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72)
관존 이강진 (72)
그렇게 산 두 개째를 넘어갈 때, 그의 앞을 막는 복면인이 있었다.
강진이 복면인을 보며 반가운 듯이 외쳤다.
“너구나!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강진이 자신을 향해 너무나도 반갑게 말하자 복면인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뭐가 그리 기쁘십니까? 저에게 지면 애지중지하시는 칼을 빼앗기실 텐데요.”
강진은 여전히 칼집 없이 몽둥이에 꽂고 다니는 칼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칼은…….”
“알아!”
강진은 복면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요도인지 귀도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네 말대로 평범한 칼이 아닌 건 알아.”
“그런데도 계속 그 칼을 지니고 계실 겁니까?”
“걱정하지 마. 이놈도 보아하니 고통을 느끼는 것 같던데, 말 안 들을 때마다 아주 박박 갈아 버리면 돼. 이미 한번 해 봤어.”
“뭘 한번 하셨다는 겁니까?”
복면인이 놀란 눈으로 묻자 강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제멋대로 움직이려 하잖아. 그래서 바위에 냅다 갈겼지. 그러니 말 잘 듣던데?”
복면인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공자님이 칼을 제게 넘겨주시면 그 칼의 내력을 알아내어, 안전하게 사용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강진은 칼을 뽑아 들어 빙빙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복면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네가 사용해 보든가. 대신 가져가서는 안 돼. 네가 오랫동안 나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서 넘겨주는 것이니까 그걸 가지고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만의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강진의 몸에서 살기가 몰아쳤지만, 복면인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좋은 무기가 공자님의 손에 있다는 건 저로서도 환영할 일이니까요.”
복면인이 말을 끝내고 칼을 잡으려는 순간 강진이 칼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십시오.”
“매번 그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데, 그럴 필요 없어. 나도 너와 무공을 겨루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인데 필요할 때 찾을 수가 없잖아.”
“공자님의 말씀은, 제가 옆에 있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매시간 내 옆에 있을 필요는 없고, 그냥 저녁에는 얼굴 정도 보는 걸로 하자. 그리고 무공도 겨뤄 보고.”
복면인은 강진의 눈에서 순수한 열망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매일 집에 있을 수는 없지만 자주 공자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강진은 씩 웃더니 칼을 복면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 복면 좀 벗어 보면 안 될까?”
“안 됩니다.”
“네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그러니 내기를 하자.”
“무슨 내기를 말입니까?”
“너와 내가 겨룰 때마다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 부탁을 들어주기로. 어때?”
복면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공자님께 부탁드릴 게 없습니다.”
“에이, 앞일이 어찌 될 줄 알고. 지금은 아쉬운 게 없겠지만 나중에는 또 알아? 네가 정말 간절히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지.”
복면인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싫다는 걸 억지로 부탁하는 일은 없는 걸로 한다면 그렇게 하지요.”
“뭐야, 그럼 내가 이겨도 네가 싫다고 하면 안 벗어도 된다는 말이잖아.”
“싫으시면 그냥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이번엔 강진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냐. 그럼 그러도록 하자. 사실 네 얼굴을 그리 봐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대신 아주 곤란한 일을 시키도록 하지. 아주 재미있을 거야.”
“그건 이기고 나서 이야기하시지요.”
순간 복면인이 강진의 칼을 쥐고 그대로 찔러 왔다. 하지만 그 기세가 약하고 느려, 기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공격이었다.
강진은 활짝 웃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러고는 포도대장이 항상 들고 다니는 짧은 지휘봉 하나를 손에 잡았다.
“봐주지 않는다. 내가 저번과 같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말만 느셨군요.”
복면인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들어오자, 강진은 신 난 얼굴로 봉으로 칼 면을 치고는 그대로 오른발을 들이밀었다.
“하앗!”
강진이 몸을 부딪쳐 오는 순간 강한 압력을 느끼며, 복면인은 칼을 털어 압력을 분산시켰다.
“어디를!”
강진은 복면인이 자신으로부터 두 걸음 이상 떨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자석처럼 복면인이 움직이는 대로 계속 따라붙었다.
‘언제 금나수까지?’
아니, 금나수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진의 손에는 지휘봉이 들려 있었고, 손보다는 그 지휘봉으로 공격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무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무기를 들고서도 이렇게 가까이 붙으면 무기를 쓰기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
복면인은 어떻게든 강진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좌로 뛰었다가 우로 구르며 뒤로 몸을 날렸지만, 강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반면 강진은 희열에 찬 모습으로 신 나게 복면인을 따라붙었다.
무슨 특별한 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실전 없이 머릿속에만 떠올랐던 수많은 동작들을 복면인을 상대로 시험해 보고 있었다.
그간 무공을 쓰지 못해 몸이 녹슬어 가는 듯한 느낌까지 받던 그였다. 그나마 아직 왈패들이 나다닐 때에는 포두 대신 추포에 나서서 주먹세례를 날렸지만 요새는 그런 왈패들마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힘을 막 써도 대응해 주는 상대가 앞에 있으니 절로 신이 났다.
강진은 반 시진 가까이 그렇게 복면인에게 신 나게 달려들었다. 흥분이 지나쳐 복면인의 공격에 흠칫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결국 복면인을 제압하지도 못하고 제압당하지도 않은 무승부로 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그 칼을 회수할 겁니다.”
칼을 돌려주며 하는 복면인의 말에 강진은 칼을 받아 들며 말했다.
“다음에는 그 복면을 벗겨 주겠어.”
“그럼. 다음에는 반드시.”
강진은 떠나가는 복면인을 향해 크게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이겨야겠다는 호승심보다 몸의 희열이 더욱더 컸다.
“이기면 더 기분이 좋겠지.”
강진은 다음에는 반드시 승부를 내리라 다짐하며 집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무슨 일이시지?”
퇴청하자마자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정 총관의 말에 강진은 의아함과 반가움에 걸음을 서둘렀다.
“아버지, 강진입니다.”
“들어오거라.”
강진이 문을 들고 들어가니 방 안에는 이제원 말고 이외의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어, 정화야,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오라버니, 다녀오셨어요.”
서문정화가 반갑게 인사를 하자 이제원이 말했다.
“내가 불렀다.”
“무슨 일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서문정화가 말했다.
“오라버니, 우람이 오라버니에게 소식이 왔어요.”
“우람이가? 그래, 어디 있는데 그리 바쁘다냐?”
“사천에 계시대요. 저도 지금 장주님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에요.”
강진은 이제원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 상단에서 찾은 겁니까?”
“사천에 있어서 찾는 데 좀 오래 걸렸구나. 찾은 사람이 그 아이에게서 서찰을 받아 왔다.”
이제원은 품에서 서찰 두 통을 꺼내어 하나는 강진에게, 하나는 서문정화에게 주며 말했다.
“너희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더구나.”
강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읽었다.
강진 보아라.
연락을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 허나 너도 알다시피 시어사에 임명되는 순간부터 친지에게는 어떠한 연락도 없어야 한다.
사실 이리 서찰을 보내는 것도 큰 죄를 짓는 것이니 짧게 말하겠다.
네 아버님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서 동생들 소식을 들었다. 고맙다. 솔직히 너를 믿고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언제 이 임무가 끝날지 말하지 못하지만, 돌아갈 때까지 부탁한다. 돌아가서 이 고마움을 다 갚으마.
네 유일한 친구 서문우람이 쓴다.
짤막한 내용에, 강진은 피식 웃었다.
‘친지와 연락하지 말라는 건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라는 거지 생사 여부도 알리지 말라는 건 아닌데. 여전히 꽉 막힌 놈이라니까.’
강진이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서문정화가 눈물을 흘리며 서찰을 읽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읽는 듯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뭐라 쓰여 있더냐?”
그냥 두면 오늘 밤새 그러고 있을 기색이라 강진이 먼저 물었다.
서문정화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오라버니는 잘 있다고, 그리고 폐 끼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네요.”
“그것뿐이냐?”
서문정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오라비가 확실히 나보다 무심한 놈인 게 맞다. 몇 년 만에 연락을 해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얌전히 있으라는 거라니. 그 뛰어난 문장력은 다 어디다 두고.”
서문정화는 계속 나오는 눈물을 훔치면서 애써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성격이 원래 그런걸요. 무사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강진은 손을 뻗어 서문정화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돌아오면 이 오라버니가 아주 혼쭐을 내 줄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서문정화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하는 말에 강진은 웃어 주고는 이제원에게 물었다.
“아버님, 녀석 잘 지내고 있는 게 맞습니까?”
“소식을 전해 온 자가 정말 제대로 된 시어사라고 혀를 내두르더구나. 여비를 보태 주려 했으나 무척 화를 내서 곤란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제원도 감탄한 듯이 말을 이었다.
“장부야. 뜻을 세우고 밀고 나가는 것이 사내대장부야. 네가 친구는 잘 사귄 듯하다.”
“제 친구가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원은 정화를 보며 물었다.
“정화 너는 강진이를 어찌 생각하느냐?”
“네?”
정화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이제원이 말했다.
“스물이면 이제 혼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묻는 것이다. 네 신랑으로 강진은 어떤지 하고 말이다.”
“장주님! 그게…….”
“아버지!”
강진도 깜짝 놀라 이제원을 부르며 말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제원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자식의 혼인은 부모가 결정하는 것.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버지, 하지만…….”
“이놈! 아비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이제원이 큰 소리를 내자 강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제원은 언제 큰 소리를 냈냐는 듯이 중년에 어울리는 미소를 지으며 정화를 보았다.
“어떠냐, 네 신랑감으로 강진이는?”
“장주님…….”
서문정화가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히자 이제원이 계속 말했다.
“혹시 애모(愛慕)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냐?”
정화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러면 강진이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 내 아들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전시에 급제할 정도로 총명하고, 또 저 정도면 못났다는 소리 들을 외모도 아니고. 네 오라버니의 친구이면서 네 동생들에게도 잘 대하지 않느냐? 조건으로만 봐서는 괜찮을 텐데 말이다.”
“장주님, 그게…… 그게…….”
정화의 얼굴이 새빨개지자 이제원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정이 없다 하나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 싫은 기색은 아니니, 밀어붙이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정도로 못난 것이냐?”
“아닙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그렇다고 할 수 없는 물음이었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되지 않았느냐? 너만 허락한다면 네 오라비에게도 연락하마.”
“…….”
정화가 어쩔 줄 모르며 아무 말도 못 하자 이제원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그럼 네 오라비에게도 연락하마. 나가 보거라.”
정화가 급히 밖으로 나갈 때 이제원이 그녀를 불렀다.
“아가야!”
“네, 아버님.”
“하하하하!”
이제원의 웃음소리에 순간 정화는 자신이 실언했다는 걸 깨닫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달려 나갔다.
정화가 나가자 이제원은 미소를 지우고는 강진을 보며 말했다.
“불만이 있는 것 같구나.”
“아닙니다. 소자가 어찌…….”
“뭐가 불만이냐? 아비가 자식의 혼사를 결정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강진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소자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네 나이가 벌써 스물이 넘었고 내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 혹시 대가 끊기는 불효를 저지를 셈이냐? 그건 이 아비뿐만이 아니라 조상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죄. 그런 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강진은 불만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그리고 미처 생각 못 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자신이 독자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뜻이 제일 중요한 강진이었지만,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할 자신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