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7)
관존 이강진 (47)
“보여 주는 건 어려운 게 아니네만, 내가 고수라는 걸 증명하면 내게 좋은 게 뭐가 있나?”
“하! 조건이 있다는 거군요. 뭘 원하세요? 유람 중이신 것 같은데, 제가 노잣돈이라도 보태 드릴까요?”
소양풍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돈은 나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네. 이건 어떤가? 내가 고수라는 걸 증명하면 소형제를 잠시 만져 봐도 되겠나?”
강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남색 하십니까? 저는 그런 거 질색하는데요.”
“무슨 그런 소리를! 노부도 건장한 사내이고 여자를 좋아한다네.”
“그런데 왜요?”
“나에게는 내 무공을 전수받을 제자가 필요한데 무척 까다로운 공부인지라 무골이 아니면 익히기가 힘들어. 그래서 소형제의 근골을 좀 보려고 하네.”
“전 이미 사부가 있는데.”
“자네 사부도 나를 안다면 기꺼이 양보할 거라고 장담하지.”
강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죠. 그럼 보여 주세요.”
소양풍은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천천히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나무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퍼어어엉!
순간 굉음이 들리며 나무가 두 동강이 났다.
“어떤가, 이 정도면 노부가 고수라는 걸 믿겠나?”
의기양양하게 강진을 돌아보는 순간, 소양풍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선망의 눈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았던 강진이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장 말대로 그 정도가 고수라면 고수 아닌 사람이 없겠네요.”
강진이 말을 하고는 운기를 하며 두 손을 모으고는 뻗었다.
퍼어어엉!
그리고 소양풍보다 약간 작은 나무를 두 동강 냈다.
이미 장풍에 대한 수련을 끝낸 강진이었다.
부지런히 삼재심법을 수련하여 이미 다시 달걀만 한 진기도 되찾았다. 이번에는 정상적인 수련법으로 배웠으니 주화입마도 걱정하지 않았다.
강진의 시범에 소양풍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순수하게 장력의 힘만으로 나무를 두 동강 낼 정도면 거의 완성된 무인. 이제 약관도 안 돼 보이는데…….’
소양풍은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소형제도 할 수 있구먼. 그럼 다른 걸 보여 주지.”
소양풍은 오랜만에 자신의 애검 낙양(落陽)을 손에 쥐고는 몸을 움직였다.
순간 그의 몸에서 광풍이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주변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낙양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낙하!”
소양풍이 몸을 허공에 띄우고 검을 내려치니 나뭇잎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탁.
그리고 소양풍이 내려앉은 자리 위로는 수북이 낙엽이 쌓였다.
이번에야말로 존경 어린 눈빛을 하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소양풍의 미간이 또 한 번 찡그려졌다.
이번에도 강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노인장, 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것 같지만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진은 말하기가 무섭게 몽둥이를 잡고는 허공에 몸을 띄웠다.
부우우우우우웅!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소양풍이 쌓아 둔 낙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휙! 휘이익! 휙!
몽둥이를 휘두를 때마다 낙엽이 그가 휘두른 방향으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소양풍보다 볼품은 없었지만 분명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강진은 소양풍을 보며 말했다.
“아직 연습을 안 하고 이런 몽둥이를 들어서 그렇지, 연습 좀 하고 제 칼을 사용한다면 노인장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소양풍은 강진이 자신을 갖고 노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수를 찾았지만 이미 스스로 충분히 고수라 할 만한 경지가 아닌가?
소양풍은 순간 몸을 날려 강진의 손목의 맥을 잡으려 했다.
강진이 놀라 급히 손목을 꺾어 피하고는 어깨를 소양풍의 몸에 대고는 발경을 시도했다.
푸욱!
마치 솜 덩어리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순간 강진은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뒤집어졌다.
파파파파파박!
소양풍의 손이 순간적으로 강진의 주요 혈맥들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흥!”
그리고 강진이 다시 제자리에 서는 순간, 소양풍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소형제는 장난이 심하구먼. 노부는 한평생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거늘 이 노부의 분노를 사서 뭐하려고 그러시는가?”
강진은 강진대로 화가 나 말했다.
“노인장, 뭐 하신 겁니까? 저보다 조금 센 건 알겠는데, 이리 손을 쓰다니.”
“소형제가 노부를 이리 능멸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제가 뭘 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고수라고 해서 보여 달라고 했고, 저도 할 수 있는 걸로 고수라고 하니 직접 시범을 보였는데요!”
“자네가 생각하는 고수가 뭔가?”
“그야 내공이 단전을 가득 감싸고, 사량발천근이나 후발선제 같은 걸 할 줄 알아야 고수죠!”
순간 소양풍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방금 살펴본 바에 의하면 강진의 내력은 무척 탄탄하여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그런데 단전을 감싸는 내공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단전의 크기는 넓힐 수 있으나 진기 그 자체가 단전의 크기를 능가할 수는 없다. 그런 무인이 있다면 고수가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 천하제일무인으로 이름을 날렸을 터였다.
거기다 무리의 기본인 사량발천근이며 오랜 수련을 해야 실행할 수 있는 후발선제를 함께 거론한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소양풍은 강진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소형제의 말은 내공이 단전을 감싸고, 사량발천근을 할 줄 알아야 고수라는 건가?”
“그렇죠.”
“그럼 혹시 사량발천근이 뭔지 모르나?”
“알기야 알죠. 넉 냥의 힘으로 천 근의 힘을 발휘하는 거잖아요.”
소양풍은 황당함과 동시에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맙소사! 이 녀석 뭐냐?’
허공답보를 시전하고 장력을 그 정도로 쓸 줄 아는 고수가 알고 보니 기본 중의 기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가르친 거지? 이 정도로 단련시켰다면 그 사부 역시 고수일 텐데.’
소양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런 거였구먼. 노부가 오해를 했구먼.”
“됐어요. 갈 길이나 가세요.”
이미 화가 단단히 난 강진이었다.
손쓸 틈도 없이 몸이 뒤집어지나 싶더니 몸을 마구 더듬기기까지 했다. 자신이 강했다면 노인이고 뭐고 제대로 한 방 쳤을 거였다.
‘힘이 없는 게 죄야, 죄. 더러워서 빨리 고수가 된다.’
강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소양풍이 그 앞을 막으며 말했다.
“소형제, 화를 푸시게. 노부가 오해를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신 노부가 사량발천근을 가르쳐 주지. 후발선제도 가르쳐 줄 수 있어.”
강진은 소양풍을 흘겨보며 말했다.
“노인장도 고수가 아닌 것 같은데 뭔 수로요?”
“시험해 보면 되지 않나? 전력을 다해 나를 공격해 보게. 난 사량발천근의 무리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한 손으로만 막아 보이지.”
강진은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눈을 빛냈다.
“그 말 진심이십니까? 움직이지 않고 한 손으로만 막겠다는 말이?”
“말하지 않았나? 강한 자는 허풍을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네.”
“한 대 맞고 원망하지 마십쇼. 죽어도 할 말 없는 겁니다.”
소양풍은 빙그레 웃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네.”
“좋습니다.”
강진은 몸을 풀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다 은근슬쩍 물었다.
“꼭 주먹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죠? 고수라면 제가 몽둥이를 써도 똑같지 않나요?”
강진의 속마음을 짐작한 듯 소양풍은 다시 한 번 웃어 보이며 한 손을 내민 채로 까딱거렸다.
“그럼 갑니다!”
강진은 운기하며 목검에 바리바리 힘을 주었다.
죽일 수는 없지만 어디 한 군데 부러트려 아까의 모욕을 갚아 줄 생각이었다.
“이야앗!”
강진은 그대로 소양풍의 어깨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쳤다.
부우우우우웅!
소양풍은 거대한 파공음을 내며 떨어지는 몽둥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탁!
몽둥이에 닿는 순간 그의 손바닥이 직각으로 기울이지며 몽둥이를 감싸는가 싶더니, 손목을 빙글 돌려 몽둥이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몽둥이를 보며 강진은 급히 힘을 풀었지만, 이미 몽둥이는 그의 왼쪽 팔을 때리고 말았다.
“아아악!”
강진은 비명을 내며 몽둥이를 떨어트리고는 팔을 마구 문질러 댔다.
그 모습에 소양풍은 자신의 짐작이 완전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뭘까? 어떤 고인이 무식하게 내력과 신체만 단련시킨 걸까?’
그때 강진의 고개가 들리자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가? 방금 사량발천근을 써서 천 근의 힘을 발휘했지. 알겠나?”
소양풍은 강진이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정말 고수셨군요. 방금 어떻게 한 거지요?”
소양풍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잘하면 강진을 제자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던 소양풍의 기대는 한 시진도 채 안 되어서 무너졌다.
“못 가르친다고? 내가?”
소양풍이 당황함을 감추지 않으며 묻는 말에, 강진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마디로 넉 냥의 힘으로 상대의 힘을 받아 역이용해서 천 근의 힘을 발휘하는 게 사량발천근이잖아요.”
“그렇지.”
“진작 그렇게 가르쳐 줬으면 좋았잖아요. 상대의 진기를 받아 어디 어디의 힘을 이용해 돌려주라는 사족은 왜 붙이세요? 덕분에 헷갈려서 한참 헤맨 거잖아요.”
“사족이라고? 덕분에 헷갈렸다고?”
“제 말이 틀렸나요? 그리 쉬운 걸 왜 그리 어렵게 가르쳐 주세요? 우리 사부님이 이걸 알았다면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간단하게 가르쳐 줬을 텐데.”
사량발천근도 이화접목도, 가르쳐 주는 것마다 족족 어렵게 가르쳐 준다며 구시렁대는 강진이었다.
그것만이었다면 그래도 드디어 제자를 찾은 기쁨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끝마다 꼭 우리 사부가 알았다면, 하면서 비교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우월한 것도 아니라 열등하다는 걸 표정에 팍팍 티 내면서 말이다.
‘이거 더러워서!’
성질 같았다면 진작 때려치웠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강진의 자질이 너무 아까웠다.
소양풍의 사문의 무공인 천단공과 낙양검은 익히기가 무척 힘든 무공이었다.
소양풍은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따라 배우고 있는 번자기를 보았다.
말은 당장 떠나라고 했지만 오 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래도 정이 든 번자기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오 년이나 따라다녔음에도 천단공 입문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또 자신의 사부가 삼십 년 걸려 자신을 찾았듯이, 자신도 무공을 완성한 후부터 바로 제자를 찾아다닌 지 삼십 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찌 만난 기재인데 포기하겠는가?
‘사문을 위해서야, 사문을 위해서. 그래야 나중에 사부를 볼 낯이 있는 거지. 제자를 찾지 못해 절맥되었습니다, 하면 저승에서도 날 죽이려 드실걸.’
소양풍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후우, 그리 잘 가르치시는 소형제의 사부를 노부가 만나 볼 수 있을까?”
“그러시는 게 좋겠네요. 우리 사부가 잘 가르치시니, 잘 가르치는 방법을 한번 여쭤 보시는 게 좋겠어요.”
소양풍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