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1)
관존 이강진 (81)
“마시거라.”
이제원은 미영에게 차를 권하고는 자신도 찻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이제원이 말했다.
“내가 너를 왜 부른 것인지 아느냐?”
미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소녀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원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말을 돌려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마. 나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사실 곽 노사가 아니었다면 너를 이리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미영의 침묵에 이제원은 속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곽노의 말만 믿고 강진과 맺어 주기에는, 별 더러운 경험과 황당한 경험을 해 온 이제원이다. 무엇보다 미영이 강진을 좋아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이제원은 하기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돈이 필요한 거라면 내주마. 네가 얼마를 상상했든 그 이상을 줄 것이다. 이곳을 떠나겠느냐?”
이제원의 물음에도 미영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아니, 이제원이 이렇게 나올 줄 미리 안 것처럼 여유롭기까지 했다. 다만 그걸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현명한 여자였다.
“아버님께…….”
“아직은 아니다. 서둘러 가려 하지 마라.”
이제원의 확고한 목소리에 미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돈이라면 소녀도 많고, 더 벌고자 했다면 더 벌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기녀였고, 저를 잡고자 한 사내들은 많았으니까요.”
“…….”
“하지만 제가 지아비로 결정한 사람은 이 상공뿐입니다. 결정한 순간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상공을 위해 위험도 무릅쓰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그래서 그에 상응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이제원의 말에 미영이 좀 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현에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
“그 여자아이는 어떤 가난한 부부의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가난이 뭔지도 몰랐고, 별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부모들은 당신들은 며칠을 굶으면서도 그 여아에게만큼은 매 끼니 미음이라도 넘기게 했으니까요.”
이제원은 침묵했고 미영은 계속 말했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은 만큼, 여자아이는 귀여웠답니다. 아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아름다움까지 갖추었답니다.”
미영의 두 눈이 번뜩였다.
“죄악이었지요. 절대 그래서는 안 되었지요. 가난한 집에서 예쁘게 태어난다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있음을, 그 여자아이는 절대 알지 못했을 겁니다.”
미영은 자신의 얼굴에 손톱을 세워 올리며 말했다.
“그걸 그때 알았다면 아마 자신의 얼굴을 그어 버렸을지도 모르지요.”
“계속 말하거라.”
“여자아이는 점점 예뻐졌고, 부모는 그런 여아를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아이의 소문을 듣고 이미 꽤 잘사는 집에서 매파까지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미영은 문득 이제원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어르신 집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될 만큼의 재력이긴 했으나, 가난한 집에서 봤을 때 평생 먹을 걱정 하지 않을 정도의 집이라면 잘사는 집입니다.”
“…….”
“그렇게 너무 예뻐지다 보니 여아를 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여아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지요. 그러다 도와준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미영의 표정이 순간 확 변했다. 그리고 이를 악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아의 부모는 그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대가를 달라고 했지요. 그 대가는 당연히 그 여아가 되겠지요. 그야말로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부모는, 결국 그 여아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미영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붙잡히고 말았고, 그 부모는 그들에게 죽었습니다. 바로 그 여자아이가 보는 그 앞에서 말입니다. 그 여자아이는 너무나 큰 충격에 몇 년간 말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이를 어느 곳에 팔았습니다.”
“…….”
“그곳은 광인루였습니다. 그들로서야 제일 비싼 값을 부를 수 있는 곳에 판 것이지만, 그 여아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광인루는 좀 특별한 곳이었으니까요.”
그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가 들어야 할 건, 미영이 왜 그렇게 강진을 따라다니는지 그 이유였다.
미영은 계속 말했다.
“여자아이는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 여자아이를 가르친 선생들은 사정을 듣고 복수할 길이 있다고 알려 주었지요. 그래서 여자아이는 복수를 하기 위해 악착같이 기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미모도 가꾸었지요. 그리고 힘을 가졌습니다. 낭인 수백을 살 수 있을 돈을 모았고, 달콤한 말 한마디면 놈들을 처리해 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녀는 힘을 얻었습니다.”
“…….”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해 그놈들을 죽이기로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미영은 이제원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놈들 벌써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날,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던 포도청에서 놈들을 딱 죽지 못할 정도로만 때려서, 폐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굶어 죽었답니다.”
“으음.”
“너무 억울했습니다. 여태 뭐 하다 하필 지금, 그녀가 힘을 가진 순간에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녀는 그게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악착같이, 복수만을 꿈꾸며 악착같이 살아왔던 그 세월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이제원은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하지만 그것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녀는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소문은 계속 들려오더군요.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던 포도청이 변했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는 그곳에 의지하고, 누군가를 칭송한다고 하더군요.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농락하던 놈들은 숨을 죽이고 누군가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삶!”
미영은 이제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 사람에게 맡겨야 되지 않겠냐고.”
이제원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원망해야 하는 거 아닐까? 멀리하고 증오해야 하는 거 아닐까?”
“무슨 이유로요? 그녀가 힘들 때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이유로요? 아니, 정말 그녀가 그를 원망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장주님, 곽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제원은 대답했다.
“들어오십시오.”
곽노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미영과 이제원을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군요. 장주님, 내 나갔다가 잠시 들어와야 하려나요?”
“아닙니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이제원의 대답에 곽노는 슬쩍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딸 참 똑똑하지 않습니까? 말도 잘하고, 성격도 좋지요.”
이제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미영에게 말했다.
“나가 보거라. 그 아이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 말이다.”
미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곽노는 이제원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기며 물었다.
“아직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십니까?”
“…….”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 확실한 분 아니십니까? 저를 이 집 식객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셨듯 말입니다.”
이제원은 고개를 돌려 곽노를 보며 물었다.
“노사께서 저 아이를 그리 강진과 짝지으시려는 이유가 여자아이 이야기 때문인 겁니까?”
“그걸 떠나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모든 조건에 맞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그 아이는, 아니 제 딸아이는 사람을 배신할 성격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잡아야지요.”
이제원은 잠시 생각했다.
갈등이 되었다.
란아처럼 한없이 아들을 품어 줄 수 있는 여인이 며느리가 되기를 바랐다. 미영이 그렇게 품어 줄 거라 기대하기에는 그녀의 독기가, 그리고 그 출신이 마음에 걸렸다.
다만 이유는 확실히 알았으니 마음이 놓였다.
곽노의 말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배신할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최소한 상처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심은 해야 했다.
“확인하도록 하지요. 그 여아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그렇게 해야지요.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그런데 사실이라면 어찌 되는 겁니까?”
곽노의 기대에 이제원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본처는 안 됩니다. 우리 이가가 유서 깊은 가문은 아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문이니까요.”
곽노는 일단 이제원의 인정을 받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솔직히 본처 자리까지는 그도 바라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이가장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문이니까.
‘하지만 아들이라도 하나 떡하니 낳아 주면 달라지지 않겠어? 손이 귀한 가문이니 말이야.’
곽노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제원이 말했다.
“우람이라는 아이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아, 정화라면 저도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참한 아이이니까요.”
곽노도 인정한다는 듯이 하는 말에 이제원은 심각한 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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