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52)
관존 이강진 (52)
“하아! 이게 하늘의 뜻인가?”
이제원의 긴 한숨에 정 총관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괴마를 조금만 더 빨리 빼냈더라도…….”
이제원은 그를 보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 자네 잘못은 아니니. 또, 괴마가 없었더라면 주화입마를 당했을지도 몰랐을 터.”
정 총관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이제원은 대답 대신 생각에 잠겼다.
쏟아 버린 물처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일음지로도 못 막은 것을 더한 방법으로 막다가는 강진의 신체가 상할 확률이 무척 높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을 터. 무림과는 은원을 맺지 않기를 바라야지.”
“명심하겠습니다. 다만 소주인에게 이제 사람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향아마저도 십 장 이상은 접근할 수 없는데…… 어찌할까요?”
“관에 사람을 심어 두게. 강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게 해. 사귀는 게 쉽지 않은 아이이니 다는 알 수 없겠지만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을 거야.”
이제원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하다 정 총관을 불렀다.
“군아.”
주모가 죽은 이후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이제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정 총관은 다시 고개를 바닥에 부딪쳤다.
“하명하소서.”
“고개 들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
“네 수고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 강진이의 일을 의논할 사람이 몇 없구나. 네가 신경을 좀 더 써 주길 바란다.”
“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주인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 겁니다.”
이제원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내놓지는 마. 그런 일이 닥치면 옛날처럼 그렇게 지내면 되는 게지.”
“주인…….”
“강진이도 나처럼 너와 같은 아우를 두는 행운을 얻었으면 좋겠다.”
“주인!”
정 총관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흘렸다.
* * *
인수인계에 소모된 공백 기간 동안 생긴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강진은 이레 가까이 포도청에서 지냈다. 무척 귀찮은 일이었지만,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두 종사관과 포두들은 신임 포도대장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법대로!
예전 신임 포도대장도 그 전 포도대장도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강진은 오로지 국법에 적혀 있는 대로만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이레 동안 서류 작업을 끝낸 강진이 소리쳤다.
“끝났다! 나쁜 놈들 잡으러 가자!”
강진의 우렁찬 외침에 미보가 급히 들어왔다.
“포도대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작업이 끝났으니 이제 본관도 범죄자들을 잡아야 되지 않겠소? 서류를 보니 흉악범도 몇 있는데 아직 잡히지 않은 것 같더군.”
미보는 그 무슨 말도 안 되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건 저희 종사관들과 포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럼 본관은?”
“포도대장님은 지시를 하고 결정을 내려 주셔야지요. 움직이는 건 저희 아랫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아, 괜찮네. 본관도 나름 무예를 닦아 내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으니 말이네.”
“포도대장님이 직접 움직이면 권위가 떨어집니다.”
“그럼 나는 여기서 서류만 봐야 한다는 건가?”
“그게 포도대장님이 하실 일이니까요.”
강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포도대장으로서 흉악 범죄자들을 직접 잡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현민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고자 했는데 뒤에서 서류 처리만 해야 한다니.
“내가 나가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강진의 물음에 미보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술술 답했다.
“그런 법은 없지요. 다만 포도대장님이 직접 움직이시면, 서류 작업은 언제 하시렵니까? 퇴청은 아예 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그럴 수는 없다.
포도청 자신의 숙소는 공사 중이었지만 공사 후에도 집만큼 편하지는 못할 터. 거기에 남들 눈 때문에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잡는 건 저희가 하겠으니 포도대장님께서는 안에서 편히 계시지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강진이 미간을 찡그리자, 미보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 세상 물정 모르고 법대로만 하자고 하니 고단한 면은 있었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법대로만 하면 포도대장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다. 또 불법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보고만 하지 않으면 까막눈에 귀머거리가 되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덕분에 자신부터 포두들까지 이렇게 희희낙락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변화가 일었다.
“포도대장님, 밖에서 곽노라는 노인이 대장님을 찾고 있는데 어찌할까요?”
포졸 하나가 아뢰는 말에 강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어서 모셔라! 아니다, 내가 나간다.”
강진은 나는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부!”
“이놈아…… 아니, 포도대장 나리!”
곽노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진은 그간의 짜증이 확 날아감을 느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기 전에 곽노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듣는 게 큰 즐거움이었던 강진이다. 그런데 그걸 못 하다 이제 곽노가 직접 찾아오니 짜증이 날아간 것이다.
“갑자기 나리는 무슨.”
곽노는 포졸과 미보를 보며 강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잖냐. 위엄을 지켜야지, 위엄을. 내가 한 말 벌써 잊었냐?”
“아! 어서 들어오시지요, 노사.”
강진이 장난스럽게 길 안내를 하며 곽노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미보에게 말했다.
“사람을 시켜 차를 가지고 오게 하고, 자네는 나쁜 놈들이나 잡으러 가 보게.”
이어 다시 곽노를 돌아보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사부, 어떻게 오신 거예요?”
“며칠이면 된다더니 벌써 이레째다.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지.”
“그렇지 않아도 사부에게 할 이야기가 잔뜩인데 잘 오셨어요.”
강진은 마치 어린애처럼 그간 포도청의 일들을 국법대로 처리한 것을 자랑하고는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곽노를 보았다.
“뭐예요, 그 표정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곽노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고 강진도 인상을 찌푸렸다.
곽노가 말했다.
“너야말로 뭐냐? 똑똑한 놈이 일을 왜 그렇게 처리해?”
“어때서요? 법대로 정확하게 처리했는데. 저처럼 공정한 포도대장도 얼마 없을 거라고요.”
“그게 공정한 거냐? 인정머리가…….”
곽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가끔씩 잊는다. 강진이 인정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곽노는 다시 천천히 말했다.
“너야 사리 분별이 정확하고 아주아주 공정한 성격이지. 다만 조금 더 생각을 해서, 더 잘 처리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떻게요?”
“염왕채 놓는 놈하고 빌린 사람은 그렇다 치고…… 만두 하나를 훔쳤는데 곤장 열 대를 쳤다고?”
“도둑질은 그리 처벌해야 하니까요.”
“나쁜 놈이로구나?”
“그렇죠, 나쁜 놈이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노가 다시 말했다.
“또 그 마수라는 자는 부인을 희롱하는 사람을 때렸다고 곤장 열 대였지?”
“네.”
“그놈도 나쁜 놈이로구나.”
“사람을 때렸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나쁜 놈 맞습니다.”
“하아!”
곽노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하겠구나?”
“그건 당연한 거죠.”
곽노가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지 않냐?”
강진은 인상을 확 찡그리며 대답했다.
“사부가 역지사지니 측은지심이니 하면서 남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화전촌 사람들을 도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죽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곽노는 크게 몸을 움직였다.
“바로 그거다! 사람들에게는 사정이라는 게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또 무슨 소리를 하시려고요?”
“생각해 봐라. 네가 저번에 사람을 죽인 것처럼,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집에 강도 놈이 들어서 가족을 모조리 죽이고 이 사람 혼자 살아남았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해서 그 강도 놈을 죽였다면, 그 사람이 나쁜 놈이겠냐?”
“일단 사람을 죽였으니…….”
강진은 대답하기 곤란해졌다.
자신의 성격은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이다.
“법에 맡겨야겠지요…….”
강진이 힘없이 하는 말에 곽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지만, 그런 상황에서 복수할 수 있다면 나라도 복수를 한다. 그렇게 되면 평범한 사람이 살인을 하게 만든 그 강도 놈이 더더욱 나쁜 놈이 되는 거지.”
“그 강도 놈은 이미 죽었잖아요.”
“그래서 강도를 죽인 그 사람도 죽어야 하냐?”
“으음…….”
법대로만 처리하면 된다는 자신의 논리가 틀린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우겨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겠지만 상대는 곽노.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인지라 강진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럼, 사부가 가르쳐 줘요. 나쁜 놈들은 잡아야 하는 거고. 어떻게 해야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지.”
“이 사부보다 천배 만배는 더 똑똑한 네가 더 잘 알고 있는 문제다. 사정을 헤아리고, 똑똑한 네가 결정하면 되는 거다.”
“도둑질한 놈도 어떤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사정을 알아보고 벌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지.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돈이 많은 네 집에 강도가 들어 은 백 냥을 훔쳤다고 치자. 그러면 너나 네 부친은 어떻게 할까?”
“당연히 잡으려고 하겠지요.”
“그럼 강도가 들어서 내 전 재산인 은 백 냥을 훔쳤다고 하자. 그럼 나는 어떡하겠냐?”
“역시 잡으려고 하겠지요.”
“그 전에, 난 아주 난리를 칠 거다. 네 부친에게 은 백 냥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은 백 냥은 전 재산이니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지 않겠냐?”
“으음, 똑같은 나쁜 일도 강약이 있다는 소린가요?”
“그래. 그런데 법은 이 강도나 저 강도나 모두 똑같이 처리한다. 상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 말이지.”
“으음.”
곽노는 다시 말했다.
“배가 찢어질 정도로 굶주려 살기 위해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술집에 가서 처놀기 위해 강도 짓을 하는 놈도 있는 거다. 똑같이 처벌해야겠냐?”
“…….”
강진은 이해하는 척했지만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자신도 살인을 한 적이 있으니 모순이라는 것이 생기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곽노는 강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여기서부터는 인정에 대한 문제니까. 그러니 기억해라. 이럴 경우 똑같이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할 사람이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 생각을 못 하지.”
“이런저런 사정 다 봐주고 어떻게 일해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차별을 둬야 하지 않겠냐?”
“가능하다면 말이죠?”
“그래, 가능하다면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느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의 말씀은 잘 알겠어요. 원인을 봐야 한다는 건데…… 그 사정이라는 거, 제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너 잘하잖냐,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거. 하면 된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사부가 군대에 있을 때는 말이다, 짬밥이라는 게 있었는데 말이지.”
“짬밥요?”
“군대에서 주는 밥을 말하는 거다. 하여간 군대에 처음 들어온 놈들은 죄다 어리바리해. 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데, 짬밥을 많이 먹은 놈일수록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게 된다. 경험의 힘이란 거지. 너는 남들보다 수백 배는 똑똑하니 어떠한 경우에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금방 알게 될 거다.”
“역시 사부는 말을 쉽게 해서 좋아요.”
“이게 다 세월의 힘이다. 너도 부지런히 발로 뛰어다니다 보면 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게야.”
곽노의 말에 강진은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안에서 서류 작업만 해서야 경험이 축적될지 모르겠네요.”
“포도대장이면 나가서 민생을 살펴야지, 탁자에 앉아서 서류만 보면 뭘 어찌 알고?”
“하지만 제가 직접 나서면 서류 작업 때문에 집에 못 갈지도 모르는 경우가 생겨요.”
강진이 미보의 말을 전해 주자 곽노는 일갈했다.
“그 새끼 아주 간신배로구나! 이건 네 눈과 귀를 막겠다는 뜻 아니냐?”
“엥?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곽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네가 똑똑하긴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책만 보는 생활을 해 왔으니 이런 걸 잘 모르는 거다. 생각을 해 봐라, 안에서 서류만 보고 법대로 처리한다고 하면 네가 사정을 알 리가 없지 않겠느냐? 무식한 나도 안다, 자고로 폭군의 곁에는 간신배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남의 사정 다 헤아리다가는 일이 한도 끝도 없을 텐데요.”
강진의 대답에 곽노는 그를 뚫어지게 보더니 물었다.
“너 뭐가 되고 싶다고 했냐?”
“그야…….”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대인! 말이다!”
“그렇죠.”
“대인이 어디 그리 쉽게 된다더냐? 대인이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그 정도의 희생이 필요한 거다. 뭔가를 얻기 위해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냐?”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으음, 이리 간단한 건데 왜 고민했는지 모르겠네. 선택의 문제 맞죠?”
“그래, 선택이다. 네가 편한 대로 할지,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될지. 온전히 네 선택에 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새끼 아주 나쁜 놈이었네요.”
강진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자 분을 내기 시작하며 바깥에 있는 미보를 노려보았다.
“나쁜 놈 맞다. 내가 그랬지? 분명 너를 얕잡아 보고 자기들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할 거라고 말이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요.”
“내가 오기를 아주 잘했구나. 감히 내 제자를 이용해 먹으려 하다니 말이다.”
곽노도 같이 분을 터트리면서 생각했다.
‘좀 과장되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강진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현명한 곽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