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0)
관존 이강진 (80)
이유
사고를 치고 또 그것을 수습하느라 강진은 포도청을 자주 비웠지만, 포도청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갔다.
이미 강진이 뭐라 할 것도 없이 뒤에서 거래하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포도청은 법과 절차에 따른 처리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강진이 없어 불편한 게 있었다면 결재가 나지 않아 일 처리가 더딘 것뿐.
사실 불편할 게 뭐 있을까마는, 이달의 포두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달이 날 만한 일이었다.
이달의 포두는 강진이 매달 자신의 녹봉을 모두 걸어, 그달 성과가 가장 좋은 포두와 그 휘하의 포졸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녹봉 없어도 생활에 눈곱만큼도 지장이 없는 강진만이 할 수 있는 제도.
그걸 노리는 포두들 입장에서는 강진의 부재로 결재가 나지 않아 다른 일을 더 하지 못하니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이미 범죄율 없음에 가까운 신의현에서는 건수조차 많지 않으니 말이다.
하여간 강진이 돌아오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밀린 결재를 받고 움직이느라 포도청은 분주했다.
하지만 그것도 딱 반나절.
밀린 결재를 처리하니 강진은 어느 때처럼 할 일이 없어졌다.
‘아, 나도 나가서 때려잡고 싶은데 말이지. 그럴 만한 건수가 없어, 건수가.’
흉악 범죄나 마적단, 산적들이 내려오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종사관들이 말리든 말든 나가 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나가기가 뭐한 강진이었다.
‘이야기책에서는 주인공이 매일매일 나쁜 놈들 때려잡아도 다음 날이면 항상 새로운 나쁜 놈들이 나오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건가?’
별 잡생각이 다 나는 강진이었다.
평상시라면 이럴 때 무공 수련을 했겠지만, 반도를 정 총관에게 맡기는 바람에 할 건 내공 수련이나 달리기밖에 없었다.
거기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강진은 포도청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그러다 무기고 앞에서 눈에 띈 포졸 하나.
얼마 전 신입으로 들어온 포졸이었다.
평상시라면 별 관심이 없었겠지만 그날은 너무 무료해 강진은 그에게 말을 붙였다.
“어이, 신참.”
고개를 돌린 신입 포졸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포도대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부동자세로 크게 소리쳤다.
“포졸 이어동!”
강진은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큰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귀 밝아. 뭘 그리 소리를 질러.”
“죄송합니다!”
“소리 줄이라니까.”
“죄송합니다.”
바짝 긴장한 이어동을 보며 강진은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이어동. 힘든 건 없고?”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신입인데도 힘든 게 하나도 없단 말이지. 포도청이 좀 만만한가 봐?”
장난스레 하는 강진의 말에 이어동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 소리 줄이래도!”
“네! 네…….”
“그럼 고참이 괴롭혀? 그래서 힘든 거야?”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야? 힘들다는 거야, 안 힘들다는 거야?”
이어동이 울상을 지으며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자, 강진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됐다. 본관의 농을 그리 정색해서 받아들이면 좀 미안해지잖아.”
“아닙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히죽거리고 있었잖아.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강진이 무기고 안을 살피며 하는 말에 이어동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재고를 확인하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그랬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히죽거리지 않겠습니다.”
강진은 흥미롭다는 듯이 이어동을 보았다.
“무기를 보다가 기분이 좋아져?”
“그게 아니라…….”
이어동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곧 봉급을 받는 날이지 않습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하여간, 그런데?”
“제 손으로 돈을 버는 건 처음입니다. 그래서 봉급을 받아서 가족들에게 무슨 선물을 해 줄지 생각하다가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
순간 정적이 흐르자 이어동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근무 중에 딴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아냐, 잘 말했어.”
“네?”
“잘 말했다고.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첫 봉급을 받으면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 주고 그래?”
“대부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어동의 반문에 강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보다 돈이 많은 분이니 뭐 해 드릴 것도 없고…… 사부는 원래 용돈도 많이 드렸잖아. 칠덕네야 뭐…….’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걸 자신은 안 했다는 생각에 강진은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선물은 뭘 준비할 거냐?”
“내복을 사서 모두에게 선물하려 합니다.”
“내복? 겨울 다 지났는데?”
“그래도 첫 월급은 그렇게 하니까요……. 좋지 않은 생각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첫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내복을 선물한다는 말이지?”
“네.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까?”
이어동의 자신이 없는 말투에 강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보통 사람이냐? 보통 사람 일을 내가 어찌 알아? 그런 건 네가 알아야지. 보통 사람들은 첫 월급으로 내복을 선물하는 게 맞아?”
“네! 대부분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옆집 상덕이 형님도 첫 봉급으로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님이 부러워하던 걸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래, 그렇게 확신이 있어야 나도 안 헷갈리지.”
강진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본관에게 좋은 걸 가르쳐 주었다. 본관은 상벌이 분명한 사람이니 상을 내려야 하겠군.”
강진은 품에서 은자 한 덩어리를 꺼내 이어동에게 건넸다.
“상이다. 본관이 모르는 걸 알려 준 상.”
“네?”
이어동은 깜짝 놀라며 강진이 건넨 은자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고참들이,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종종 포도대장이 상을 준다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조심스레 은자를 받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알려 줬으니 내가 고마워해야지. 너 마음에 든다. 이어동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앞으로도 종종 본관에게 보통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알려라. 그럼 상을 내리마.”
이어동은 강진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첫 월급은 내복이란 말이지.”
강진이 중얼거리며 몸을 돌리고 이어동은 은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이었다.
“이어동!”
이어동은 급히 고개를 들었다.
“내일 본관을 찾아오도록. 성과가 좋으면 또 상을 내려 주마.”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강진이 사라지자, 이어동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게 뭐냐?”
곽노는 때늦은 내복을 받아 들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보면 몰라요? 내복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왜?”
“묻긴 뭘 물어요. 그냥 받아서 입으시면 되지. 사모 것도 사 왔으니 같이 입으세요. 요새 무슨 연인 옷이다 뭐다 해서 짝이 맞는 거래요.”
곽노는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날씨가 다 풀려서 며칠 못 입을 것 같다마는…… 일단 잘 입으마. 그런데 갑자기 뭔 일이냐?”
“그게…… 보통 사람들은, 흠흠! 처음으로 돈을 벌면 뭐 선물을 사 주는 거래요. 그래서 산 거니까 더 묻지 말고 받아요.”
곽노는 강진과 내복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누가 그러더냐, 처음 번 돈으로 내복을 사는 거라고?”
“아니에요? 다 그렇게 한다던데……. 이 새끼, 나한테 거짓말한 건가?”
강진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곽노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한다. 다만 뜻밖이라서 그런다. 네가 이런 생각도 할 줄 알다니 말이다.”
“몰라서 안 했던 거지, 알았으면 진작 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요.”
“그래, 고맙다. 정말 고맙다. 잘 입으마.”
곽노가 내복을 마치 애완동물인 양 쓸어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물었다.
“기쁘세요?”
“당연한 말을! 네가 이렇게 선물을 주는데 당연히 기쁘지.”
“그럼 다행이네요. 진작 알려 주지 그러셨어요? 그런 거라면 진작 선물했을 텐데.”
“사부는 고아라 선물을 줄 사람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이란 게, 달라고 해서 받으면 기분 좋은 것도 아니고.”
곽노는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 것도 샀느냐?”
“안 샀어요.”
“왜? 아버님 것부터 사야지.”
“그게…… 아버님은 돈도 많고, 훨씬 좋은 걸 입으시잖아요. 제 봉급으로 사야 되는 거라는데 그 액수로는 어림도 없어요.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안 산 거냐?”
“네.”
“에이.”
곽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물이란 마음인 거지, 어디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라더냐? 무명도 아닌 거적때기로 만든 거라도 네가 선물하는 거라면 기뻐하실 거다.”
“그럴까요?”
“당연하지. 얼른 다시 가서 아버님 것도 사 와라. 나한테만 선물을 준 걸 나중에 알게 되면 크게 상심하실 일이다.”
강진은 살짝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까지요?”
“이 사부가 언제 틀린 말 하는 것 봤느냐?”
“그래도 좀…….”
곽노는 강진을 떠밀듯이 하며 말했다.
“일단 사 오고 봐라. 쑥스러우면 사부도 그 자리에 있으마. 그럼 좀 낫지 않겠냐?”
“그럼…… 그럴까요?”
“그래야 한대도. 어여 다녀와라. 그렇지 않아도 미영이가 네 집에 가 있으니 겸사겸사 나도 가야겠다.”
“언제 옮기실 거예요? 가마도 한번 멨잖아요.”
“이 사부 아직 신혼이다. 날 풀리면 들어갈 거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사 올게요.”
“그래, 기다리마.”
강진이 나간 후 곽노도 준비를 서둘렀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 둬야 해. 미영이 녀석이 잘해야 할 텐데.’
곽노는 미영이 잘하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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