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5)
관존 이강진 (85)
거래
마을 잔치가 열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소문은 헛소리였다. 소문난 잔치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가장은 이미 두 번의 큰 잔치를 벌였고, 사람들은 모두 만족했기에 소문은 크게 난 잔치였다.
선남선녀보다는 미남미녀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잘난 사람들의 혼인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리고 먹고 받은 것만큼 두 사람을 열렬하게 축복해 주었다.
밤이 되었다.
얼굴을 홍사로 가린 미영이 앉아 있고 강진이 다가갔다.
“혼인식은 마음에 들었어?”
“조용히 치러도 되었는데…… 처보다 첩을 먼저 들였다고 말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게 먹였는데 그딴 소리 하면 다 뱉으라고 해야지.”
미영이 풋 하며 웃음소리를 내자 강진이 말했다.
“혼인 두 번 할 것도 아닌데 제대로 해야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미영이 처음으로 강진의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
“나를 믿고 따라 주기로 해서 고맙다.”
“그렇게 말할 줄도 아세요?”
“나 바보 아니야. 바보였다면 과거에 급제하지도 못했겠지.”
강진이 정색을 하며 하는 말에 미영이 급히 말했다.
“소첩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나 바보 아니래도. 그것도 당연히 알지. 너도 당황할 때가 있구나. 매사 당당하더니.”
미영이 얼굴을 붉히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보기는 좋네. 나한테 자신을 다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공…….”
“그렇게 살자. 서로에게 다 보여 주면서.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혼인을 하고 나니 저절로 그렇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
강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미영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거뒀다.
“그럼 이제 첫날밤을 보내야지.”
밤은 깊어 갔다.
* * *
눈을 뜨니 온기가 느껴졌다.
‘옆에 사람이 있다는 거, 나쁘지 않네. 따뜻하고.’
강진은 옆에 누운 미영을 보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었다.
‘내 여자란 말이지.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내 여자.’
예뻤다.
예쁜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옆에 누워 자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예뻤다. 아랫도리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
미영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이 신랑이라는 걸 자각했다.
미영은 그를 힘껏 안아 주었다.
“상공, 드세요.”
강진은 미영에게 인삼 죽을 받아 들더니 말했다.
“상공이라는 호칭은 앞으로 쓰지 마. 그리고 소첩이라는 표현도 쓰지 말고. 아내가 아니라 마치 하녀 같은 기분이 드니까.”
“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이 있어. 일이 잘 풀리면 집을 비울지도 몰라.”
“무슨 일요?”
강진이 당연하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포도대장에게 일이 뭐겠어? 나쁜 놈들 잡는 거지. 오늘 당장은 아니지만 며칠 후에는 집을 비우게 될 거야. 나 없는 동안 아버님이랑 사부 잘 모셔. 칠덕네도 나한텐 어머니 같은 사람이니까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면 곤란하고.”
“소녀,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정 총관도 그래.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일해 와서 내겐 삼촌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뭐가 필요하면 그에게 말하면 다 해 줄 거야.”
“네.”
강진의 당부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서문 남매한테도 신경 잘 써. 우람이랑 내 관계는 사부한테 들었지?”
“네.”
“탐탁지 않아 할지도 모르지만, 당신보다 어린 사람들이니까 무슨 일이든 당신이 양보했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지?”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미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진이 자신을 당신이라 불렀다. 그 달콤한 단어만으로도, 미영은 강진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당신이 내 편이듯이, 정화도 내 편이 될 사람이야. 부탁해.”
또다시 들려오는 달콤한 단어, 부탁한다는 말에 미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잘 챙길게요.”
“혼인하니 좋네. 내가 해야 할 것을 나눠 지는 것 같아서 편하네. 당신이 수고해 줘.”
미영의 얼굴이 더더욱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강진은 밖으로 나왔다.
새벽이라 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깥공기는 상쾌했다.
강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좋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여태 기분이 좋다고 표현할 순간은 많았지만, 오늘은 그때와는 정말 달랐다. 마치 새로 태어나서 새롭게 느끼는 기분 같았다.
기쁨.
아니, 흥이 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흥이 나니 몸속의 진기가 절로 반응해 바깥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강진은 반도를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반도에서는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휘이이익!
대기를 반도가, 그리고 아지랑이가 가르기 시작했다.
반도를 덮은 아지랑이는 끝없이 솟아나더니 어느새 반도의 크기를 넘어섰다.
이 정도면 절정고수만이 뽑아 낼 수 있는 도기를 넘어, 극강의 고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도강의 수준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도강.
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몇 달째 팔 단공에 머물러 있던 천단공의 기운이었다.
구 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흐름, 깨달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그 하늘의 뜻이 강진을 찾아온 것일까?
강진은 자신도 확실치 않은 방법으로 반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몸속의 내기가 의도하지 않은 혈도로 휘몰아쳤다.
강진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하지만 문제는 강진의 자아가 무척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한도라 불리며, 그 누구도 다루지 못했던 저주받은 칼에 먹히지 않은 이유도 강진의 그런 자아 때문이었다.
강진은 무아지경을 스스로 깨 버렸다.
“아!”
순간, 뭔지는 모르지만 진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강진은 그것조차 탐탁지 않았다.
“뉘미. 내가 해야 재미있는 거지.”
강진은 아쉬움을 깨끗하게 버렸다.
그리고 그건, 강진은 알지 못했겠지만 무척 현명한 판단이었다. 상승의 경지에 이를수록 주화입마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능력을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착각.
명문의 제자에게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사형제들과 스승들이 돌봐 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혼자였다.
강진의 재능이 그 순간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는 법.
어찌 됐든 강진은 위험할 수도 있는 순간을 멈췄다.
‘이걸로도 충분하잖아.’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이 강진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요새 수련을 게을리하긴 했네. 하도 안 하다가 해서 즐거웠던 건가.’
시들하던 무공에 대한 흥미가 다시 찾아왔다.
방금 그 순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기에, 강진은 언제든지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열심히 해야지.’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곽노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기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화산파.
화산을 이끄는 지휘부라 할 수 있는 화산 장문 나경문과 구장로, 그리고 각 전을 담당하는 일대제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그동안의 조사를 보고하고 경청하고 추론하기 시작했다.
“그럼 결국 마교라는 뜻인가?”
나경문의 물음에 그의 사제이자 매화전의 전주 구봉수가 대답했다.
“광동에 성 사제를 상대할 사람은 많지 않고 그 많지 않은 사람이 모두 구룡무관주의 회갑연에 있었으니 그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나경문은 의아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왜? 마교의 현 교주는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는데, 갑자기 왜?”
좌중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리 조사해도 자신들이 마교와 척을 진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정사대전의 일을 따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흐른 상태였다.
그때 장로 중 한 명인 성모채가 입을 열었다.
“마교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먼저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화산이 마교와 엮일 일이 없어. 우리를 노린다면 광동까지 가서 성 사질을 암살하기보다는 바로 여기를 쳐 왔을 터.”
“사숙의 말씀은 그들이 우리를 노리고 성 사질을 죽인 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상황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를 노린 게 아니라, 무슨 일을 도모하던 중에 성 사질이 말려들었다는 것이 훨씬 말이 될 걸세.”
“으음.”
“그들의 출현에 다른 문파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을 거야. 이렇게 된 거, 무림첩이라도 돌리지.”
“무슨 이유로 말씀입니까?”
“마교가 나타났네.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나경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강진은 광주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휴일도 아닌데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할 수는 없는 법.
현령에게 보고를 해야 했고, 태수에게 미리 연락해 약속도 잡아야 했다. 그게 절차다.
‘좀 나중에 할까?’
두 종사관이 부지런히 준비하는 걸 보며 강진은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되면 집에 못 돌아가게 되는데…… 그럼 이제 다시 혼자 자야 되는 건가?’
스스로도 색을 좋아할 줄은 몰랐으나, 막상 아내가 생기니 괜히 더 생각나는 듯했다.
‘그냥 객잔 하나를 빌려서 살림을 차려 둬?’
강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미영이도 자리를 잡아야 하니. 아버지랑 사부도 돌봐야 하고.’
강진은 별 잡생각을 다 하며 관청 뒤편 공터로 발을 옮겼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해 무공에 흥미를 잃었다 다시 붙은 상태였다. 그 기분으로 다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공터에 자리를 잡고 반도를 뽑으려는 순간, 강진은 인기척을 느꼈다.
“이제 거기 숨어 있지 않아도 돼.”
담벼락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복면인이었다.
“제정신이냐? 포도청에 복면을 하고 오면 어떡해?”
“잘 지내셨습니까?”
복면인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하는 말에 강진은 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물어야 할 말이지. 괜찮냐?”
“보시는 대로.”
“중했을 텐데…… 후유증 같은 건 안 생기겠지?”
“장주께서 신경을 써 주신 관계로 그런 거 없습니다.”
강진은 그제야 얼굴을 펴며 말했다.
“다행이다.”
“설마 저를 걱정하셨습니까?”
“걱정했지. 기억한다, 네가 왜 다친 건지는.”
복면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위험하다고 수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호위 무사 주제에 추궁하기는. 그래도 덕분에 봉급도 오르지 않았어?”
“많이 올랐지요. 그렇지만 제 목숨값으로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습니다.”
“그럼 더 올려 줄게. 그러니 더 추궁하지 마.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제가 말씀드렸을 때에도 그렇게 호언장담하셨지요.”
강진은 순간 짜증이 일었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는 충분히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