공답보를?”
노인은 깜짝 놀라며 청년을 보았다. 그리고 의아해했다.
‘도대체 어느 문파의 청년이지? 한번도 보지 못한 움직임 아닌가?’
허공답보를 펼칠 정도의 고수라면 분명 명문의 제자일 텐데 청년의 움직임은 처음 보다 못해 생소할 정도였다. 세상 모든 문파의 초식을 알고 있는 건 아니나, 대충 보면 어느 파의 무공이라는 것쯤은 아는 자신이 말이다.
‘저건 초식이라기보다는 그냥 다리를 마구 움직이는 것 같은데……. 아니, 그 전에, 광동에 저만한 고수를 길러 낼 만한 방파가 있었던가?’
그리고 깨달았다. 저건 허공답보가 아니라 허공에서 하는 달리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청년이 고개를 돌려 노인을 보았다.
“노인장, 뭘 그리 뚫어지게 보십니까?”
“노인장?”
노인장. 익히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자신을 그리 부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아! 나 말인가?”
“그럼 여기 노인장 빼고 누가 있나요?”
“허허, 그러고 보니 내가 실례를 했군. 지나가다 소협이 워낙 호쾌하게 달리기에 본 것뿐이라네. 그런데 소형제는 어느 문파의 사람이신가?”
“문파? 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사부가 가르쳐 준 거예요.”
청년의 대답에 노인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형제를 벌써 그 경지에 이르게 하다니, 놀라운 분이시로군.”
“놀랍긴요. 제가 알아서 잘 큰 거지.”
“하하하. 광오한 소형제로세. 그래, 소형제 사부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가?”
“곽, 노 자 쓰시는 분인데요.”
“곽씨 성에 노 자 이름을 쓰시는 분이라…….”
노인은 잠시 생각했지만 곽노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셔도 소용없어요. 퇴역 군인일 뿐 유명하신 분은 아니니까요.”
청년, 강진의 말에 노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림인이 아니시라고?”
“네. 퇴역 군인이시죠.”
“아! 그렇다면 설명이 되는군.”
무림인들은 무시하기 일쑤지만 노인은 알고 있었다, 군부에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뭐가요?”
“으응?”
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강진을 보았다.
“뭐가 설명이 되냐고요.”
“무림인도 아닌데 소형제의 공부가 그만큼 이루어진 게 이해가 된다는 소리였네.”
“아! 뭐, 배우면 다 하는 공부인데요, 뭘.”
한때는 뭔가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개봉에서 오룡삼봉을 만난 후 자신의 경지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강진이었다.
“허허, 겸손도 지나치면 자만처럼 보이는 법이라네. 소형제의 공부 수준이 모두가 다 하는 수준이라면 고수 아닌 사람이 없겠구먼.”
자신이 고수라는 소리에 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칭찬해 주시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네요.”
“허허, 소형제의 공부가 그리 훌륭한데 아무도 그걸 몰라봤구먼. 사부도 아무 말씀이 없었고?”
“맨날 멍청하다고 하시는데요. 당신이 잘 가르쳐서 이 정도 하는 거래요. 말도 안 되지만 사실이기도 하니. 그런데 노인장도 혹시 무림인입니까?”
자신을 무림인이냐 묻는 강진을 보며 노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괴마(怪魔) 소양풍.
칠마의 하나로, 사귀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사람들뿐이라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 가진 무공만큼은 오존에 버금간다고 소문난 고수.
남들의 평가에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소양풍이었지만 남들이 알아서 기어 주는 건 또 사양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무림인이냐고 하는 질문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하하, 그렇지. 노부도 무림인이지. 왜, 관심 있나?”
소양풍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갔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혹시 고수십니까?”
“고수라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고수라고 부르기는 한다네.”
“하하, 노인장도 허풍을 꽤 잘 치시는군요. 하긴 노인장 정도 나이 되는 분들은 대부분 그렇더라고요. 우리 사부가 그러는 것처럼.”
“허풍? 그런 건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노부는 강한 사람이라 그런 거 안 친다네.”
강진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번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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