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49)
관존 이강진 (49)
배움
“오랜만이구나.”
이제원의 말에 복면인은 그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주인어르신을 뵙습니다.”
“주인이라는 말은 빼야지. 그날 내 너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더냐?”
이제원의 말에 복면인은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더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뭘 말이냐?”
복면인은 그와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소양풍이 근처에 있습니다.”
“소양풍이라면…….”
이제원의 눈빛이 순간 번뜩이는 듯했다.
“괴마를 말하는 것이냐?”
“네. 그가 맞습니다.”
“그가 이곳에는 왜?”
“괴마의 행적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제자를 찾아 떠돈다고 했던가……. 그럼?”
“네, 도련님에게 접근했습니다.”
이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안될 말!”
“제 생각은 장주님과 다르지만, 상대가 괴마이기에 어르신께 말씀드리려 왔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성격이니…….”
“그래서 보고드리는 겁니다.”
이제원은 복면인을 향해 탐탁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강진이 무공을 배우고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나와 생각이 달라서였더냐?”
“네.”
“지금은 상대가 괴마이기에 온 것이고?”
“네. 그는 도련님에게는 좋지 않은 상대이니까요. 그리고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도 하고요.”
이제원은 잠자코 복면인을 보다가 말했다.
“알았다. 잘 알려 주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괴마가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터, 스스로 떠나게 만들어야겠지.”
“그의 사문의 사람들은 극소수라, 그를 흔들 만한 요소가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극소수가 더 중요한 법이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거라.”
“그럼.”
복면인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려는 순간 이제원이 그를 불렀다.
“향아!”
복면인이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자 이제원이 물었다.
“어떻더냐, 네가 본 강진이는?”
“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요새도 말이냐?”
“새로운 흥밋거리가 있으니까요. 그 재미가 사라진다면 돌아오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곽 노인도 못 막을까?”
“막기야 하겠지만, 곽 노인은 늙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겁니다.”
이제원이 침묵을 지키자 복면인이 다시 말했다.
“주제넘은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무공을 배우는 것을 막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도의 길은 끝이 없으니, 도련님이 계속 거기에 집중하는 한 우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원은 고개를 저었다.
“무도의 끝은 없으나 한계는 있지. 보고도 모르겠느냐? 제대로 가르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게 될 것이다. 십 년만 지나면 그를 막을 사람은 손에 꼽을 터인데, 그때는 누가 막겠느냐? 자신 있느냐?”
복면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무공을 배우는 순간부터 삶이 바뀌게 된다. 그게 무인의 숙명이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말하마. 무공은 안 된다!”
복면인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사라지자 이제원은 다시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괴마를 쫓아내야 했다.
* * *
“시어사?”
곽재형으로부터 서문우람의 소문을 들은 강진이 반색을 했다.
시어사는 조정 문무백관들을 감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책임진 막중한 권력을 지닌 관직이었다.
“정식은 아니겠지만 전국을 돌며 암행은 하겠지. 그리고 거기에서 성과가 있으면 정식 시어사가 돼서 황궁에서 일하게 될 거다.”
“역시 장원급제가 좋긴 하구나. 단숨에 그런 요직을 꿰차는 것을 보면 말이다.”
“몇 년 고생하는 걸 제외하면 그렇겠지.”
“그게 뭔 고생이야? 나랏돈으로 전국을 유람하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을 텐데.”
황명을 받들고 관리를 감찰하는 자리다.
성을 책임지고 있는 지주는 물론이고 현의 현령도 시어사가 한번 뜨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뇌물을 바리바리 안겨 주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지사.
강진의 말에 곽재형이 웃으며 말했다.
“우람이 성격을 모르냐? 원리원칙대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도 않으면서 말 그대로 암행을 할걸.”
“쯧쯧, 그 좋은 자리를. 대부분 전국을 한번 돌면 갑부 부럽지 않은 재물을 모으는 자리인데.”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 너도 아직 발령장을 못 받았지?”
“이제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뻔하지 않겠냐? 일단 현령 밑에서 일하게 되겠지.”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늦게 떨어지면 좋겠네. 할 일도 많은데.”
“이제 수업도 나가지 않는데 뭔 할 일이 그리 많아?”
“관직에는 그리 미련 없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
“하긴 너는 사업을 물려받아야 할 테니 그럴 수도. 나는 가문에서 중앙으로 올리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다.”
“너는 잘할 거야.”
강진은 그렇게 곽재형과 한담을 나누고는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녀석들에게도 소식을 알려 줘야겠군.’
강진은 곧바로 서문우람네 집으로 향했다.
“히야! 어떻게 벌써 알았구먼.”
강진이 서문우람의 집에 도착하니 인부들이 서문우람네 집을 보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관병이 몇 보이는 걸 보니 분명 신의현 현령이 보낸 사람일 터였다.
“오라버니!”
서문정화가 강진을 발견하고는 소리치며 달려왔다.
“잘 있었냐?”
“오라버니, 이 사람들 좀 말려 주세요.”
“뭘 말이냐?”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 집을 막 부수잖아요.”
“부수는 게 아니라 수리해 주려고 하는 거다. 지금 보니 새로 짓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만.”
“그러니까요. 오라버니도 안 계신데 갑자기 이러면…….”
서문정화의 걱정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오라비가 떡하니 장원급제해서 생긴 일이니. 공짜야, 공짜.”
“그러니까 더 큰일이죠. 오라버니가 절대 남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너희에게 그런 말을 했어?”
“전해 주신 편지에 그리 적혀 있었어요. 앞으로 녹봉이 들어올 테니 필요한 건 오라버니가 스스로 해 주시겠다고, 절대 외부의 도움은 받지 말라고요.”
“독한 놈.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구먼.”
서문정화는 강진의 옷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빨리 말려 주세요. 오라버니도 우리 오라버니 성격 아시잖아요. 이걸 보면 우리 모두 크게 혼날 거예요.”
“걱정하지 마라. 네 오라비가 돌아오면 내가 급제 선물이라고 집을 한 채 지어 줬다고 해.”
“하지만…….”
“다 나한테 넘겨. 내 성격을 알 테니 아무 말 못 할 거다.”
“저번에 오라버니가 주신 용돈도 조마조마한걸요.”
“걱정하지 말래도. 녀석이 꽉 막혔으니 너희가 더 고생이야. 미아 봐라. 먹지 못해 비쩍 말라서 그게 뭐냐? 다 나한테 돌려.”
그래도 서문정화가 안절부절못하자 강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많을 거야. 너희가 죄다 어리다 보니 이때다 하고 빚을 지워 두려 들겠지. 훈이랑 미아는 어디 있냐?”
“아주머니 댁에요.”
“우리 집으로 옮기자.”
“하지만 오라버니가…….”
“네 오라비 당분간 못 돌아온다. 어쩌면 몇 년 동안 못 돌아올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라님의 명령이다. 놈은 융통성이 없으니 지금 어쩔 줄 모를걸. 내가 연락할 터이니 훈이랑 미아를 데리고 와. 나랑 같이 가자.”
서문정화는 잠시 망설이다 강진의 재촉하는 눈빛을 보자 이내 서문훈과 서문미를 데리러 달려갔다.
“오빠!”
여전히 비쩍 마르고 작은 서문미가 강진에게 달려들었고, 강진은 웃음과 함께 세 남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이쿠! 너희 왔구나.”
곽노가 불편한 기색으로 강진을 기다리고 있다가 서문 남매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세 남매가 동시에 인사를 올리고, 강진은 하인을 불러 서문 남매가 머물 곳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서문 남매가 새로운 거처에 간 후, 곽노가 말했다.
“저기 갔다 오느라 늦었구나. 애들은 여기서 지내게 하려고?”
“우람이 녀석이 당분간 집에 못 돌아오니 제가 돌봐야지요.”
“그래, 잘했다.”
“그런데 사부는 왜 기다리고…….”
강진은 말을 하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또 그 영감이 사부한테 뭐라고 했어요? 뭐가 그리 급하대요? 시간은 많고 많은데.”
“글쎄 말이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오후부터 안달이 나서 나만 달달 볶는 바람에 힘들었다.”
“뭐 대단한 것 가르친다고.”
그때 소양풍이 번자기를 데리고 나타나더니 말했다.
“당연히 대단하지. 네 녀석도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배운 심법보다 열 배는 빨리 내공이 모이는 것 같다고.”
소양풍은 강진이 자신의 무공을 대단치도 않은 걸로 치부해 버리자 화가 난 듯했다.
“고수시라면서요. 그 정도는 당연한 거죠.”
“사제, 그 당연한 게 대단한 거야.”
옆에서 번자기가 끼어들었다.
“고수가 되어야 영감님 제자가 될 거라고 했으니 아직 번 형의 사제는 아니지.”
싸가지가 이미 하늘로 날아간 강진의 말에, 번자기는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그냥 미소만 지었다.
소양풍이 곽노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곽노가 그걸 바탕으로 나름 쉽게, 정확히는 무식하게 강진에게 전수하는 과정에서 번자기도 배우고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새는 천단공 입문공까지 진전이 있었기에 번자기는 강진이 뭐라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는 지금 고수라니까!”
그 대답에 화가 난 건 소양풍이었다.
“단숨에 천단공 삼 단까지 익히고 칠 단공까지는 시간의 문제지 쭉 나아갈 거다. 그게 고수가 아니라면 뭐가 고수냐? 거기에 네가 궁금해했던, 후발선제니 이화접목 같은 건 내가 다 가르쳐 줬는데 아직도 내 제자가 아니냐?”
아닌 게 아니라 삼일사별괄목상대의 주인공은 바로 강진이었다.
단 열흘 만에 강진의 무공 수준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상승한 상태.
내공은 일음지가 강제로 축소시키기 전으로 회복되었고, 발경도 쓰지 않겠다고 의도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 날아 걷기, 자객 걸음, 무명도법 모두 예전과는 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공과는 별개로 기본 무리를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
소양풍은 이게 다 자신이 가르친 것임에도 강진이 아직 자신을 사부로 인정치 않는 것에 열불이 났다.
“어디 영감님이 가르쳐 줬나요? 우리 사부님이 가르쳐 줬지.”
소양풍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곽노가 급히 말했다.
“강진아, 그게 다 이 소 형이 가르쳐 준 거지. 나야 말을 옮겼을 뿐이고.”
“그게 가르쳐 준 거죠.”
“그리 말하면 소 형이 섭섭하지. 어찌 됐든 요새 네 성취가 모두 소 형이 있기에 가능했던 건데.”
곽노의 설득에 그제야 강진이 소양풍을 보며 말했다.
“영감님, 저도 은혜를 모르는 놈은 아니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고수가 되면 이 강진의 스승으로 깍듯이 모실 테니까요.”
앓느니 죽는다고, 소양풍이 더 이상 말도 못 하고 화를 식히러 사라지자 강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성질머리 하고는.”
* * *
기다리던 발령장이 학당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강진은 곧바로 학당으로 갔다.
“왔구나.”
먼저 와 있던 곽재형이 강진을 맞이했다.
“임명장 도착했다면서?”
강진의 물음에 곽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이미 확인했다.”
“어디로 떨어졌냐?”
곽재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개봉으로 올라가게 됐다. 아무래도 가문에서 힘을 써 준 게 먹힌 모양이야.”
“중앙에서 일하는 게 그리 좋으냐?”
“입신양명을 꿈꾼다면 아무래도 지방보단 중앙이 더 빠르니까.”
“지금 올라가면 아무리 집에서 힘을 쓴다고 해도 용 꼬리에서도 털밖에 되지 않는데, 그게 좋냐?”
“뱀은 아무리 해도 뱀이지. 용을 노리련다.”
강진은 곽재형의 어깨를 쳐 주며 말했다.
“잘해 봐. 나야 친구가 높은 곳에 있으면 좋지.”
곽재형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내가 네 친구 맞냐?”
“…….”
강진은 대답도 못 하고 순간 흠칫했다. 그리고 곽재형이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는 순간, 곽재형이 말을 이었다.
“숨긴다고 숨기지만 너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난 네게 있어서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잖아. 안 그러냐?”
한참 후 강진이 반문했다.
“알고 있었냐?”
“몇 년을 한방에서 공부했는데 그걸 눈치 못 챘을까? 우람이와 나는 너에게 별개의 존재라는 걸.”
“기분 나빴냐?”
“별로.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네게 있어서 그냥 보는 사람과는 달리 특별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강진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렇게 읽히기 쉬운 사람인 게 충격이었는지 아니면 곽재형이 사람을 잘 읽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이 충격이었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분명 강진은 그에게 자신을 읽힌 것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곽재형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내게 있어 너도 그냥 아는 사람 수준이었다. 하지만 너도 급제를 했고 이가장의 후계자이니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한방에 몇 년이나 같이 있다 보니 정이라는 것도 생겼고. 너는 안 그러냐?”
“그래, 그런 게 있겠지. 그런데 내가 그리 티가 잘 나는 거냐, 네가 잘 보는 거냐?”
“글쎄. 많이 보니 알겠더라 하는 대답밖에는…….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앞으로는 분명 서생 시절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테니까.”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 너도 친구다. 우람이만큼은 아니지만 너에게도 배울 게 있으니.”
“그런 거에 확실하구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 못 한다.”
“알아. 친구라서 말하는 거다. 사실 친구라는 게 하나도 많은 것 같아서 하나만 두려고 했는데, 네가 오늘 나를 일깨워 줬으니까 특별히 너도 친구다.”
“하하하, 그래, 신의현 명안학당 출신의 세 명이서 잘해 보자. 저 높은 곳에서 만나자고.”
곽재형이 웃으며 사라진 후 강진은 생각에 잠겼다.
一. 나를 잘 안다.
二.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괴물 보듯이 한다.
三. 나는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四.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五. 그리하려면 나는 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六.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부의 전우처럼 그것이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七. 변방으로는 가기 싫으니…….
八, 나를 더 잘 숨겨야 한다. 읽히게 해서는 안 된다.
강진은 잊지 않으려는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