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56)
관존 이강진 (56)
매일 아침 강진과 조회를 해야 하는 유실계와 미보 그리고 포두들은 출근을 하자마자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섰다.
강진의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았고, 대청 중앙에 한 사내가 무릎 꿇은 채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종사관.”
“하명하십시오, 대장님.”
유실계가 급히 앞으로 살짝 나와 고개를 숙였다.
“서수현이라는 자 아는가?”
“서수현요? 서수현이라…… 아!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공진이라는 자가 사는데, 서수현은 그 사람의 부인입니다.”
“잘도 알고 있네.”
강진이 자신을 노려보며 하는 질문에 유실계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예전에야 종종 받았다지만 요새는 받은 것도 없는데. 혹시 이 여편네가 따로 뭔가를 받은 거야?’
유실계는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유명한 사람이라 알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혹시 소관이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지요?”
“유명한 사람?”
“네. 남공진은 옛날부터 신의현에서 유지(有志) 행세를 하는 자입니다.”
“그게 왜 유명한 거지? 신의현에 유지가 한둘인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남공진의 아내인 서수현의 부친이 서친수 대인입니다.”
유실계의 말에 강진은 확인하듯이 물었다.
“서친수? 광동성의 태수 서 대인을 말하는 건가?”
“네. 서수현은 바로 서 대인의 장녀입니다. 그래서인지 현령 나리가 특별히 치안에 신경 쓰라고 사람까지 보내왔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강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두 소환해.”
“모두라 하시면?”
“남공진과 서수현 그리고 그 일가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깡그리.”
유실계가 급히 말했다.
“대장님, 소환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강진의 미간이 찡그러지자 옆에서 미보가 재빨리 유실계를 도왔다.
“대장님, 유 종사관은 모두 대장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명령이라시면 당연히 행하겠지만, 서수현의 위세가 대단하여 해마다 현령 나리도 그 집안에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위세가 대단해? 감히 본관의 위엄을 거스를 정도로?”
“명령이라면 저희는 당연히 대장님을 따를 겁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현령 나리에게 찍힌 상태인데 남공진 일가를 부른다면 그냥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강진은 화를 내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현령의 인사고과는 태수가 책임지니 두 종사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표정이 풀렸다.
“그런데 본관이 현령에게 찍혀?”
“그것이…….”
미보가 눈치를 보더니 강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포도청에서 매달 현령 나리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인 관례이온데 대장님께서는 일 년 동안 한 번도 보내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예물? 포도청에서 왜 현령에게 예물을…… 흥!”
강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두 종사관과 포두들이 자신에게 돈을 주려고 했던 것처럼, 포도대장도 현령에게 상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만 자신의 경우에야 현령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
‘대인 되기 참으로 힘드네. 아랫놈을 조져 놨더니 이제 윗놈들이 걸리는구나.’
강진은 손을 저어 미보를 자리로 돌려보낸 후 말했다.
“걱정하지 마. 두 종사관은 본관의 명령에만 충실히 따르면 된다.”
“명령을 받잡습니다.”
이 정도까지 말해 놨으니 나중에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두 종사관은 급히 포두들을 이끌고 남공진이 사는 곳으로 몰려갔다.
“거기 장삼이.”
강진은 억울하다고 호소했던 장삼을 부르며 말했다.
“봤지? 네 고용인은 이리 위세가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런데도 본관은 네 말을 믿고 그들을 소환했다. 만의 하나 네 말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었을 경우, 곤장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강진의 엄포에 장삼은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말했다.
“소인의 말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을 경우, 소인의 목을 치시더라도 나리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죽겠습니다.”
자신의 고용인의 위세가 대단한 건 장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삼십 년을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도둑으로 몰려 몰매를 맞고 십 년 이상 모아 왔던 세경을 뺏긴 게 억울해 이리 포도청을 찾은 것이었다.
“나도 그러길 바라. 그리고 이제 정신 바짝 차려. 만만한 자들이 아니니.”
강진의 말에 장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쳐 내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사실 세상 물정 모르는 것 아니니 포도청에서도 난색을 할 거라 예상했고, 그러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 자신의 결백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정말 뜻밖에도 포도대장이 그들을 소환하기 위해 포졸을 보내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리, 이 은혜는 이 장삼이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장삼이 너무 고마운 마음에 넙죽 절을 하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죽어서는 편히 쉬어야지. 다만 살아 있을 때 본관의 공정함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라고. 그것으로 은혜는 충분히 갚은 것이니.”
“이미 포도대장님의 명성은 저 같은 아랫사람들한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소인도 감히 용기를 내어 이렇게 포도대장님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 본관의 명성이 그리 알려졌어?”
“모두 살 만하다고 합니다. 다른 현에서는 왈패 놈들이나 도적놈들 때문에 가진 것 다 뺏기고 노예로 살기 일쑤인데 우리 현은 포도대장님이 계셔서 탈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포증*도 우리 포도대장님보다는 못하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포증 : 송 시대 유명한 관리. 포청천.]
사실이긴 하나 장삼이 더 과장되게 말하니 강진은 큰 즐거움을 느꼈다.
강진이 본성을 억누르고 이 지루한 일들을 참아 내는 이유는 단 하나.
대인(大人).
대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싶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참고 있는데 오늘 장삼이 그걸 확인시켜 주니 나빴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고로 목표는 크게 잡아야지. 겨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야 대인이 훨씬 낫지.’
강진이 속으로 히죽히죽 웃는 사이, 나갔던 종사관들이 남공진과 서수현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는 하인들까지 모조리 데리고 왔다.
보통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포도청에 들어오면 위축되기 마련이나, 이들은 위축되기는커녕 마치 포도청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처럼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공진이라 하오. 기억날지 모르겠으나 이가장에 몇 번 일이 있어 갔다가 본 적도 있소.”
나이는 마흔 중반에, 미남자 소리를 들을 만한 남공진이 포권을 하며 살짝 허리를 숙여 보였지만 이강진은 고개만 까딱거리며 말했다.
“본관은 공무 수행 중이니 인사는 나중에.”
남공진의 인상이 구겨지자 옆에서 중년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람을 이리 무시하시는지요?”
강진이 그녀를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이 서수현이오?”
“제가 서수현이에요. 이 대인의 집에서 일하는 정 총관과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예의에 어긋남이 없던데, 그 주인 된 이 대인이 이리 예의가 없을 줄이야.”
“공무 중이라 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
강진이 잘라 하는 말에 서수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버지는 광동성 태수요, 할아버지는 현직 대사농(大司農)이다. 당연히 서씨 가문은, 말만으로 나는 새를 떨어트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현령 한둘 목 정도는 쉽게 날릴 수 있는 권세를 지녔다.
그런 가문에서 태어나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일이었으니, 그녀의 말은 자연 거칠게 튀어나왔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이가장의 체면을 봐서 부군과 이리 나온 것인데, 이 대인께서 이리 나오시면 천하의 이가장이라 하더라도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요?”
“지금 본관을 협박하는 건가?”
강진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자 남공진이 급히 말했다.
“이 대인, 부인이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었소. 아녀자의 말이니 크게 개의치 마십시오.”
그러고는 급히 서수현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도 좋을 게 없어. 거기다 아직 혈기왕성해 관계를 잘 모르니 당신이 조금만 맞춰 주시오.”
서수현도 배울 만큼 배운 여인이고, 이런 정치적인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제가 말이 너무 심했군요. 이 대인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으니 이해해 주세요.”
서수현의 말에도 강진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며 곤장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강진도 서수현과 똑같았다.
잘난 가문에 잘난 아비 덕분에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해 왔고,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감히 자신의 가문까지 협박할 정도라면 서씨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게 있는 것 같군.’
강진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남 대인은 저자를 압니까?”
강진의 물음에 남공진이 장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눈에 익기는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오만.”
“내가 알아요. 이 대인, 설마 저자 때문에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겁니까?”
서수현이 자신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그렇소. 저자가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고 재물을 빼앗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해 왔으니, 본관으로서는 당연히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소?”
서수현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억울함을 호소해요? 내 칠색 보옥 반지를 훔쳤는데도 여태 일해 온 것을 감안해 포도청에 넘기지 않고 집안에서 약간 벌만 준 것을…….”
서수현은 장삼을 보며 앙칼지게 외쳤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오냐, 내가 너무 착하게 대하니 기어오르려 하는구나!”
그러더니 다시 강진을 보며 말했다.
“이 대인, 정식으로 이자를 고소하겠습니다. 제 반지를 훔쳐 가고 내놓지도 않은 이자를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강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강진은 서수현의 말에 장삼이 어찌 반응을 하는지, 그리고 서수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장삼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고 저 여자도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대인이 되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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