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4)
관존 이강진 (84)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은 식었지만 곽노의 호언장담대로 강진은 음식 맛이 무척 좋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아. 미리 이야기도 다 해 줬으니,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쁜 놈이라 욕은 듣지 않겠지. 사부도 뭐라 하지 않을 테고.’
아직 확실히 결정을 내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리 변명할 구석을 만들어 두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일단 시도를 해 본다는 것 자체가 강진으로서는 크게 마음먹은 일. 그걸 탓할 수는 없을 터였다.
식사가 끝나고 미영과 이 씨가 상을 치우고 있을 때, 곽노는 강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잘 생각했다.”
“계집이 저리 해 보겠다는데 사내가 되어서 꽁무니를 뺄 수는 없잖아요.”
“흐흐흐. 누가 뭐래냐. 잘했대도.”
“근데 왜 그리 웃으세요? 포도청에서 그렇게 웃는 놈들은 모두 아작이 났는데.”
“이놈이! 사부한테 무슨 소리를 하냐. 아니, 말 나온 김에, 그 기찰포졸이라는 거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예요. 나쁜 놈들을 잡으려 하는데 관할, 관할 따지니 짜증 나잖아요.”
“그러니까 왜 갑자기 나쁜 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이 났냐고.”
강진은 그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인이 되라면서요. 이제 신의현에서는 방법이 없어요. 좀도둑도 보기 힘든 판에 뭔 수로 대인이 돼요. 그러니 외부에 있는 나쁜 놈들을 잡아야지요.”
“그뿐이냐?”
“그럼요?”
곽노는 강진의 볼을 꼬집듯이 만지며 말했다.
“이놈아, 솔직히 말 안 할래? 이유 없이 네가 광주까지 가서 나쁜 놈들을 때려잡을 리 없잖냐.”
“이유가 왜 없어요? 대인이 되잖아요.”
“또. 다른 건?”
강진은 곽노가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사부니까.’
강진은 입을 열었다.
“사실 다른 이유도 조금 있긴 해요.”
“말해 봐라. 뭐냐?”
“저번에 사고 쳤을 때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이 장주가? 뭐라 말했는데?”
강진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포도대장이 나쁜 놈들 때려잡는 건 당연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데는 뭘 그런데예요. 아버님 말씀대로 나쁜 놈들 때려잡으려고 하는 거죠. 또 어떤 놈에게 약속한 것도 있어서 그걸 지키려 해요.”
강진이 송두이와의 이야기를 해 주자 곽노는 생각했다.
‘송두이라는 놈의 이야기는 핑계일 테고. 결국 그 사고의 기억을 털어 내지 못했다는 뜻인데……. 왈패들을 잡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것인가?’
강진의 생각이 기괴하긴 했으나 곽노가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또 나쁠 게 없는 방법이었다. 법에 따른 절차만 지키면 말이다.
‘뭔가 집중할 것이 있긴 있어야 해. 요새는 무공에도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곽노는 결정을 내리고는 말했다.
“나쁜 놈들을 잡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는 건 네가 직접 손을 쓴다는 이야기인데, 또 사고 치지 않을 자신은 있는 거냐?”
강진은 곽노를 직시하며 말했다.
“사부, 저 강진이에요. 두 번은 실수 안 해요. 제가 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그건 정말 죽일 수밖에 없을 때일 거예요.”
“것봐라, 미리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지 않냐?”
“그럼 어쩌라고요?”
“만들어야지. 네가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을 때가 언제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겠지.”
강진은 곽노의 말에 수긍했다.
사부 말이 맞다. 핑곗거리를 두면 또 핑계를 대면서 머리로는 원치 않는 일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만들까요?”
“고민해 봐야겠지.”
두 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정화야.”
앙상한 꽃가지를 멍하게 바라보던 서문정화는 강진의 부름에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뭘 그리 멍하게 보고 있어.”
“그냥요. 나름 이것도 예쁘다 싶어서요.”
강진은 정화에게 서서히 다가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더니 물었다.
“훈이랑 미아는?”
“훈이는 정 총관님하고 있고, 미아는 칠덕이 아줌마랑 같이 있어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훈이가 상재가 있다더라. 우람이처럼 학문에 뜻이 없으면 상인도 나쁘지 않을 거야.”
“자기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입을 열어야 했고, 그 사람은 강진이었다.
“이 오라비는 말을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너에게 물을 게 있어.”
서문정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랑 혼인할 생각이 있는 거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있는 것이냐?”
“…….”
“우람이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네 뜻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정화는 한참 침묵하다 강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오라버니는요? 제가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어. 이 오라비는 남녀 간의 정 같은 건 잘 모른다. 다만 너희를 좋아할 뿐이지. 우람이의 동생이고, 내 동생이잖아. 혼인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나쁘지 않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보단 네가 훨씬 편하지. 너도 그럴 것이고.”
“…….”
“중요한 문제이니 확실한 네 의사를 밝혀야 해. 나는 네가 아파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나라도 좋다면 최선을 다하마.”
정화는 얼굴을 심하게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강진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냐? 나는 그런 거 싫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다. 네가 확실하게 말해 주길 원한다.”
서문정화는 자존심이 상했고, 이런 걸 대놓고 묻는 강진이 바보 같다 느꼈다.
“오라버니는 이런 걸 꼭 말로 해야 아시는 건가요?”
“응. 말로 해야 안다. 나쁜 놈들의 표정은 대충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 하지만 추측건대 너도 싫지는 않은 것 같구나.”
정화는 잠시 꾸물거리다 물었다.
“미영이 언니는 어찌 되나요?”
“미영이랑도 혼인해야지.”
정화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순간 강진이 계속 말했다.
“네가 본처가 될 테고, 그녀는 첩이 되겠지. 아버님은 그리 원하고 계시고, 내 생각도 그래.”
정화의 안색이 순간 밝아지다가 다시 우울해지며 말했다.
“하지만 미영이 언니가 저보다 훨씬 예쁘고 오라버니에게 더 도움이 될 텐데요…….”
“그거랑 상관없지. 정이란 거…… 음, 너랑은 거부감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우람이가 자기 동생을 첩실 자리에 보낼 리 만무하고.”
정화는 살짝 토라졌다.
자신이 말은 그리해도 강진이 아니라고 말해 주길 원했다. 자신이 더 예쁘고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해 주길 바랐다. 사실이 그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람이 오라버니가 아니라 하면 아닐 수도 있다는 거군요.”
“하나 알려 주마.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을 해. 그리고 친한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너에게도 거짓말은 안 하고 싶다.”
“저도 오라버니가 사실을 말해 주길 원해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네 말이 맞아. 나한테 너는 친근한 존재이지만, 우람이 동생이라 더 잘 대해 주고 싶은 거다.”
“…….”
“화났냐? 하지만 혼인을 할 생각이라면 너는 나에 대해 더 알아야 해. 사부 말에 의하면 혼인은 각자의 것, 각자의 편이 생기는 거라더라. 그러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속마음을 숨겨서는 안 되잖아.”
서문정화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복잡했다.
강진을 좋아하고 혼인도 하고 싶었다.
강진에 대한 나쁜 기억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어릴 때에는 오라버니의 친구로 매일 맛있는 걸 주려고 하던 사람이었고, 커서는 듬직한 사내였다. 잘생기고, 능력 있고, 자신에게 잘해 주려는 사람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진은 자신에게 남녀 간의 애정이 없는 것같이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면전에서 저리 말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러했다.
강진이 그때 말했다.
“미영이보다 네가 내 편이 되는 게 훨씬 좋다. 사부처럼 나를 믿어 줬으면 좋겠다. 네가 그렇게 노력해 주면 나도 네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거야. 그러니 답을 줘. 내가 네 편이 되어도 괜찮을지.”
“…….”
“며칠 더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네가 판단이 서지 않으면 우람이 판단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 우람이는 똑똑한 녀석이니 너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 줄 거야.”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너희는 내 동생들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강진이 서문정화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녀가 그를 불렀다.
“오라버니.”
“응.”
“우람이 오라버니가 안된다고 하면 오라버니는 절 포기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강진은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게 서문정화에 대한 자신의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강진이 대답했다.
“녀석이 싫다고 해도,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녀석의 고집을 꺾어 볼 시도는 할 거야. 이게 답이 될까?”
정화는 강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됐어요. 저는 오라버니랑 혼인하고 싶어요. 대신 우람이 오라버니가 안 된다고 했을 때, 시도만이 아니라 반드시 승낙하게 하세요.”
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네 오라비가 무섭긴 해도 고집은 내가 더 세.”
* * *
“또 사라져요?”
강진의 물음에 이제원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꽉 막힌 녀석이라는 건 알지만 대단하구나. 우리가 자신을 찾는 걸 안 후로 더 조심히 다니는 모양이더구나.”
“그런 녀석인걸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다. 지금쯤이면 찾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천에는 우리 기반이 없어서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럼 계속 기다려야 할까요?”
이제원은 생각하다 반문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일단 미영이와 혼인을 하겠습니다. 사부가 계속 눈치를 줍니다.”
“그렇겠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걱정하더구나.”
“이미 결정한 일인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강진은 그리 대답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렸던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원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걸 꼭 해야겠느냐? 쉽지 않은 일이다. 중도에 포기하면 네 명성만 갉아먹을 거야.”
“그렇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아비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너무 튀어도 문제가 생기더구나. 너무 튀는 거 아니겠느냐?”
“남들처럼 해서 언제 우리 이가장의 명성을 드높이겠습니까? 이번에도 소자를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강진의 강력한 어투에 이제원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돕지 않아도 되겠느냐? 광동 태수와는 안면이 있으니 수월할 거다.”
원래라면 아버지의 도움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겠지만 이 문제는 달랐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야 상처 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사업에 타격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 하고 싶습니다.”
이제원은 말없이 강진을 보았다.
자신이 안된다고 하면 강진이 일을 벌이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왜 그렇게 이 일에 나서고 싶어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걱정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들의 기를 죽이기 싫었다. 또 계속 말리면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아니, 타격이 있어도 된다. 서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지만 이 아비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아비 걱정을 하면서 큰일을 할 수는 없는 법. 마음껏 해 보거라.”
이제원의 승낙이 떨어지자 강진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그 모습에 이제원이 살짝 주의를 주었다.
“자신만만한 건 좋지만 자만은 하지 말거라. 아비는 네가 두 번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걸 믿는다.”
강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곽 노사에게는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겠다. 결정된 일, 미뤄 둘 필요는 없겠지.”
강진의 혼인이 결정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