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6)
관존 이강진 (86)
“미안하다.”
순간 복면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많이 변하셨군요.”
“변해야지. 그렇게 하기로 했어. 인정할 건 인정해야 두 번 실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복면인은 미소를 지었다. 강진은 보지 못할 미소였다.
“축하드릴 일이군요.”
“그게 뭐 축하할 일이라고.”
“공자님의 약점이 하나 사라졌으니 축하드려야지요.”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하는 복면인의 말에, 강진도 멋쩍은 듯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그렇게 되는 건가? 네 덕분이다.”
“광주에 가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응. 그러려고.”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괜찮아. 더 쉬어. 괜히 상처 덧나면 골치 아파. 상처는 아직 덜 아물었을 거 아니야?”
“밥줄 끊기기는 싫습니다.”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라면 평생 고용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나저나 그 복면 좀 벗으면 안 될까? 이제 쓸 이유가 없잖아.”
“그건…….”
“네가 내 호위 무사라는 것도. 그리고 여자라는 것도 다 아는데 뭐하러 써?”
복면인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게……. 이게 더 편합니다.”
“포도대장이 복면인과 같이 움직이면 사람들이 참 좋게 보겠다.”
“예전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안 돼. 내가 할 일을 생각하면 그 복면은 무지 거슬려.”
복면인이 계속 고개를 젓자 강진은 그를 살피듯 보며 말했다.
“창피해서 그런 거냐?”
“네?”
“복면을 벗지 못할 정도로 못생겨서 창피한 거냐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그런데 왜 안 벗는 건데? 그 이유밖에 없잖아.”
복면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치? 너무 추녀라서 복면을 못 벗는 거지? 이해해. 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나도 많이 봤으니까 괜찮아. 충격 먹지 않을 자신 있다고.”
강진의 계속되는 놀림에 복면인은 부들부들 떨다 몸을 홱 돌렸다.
“야! 어디 가려고?”
“더 이상 저급한 언어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호위는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은 하지 마시길.”
복면인이 담장을 향해 몸을 날리자, 강진도 몸을 날려 그녀의 앞을 막았다.
“궁금하잖아. 얼마나 못생겼는지.”
복면인은 허리에 찬 검을 슬쩍 올리며 말했다.
“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걸 시험해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런데 상처 괜찮겠어?”
강진의 물음에 복면인은 작전을 바꿨다.
“대인이 되시려는 공자님이 상처 입은 여인을 희롱하시려 하는 겁니까?”
“응?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곧 상처가 아물 테니 그때 보도록 하지요. 저를 제압하고서 복면을 벗겨 보세요.”
강진은 복면인에게서 물러났다.
“그것도 재미있겠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묘한 눈빛으로 강진을 보던 복면인이 사라졌다.
“정말 궁금하네. 얼마나 못생겼으면…….”
강진은 중얼거리며 반도를 뽑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태수청에 도착한 강진은 옷차림을 확인했다.
현령까지는 무시해도 되지만 태수라면 제대로 상대해야 한다. 태수는 한 성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그야말로 광동성 안에서는 황제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이제원은 걱정하지 말라 했으나, 강진은 겸손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꿀릴 마음도 없었다.
자신도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낮다고 판단이 되는 순간 바로 누르려 들 것이다. 그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도 품계가 낮으니…… 이래서 사람은 올라가야 한다니까.’
그게 필요하든 아니든 일단 나라에서 봉급받는 입장이라 자신의 상관, 그것도 한참 높은 상관이었기에 강진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강진은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는 관리 하나에게 안내를 받아 태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서는 노년의 관리 하나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광동 태수 서친수였다.
위엄 있는 그 모습이 마치 학당의 전인문을 보는 것 같았다.
‘꼬장꼬장하겠네.’
강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신의현 포도대장 강진이 태수 나리께 인사 올립니다.”
“…….”
강진은 허리를 숙인 채 그대로 눈동자만 위로 올렸다.
서친수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류만 살피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란 말이지.’
강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존심이 상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상관이고 자신은 아랫사람이다. 그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강진이 누려 온 것을 당연시했던 것처럼, 그도 당연하게 이럴 수 있었다. 자신과의 차이는 방법의 문제일 뿐.
그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허리가 아프고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고통이겠지만, 강진에게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조금 지루할 뿐이었다.
마침내 서친수가 서류에서 눈을 떼고 강진을 보았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언제 왔는가? 사람이 인기척을 좀 낼 것이지.”
강진은 허리를 숙인 그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태수 나리께서 공무에 집중하시는 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서 고개를 들게. 도대체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 겐가.”
그제야 강진은 허리를 펴고는 서친수를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신의현 포도대장 강진이 태수 나리께 인사 올립니다.”
서친수는 그런 강진의 모습을 보며 만족했다.
한 현의 포도대장 따위야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배경이 배경인 만큼 건방지고 막무가내로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기를 죽이기 위해 모른 척하며 골탕을 먹였는데 참아 냈다.
‘제법 처세를 알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저번에는 왜 그렇게 막무가내였을까?’
서친수는 사위 남공진의 일 때문에 크게 체면이 깎인 일을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조용히 자신을 찾아와 방법을 물었어야 한다. 하지만 눈앞의 젊은 관리는 그 소란을 피워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켰다.
서친수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는데, 오늘 보니 또 그런 것 같지 않아 조금 놀랐다.
“현령의 보고를 받고 본관은 매우 흡족했네. 자네가 부임한 이후로 신의현에 범죄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더군. 다른 자들도 자네를 본받았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소관은 모두 태수 나리께서 내려 주신 관리 지침에 따른 것뿐, 제가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서친수는 그런 관리 지침을 내려 준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일 아니어도 매우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공을 자신에게 돌리니 나쁘지는 않았다.
“허허, 본관은 그런 지침을 내려 준 적이 없네. 젊은 사람이 아부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아부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관리의 청렴함은 모두 위에서 내려오고, 성의 최고 어른이신 태수 나리께서 중심을 잡아 주시니 아랫것들이 어찌 감히 딴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요.”
기름칠을 한 듯 강진의 입에서 술술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하느라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은 원래 이리 돌아가는 법인데.’
그런 강진의 속을 서친수도 모르지 않았다.
삼십여 년 전 자신도 저런 말을 태연스럽게 했고, 나이 들어서는 수없이 들어 오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다. 자신에게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는 것.
서친수는 속으로 크게 즐거워하며 입을 열었다.
“본관이 더 정신을 차려야겠군. 자네 같은 전도유망한 젊은 관리에게 본을 보이려면 말이지.”
“과찬이십니다. 소관은 그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자네 마음은 알겠고. 본관에게 이리 독대를 요청한 이유가 무엇인가? 체계가 있고 절차가 있는데 이리 만나는 건 매우 좋지 않은 법일세.”
“네. 원래라면 소관의 직속상관인 현령을 걸쳐 단계를 밟아 가야겠지요. 하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이리 무례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말해 보게. 무슨 일인가?”
강진은 서친수를 직시하며 말했다.
“기찰포졸이 되고 싶습니다.”
“기찰포졸?”
서친수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로 대충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성내 관리를 감사하겠다는 건가?”
“관리를 감시하는 것보다는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소관의 구역에…….”
강진은 기찰포졸이 되고 싶은 이유를 찬찬히 설명했다.
“그런 거라면 곤란하네.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 내 직속으로 기찰포졸을 둔다면 밑의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별 잘못도 없는데 자신을 감시하려 한다고 생각할 테니.”
“관직에 있는 자들은 배제할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철저하게 어둠 속에 숨어 민생을 괴롭히는 자들이니까요.”
“본관이 성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는 힘들지. 그리고 그게 맞네.”
강진은 서친수가 이리 말할 줄 알고 있었다.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는데 파장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니 다른 말로 설득해야 했다.
“이건 영명하신 태수 나리의 공적이 올라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소관이 담당하고 있는 신의현의 범죄율에 대해서는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기찰포졸이 된다면, 신의현의 범죄율이 곧 광동성의 범죄율이 될 것입니다.”
귀가 솔깃한 소리다.
사실 신의현의 범죄율은 기이하다고 할 정도로 낮았다. 그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대충은 알았다.
‘자신의 돈을 써서 포두들의 비리를 없애고 성과급이라는 걸 도입했다고 했지? 하지만 그런 방법을 전 현에 다 쓴다면 돈이 엄청 필요할 텐데. 무엇보다 현령들과 포도대장들의 반발이 심할 테고.’
서친수는 반은 알았지만 반은 몰랐다.
강진이 돈만이 아니라 적법하게 강력한 폭력 또한 동원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하간 광동성 내의 범죄율이 그리된다면 서친수에게는 조금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 공적은 모두 그의 것이 될 테고, 그렇게만 되면 변방의 태수가 아닌 중앙으로 진출할 수도 있을 터.
서친수도 뱀 머리보단 용 꼬리를 지향하는 자였다.
아니, 강진의 말이 현실이 된다면 용 꼬리가 아니 몸통이 될 기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거기에 이미 중앙에 있는 아버님의 입지도 더더욱 탄탄해질 테고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반발 따위는 다 막아 줄 수도 있지.’
서친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자신 있나? 본관은 말만 번지르르한 걸 싫어하네만.”
강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적법한지, 절차에 맞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리는 자들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따진다. 마치 자신처럼 말이다.
강진은 공손히 대답했다.
“허락만 해 주시면 일단 가장 높은 범죄율을 보이고 있는 광주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성도라……. 가장 힘든 곳을 제일 먼저 잡아서 인정받겠다는 것이겠지?’
서친수는 계산을 끝냈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보게. 아니, 자네를 광주 포도대장에 임명하지.”
“포도대장이 아닌 포졸이 되고 싶습니다.”
서친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건 또 무슨 이유인가? 일을 벌이려면 밑에 사람들이 있어야 할 터인데?”
“소관이 직접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몇 사람에 대한 권한만 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강진은 말을 하며 생각했다.
‘뉘미. 포도대장이 되면 또 그 난리를 치고 서류 작업에 꼼짝없이 관청 안에 잡혀 있어야 되는데. 신의현에서도 그리 잡혀 있었는데 광주는 오죽할까?’
포졸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머리 쓸 것 없이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다.
나쁜 놈들의 처리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 그는 그냥 신 나게 잡고 다니고 싶을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