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5)
관존 이강진 (5)
꼬끼오~!
새벽닭이 우는 소리에 곽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 생각했다.
오십 가까이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방에서 비단 금침을 덮고 자 본 적이 없던 그다. 그래서 첫날은 너무나 편안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벌써 한 달이나 이 집에 머물렀지만 이런 편안함에는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돈이 많은 집안이라 나 하나 머물러도 티가 나지 않나 보구먼.’
생각은 그리하지만 사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 곽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강진의 부친 이제원이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매 끼니 고기반찬이 오르지 않은 적이 없고, 항상 시비가 전담으로 붙어 있어 불편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오래 자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오랜 습관은 새벽이 되자마자 그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곽노는 방문을 열고 나가 가슴을 열며 크게 심호흡했다.
이곳의 공기와 전장의 공기는 확실히 그 맛이 달랐다.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군에 남아 있는 전우들과 이미 퇴역해 각 성으로 흩어진 전우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옛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곽 선생.”
곽노는 급히 뒤를 돌아보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장주님 오셨습니까?”
“이른 아침인데 왜 나와 계십니까?”
이제원의 물음에 곽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랜 습관은 바꿀 수가 없더군요. 또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별말씀을. 아직 한창이신데 말입니다.”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젊을 때 몸을 막 굴렸더니 나이 들어 쑤시지 않는 곳이 없군요.”
“오늘 의원을 불러 드리지요.”
곽노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곽 선생을 대접하는 데에 모자람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곽 선생.”
“말씀하십시오, 장주.”
이제원은 강진이 자고 있는 건물을 보며 물었다.
“아들 녀석은 잘되고 있는 것입니까?”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단지 지쳐서 잠들게 하는 건 방법이 되지 못할 겁니다.”
곽노의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이 장원에 있으면서 이제원을 본 숫자는 다섯 번이 되지 않았다. 그건 강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자식 일이니 신경은 쓰고 있겠지. 강진이 녀석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들었다는 것은 하인들에게 보고를 들었을 테고.’
곽노는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가 신경을 써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해 곽 선생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군요.”
“폐라니요. 아닙니다. 인연이 닿아 제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원이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곽노도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이제원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벗어나자 곽노는 화원을 잠시 걸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려던 그의 움직임이 문득 멈췄다.
‘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럼 장주도 뭔가를 시도했다는 것인가?’
강진의 그 특별한 습관을 고치겠다고 때리거나 무조건 착한 일을 하라고 시켜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런 건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어떤 시도를 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좀 이상했다.
이제원과 강진의 사이는 부자지간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어색했다. 강진에게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물어봐야겠어.’
곽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아침잠은 보약이라 하는데, 밥 먹기 전까지 또 잠시 눈을 붙여 볼까?’
나날이 게을러지는 곽노였다.
* * *
명안학당(明眼學堂).
광동성 신의현에서는 가장 큰 학당이고 광동성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유명한 학당이었다.
규모가 큰 학당인 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사들의 숫자도 열이나 되었는데, 그중 학당을 만든 전인문은 황궁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있다가 낙향한 문사였다.
그는 아무 학생이나 가르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될 만한 떡잎부터 보살폈는데, 그래서 삼백여 명의 학생들 중 그가 가르치는 아이는 고작 셋이었다.
“또냐?”
여태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에게 눈살 한번 찌푸려 본 적이 없다는 그였지만, 작년부터는 종종 눈살을 찌푸리고 가끔씩 폭언까지 했다.
“도대체 안 하는 이유가 뭐냐? 우둔하다면 내 친히 너를 데리고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다.”
전인문이 꾸짖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강진이었다.
“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네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말 내가 너를 돈 때문에 받은 것이라 오해하지 않겠느냐?”
전인문은 어지간히 분한 듯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광동성에서 명성 높은 그가 갖은 추측과 오해를 사면서까지 강진을 제자로 삼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강진은 가르칠 만한, 아니 가르치고 싶은 제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억만금을 제시했더라도 강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강진의 학문 습득력과 태도를 보면, 그 유언비어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판이었다.
전인문에게 있어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가르치려 했지만 강진의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거기다 태도 역시 뺀질뺀질, 어떻게든 수업에 빠지려 할 뿐이니 전인문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말해 봐라, 도대체 뭐가 문제냐? 네가 우람이처럼 집안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머리가 모자란 것도 아니다. 그저 배움에만 힘쓰면 되는데 뭐가 아쉬워서 이러냔 말이다.”
전인문의 꾸짖음에 강진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자신의 의견을 말할수록 전인문은 더더욱 화를 냈다.
그렇게 일각에 가깝게 질풍 같은 잔소리를 듣고서야 간신히 풀려난 강진은 책상 앞에 앉아 인상을 찡그렸다.
눈앞에 책이 있지만 시선은 그리로 가 있지 않았다.
자신과 멀찌감치 떨어져 수군대고 있는 학우들을 슬쩍 쳐다본 강진은 생각했다.
‘지치지도 않는군. 아직도 나에 대해 할 말이 남아 있는 건가?’
강진이 학당에 나오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
심심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렇다고 책을 보는 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배워야 한다고 해서 배웠고, 또 배우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배우는 의미가 없었다.
모든 글자를 다 알고 있는데 더 배워서 무얼 할 건지 찾지 못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네, 아니 성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이라고 소문이 난 데다 언제나 자신은 타인에게 무뚝뚝하면서도 친절한 편으로 보였으니 주변에 사람도 많았다.
문제는 자신의 취미를 남들과 공유하려고 한 순간부터였다.
닭 한 마리를 잡아서 칼로 배를 가르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 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학우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학당이 끝나고 빙당호로니 찰떡이니 이런 걸 사 줄 때에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학우가 있었다.
하지만 개 한 마리를 죽인 이후부터는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멍청한 짓이었다.
처음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시점이 닭을 죽였을 때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절대 친구들 앞에서 개를 죽여 해부해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완전히 외톨이가 된 후로는 학문을 배우는 것도 시들해졌다.
애초에 여기 와서 글을 배운 이유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또 학사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마다 친구들이 보내는 존경의 눈빛을 즐겼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학당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엄명이 있기도 했고 여기마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볼 기회를 잃기 때문에 억지로 오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왜 싫어하는 거지? 재미있지 않나?’
그나마 요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사부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 장담을 했으니 나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겠지. 다른 것에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테고.’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때운 강진은 학당이 끝나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이 달리기는 안 하면 안 되나?’
몸을 실컷 움직이니 확실히 요새 들어 남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안 하게 되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바를 정 자 쓰는 것도 지겨웠다.
그 글자를 씀으로 인해 자신의 성격이 고쳐진다는 헛소리는 솔직히 믿지도 않았다. 다만 곽노가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기에 따를 뿐이었다.
‘그래도 지겨운 건 지겨운 거란 말이지.’
집에 도착하니 곽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밥 먹자.”
그리고 곽노의 첫말에 강진은 물었다.
“사부, 왜 항상 밥 먹자는 말이 첫말이에요?”
“중요한 거니까. 특히 너처럼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거고.”
“누가 보면 사부가 걸신들렸다고 할 거예요.”
“잘 먹는 거겠지. 일단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강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고기다, 고기.”
그날도 여지없이 상에는 고기반찬이 잔뜩 올랐다.
곽노가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하나씩 처리하는 걸 보며 강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사부, 그렇게 먹는데 왜 그렇게 살이 안 찌세요?”
“어릴 적에 하도 굶어서 그렇다.”
“군에서 밥 안 줘요?”
곽노는 오리 다리 하나를 뜯어 먹는 입놀림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밥? 주지. 쥐꼬리만큼. 그리고 원래 졸병이라는 건 항상 배가 고픈 법이라서.”
“사부, 알았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보기 흉해요.”
“버릇이다. 너나 많이 먹어라. 이제 한참 달리려면 뱃심이 든든해야 해.”
“그렇지 않아도 그래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곽노는 살코기를 깨끗하게 발라 먹은 뼈를 놓으며 물었다.
“뭘?”
“가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드세요.”
곽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곽노와 강진은 항상 오르는 산 공터로 올라갔다.
그리고 강진은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제 달리기는 안 할래요.”
“뭐라고?”
“안 한다고요.”
“갑자기 왜?”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힘들잖아요. 좋아진 건 하나도 없고.”
“그럼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는 게 그리 쉬울 줄 알았냐?”
“그거 안 하고 안 힘들래요.”
“뭐라고?”
곽노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하자 강진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너무 힘들어서요. 그냥 안 배우고 안 하면 되잖아요.”
“사내자식이 그리 끈기가 없어서 뭘 하겠냐?”
“괜찮아요. 사부도 아시다시피 우리 아버지는 부자고, 돌아가시면 제가 다 물려받을 테니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요.”
순간 곽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강진의 말에 반박할 대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