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68)
관존 이강진 (68)
“자네는 자존심도 없나? 그리 모욕을 당했으면서 그 밑에서 또 일할 생각이 드나?”
“나리 덕분에 모은 돈을 찾긴 했으나, 소인 아이가 둘입니다. 고놈들이 클 때까지는……. 죄송합니다, 나리.”
“본관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미안해야지.”
장삼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마님이 오해를 하시긴 했어도 평소에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까다로운 성격이긴 하나 아랫사람들에게는 매사 공평한 분이었으니까요. 바깥어른이 좀 그랬을 뿐이지요…….”
그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어떻게 해결할지 곤란했던 것도, 서수현 그 여자가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사람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저 돈만 많아 남의 사정을 모르는 여자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러니 미리 장삼을 데리고 가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거겠지.’
강진은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열심히 살게. 또 억울한 일이 있으면 본관을 찾아오고.”
“감사합니다, 나리.”
장삼이 다시 절을 하는 걸 뒤로하고 강진은 포도청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찝찝한 건 찝찝한 거야. 남공진까지 깨끗하게 처리했으면 얼마나 좋아. 이 잡것을 어쩐다?’
강진이 집요하게 남공진을 잡을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대장님을 뵙습니다.”
“대장님, 평안하셨습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자신을 보며 무슨 꼬투리가 잡힐지 몰라 재빠르게 인사를 하고 줄행랑을 치던 포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존경의 눈빛으로 어떻게든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 포두.”
“네, 대장님.”
“들어와 봐.”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에 강진이 정 포두를 방으로 불러 물었다.
“뭐야? 왜, 진범을 잡지 못해서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 그래서 그렇게 실실 웃는 거야?”
강진의 말에 정 포두는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오해십니다.”
“무슨 오해?”
“솔직히 처음에 남공진과 서수현을 조사하시겠다고 했을 때, 종사관들이나 우리 포두들 모두 걱정했습니다. 외압에 대장님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걱정을 했어?”
정 포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안 할 수가 없지요. 상대가 누굽니까? 태수 나리의 맏딸인 서수현이고, 사위인 남공진이었습니다. 이 광동성에서 누가 건드릴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대장님께서 직접 광주까지 가서 남공진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장삼의 죄를 벗기지 않았습니까?”
“밝히진 못했지. 잡아들이지 못했으니.”
강진이 화난 표정을 풀며 하는 말에 정 포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지,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대장님이 직접 움직이셔서 남공진을 궁지에 몰고 장삼의 누명을 푼 걸 말입니다.”
“그런데 왜 다들 실실 쪼개?”
“대장님 같은 분이 저희 상관이시니 당연히 웃을 수밖에 없지요. 솔직히 저희가 아무리 무능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명색이 포도청에 일하는 사람들인데 나쁜 놈들 잡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뭐만 하려면 현령의 사돈이다, 어디 관리의 사촌이다, 팔촌이다 하며 외압이 들어오니 뭘 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게 눈치를 보다 보니 저희도 일할 의욕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어차피 안될 거 이득이나 챙기자 하면서 돈을 좀 받았지요.”
“지금은 아니다?”
정 포두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요. 적어도 우리 포도청에서는 더 이상 뒷돈 받는 놈은 없을 겁니다.”
“그럼 지금 웃고 있는 건 순수하게 기뻐서 웃는 거다?”
“그렇습니다. 대장님이 몸소 실천에 옮기셨으니 저희도 이제 일할 맛을 제대로 느끼도록 일할 겁니다.”
그제야 강진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본관이 할 일을 한 건데 너무 호들갑들을 떠는군.”
“현에 이미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합니다. 남공진도 그리됐으니 이제 억울한 일은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됐어. 알았으니 그만 나가 봐.”
“물러가겠습니다.”
정 포두가 나가자 강진은 히죽 웃었다.
“소문이 쫙 퍼졌단 말이지?”
강진은 다시 헤죽 웃었다.
역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건 무척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남공진을 잡지 못해 시간을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역시 남공진은 꼭 잡아야겠어. 그래야 대놓고 기뻐하지.”
집요한 강진이었다.
* * *
“주인어른,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정 총관이 안절부절못하자 이제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조심하거라. 며칠 요양하면 되는 문제이니.”
“네. 그런데 아무래도 설의는 부르는 게 낫겠습니다.”
이제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마차가 멈췄다.
“주인어른이 돌아오셨다!”
정 총관이 먼저 내려 크게 소리치고는 이제원을 모시며 안으로 들어갔다.
“할 게 많을 거다. 혼자 있을 테니 가서 일 봐라.”
“하지만 제가…….”
“혼자 있는대도.”
이제원의 단호한 말에 정 총관은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사라졌다.
이제원은 홀로 이가장의 후원을 천천히 걸었다.
‘으음.’
순간 왼쪽 허리가 시큰거려 얼굴이 살짝 찡그러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확실히 무모한 일이었다.
검성이라 불리는 자였다. 거기다 혼자가 아니라 사형제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성공해 냈다.
최소 두 달은 요양해야 할 내상과, 왼쪽 허리에 창자가 튀어나올 뻔했을 정도로 중한 자상을 입었지만 결국 해냈다.
‘그래도 좋지 않아. 감정에 휩쓸려 큰일을 망칠 뻔했고, 그랬다면 강진에게도 위험할 뻔했어.’
곽노에게 강진의 두려움을 듣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고, 결국 밖으로 나선 것이다. 결과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이제원은 조심하자고 생각하며, 쌀쌀한 날씨 탓에 황량함이 느껴지는 화원을 둘러보았다.
꼭 자신의 마음 같았다.
‘란아, 네가 있었다면 이렇게 황량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잊어야 하는데, 그게 잘되지 않는구나.’
이제원은 쓸쓸한 눈빛으로 앙상한 꽃나무들을 어루만졌다.
“미! 너 거기 안 서! 여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란 말이야!”
여성의 뾰족한 음성이 화원에서 울렸다.
이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화원은 관리하는 칠덕네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 엄명을 내린 곳이었다.
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작은 여아 하나와, 여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앳된 기색이 남은 소녀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
앞에서 달려오던 작은 여아가 이제원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내며 걸음을 멈추었다.
“장주 어르신.”
그리고 뒤따라오던 소녀도 이제원을 보고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
이제원은 순간 탄성을 내었다. 뒤따라오던 소녀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란아!”
이제원이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는 순간 소녀는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장주 어르신을 뵙습니다.”
뒤이어 작은 여아도 급히 따라 인사를 올렸다.
“장주 어르신을 뵙습니다.”
“누구냐?”
이제원은 순간 몽롱했던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서문정화라고 합니다.”
“서문미라고 합니다.”
“아! 그랬구나. 많이들 컸구나.”
재작년에 정 총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강진이 친구의 동생들을 데리고 와서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가며 먼발치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걸로 기억했다.
사실 서문정화나 서문미, 모두 재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상태였다.
일단 먹는 것부터가 달랐다.
강진은 서문 남매를 데려오며 칠덕네에게 무조건 잘 먹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서문 남매는 원래 하루 한 끼도 겨우 먹다가, 이가장에선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거기에 집에서는 물 길어 오랴 마을 사람들 농사일 도우랴 정신이 없었는데, 이가장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글을 배우고 그냥 노는 것뿐이었다.
빼빼 말랐던 몸에 살이 오르고, 햇볕에 타 시커멓던 피부 역시 하얗게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덕분에 이제원이 아니라 서문우람이 와도 자기 동생들이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래, 지내는 건 괜찮으냐?”
이제원의 물음에 정화가 대답했다.
“네. 강진 오라버니가 잘 보살펴 주십니다. 일하는 분들도 모두 잘해 주시고요.”
“여기서는 만날 쌀밥에 고기만 먹어서 좋아요. 강진 오라버니가 최고 좋아요.”
옆에서 서문미도 한마디 거들자 이제원은 생각했다.
‘그래, 강진이에게도 이렇게 혈육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처가 세상을 떠나 버려 생각도 못 했던 문제였다.
“다행이구나. 내 집처럼 편히 지내거라.”
“감사합니다, 장주님.”
정화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이제원이 다시 말했다.
“오라버니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강진이도 그렇고 나도 찾고 있으니 곧 연락이 닿을 거다. 걱정하지 말고.”
서문정화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자 이제원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 일 보거라.”
서문정화가 서문미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릴 때, 이제원이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정화야.”
서문정화가 급히 다시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네, 장주님.”
“네가 지금 몇 살이더냐?”
“이제 스물이 되었습니다. 미는 열네 살이고요.”
“아래 남동생이 하나 더 있지?”
서문정화가 공손히 대답했다.
“훈이는 이제 열여덟입니다.”
“그렇구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아니다. 정 총관에게 일러둘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거라.”
“감사합니다.”
미를 데리고 돌아가는 정화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제원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스물이라…….’
그러다가 무슨 생각인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