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96)
관존 이강진 (96)
칠마
강진과 향아가 천랑대를 따라 움직인 지도 한 달째. 그야말로 바람과 같이 움직여 어느새 사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우람이 녀석도 사천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 기회에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네.’
사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강진은 서문우람을 생각했다.
‘정말 매정한 놈. 아무리 시어사의 위치나 일이 비밀이라고 하더라도 연락은 좀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 없으면 애들은 어떡하려고 그랬어.’
강진이 속으로 서문우람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을 때 일행이 멈췄다.
뭔 일인가 싶어 보니 천랑대원들이 모여서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강진의 물음에 곤담이 말했다.
“척후조가 앞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다고 하오. 피해 가야 할 것 같소.”
“이 산속에서 어디로 피해 가려고? 상관만 하지 않으면 되지. 덤벼들면 쫓아내면 되고.”
강진의 말에 천랑대주들은 다시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결정한 듯 대화를 끝내고는 강진에게 통보했다.
“그대로 지나치되 관여하지 않기로 했소. 곧 사천이고 우리 영역권이기도 하니까.”
“결정했으면 빨리 갑시다.”
강진과 향아, 천랑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진한 피비린내가 콧속을 찌르기 시작하자, 천랑대원들은 주변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가 울리며 병장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랑대는 임무를 완수해야 했고, 강진은 남의 싸움에 별 관심이 없기에 움직이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차차차창!
하지만 일부 무리가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천랑대를 보며 잠시 경계하다 산속으로 달리려는 순간, 그들보다 더 많는 숫자의 무리가 나타나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진 일행을 발견하고는 잠시 주춤거리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뒤에 나타난 무리 중 홍색 두건을 두른 자가 일행 쪽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홍건(紅巾) 사마두라 하오. 귀하들의 소속은 어디요?”
천랑대에서 뭐라 대답하기 전에 향아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 왔다.
“홍건 사마두라면 귀갑대의 대주입니다. 귀마의 주변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 이들이 여기 있다면 귀마도 있을 겁니다.”
“귀마라면 칠마의 그 귀마를 말하는 거야?”
“네. 귀주는 칠마의 세력이 가장 큽니다. 별다른 충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강해?”
“천랑대에 비하면 손색이 있긴 하겠지만, 본거지인 만큼 백중지세일 겁니다.”
“나보다 강한 건 아니란 소리잖아. 그럼 뭐가 문제야.”
강진의 목소리가 컸던 듯, 그 말을 들은 천랑대원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강진 하나에게 휘둘린 사실이 있기에 뭐라 말을 하지는 못했다.
향아가 급히 말했다.
“귀갑대가 문제가 아니라 귀마가 문제입니다. 그가 나타나면 좋게 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때 천랑일대주 구량이 사마두를 보며 소리쳤다.
“천랑일대주 구량이라 하오. 이곳이 귀하들의 영역이라는 건 잘 알고 있소. 우리는 그저 조용히 이곳을 지나가고 싶을 뿐이오.”
구량의 외침에 사마두는 흠칫했다.
마교가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싸우는 중이 아니더라도 마교와의 충돌은 피해야 했다. 거기다 상대는 마교의 최정예 중 하나인 천랑대이니 더더욱 그래야 했다.
“더 긴말을 나눌 수 없음을 천랑대주는 용서하시오. 본 파의 적들과 대치 중이니 관여하지 말고 그냥 지나쳐 주시길 바라오.”
사마두의 외침에 구량이 답했다.
“바라던 바요. 우리는 귀하들의 싸움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소.”
이어 구량이 가자는 손짓을 했고,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진이 천랑대를 따라 두 무리의 사내들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사제?”
강진은 익숙지 않은 단어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번 형?”
“사제 맞지?”
“아, 사부한테 인정받지도 못해 놓고서 무슨 내 사형이야. 그냥 이 형이라 부르라니까.”
작은 무리, 그러니까 귀갑대에 포위를 당한 무리 중에 있는 번자기를 보며 강진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 문제 때문에 둘이서 어지간히 싸웠던 것이다. 그래도 같은 사부 아래 있어서 때려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반공대를 하고 있는 사이.
번자기는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를 발견한 것처럼 크게 소리쳤다.
“사제! 도와주게!”
“아, 바쁜데……. 사부 만나러 가야 해.”
“사부도 여기 있어. 사제가 도와준다면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소 사부도 여기 있다고?”
“그래. 사제가 우리를 도와줘야 해!”
번자기는 다급히 소리쳤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눈치가 구 단인 번자기는 강진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눈치 빠르고 상황 판단이 빨랐기에 그리 구박을 받으면서도 소양풍에게 붙어 있을 수 있었으며 강진에게 반공대라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번자기가 봤을 때 강진은 매달리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가 버릴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부가 위급하다고 하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터였다. 그는 분명 소양풍을 사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따, 몇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추시더니 여기서 뭐 하신대?”
“상황이 좋지 않아. 사제가 도와 드려야 해.”
“어디 계시는데?”
“저기!”
번자기는 산봉우리 몇 개가 떨어진 곳의 큰 산 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강진은 갈등했다.
번자기를 보아하니 정말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소양풍의 무공으로도 위기라면 자신이 가 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떠난 후 부쩍 강해진 건 알지만 그래 봤자 내공의 증진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 내공의 증진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대로 가면 찝찝하잖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준 만큼 받는 것이 확실한 강진이었다.
소양풍은 분명 자신에게 큰 것을 주었고, 자신도 그를 사부로 인정했다.
‘사부를 버리는 건 후안무치한 놈들이나 할 짓이지, 나같이 대인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
강진은 간단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다 안되면 도망치면 되는 거지. 그 정도라면 찝찝함도 없을 테고.’
결론을 내리고 향아를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강진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닌 여기서 부딪치면 위험합니다.”
“그래도 내 사부야. 걱정하지 마. 죽지는 않을 거니까. 내공이 없어도 달리는 거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잘했으니까.”
강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리 자신했던 신법을 전개했다.
“사제!”
번자기가 달려가는 강진을 보며 소리쳤다.
“여기도 구해 주고 가야지!”
번자기는 소리치며 깨닫는 게 있었다.
강진이 사부는 인정했어도 자신을 인정한 적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위험에 빠지면서까지 자신을 구해 줄 이유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젠장!’
그러나 번자기는 강진이 감으로써 사부가 무사하길 바랐다. 사부가 무사해야 자신도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니까.
번자기가 동료들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천랑대와 귀갑대 사이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귀갑대 입장에서는 천랑대로 보이는 사람이 전투에 끼어든 것이고, 천랑대는 어떻게든 한도를 회수해야 했다.
그때 향아도 급히 강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녀의 임무는 강진의 보호였기에.
그 탓에 천랑대와 귀갑대의 분위기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사마두가 소리쳤다.
“천랑대 분들은 무장을 해제해 주시오!”
“천랑대의 무장해제는 오로지 본 교의 교주님께서만 내릴 수 있는 명령이오. 천랑대는 이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소이다!”
구량의 대답에 사마두가 싸늘하게 말했다.
“이미 두 분이 빠져나가지 않소? 이 사마두는 더 이상 일이 혼잡해지길 원하지 않소.”
“그 두 사람은 우리 교 사람들이 아니오.”
“그렇다면 그들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뜻이오?”
구량은 잠시 흠칫하며 말했다.
“그들은 본 교의 손님으로 가는 중. 그래서는 안 되오. 또한 무장해제도 무리한 부탁!”
“통보도 없이 우리의 영역, 그것도 본 파가 지척인 이곳을 지나는 것은 그대들. 그리고 우리가 양보했음에도 두 사람이 빠져나갔소. 그런데도 더 이상의 양보를 바라시오?”
구량은 다른 두 대주와 뭔가 전음을 주고받더니 말했다.
“무기를 집어넣겠소. 그리고 귀하의 통제를 따르겠소. 하지만 본 교에 연락할 사람이 필요하오.”
“한 분만 가시오.”
천랑대원 중 하나가 달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천랑대원들은 무기를 집어넣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괴마 소양풍은 홀로 백여 명의 무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무공 하나는 오존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닌 듯, 그 난전 중에서도 소양풍은 홀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낙양검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서넛의 사내가 뒤로 밀려났고 길이 뚫렸다.
하지만 포위망은 뚫리지 않았다.
포위한 무인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니,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백여 명의 무인들 중 딱 두 명이 문제였다.
귀마(鬼魔) 하연평과 독마(毒魔) 독고량.
칠마의 두 사람이 밀리는 곳을 받쳐 주고 뚫린 포위망을 막았다.
소양풍은 다시 한 번 낙양일해를 시전해 주변의 병장기를 물리치고는 소리쳤다.
“이 늙은이들아,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말로 하자면서, 협상하자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면서! 믿고 왔는데 대접이 이따위냐!”
귀마가 대답했다.
“소가야, 뒤통수를 때린 건 너였다! 삼십 년을 알고 지내면서 내가 너에게 섭섭하게 한 것이 있더냐? 내 그리 너를 대우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내 수제자를 암살해?”
“그건 오해래도. 도대체 누가 그딴 헛소리를 지껄였냐? 그놈 얼굴이나 보자!”
“네놈이 오자마자 죽인 세 번째 제자가 알려 준 거다. 결국 네놈이 살인멸구를 했지.”
“그건 그놈이 다짜고짜 귀법을 전개해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래도. 애초에 네가 그리 흥분하지만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내가 제자 찾느라 자주 돌아다니는 걸 알면서, 나 없는 틈에 본 파를 치냐?”
“그래도 난 죽이지는 않았다. 네놈의 뚫린 입에서 무슨 변명이 나올지 기다렸다고. 그런데 네놈은 오자마자 또 삼제자를 죽였어.”
“그건 그놈이 다짜고짜……. 됐다. 너는 그렇다 치고, 독고야, 너는 또 왜 그러냐? 오해가 있으면 풀어 줄 생각을 해야지 독을 써서 우리 애들을 죄다 중독시키냐?”
독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가가 억울할 만한 거 아니냐? 일단 그 검 던져라. 그러면 내가 설득해 보마.”
“흥! 차라리 자결을 하라고 해라. 귀마 저놈 성격을 몰라서 그러냐? 죽여 놓고 조사한 후에 혼령을 불러 미안하다고 할 놈이란 거 모르냐!”
귀마가 소리쳤다.
“그래, 죽여 놓고 조사하마! 그래서 내가 오해였다면 미안하다고 하마. 그리고 죽을 때까지 네 넋을 위로하마.”
“그래, 둘이 친했다 이거지. 내 실수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연가나 목가를 불러왔어야 했는데.”
칠마는 모두 친분이 두터웠으나 그중에서도 귀마와 독마가 무척 친했고, 소양풍은 검마(劍魔) 연수홍과 권마(拳魔) 목부성과 친했다.
소양풍은 차라리 그들을 데려와 일단 귀마를 제압하고 사리를 따져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우리끼리의 싸움이 아니야. 누가 우리를 흔들어 놓고 있는 거야. 도대체 어떤 놈이!’
자신도 너무 흥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없는 틈을 타 귀마가 직접 몇 안 되는 사질들과 사손을 잡아가는 바람에 흥분했다. 거기다 엉겁결에 귀마의 제자를 죽여 버리고 말았다.
‘분명 그놈이 뭔가 알고 있을 텐데…… 죽은 놈은 말이 없으니…….’
소양풍은 결국 크게 살계를 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되면 다시는 귀마와 독마와 상종할 수 없게 될 테지만, 탈출시킨 번자기와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오냐! 네놈들이 나를 그리 생각했다면 그렇게 되어 주마. 나중에 후회는 하지 마라. 네놈들이 자초한 일이니.”
소양풍의 기세가 변하자 귀마와 독마는 잔뜩 긴장했다.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상대는 괴마 소양풍이었다. 자신들 중에서 가장 강했으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일행을 탈출시킬 능력이 있는 무인.
소양풍의 낙양검에 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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