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75)
관존 이강진 (75)
곽노는 눈을 떴다.
매일 게을러지다, 강진이 포도대장이 된 후로 새벽마다 꼭 그를 찾아 인사를 했기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지금 눈을 뜬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녀석, 언제 오려나?”
곽노는 강진이 화가 많이 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찾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무정한 놈이라 하더라도 십 년의 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곽노는 겉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날은 꽤 밝았고, 바닥에 눈까지 쌓여 있으니 그 밝음이 더했다.
사박사박.
곽노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천천히 걸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 눈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역시 환경이 사람을 결정한다니까.”
곽노는 자신의 발자국을 하나씩 찍으며 마당을 천천히 돌았다.
‘응?’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고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뒷마당에 있는 발자국, 아니 발자국이라 하기에는 형상이 조금 특별했다. 마치 커다란 뱀이 지나간 듯이 약하게 스쳐 있는 묘한 발자국이었다.
‘도둑이 왔었나?’
그 다음 순간, 곽노는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둑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특이한 발자국을 새길 만한 사람.
‘이놈! 왔었구나. 그런데 왜 들어오지 않고?’
곽노는 입을 벌려 웃었다.
자신을 찾았지만 그 성격과 자존심에 들어오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걱정할 게 없네.’
강진이 한번 자신을 찾았다는 건 안 이상, 이제는 자신과 강진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먼저 찾는 쪽이 지는 거다.
곽노는 질 생각이 없었다.
자신 혼자라면 모를까, 이 씨도 있고 미영도 있다.
이제는 딸이 된 미영을 강진과 짝지으려면 강진이 숙이고 들어와야 했다.
“흐흐흐, 녀석, 답답해 죽을 것이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잠시 후 곽노는 아침밥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곽노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운동 삼아 마을을 천천히 돌았다.
“어? 뭐 하는 거지?”
곽노의 눈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런데 다들 조금씩 이상한 자세들을 하고 있었다.
곽노가 급히 다가가다 걸음을 우뚝 멈췄다.
난리였다.
마을 공터에는 사람의 몸 일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현장을 본 마을 사람들은 갓난아기 때 먹은 엄마 젖까지 게워 내었고, 몇몇 사람들은 혼절까지 한 상태였다.
그 광경을 보고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전장에서 수많은 시체를 봐 온 곽노뿐이었다.
오랜만에 맡은 피 냄새에 곽노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단 한 사람만이 생각났다.
‘강진아!’
곽노는 그대로 이가장을 향해 달렸다.
“문 열어!”
곽노를 알아본 호위 무사들이 문을 열었고, 곽노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강진아! 강진아!”
곽노가 미칠 듯이 외치는 소리에 정 총관이 급히 나왔다.
“어르신,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정 총관의 말에 곽노가 급히 말했다.
“강진은? 포도청에 나갔나?”
“왜 그러십니까?”
“잔말 말고, 강진은 포도청에 나간 건가?”
“어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포도청에서 자주 주무시니 거기 계실 텐데요.”
정 총관의 대답에 곽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급히 말했다.
“빨리 포도청에 사람을 보내게! 아니, 자네 나랑 같이 가 보세.”
“포도청에 말입니까?”
“그래, 포도청! 뭐 하는가? 빨리 서두르게.”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정 총관, 일단 먼저 가세! 제발 좀!”
숨넘어갈 듯한 곽노의 말에 정 총관도 왠지 가슴 한편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급히 마차를 불러 곽노와 함께 포도청으로 갔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정문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이 곽노를 알아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강진이는…… 포도대장님은 안에 있는가?”
곽노의 물음에 포졸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오지 않으셨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 있는 일이라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같이 오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털썩.
곽노가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어르신.”
정 총관이 급히 곽노를 부축하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도련님은 어디 계시는 겁니까?”
“내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곽노는 정 총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며 말했다.
“마을에 살인 사건이 있었네. 그들이 누군지 빨리 알아내 주게.”
“살인 사건요?”
“묻지 말고 가 보면 알아.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야 해. 그리고 녀석을…… 강진이를 빨리 찾아야 해.”
정 총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마을로 달려갔고, 곽노는 비틀거리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르신.”
포졸이 놀라 다가왔지만 곽노는 멍하니 허공만을 보았다.
‘어떻게…… 며칠 만에 이런 사달이……. 강진아, 제발 네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해 다오.’
* * *
“제…… 제…….”
감히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하지만 사내는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 뿐이었다.
사타구니가 온통 소변에 젖었지만 사내는 그런 사실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죽었다.
강진은 사내의 가슴에서 칼을 뽑아내었다.
벌써 수십의 피를 먹었지만 칼은 여전히 새것처럼 빛났다. 하지만 그 주인은 전신에 피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강진은 눈가에 튄 피를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상상 속의 지옥보다 더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피가 달빛에 빛을 발하고, 사방에 사람 쪼가리가 널려 있다.
철벅철벅.
피를 튀기며 강진은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그를 막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음을 내는 사람조차 없었다.
모두 죽었다.
하지만 강진의 청각은 피할 수 없었다.
분명 이 건물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강진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찾아냈다.
콰아앙!
바닥의 나무판이 산산조각이 나며 커다란 공간이 드러났다.
거기에서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강진이 훑어보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아이가 생겼고, 다른 사람들은 감히 강진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강진의 안면이 꿈틀거렸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뜻을 보면 마치 후회하는 것 같았지만, 음색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 기쁜 듯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기가 시커멓게 감싸고 있는 강진의 그 표정을 보았다면, 그대로 심장이 멈췄을지도 모르니까.
저벅. 저벅.
피에 물든 바닥을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에 귀가 찢길 듯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공자님!”
강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게…… 도대체…….”
복면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떨고 있음이 분명했다.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고 몸도 약간 휘청거리고 있었다.
“너는 왜 여기에 왔어? 호위는 필요 없다고 했잖아.”
강진은 담담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말했고, 복면인은 검을 뽑아 들었다.
‘저 칼! 그때 그냥 가지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복면인은 강진이 자신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강진의 자아가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약간은 안심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
그는 칼에 먹혔다.
복면인은 생사대적을 대하는 것처럼 정신을 집중하며 검을 내밀었다.
“뭐야, 싸우자는 거야? 너와는 싸울 일이 없는데.”
복면인의 자세에 강진은 담담히 말하면서도 칼을 복면인에게 겨누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 한 구를 발로 차 내며 말했다.
“아니, 오히려 잘된 것 같네. 시원하게 쓰고 싶었는데 이놈들은 한칼도 막지 못하더란 말이지.”
“그 칼, 내놓으십시오.”
“알잖아. 네가 이기면 가져가는 거고, 네가 지면…….”
강진이 순간 복면인을 덮쳤다.
“죽을지도 모르지.”
복면인은 허리를 뒤로 거의 직각으로 젖혀 강진의 첫 칼을 피해 내며 거리를 벌렸다.
‘노룡전진.’
자신과 강진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처음부터 수세에 몰리면 기회가 없었기에, 복면인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행하며 강진을 압박해 나갔다.
차차차차차창!
눈 몇 번 깜짝할 시간에 두 사람의 검과 칼은 열 번 이상을 부딪치고, 튕겨나고, 밀어냈다.
‘도식이 변했어.’
다시 십여 초의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복면인에게는 크게 의아한 것이 있었다.
강진의 도법이 변한 것이다.
바로 며칠 전 그와 무공을 겨뤘을 때에는 보지 못했던 초식들.
불가능한 일이었다.
며칠 만에 이렇게 변할 수는 없다. 어쩌면 강진이 숨겨 둔 초식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호승심으로 봐서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백중지세의 결투를 하던 그때에 이런 초식이 있었다면 순간 변화로 승리를 쟁취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그럼 고작 며칠 만에 익혔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기에는 도의 변화가 너무나도 완벽했다.
어찌 됐든 복면인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강진은 복면인의 초식을 알고 있었고 복면인은 그의 초식을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
하지만 복면인은 이제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생사투를 한다면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진은 상상할 수 없는 무재를 지녀 빨리 익히지만, 실전 경험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고수다운 고수와 손을 섞은 것은 자신과 소양풍 정도일 터.
‘하지만!’
복면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진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죽을 판.
다시 십여 초가 오갔고, 작은 자상들이 생겨났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던 복면인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결정을 지어야 했다.
강진을 죽이지 않으면서 제압할 수 있는 방법.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그를 제압하는 것.
일이 이리 커졌으니 지금쯤이면 이가장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터. 뒷수습은 그들이 해 줄 것이다.
복면인은 기회를 노렸다.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강진의 칼을 봉하고 그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 한 수를 얻어 낼 기회를.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에 익숙한 무명도법이라 이름 붙인 그 도법의 초식이 자신에게 시전되었다.
‘그래도 은혜를 갚고 죽어 다행입니다.’
복면인은 그의 칼을 가슴으로 막아 내며 강진의 대혈을 제압하기 위해 손목을 기괴하게 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야, 이놈아!!!!!!!!!!!!!!!!!!!!!!!!!!!!!!!!!!!!!!!!”
건물을 무너트릴 것 같은 천둥 같은 울부짖음.
순간 강진이 움찔했고, 복면인은 어쩌면 자신이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복면인은 가슴으로 막아 내려던 칼을 허리로 받고, 그대로 강진의 어깨를 찔렀다.
허리 쪽의 화끈함과 칼끝에서 내기가 터지는 것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 복면인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차아악.
하지만 뒤따라 들리는 소리에 복면인은 미소를 지었다. 강진의 칼을 떨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놈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그리고 뒷수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복면인은 안심하며 정신을 잃었다.
강진은 칼을 떨어트리고 왼손으로 어깨를 움켜잡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짜아악!
그리고 누군가의 손길에 얼굴이 돌아갔다.
“이놈아! 어쩌자고! 그리 철석같이 약속하지 않았더냐! 반드시 생각하겠다고, 현명하게 선택하겠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절규에 가까운 큰 외침.
하지만 강진에게는 그 소리가 꿈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피의 지옥.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큰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연신 뺨을 때리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았다.
강진은 한참을 그 사람을 보았다.
그러고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 나 어떡하지요…….”
“어떡하냐, 이걸……!”
심하게 흔들리는 목소리에, 곽노는 강진을 움켜잡고 울부짖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