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90)
관존 이강진 (90)
정 포두가 말했다.
“싹싹 긁어 왔습니다. 소관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강진은 곰곰이 생각하다 송두이를 보며 말했다.
“나라면 말이지, 돈은 집에만 넣어두지 않을 거야. 게다가 이놈들 왈패잖아? 인신매매에, 염왕채도 서슴지 않는 놈들. 그것도 조사했어?”
“그게…….”
“묻잖아. 조사했어?”
“시간이 촉박하여 아직 조사 못 했습니다.”
“못 한 거야, 안 한 거야? 나 돌아가고 천천히 회수하려고?”
“제 목숨 소중한 건 압니다. 포도대장님의 귀에 들어가면 어찌 될지 뻔히 아는데 제가 어찌…….”
“원금만 회수해도 꽤 되지 않아? 채무자 입장에서야 원금만 달라고 하면 얼씨구나 하면서 갚을 테고. 그럼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회수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송두이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얼른 회수하여 그것도 포도대장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했을 텐데? 너 똑똑하잖아. 아, 증거가 없네, 증거가. 좀 기다렸다가 조사할 걸 그랬어.”
송두이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더니 이마를 땅에 부딪쳐 가며 말했다.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믿어. 네놈을 믿으니까 약속도 지킨 거야. 본관은 상벌이 분명한 사람이니까. 상벌이 말이야.”
“소인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대장 나리께서 금하신 건 반드시 지킬 겁니다.”
“믿는다니까. 지킬 거야. 똑똑하니 지킬 거란 걸 알아.”
강진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정 포두, 이거 모두 서친수의 이름으로 황화 수재민들에게 기부해.”
정 포두는 의아해하며 확인하듯이 물었다.
“태수 나리의 이름으로 말입니까?”
“그래. 속은 쓰리지만 편하게 움직이려면 기분도 맞춰 줘야 되겠지.”
“차라리 예물로 바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강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뇌물이란 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치는 거야.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짓누를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야. 태수가 내 상관이긴 하나 나를 함부로 할 수는 없어. 아마 나에게 약점 잡힐 짓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걸로 내 약점을 잡으려 할걸. 그러니 그냥 그 사람 이름으로 기부하는 게 나아.”
“아!”
정 포두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있는 놈들은 이래서 무섭다니까.’
정 포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강진이 송두이를 보며 말했다.
“송두이, 네놈이 회수한 돈의 구 할은 빈민가에 먹을 거로 나눠 줘. 이건 내 이름으로 해도 되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네놈이 써. 네놈에게도 뭔가 떨어져야 보람이 있을 테니까. 또 이제부터 돈이 필요할 테고.”
“감사합니다, 대장 나리!”
송두이가 다시 한 번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인사를 하자, 강진은 손을 휘저어 보였다.
“잘해. 그리고 기억해. 나쁜 놈이 나쁜 짓 하는 건 이해하지만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걸. 본관은 상벌이 분명해. 계속 말하면 이제 짜증이 날 거야.”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죽기 직전까지만 잊지 않으면 돼.”
강진은 다시 정 포두를 불렀다.
“정 포두.”
“네, 대장님.”
“종사관한테 보고 올리라고 해. 광주가 끝났으니 다른 현으로 간다고 하고.”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갑니까?”
“화도, 청원, 광녕 순서대로. 여기만큼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야.”
“네, 준비하겠습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다시 저으며 말했다.
“좀 쉬고 하자. 열심히 했으니 보상을 받아야지.”
강진은 작은 전낭 하나를 정 포두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걸로 닷새만 놀아. 본관은 잠시 집에 다녀올 테니.”
정 포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들도 집에 들렀다 와도 되지만 왔다 갔다 하는 데 시간 많이 잡아먹을 거야. 알아서 효율적으로 놀아.”
“흐흐흐. 네, 대장님.”
“뭐야, 그 웃음은?”
“아닙니다. 대장님이 신혼이라는 게 생각난 것뿐입니다.”
“그거랑 웃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진지하게 묻는 강진을 보며 정 포두는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걸 깨달았다. 강진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무척 용의주도하지만 가끔씩 별거 아닌 문제로 심각해진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별뜻은 없습니다. 그냥 대장님에게 친근감이 느껴져서……. 죄송합니다.”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나한테?”
“소관이 주제넘었습니다.”
“친근감이 느껴지는 게 뭐가 주제넘어. 괜찮아.”
자신에게 친근감이 느껴진다는 정 포두의 말은 강진에게도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니, 좋은 기분이었다.
‘역시 대인이 되어 가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군.’
이상한 쪽으로 결론을 내린 강진은 말했다.
“닷새 후에는 또 바빠질 테니 푹 놀아. 그럼 본관은 다녀온다.”
강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방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도 강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 * *
“마교의 고수들이 나타났습니다.”
정 총관의 보고에도 이제원은 그리 놀라지 않고 계속 서류만 훑었다. 오지 않길 바랐지만 올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 탓이었다.
“어디인가?”
“그게…….”
이제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정 총관을 쳐다보았다.
“강서에 대피시켰던 혈붕파 식솔들을 지키고 있던 수하들이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네, 노출되었을 겁니다. 수하들은 입을 열지 않아도 대피시켰던 식솔들은 다를 테니까요.”
“강진이에게 사람을 보내. 그리고 곽 노인은? 곽 노인은 어디 있지?”
“지금 급히 사람을 보냈습니다.”
“나가지.”
이제원은 몸을 일으켰다.
* * *
“에헤헤이!”
기분 좋게 한잔 걸친 곽노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가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술 좀 작작 마시라는 강진 때문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바가지를 살살 긁는 마누라 때문에 술을 자제해 왔던 곽노다.
하지만 시내를 오가며 알던 친구 하나가 손자를 봤다고 축하주를 내겠다고 해서, 당당하게 한잔 마실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곽노는 아무런 걱정 없이 얼큰하게 한잔 걸칠 수가 있었다.
“집에 가면 바가지 긁어 줄 마누라도 있고, 꿀물 한잔 타 줄 딸내미도 있고. 사시사철 보약 바치는 제자도 있고. 인생 이만하면 엄청 성공한 거지.”
곽노는 흥에 돋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때는 봄이라, 화초 냄새 섞인 밤바람까지 곽노의 그런 흥을 돋웠다.
밤길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곽노는 앞에 사람이 있는 것도 모르고 그만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무례를 범했구려.”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곽노가 사과의 말을 하자 상대가 입을 열었다.
“노인장이 곽노가 맞습니까?”
곽노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분 좋은 취기가 싸늘하게 사라졌다.
‘나도 늙었어. 늙었어.’
곽노는 늙음을 탓하며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무인을 살폈다.
‘어쩌면 늙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감각 따위로는 어쩌지 못할 고수일지도.’
서른도 안 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풍기는 기운만으로 사람을 압박할 수 있을 정도의 무인들.
곽노는 도망치는 것을 깨끗이 포기했다. 일단 상대가 정중히 신분을 묻는 것을 보니 막돼먹은 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맞소만. 이 늙은이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시오?”
“몇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정중히 모셔 가고 싶으니 저희가 무례를 저지르지 않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 그냥 여기서 물으면 안 되오? 이 늙은이가 집에 안 돌아가면 난리가 날 텐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쭙는 말에 솔직히만 대답해 주시면 말입니다.”
곽노는 안될 걸 알지만 도망쳐 보기 위해 주변을 훑어보다가 이내 체념했다. 여기에 있는 건 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럽시다. 그런데 별 볼일 없는 이 늙은이에게 뭐가 그리 궁금할까?”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닐 겁니다. 가시지요.”
곽노는 자신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려는 사내를 보고 급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이쿠! 잠시만, 잠시만. 일단 술은 좀 깨야 되지 않겠소?”
“저희가 부축하겠습니다.”
“사지 육신 멀쩡한데 왜? 잠시만 기다리시오. 금방 술이 깰 테니.”
사내는 동료를 보았고, 동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내 곽노의 좌우에 서더니, 그를 들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곽노가 서 있던 자리에 한 사람이 섰다.
“영악한 늙은이로군. 방심해서는 안 되겠어.”
사내는 곽노가 일부러 떨어트린 것이 분명한 작은 노리개를 품에 넣고는 동료들이 간 방향으로 시선을 날렸다.
잠시 후, 화초 냄새 섞인 밤바람만이 그 자리를 맴돌았다.
* * *
“마누라, 나 왔어!”
강진은 이제원과 곽노 둘 다 집에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며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바쁘게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금세 미영이 들어오며 말했다.
“돌아오셨어요? 급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나중에. 일단 나 급한 것부터 해결하자고.”
강진이 확 끌어당기며 하는 말에, 미영은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아버님이 집에 안 돌아오신 지 이틀째예요.”
“아버지가 집을 비우시는 게 뭐 특별한 일이라고. 일이 있으면 보름도 집을 비우셔.”
“제 아버님요.”
강진은 순간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
“사부가 안 돌아와? 이틀이나?”
“네.”
“술집은 다 뒤져 봤어? 아니, 그보다 먼저, 명안학당에는 가 봤어? 사부님은 스승님과 자주 어울렸는데.”
미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다 가 봤습니다. 안면이 있다고 하신 분들도 모두 찾아가 보았고요. 하지만 어디에도 안 계세요.”
강진은 다시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전에 어떤 말씀도 없으셨고?”
“네.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으신데…….”
“정 총관은 어디 있어? 그에게는 이야기했지?”
“이틀 전에 당신 아버님과 같이 나갔어요. 급한 마음에 집안사람들에게 찾아보라고 했는데, 어디에도 안 계세요.”
“포도청에는 신고했어?”
“네. 오늘 아침에요.”
강진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포도청에 사부님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어디 가시게요?”
“찾아봐야지. 일단 포도청부터 가 보고.”
강진은 미영을 한번 안아 주고는 급하게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포도청으로 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