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69)
관존 이강진 (69)
방수
“곽 노사 계십니까?”
이제원이 곽노의 방에서 그를 불렀다.
덜컥.
문이 열리며 곽노가 급히 이제원을 맞았다.
“이 장주! 언제 오신 겁니까?”
“방금 왔습니다. 잠시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침 저도 장주와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제원이 방으로 들어오자 곽노는 직접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잘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상의할 일이 뭡니까?”
“장주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저는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곽노의 대답에 이제원은 곧바로 물었다.
“정화란 아이 아시지요?”
“당연히 알지요. 우람이의 동생 아닙니까?”
“그 우람이라는 아이, 강진의 평생지기라 하신 적이 있지요?”
“평생이나 마나, 친구라고는 그 아이 하나밖에 없으니 그렇게 되길 바라야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오늘 정화라는 아이를 봤는데, 아이가 참 차분하게 보이더군요.”
곽노는 이제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강진의 처로 생각하신 겝니까?”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조건이 맞지 않겠습니까? 가문도 많이 기울고, 강진에게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니 감싸 줄 수도 있을 테고요. 거기에 아이가 참 예뻐 보이더군요.”
“흠잡을 데가 없는 아이이긴 하지요.”
“거기에 하나뿐인 친구의 동생이니 강진이 역시 특별하게 생각할 터, 스스로도 많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이제원의 말마따나 훌륭한 조건이었기에, 애초에 그 아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람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됐든 그 집안의 결정권자는 우람이일 테니 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장주가 신경을 쓰신다면야…….”
곽노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제원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른 생각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상의하려고 했습니다. 방금 돌아오셨다고 했으니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하셨나 보군요.”
“무슨 일을 말입니까?”
곽노는 문 쪽을 계속 보며 말했다.
“지금쯤 올 때가 되었는데…….”
“누가 오기로 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그 아이가 오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
곽노의 말에 이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찌릿찌릿.
차를 마시는 순간 왼쪽 허리가 찌릿해 왔다. 제대로 치료는 했으나 아직 이렇게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어르신, 저 들어갑니다.”
“어서 들어오거라.”
잠시 후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곽노가 반색을 하며 답하고는, 이제원에게 말했다.
“일단 아이부터 보십시오.”
문이 열리며 미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고, 쟁반 위에는 다과가 있었다.
곽노는 미영을 보며 말했다.
“미영아, 인사드려라. 강진의 부친이시다.”
미영은 급히 다과상을 탁자 위에 올리고는 이제원 앞으로 달려오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미영이 아버님께 인사 올립니다.”
이제원은 절세가인이라 해도 모자랄 게 없어 보이는 여인이 갑자기 자신을 아버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하자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소저는 누군가?”
“말씀 낮추십시오, 아버님. 소녀는 미영이라고 합니다.”
이제원이 설명을 바라는 듯이 곽노를 쳐다보았다.
곽노는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그게, 저번에 강진이 녀석이 광인루에 다녀온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그때 거기서 강진의 시중을 든 아이인데…….”
이제원은 곽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리고는 손을 들어 곽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미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물었다.
“기녀냐?”
약간은 적개심이 느껴질 정도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도 미영은 침착했다. 애초에 각오한 것이 없지 않았다.
“한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불쾌감이 진한 표정으로 곽노에게 말했다.
“혹시 곽 노사는 이 아이를 강진의 처로 생각하신 겁니까?”
예상은 했지만 이제원이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터라 곽노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이 장주, 일단 앉으시지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 보고 천천히…….”
“됐습니다. 듣지 못한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원이 노한 얼굴로 자리를 떠나려 하자 미영이 급히 이제원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버님, 부디 제가 드릴 말씀…….”
“내 집에서 나가거라. 너를 보지 못한 걸로 하겠다.”
미영은 이마를 바닥에 대며 말했다.
“아버님이 왜 소녀를 불쾌해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때 기녀로 있긴 했으나 몸을 이용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깨끗하다고 마음까지 깨끗하다더냐? 최소한의 예의로 강제로 쫓아내지는 않겠지만, 괜히 시간을 끈다면 어쩔 수 없을 게다.”
이제원은 싸늘한 표정으로 미영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기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곽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예상 못 한 건 아니지 않으냐?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말거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보다 더 심한 반응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선입견이 없는 걸 바라지는 않더라도, 네 이야기라도 제대로 들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약간 무리인 생각이었다.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는 것이 여자의 최고의 덕이라 생각하는 시대였다. 물론 정말 그렇게 하는 건 힘들었고, 곧잘 이혼이니 재혼을 하긴 했지만 일단 인식은 그러한 시대였다.
“기녀였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곽노는 힘없이 말하는 미영을 안쓰럽게 보며 말했다.
“그것 빼고는 흠잡힐 데 없는데…… 남자들은 첩도 여럿 거느리면서…….”
순간 곽노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제원이 십 년 넘게 혼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부를 가진 사내가 그러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고 보니 술도 잘 마시지 않았지?’
밖에서는 어떤지 모르나 자신이 알기로는 그랬다. 집에서는 항상 책을 보고 후원을 걷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하! 일이 힘들겠구나. 장주는 금욕을 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기녀를 며느리로 들인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할 일인데…….’
곽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미영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 같구나. 차라리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어떠냐? 은혜를 입었다고 평생을 두고 갚아 나겠다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강진이도 그런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고 말이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그리고 소녀도 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요.”
미영의 대답에 곽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 * *
“정말이냐? 오늘 손을 쓰겠다 하더냐?”
대방파의 우두머리 이대방은 반색을 하며 수하인 종아를 보았다.
종아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말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오늘 손을 쓴다고 합니다.”
“한 달이나 거둬 먹이느라 뼈가 빠지려고 했는데. 못된 놈들,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자기네 있는 데서 더 잘 놀 수 있는데 왜 이 촌구석에서 그 지랄을 했다냐?”
사람 마음 간사하다고, 방금 전만 해도 어떻게든 빨리 손을 써 주기만을 바라다가 정말 움직이겠다고 하자 이제는 그들 때문에 쓴 돈이 아까워지는 이대방이었다.
종아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더 머물게 했다가는 자금이 없어서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대형.”
“왜?”
“괜찮을까요? 이번 포도대장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남공진을 잡으려고 직접 성도까지 간 것도 그렇고…….”
“그럼 어쩌자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면, 어떻게든 변화를 일으켜 봐야지. 혈붕파에서도 한두 번 하는 일은 아닐 테니 잘할 거야.”
이대방은 말을 하면서도 초조함을 나타냈다.
“잘할 거야……. 잘하겠지?”
그 시간 이대방이 잘하리라 믿고 싶어 하는 혈붕파의 조직원 석두와 왕손이는 포도청 앞에 잠복하고 있었다.
“이 새끼 왜 이리 안 나와?”
“나름 애민(愛民)하는 포도대장이라잖아. 좀 늦게 퇴청하려나 보지. 그리고 늦을수록 우리도 좋고.”
“애민은 얼어 죽을. 관리가 거기서 거기지.”
“뇌물이 안 통한다잖냐. 하나쯤은 그런 관리도 있어야지. 그러니까 너무 심하게 손을 쓰진 말자고.”
왕손이의 말에 석두가 놀리듯이 말했다.
“네가 웬일이냐? 관리, 특히 포도청 놈들이라면 이를 가는 놈이.”
“돈만 밝히는 놈들이 싫은 거지. 이번 놈은 그런 놈이 아니라잖냐. 젠장, 적당히 좀 할 것이지. 융통성 있게 하면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뭐냐, 너?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
왕손이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금 마음에 걸려서 그런다. 여기에 내 사촌이 살잖냐.”
“그런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라. 그가 포도대장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현령도 함부로 못해서 먹고살 만하다고. 세금도 나라에서 정한 딱 그 정도만 떼어 간다더군. 그러더니 나보고 다 때려치우고 같이 농사나 짓자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석두는 단짝인 왕손이의 마음이 흔들린 걸 느끼고는 급히 말했다.
“은퇴를 하더라도 크게 한 건 하고 해야지. 지금 네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냐?”
“…….”
“조금만 더 모아서 같이 은퇴하자. 네 말대로 그놈은 살살 다루고.”
왕손이가 편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살살 다루자는 그 사람이 누구냐?”
왕손이와 석두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들자, 돌담 위에서 귀신처럼 머리만 내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으헥!”
두 사람은 기겁을 하며 돌담에서 떨어졌다.
휘리릭.
그리고 그 두 사람 앞에 귀신처럼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