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89)
관존 이강진 (89)
추적자
미영은 상을 차리다 말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진의 시선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뭘 그렇게 보세요?”
“남편이 마누라 보는 게 이상해?”
뭐라 부정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강진에게 미영은 쩔쩔맸다.
‘내가 왜 이러지?’
방금까지도 강진의 품에 있었으면서, 그의 얼굴만 봐도 뺨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뛰었다.
“얼른 드세요.”
미영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강진을 불렀다.
강진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미영이 차려 놓은 상 앞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아침은 안 먹는대도.”
“해 뜬 지 한참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강진이 창밖을 내다보며 하는 말에 미영은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혔다.
“식기 전에 드세요. 당신이 올 줄 알았으면 진작 준비했을 터인데…… 급히 차리느라 찬이 별로 없어요.”
“그냥 만들어 둔 거 가지고 오지 그랬어. 그럼 찬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 안 해도 되잖아.”
이가장은 열댓 명 사는 그런 작은 집이 아니다. 하인들의 숫자도 꽤 되고 호위 무사들의 숫자도 많다. 거기에 그들의 식솔까지 한곳에 모여 있으니, 강진이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한 상 차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미영은 재료 손질부터 요리까지 모두 자신이 새로 한 것이다.
“제가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아침을 잘 안 드시니 부담 없는 걸로만 가볍게 만들었어요.”
강진은 옥수수와 쌀을 갈아서 만든 죽을 한입 떠먹으며 말했다.
“괜찮네. 까칠한 게 의외로 목 넘김도 좋고.”
“많이 드세요.”
“당신은?”
“요리하면서 많이 떠먹었어요.”
“그러지 말고 앉아. 왜 이리 안절부절못해? 얼굴은 또 왜 이리 빨갛고?”
“일단 드시라니까요. 식으면 맛없어요.”
강진은 미영을 힐끔 보고는 다시 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새벽부터 어디 갔다 온 거야?”
“어딜…… 아! 아버님께 문안 인사 올려야지요.”
“그 새벽에?”
“아버님도 일찍 일어나시니까요. 그런데 당신, 오신 후에 아버님께 안 들르신 거예요?”
그제야 강진도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급했다지만 집에 와서 부친께 문안도 올리지 않았다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한 강진이었다.
매일 찾아뵙고 인사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네. 내가 잠시 깜빡했어.”
“어쩌죠. 아버님이 아시면 기분이 크게 상하실 텐데.”
미영의 걱정에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해 하시지는 않아. 나 스스로가 실수했다는 게 문제지.”
“얼른 먹고 인사드리세요.”
“그래야지. 그런데 요새 아버님과는 어때?”
“네?”
“아직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셔?”
미영은 깜짝 놀라며 급히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당신이 섭섭해하실 말씀을 하실지도 몰라. 하지만 틀린 말씀도 안 하시지.”
“그럼요…….”
“시간이 걸릴 거야. 신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말이야.”
미영은 살짝 미소를 띠며 물었다.
“염려해 주시는 거예요?”
“염려? 아! 그렇군. 이게 염려였어.”
강진도 활짝 웃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보통 사람들처럼 상대를 걱정해 주었다. 곽노를 상대로는 비슷한 느낌이 든 적이 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자각하는 건 처음.
강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뭐, 당신은 내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런 걸지도.”
두 사람은 활짝 웃었다.
강진은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내고 바로 이제원을 찾았다. 다행히 아직 출타하기 전이었다.
“아버님, 강진입니다.”
“들어오너라.”
강진은 방으로 들어가 허리를 숙였다.
“소자, 아버님께 문안 인사 드립니다.”
이제원은 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은 끝낸 것이냐?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다만.”
“그건 아닙니다. 잠시 돌아온 겁니다, 아버지.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사실 오늘 새벽에…….”
“알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장님은 아니다.”
강진이 허리를 다시 숙이자 이제원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일이 싫증이라도 난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럼?”
“갑자기 미영이 생각이 나지 뭡니까? 참을 수가 없어서 잠시 돌아왔습니다. 아버님께 인사만 드리고 곧 다시 광주로 가야 합니다.”
이제원은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처 생각이 나서 돌아왔다고?”
“네.”
강진은 조금의 창피함도 없이 대답했다. 남편이 마누라 보고 싶어 왔다는데 그게 창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허허!”
이제원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처 생각이 나서 광주에서 여기까지 잠깐 들렀단 말이냐?”
“밤새도록 달렸는데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아버지.”
“허허, 허허, 허허허허허허.”
이제원은 묘한 박자감을 띠며 웃었다.
‘곽 노인, 이번에도 당신이 맞았나 보오.’
그도 그랬다.
무정(無情)하던 그도, 란아를 만난 후 달라졌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굴던 때가 있었다. 아니, 그녀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랬다.
미영이를 감히 란아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강진에게 있어 미영이 그런 존재인 것을.
“아버님?”
강진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이제원을 의아하게 보며 그를 불렀다.
“아, 아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구나.”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건 좋은 일이지만 소자는 왜 웃으시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다. 그나저나, 처를 그리 생각한다면 좋은 소식도 곧 있겠지?”
“무슨 소식 말입니까?”
“그렇게 붙어 있으면 당연히 생겨야 하는 것이 있지 않으냐?”
강진의 얼굴이 순간 살짝 굳었다.
“왜? 내 말이 틀렸느냐?”
이제원의 물음에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생기겠지요.”
“너도 알다시피 아비는 형제가 없다. 그리고 너도 없고. 그만큼 손이 귀한 집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미영이가 이 집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아이가 있어야 한다. 너도 신경을 쓰거라.”
“네.”
이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요새 정화는 보느냐?”
“종종 들릅니다.”
“신경 쓰거라. 그 아이는 이미 너와 혼인할 마음을 굳혔는데 네가 관심이 없으면 힘들 것이다.”
“네. 그런데 우람이는 아직 찾지 못하셨습니까?”
“그게 의외로 애를 먹는구나. 오늘 사람을 더 보내라 지시했다. 금방 찾을 것이다.”
“네.”
“됐다. 너도 일이 있으니 나가 보거라.”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강진은 방 밖으로 나왔다.
“아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불안은 감출 수가 없었다.
* * *
“확실한가?”
홍안의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 말에 사내가 대답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단서가 너무 적습니다. 추적할 여지가 있는 건 오로지 여기뿐입니다.”
홍안의 사내는 대답할 수 없다는 수하를 탓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 남쪽 끝까지 흘러들었을까?’
홍안의 사내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야 했다. 반드시 회수해야 할 물건이었다.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극히 적은 교주가 직접 내린 명령이었다. 자신들이 회수하지 못하면 교주가 직접 움직이게 될 테고, 그가 직접 움직이면 중원무림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게 될 터였다.
‘아니면 질릴 정도의 피를 흘리거나!’
홍안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십여 명의 사내들이 눈앞의 마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내는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홍안의 사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차앙!
은은하게 병장기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건 들려서는 안 될 소리였다.
마교 최정예 전투 집단 중 하나인 천랑대가 작은 촌락 하나를 제어하는데 무슨 병장기 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아무리 그들이 절대 살상 불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들려서는 안 된다. 어설픈 무인들 따위에게는 두 번 손을 쓰는 것도 욕먹는 것이 천랑대의 고수들이다.
홍안의 사내는 마을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으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전투는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다섯의 사내들이 이미 제압당했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무인도 막 제압당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조장. 죽이지 않고 제압하다가 약간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천랑대원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홍안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제압당한 사내들을 보며 물었다.
“누구인 것 같나?”
“알려진 문파의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식들이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일류급입니다.”
“역시 뭔가가 있는 것 같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변두리에 고수들이 있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제대로 짚은 것 같습니다.”
“그럼 알아봐. 반드시 찾아야 한다.”
“네!”
천랑대원들은 순식간에 마을을 장악했다.
사로잡힌 여섯 무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기에 더 이상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빈둥빈둥하며 남의 것이나 빼앗아 먹는 왈패 주제에 이런 돈을 모았으면,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는 거야?”
강진은 눈앞에 쌓인 금자와 은자 그리고 장신구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광주 흑사회를 모조리 제압하고 송두이가 모두 장악하는 데까지는 정확히 두 달이 걸렸다. 그동안 왈패들의 본거지를 털고 빼앗은 재물들이 강진의 눈앞에 있었고, 그것들을 금으로 환산하면 족히 삼천 냥은 될 듯했다.
금 삼천 냥.
강진은 잠시 고민했다.
금 삼천 냥은 그로서도 작은 액수는 아니었기에, 어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응?’
그러다 자신을 보고 있는 송두이의 시선을 느꼈다.
‘웃어?’
강진은 순간 미간을 찡그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눈이 뒤집어질 만한 액수를, 송두이 따위가 여유롭게 보며 웃어서는 안 된다.
강진은 송두이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이게 다야?”
강진의 의심에 송두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동전 한 닢도 제 주머니에 넣은 게 없습니다. 정 포두님과 이 포졸이 항상 옆에 있는데 제가 무슨 수로 제 주머니를 채웠겠습니까? 믿어 주십시오.”
강진이 옆에 있던 정 포두와 이어동을 보자, 두 사람은 그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