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6)
관존 이강진 (6)
한참을 궁리하던 곽노가 궁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도 좀 멋지게 살면 좋지 않겠냐?”
“그냥 안 힘들고 평범하게 살아도 돼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면서?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는 능력이 있다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는 괴물이라고 하면 어떡하죠?”
곽노는 강진을 노려보듯 하며 말했다.
“한마디도 안 지는구나.”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지요.”
곽노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휴우, 정말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안 하겠다는 거냐?”
“네. 너무 힘들어요. 사부도 같이 두 시진 동안 달리기해 봐요, 안 힘든가.”
“대신 대가가 크잖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사부는 날지도 못하면서 어째 기분이 좋은 건 알아요?”
“간접경험이라는 게 있잖냐.”
얼결에 대답하던 곽노의 뇌리에 문득 녀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지루함이야. 하지만 지루함도 감수할 만한 뭔가가 있으면 참을 수 있어. 내게 있어 그 감수할 만한 뭔가는 만족감이야. 내 안의 뭔가가 터질 정도로 차오르는 느낌. 그건 정말 느끼기 힘든 거거든. 그래서 그걸 느낄 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참는 거지.”
곽노는 강진을 보며 생각했다.
‘녀석은 힘들다고 말했지만 육체가 힘든 게 아니라 지루해서 힘든 건지도 몰라. 기대감을 심어 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잘할 거야.’
무슨 방법으로 기대감을 심어 줄지는 이미 자신이 말한 게 있었다. 간접경험이다.
곽노는 곧바로 강진을 안았다.
“뭐 하시게요? 설마 때리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네가 앞으로 뭘 할 수 있게 되는 건지 알려 주려고 그런다.”
곽노는 강진의 왼쪽 손목과 왼쪽 발목을 잡았다.
바닥으로 떨어질 듯한 느낌에도 강진은 태연스럽게 물었다.
“정말 뭐 하시려고요?”
“이거다. 앞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말이다.”
순간 강진은 정말 하늘, 정확히는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비록 곽노에게 손목과 발목을 잡힌 채였지만, 난다는 표현은 쓸 수 있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해 주는 놀이.
바람이 얼굴을 가르고 같은 자리만 빙빙 돌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재미있는 놀이였고, 그래서 곽노는 하면서도 은근히 걱정했다.
마치 강진이 이게 뭐냐고 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진의 반응은 곽노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좀 묘한 느낌이네요.”
덤덤한 말투와는 달리 육성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말만 하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반응.
“기분 좋지?”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강진은 스스로도 이 기분이 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살짝 오금이 저린 듯하면서도 짜릿한 쾌감.
사실 남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걸로만 알았기에, 그 표현이 맞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릴 때 이렇게 많이 놀았겠지만…….”
강진은 자신의 눈치를 살짝 보며 하는 곽노의 말을 끊었다.
“그런 적 없어요.”
“응?”
“처음 해 봤어요.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진작 알았다면 하인들에게 해 달라고 할 걸 그랬어요.”
“이렇게 해 본 적이 없다고?”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부가 처음 해 주셨어요. 재미있는 거네요, 이거.”
“그렇지? 네가 정말 하늘을 난다면 이보다 백배 천배 재미있을 거다.”
곽노의 말에 강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민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사부, 분명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지요?”
마치 거짓말을 하면 사부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듯한 눈빛에, 곽노는 속으로 뜨끔했다.
‘아무래도 안전책을 하나 마련해 둬야겠어.’
곽노는 그리 생각하며 대답했다.
“네가 내 말대로만 한다면, 내가 주는 임무를 정확히 완수한다면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강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부, 한 가지 확실히 해 둘 게 있어요.”
“뭘 말이냐?”
“사부가 저에게 임무를 줄 때, 불가능한 걸 주셔서는 안 돼요. 애초에 불가능한 임무를 주고 그걸 해내지 못해서 하늘을 날 수 없는 거라고 하시면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곽노는 두 번째 뜨끔함을 느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사부가 불가능한 임무를 주겠느냐?”
“사부를 봐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 것 같아서 말이죠.”
‘이런 귀신같은 녀석. 놈도 이렇게 꼼꼼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곽노는 대답 대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강진에게 말했다.
“뭐 하냐?”
“네?”
“달려야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면서?”
“그 불가능한 임무는…….”
“앞으로 따지지 마라. 이것도 사부가 주는 임무다. 알겠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강진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이미 그러기로 했으니 더 따져 봤자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갑니다.”
강진이 다시 산으로 달리는 걸 보며 곽노는 고민에 휩싸였다.
“불가능하지만 겉보기에는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라…….”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지금 당장 강진에게 병아리를 맡겨서 다시 키우라고 하면 이번에도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녀석은 아직 그 단계까지 훈련되지 않았다.
‘아니지. 이제는 목적이 있으니 성공할지도 몰라. 죽도록 힘들겠지만 말이지.’
곽노는 일단 다시 한 번 병아리를 강진에게 주고 키우라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것도 필요한데…….’
강진의 육체를 지치게 하면서 불가능하지도 않은 것.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궁리하다 보면 답은 나오는 법이다.
아는 글자가 적어 책을 많이 읽지 못했지만 살아온 시간이 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떠올린 건 찻집에서 이야기꾼이 떠들던 이야기 하나.
옛날, 자객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무공 스승이 없던 그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는데, 무기야 많이 휘둘러 보면 되지만 안되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신법이었다.
한참을 궁리하던 끝에 그는 갓 태어난 송아지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넘는 연습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송아지는 점점 더 커졌고, 커진 만큼 그 역시 도약력이 올라갔다. 결국 그는 커다란 소를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고, 그걸 기본으로 높은 담장 역시 단번에 뛰어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높은 걸 뛰어넘으라고 하면 불가능하지만 천천히 자연스럽게 하면 자신도 모르게 가능해진다는 게 이야기의 요점.
‘나도 시도해 봤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지 않았나? 좋아, 이걸 하는 거야.’
곽노는 히죽 웃었다.
‘굳이 똑같이 소로 할 필요는 없겠지.’
하나가 풀리니 또 다른 방법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불가능하면서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말이다.
곽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을 정리했다.
‘속임수는 아니지. 이 중 하나는 나도 효과를 본 적이 있는 거니까.’
곽노는 자신이 생각해 낸 것들에 대해 스스로 만족했다.
걱정이 해결되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소식하게 된다는데 어찌 된 게 나는 점점 더 배가 고파지나……. 그나저나 오늘은 술이 땡기는데 주점이나 한번 가 볼까나?’
곽노는 만사가 태평해졌다.
* * *
“이걸 또 키워요?”
“임무에 실패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성공할 때까지 다시 해야지.”
“…….”
곽노는 강진을 안고 일어나며 말했다.
“녀석아, 애초에 이 사부가 너에게 해 준 약속이 뭐냐? 너를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 준다는 거였잖아. 이 사부가 네 덕분에 잘 얻어먹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목적은 그거였다. 그걸 잊으면 안 돼.”
“하늘을 나는 것도요.”
“그……래, 그것도 있지. 하지만 너를 보면 네게 정말 절실하게 그런 희망이 있는지 의심이 들잖냐?”
“…….”
“절실하지 않은 거냐?”
강진은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모두 지루한 것뿐이잖아요.”
“세상에 대가 없는 성취가 어디 있다더냐? 그리고 네가 하는 달리기도 목적을 가지니 끝까지 하게 되잖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일이 너에게는 그보다 중요하지 않은 건가 보구나.”
“그런 건 아니에요.”
곽노는 강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끈기나 참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모두가 그건 반드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다. 너에게도 그런 게 있을 터. 반드시! 해야 할 일. 이게 바로 그거다.”
“알아요, 저도. 하지만…….”
“힘들겠지. 곧 나올 똥을 계속해서 참는 것보다 더 힘들 거란 것도 안다. 그러니 실패해도 좋아. 중요한 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거다. 실패해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사흘을 키워 실패하면 그다음은 나흘, 닷새를 버티지 않겠냐? 닷새 만에 실패한 후 다시 시도하면 그보다는 늘어날 거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거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나아진다.”
“네…….”
힘없는 강진의 대답에 곽노는 미소를 띠고 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거기에 임무를 하나 더 추가시키자. 사육 일지를 쓰는 거다.”
“사육 일지요?”
“그래. 그럼 좀 더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게야.”
“뭘 써야 하는 건데요?”
“그건 네 마음이다. 쓰고 싶은 건 다 써라. 병아리에 관련된 거라면 다 좋다.”
강진은 그딴 걸 왜 써야 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고 있으니 하등 쓸모없는 질문이 될 뿐이다.
“알겠어요.”
강진은 마치 일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병아리를 노려보았다.
그런 강진을 보며 곽노도 생각했다.
‘책임감과 더불어 병아리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욕심일까나?’
그때 강진이 곽노를 불렀다.
“사부.”
“왜?”
“하지만 하나 알아 두셔야 할 점이 있어요.”
“말해 봐라.”
강진은 병아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녀석 키우긴 하겠는데, 제가 학당 갈 때나 수련할 때에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제가 없을 때 이 녀석이 마당에서 돌아다니다 개한테 죽거나 매가 채 가거나 아니면 하인들 중 누군가 실수로 죽이면 어쩝니까?”
“으음,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더 안전하게 지킬 수도 있지 않을까? 개집처럼, 병아리에게도 집을 지어 주어서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지.”
강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사부. 그러면 이 녀석 집부터 지어 주고 오겠습니다.”
“그래. 수련은 그때부터 하도록 하자.”
“네.”
집을 만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거니 생각한 곽노가 낮잠 한숨 자려고 하는 순간 강진이 다시 돌아왔다.
“사부.”
“뭐냐? 못 만들겠더냐?”
“그걸 왜 제가 만듭니까? 하인에게 닭장 하나 커다랗게 만들어 두라고 했지요.”
“네 녀석이 만드는 게 더 좋지 않겠냐?”
“시간 낭비죠. 가뜩이나 사부가 준 임무가 잔뜩인데. 혹시, 임무를 잔뜩 줘서 제가 실패하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시죠?”
그럴 생각이 있었던 곽노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럴 리가. 가자. 네 말대로 시간이 빠듯하구나.”
강진은 앞장서 가는 곽노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