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95)
관존 이강진 (95)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정 총관의 보고에 이제원은 복잡한 심정이 되어 신음을 내었다.
“으음.”
“사람을 붙일까요?”
정 총관의 물음에 이제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질지도. 한도의 소재를 알고도 알리지 않은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까.”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사람이 아니야. 애초에 그들과 암묵적인 협력 관계를 맺은 것도 그 사람 때문이니까.”
정 총관도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림 최대 단체를 이끄는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무공은 고강하나 마음이 너무 약합니다.”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야. 그가 교주가 된 후로 교세가 더욱 확장되었다는 걸 잊지 말게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보다 방을 한번 정비해야겠네.”
“네?”
“저번에 입은 상처도 다 나았으니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준비도 얼추 끝나 가고.”
정 총관은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걸려들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이제원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학습 능력이라고는 없어. 아니, 욕심 때문에 배운 것을 금방 잊는 족속들이지. 문제없을 거야.”
“그런데 소주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무공을 익히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일은 안 돼. 지금처럼만 살면 돼. 남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그런 삶을 말이야.”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소주가 관련이 되면 어떡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원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녀석을 모르나? 항상 넘쳤지, 부족한 게 없었기에 그런 욕심이 없어. 한도도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이고. 녀석이 조심할 건 사람뿐이야.”
“존명.”
정 총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 * *
천랑대와 청해성을 향한 지 이레째.
천랑대는 그 특수성 때문에 마을에서 머물지 않아, 야영을 하거나 버려진 사당 등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천랑대는 야영이 익숙했고, 강진도 불편할 뿐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복면인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강진의 곁에 있어야 했고,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복면을 벗을 겁니다.”
복면인이 결심한 듯 하는 말에 강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웬일이냐? 그렇게 벗으라고 할 땐 안 벗더니.”
“이제부터는 공자님과 떨어질 수가 없으니까요. 불편합니다.”
“하긴 얼굴도 좀 씻고 다녀라. 냄새나더라.”
복면인은 강진을 흘겨보고는 마침내 복면을 벗었다.
순간 강진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천랑대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놀랐다. 저 작은 복면에서 저런 풍성한 머리카락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강진은 알고 있었으나 천랑대원들은 복면인이 여자인 줄 몰랐다.
‘여자한테 그리 애먹었다는 거야?’
특히 복면인의 무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천랑일대의 사내들은 놀랐다.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했다. 비록 머리카락은 뭉치고 기름이 지고 얼굴이 번들거리긴 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아름다움까지 감춰 버리지는 않았다.
“너 생각보다 예쁘구나. 난 너무 못생겨서 복면을 쓰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향아라고 합니다.”
“이름이 향아였구나. 성은?”
“허씨입니다. 마님에게 물려받았습니다.”
“마님이라면? 우리 어머니?”
향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어머니 잘 알아?”
향아는 그를 흘기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공자님 같은 분을 호위할 리 없지요.”
“내가 어때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향아는 톡 쏘는 것처럼 말하며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를 마누라로 삼을 걸 그랬다.”
“켁!”
순간 향아는 물을 토해 내며 그 무슨 가당치 않은 말이냐는 표정으로 강진을 보았다.
“그렇잖아. 어머님도 잘 알고, 나도 잘 알잖아. 그리고 내 호위 무사이고. 너만큼 확실한 내 편도 없잖아.”
“내 편이라고 혼인을 합니까?”
“응. 내가 그렇게 했는데?”
향아는 새삼 강진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래도 많이 달라지셨지……. 맞아, 주인어른의 핏줄이라 하지만 마님의 피도 물려받으신 분인데…… 평생 괴물처럼 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향아는 강진의 모친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웃네. 너도 나한테 마음이 있었구나. 하긴 내가 좀 잘났으니까.”
강진의 말에 향아는 웃음을 싹 지우며 말했다.
“제 눈에는 철없고 무례한 사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혼인도 하신 분이 좀 점잖아지셔야지요.”
“하긴 이제 마누라가 있으니까. 하지만 능력만 되면 내 편은 더 많이 만들수록 좋으니까. 생각해 보라고.”
향아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물을 게 있는데.
강진의 전음에 향아는 그를 보았다.
-요 며칠 동안 계속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무슨 일이 말입니까?
-정 총관이 말한 방이라는 거…… 그거 무슨 사업이지? 여기 애들이랑 우리랑 무슨 관계인 거지?
향아는 순간 흠칫했다.
-우리 방의 영역이라고 했단 말이지. 상단의 영역이 있긴 하지만, 그럼 그냥 상단의 영역이라고 하면 되는데 방의 영역이라고 했어. 무슨 뜻이지?
-상단의 일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호위 무사일 뿐이니까요.
-아니, 그냥 호위 무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어머님 밑에 있었고, 정 총관과도 친숙하고. 그냥 고용된 무사가 아니잖아. 알고 있지?
향아는 잠시 망설였다.
알리려 했다면 이제원이 진작 말했을 터였다. 그렇다고 알려 주지 않자니, 신교의 사람들은 강진이 방의 소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어떻게든 알게 될 일이었다.
향아는 어찌 말할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지금은 이렇게만 알고 계십시오. 방은 상단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은 절대 작지 않은 그 단체의 작은주인이고요.
-그러니까 무슨 목적으로?
-주인어른께 들으셔야 할 말입니다. 또 저도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공자님의 호위 무사일 뿐이니까요. 무공을 배우고 익히고 공자님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
강진이 의혹 어린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자 향아는 다시 전음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최소한 그들은 그리 알고 있고 공자님은 지위가 지위인 만큼 그들에게 얕보이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이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부친에게 물어야 할 문제였다.
‘일단 사부 문제만 생각하자.’
강진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 * *
“허허, 이거 납치를 당한 건지 초대를 받아 온 건지 구분이 안 되네.”
곽노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끌려왔지만, 대접은 끌려온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의 생활은 이가장에 못지않았다.
커다란 방에 커다란 침상, 그 위에는 비단 이불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들. 그리고 매 끼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요리들이 상에 올랐다.
그리고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은근슬쩍 문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럴 거면 왜 끌고 왔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어르신, 일어나셨습니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곽노는 문밖으로 나갔다.
“자네 왔는가?”
곽노는 허름한 마의를 입은 중년 사내를 반겼다.
모두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이 사내는 조금 달랐다. 예의는 지켰지만 정이라는 게 있었다.
강진이 이 사내의 말과 행동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내 집이 아니라서 조금 불편하지.”
“아,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그저 궁금할 뿐이네. 왜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 말이야.”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착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제자가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며칠만 기다리시면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며칠이나 걸린다던가?”
“늦어도 나흘이면 올 겁니다.”
“나흘이라…… 금방이겠구먼.”
“여기가 많이 불편하신가 봅니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도 자네 덕분에 그다지 심심하진 않았어. 그런데 이 넓은 곳을 자네 혼자 관리하는 건가?”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사람이 항상 있는 곳은 아니니까요.”
“조금 쌀쌀하다고 느낀 이유가 거기 있구먼.”
사내가 놀라 물었다.
“추우셨습니까? 온도를 더 올려 드릴까요?”
“그런 온도가 아니라, 느낌이 말일세. 뭐랄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그렇군요. 온기라……. 중요한 걸 알려 주셨습니다. 식사하셔야지요?”
“좋지. 자네도 같이 들겠는가?”
“저는 이미 먹었습니다. 금방 올리겠습니다.”
사내는 곽노를 뒤로 두고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곽노의 시야에 벗어나자, 장년인 둘이 그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하려는 순간, 사내는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용건만 말하세요.”
“천랑대가 그를 데리고 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귀주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천랑대는 빠져나오려 했으나 그가 말려들었답니다.”
“누구와 충돌이 일어났다는 겁니까?”
“그게 아직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칠마가 관련된 일이라더군요.”
사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일단 데리고 오세요.”
“하지만 이미 충돌이…….”
사내는 장년인을 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전하세요.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고요.”
“그들의 영역이었습니다. 큰 싸움으로 번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일단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만약 천랑대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제가 내려갑니다.”
장년인은 급히 무릎을 꿇었다.
“교주께서 내려가시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속하들, 교주의 명령이라면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어 가지만, 명분이 부족합니다.”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명분을 찾았나요?”
“교주!”
사내는 말했다.
“싸우길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돌려보내라 하세요. 영역을 침범한 건 보상한다 하시고요.”
“존명.”
장년인이 사라지려는 순간 사내가 다시 그들을 불렀다.
“아, 가는 길에 어르신 식사 올리라고 하세요. 속이 답답하신 것 같으니 기름지지 않고 산뜻한 걸로요.”
“존명!”
장년인들이 사라지자 사내는 다시 걸음을 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