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0
010. 생각보다 훨씬 더 >
다음날,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하던 지훈은 의원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인데 설마······’
지훈은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역시 자신이 알던 남자였다.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오는 것을 최대한 억누른 지훈이었다.
가슴팍에 방문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있는 걸 확인하니 마음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 지훈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저, 안녕하세요.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아..네! 안녕하십니까. 수행비서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몇 호실 찾아오셨는데요?”
“조재만 의원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혹시···.”
남자의 입에서 재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 그분···. 우리 사무실에서도 수행비서를 구하는데 혹시 이력서 한 부 더 있어요?”
“이.. 이력서요? 제가 준비한 건 한 부가 다인데···.”
지훈은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조재만에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저 그럼, 저희 쪽에서 먼저 면접 보고 가시겠어요?”
지훈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멀뚱멀뚱 서 있는 남자의 손을 잡아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훈이 한 남자를 데려오자 사무실에서 아침 회의를 준비하던 팀원들이 쳐다보았다.
“지훈 씨, 그분은 누구?”
“수행비서 면접 보러 오신 분이요.”
박주미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한 지훈은 남자를 강승태 앞으로 끌고 갔다.
수석 보좌관이 된 강승태는 사무실 직원의 인사권을 총괄하고 있었다.
“강 보좌관님, 수행비서 면접 보러 오셨어요.”
지훈의 말에 강승태는 지훈과 같이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강승태의 시선을 느끼자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최준호라고 합니다.”
“하하, 최준호 씨 반가워요, 나는 강승태라고 합니다.”
강승태와 최준호는 서로 악수했다.
“그래, 이력서는 가져 왔어요?”
강승태의 물음에 최준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이력서를 꺼내서 건넸다.
“최준호 씨, 나이는 스물여섯, 우리 김 비서보다 한 살 어리네?”
강승태의 말에 최준호는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최준호의 시선을 느낀 지훈은 미소를 건넸다.
“보자, 상인대 유도부 출신이셨네. 그래서 그렇게 체격이 좋으시고, 운전 잘해요? 서울 지리는 잘 알고?”
“예..예! 일 년간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서울, 경기도 지리는 제가 빠꼼이···. 아차···.”
실수했다고 느낀 듯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최준호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말투는 우리 영감님이랑 잘 맞겠네.”
“영감님이요?”
최준호가 궁금한 듯 되묻자 강승태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국회 보좌관끼리는 의원님을 영감님으로 부릅니다. 준호 씨도 곧 익숙해질 거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국회는 처음이라···.”
강승태가 웃으며 괜찮다고 하자 최준호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급해서 그러는데, 내일부터 일할 수 있어요?”
“오늘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최준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사무실을 울리자 사무실에서 일하던 모두가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하하, 오늘은 가서 주변 정리 좀 하고, 내일 아침 일곱 시까지 여기로 와요. 의원님댁이니까 이제 매일 거기로 출근한다고 보면 되고.”
강승태가 그렇게 말하며 정현석의 집 주소가 적힌 메모를 최준호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훈은 만족했다.
자신이 아는 최준호는 우직하고 입이 무거웠다.
조재만도 그런 최준호를 마음에 들어 했다.
‘조재만 뒤가 워낙 구렸어야지···.’
조재만이 최준호를 좋아했던 이유는 단 하나,
최준호의 무거운 입 때문이었다.
최준호의 무거운 입을 확인한 조재만은 정치자금을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최준호는 빈손으로 돌아와,
‘의원님. 만나보라던 사람이 갑자기 돈을 건네길래 제가 혼내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조재만은 화를 낼 수도 없고 잘했다고 최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벌게진 얼굴로 칭찬을 한 적도 있었다.
지훈은 그런 우직함을 가지고 있는 최준호라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초선 의원인 정현석의 수행비서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최준호가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나가자 지훈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강승태에게 물어봤다.
“의원님 오늘 일찍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디 가셨습니까?”
“아, 의원 총회 들어가셨어.”
“의원 총회요?”
“그래요. 당선자 인사 겸해서 한다고 공지가 내려와서 가셨지.”
지훈은 강승태의 말을 듣자마자 사무실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열었다.
**
200석이 넘는 좌석이 배치된 큰 회의실에는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인원이 앉아 있었다.
맨 뒷좌석에 혼자 떨어져 앉아 있는 정현석은 방금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보며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의원님, 절대 튀려고 하지 마시고, 누가 말하면 동조하고 웃고만 계십시오.]‘새끼,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
자신의 비서인 지훈의 메시지였다.
짧은 메시지 속에서도 다급함이 느껴져 약간은 놀려 줄까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지훈이 말하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 회의장을 향해 들어오자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본 정현석은 엉겁결에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바라보았다.
성성한 백발을 칼 같이 빗어 넘기고,
70대 노인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당 대표 김무길이었다.
잠시 후, 기자들이 뒤편에 자리 잡았고 사회자가 국민의례를 진행했다.
그 이후로도 원내대표를 뽑니, 무슨 무슨 위원장을 뽑니, 정현석은 귀로도 안 들어왔지만, 박수로 추인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열심히 손뼉만 쳐댔다.
마치 자신이 학생이던 시절에 조회하는 기분이 든 정현석은 멍하니 다른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자신을 지명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의 앞 단추를 여민 정현석은 자신 있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연단을 향했다.
연단에 서기 전, 옆에서 고개를 숙인 후 마이크 앞에 섰다.
“선배 국회의원님들 동기 국회의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당양군을 지역구로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 정현석이라고 합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바로 앞에 앉은 노인 김무길 또한 정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많은 분이 제 생각을 대변해주셨기 때문에 짧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바른길을 가도록 앞에서 이끌어주시고. 또, 잘못된 길로 갔을 때는 가감 없는 질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현석의 인사가 끝나고 자리로 가자 그 이후로는 당의 중진들이 당부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순서가 끝나고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끼리끼리 인사하기 시작했다.
정현석은 의외로 그 시간의 인기스타였는데 자신에게 다가오는 의원들은 중진, 초선을 가리지 않고 모두 아버지의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정필상의 안부를 묻거나 궁금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은 얘기를 한다거나.
정현석은 그런 노인네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
지훈은 정말 바빴다.
홍보 업무까지 겸임하다 보니 기자들의 전화와 기자에게 받은 명함들도 정리해야 했고.
보통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들은 의원들이 잘 만나주지 않으니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초선 의원의 사무실부터 돌았다.
17대부터 문호가 개방된 인터넷 언론사까지 합치면 국회에 등록된 출입 기자만 어림잡아 천명에 달할 것이다.
“지훈 씨, 바쁩니까?”
지훈은 자신을 부르는 강승태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승태에게로 향했다.
“이거, 방금 중앙당에서 내려왔는데 의원님 상임위 정하라고 하네.”
지훈은 승태가 넘겨주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국회의원은 당선되면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원회를 정해야 했다.
상임위원회는 전문분야별로 가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긴 했지만,
원내교섭단체도 되지 못한 18석의 보수연의 초선 정현석에게는 그냥 배정된 곳 중에서 골라서 가야 했다.
앞으로 전반기 2년간 국회에서의 생활을 결정 짓는 순간이다.
상임위는 국회의원의 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일단, 의원님 오시면 얘기해보는 게···.”
“나, 뭐?”
지훈은 얘기하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정현석이 의원 총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뭐? 의원님 어쩌고 하더니.”
“의원님, 중앙당에서 소속되실 상임위 선택에 관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래? 마침 잘됐네. 밥이나 먹으러 가게 운전 좀 해.”
“다른 분들은···.”
“자 다들 알아서 식사하시고요. 저는 밥 먹으러 갑니다.”
지훈이 입을 떼려 하자, 정현석은 모두에게 그렇게 공포를 하고는 지훈을 데리고 나갔다.
지훈과 정현석은 국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꼬리곰탕집에 자리했다.
“너, 여기도 견학 왔냐?”
“아뇨, 인터넷에서 검색해봤습니다. 70년 됐다고 하니 적어도 맛은 보장된 거 아니겠습니까.”
지훈은 아무 데나 가자는 정현석의 말에 조재만이 가끔 식사하던 곳으로 현석을 이끌고 갔는데,
정현석이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식사 나오기 전에 얘기 좀 하자, 안에서 얘기하면 너 불편할 거 같아 데리고 나온 거니까 꿍한 표정 좀 그만하고 인마.”
정현석은 나름 배려해준다고 데리고 나왔더니 자신에 의해 이끌려 나올 때부터 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 가면 되냐? 상임위인가 그거.”
“일단 중앙당에서 보내준 리스트에는 농수산식품위원회, 지식경제위, 국토해양위가 있습니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고 정현석의 얼굴을 쳐다보니 어서 설명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정현석의 얼굴이 보였다.
“농수산 식품위원회를 가시면 당양군엔 수산업과 농산업에 종사하는 군민들이 많으니 기관에 민원 넣기 편할 것이고, 지경위로 가시면 철강산업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키는데 편할 겁니다.”
“거, 하나 더 있잖아.”
“국토해양위는···.”
“왜 머뭇거려?”
“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훈이 단호하게 얘기하자 궁금해진 정현석은 지훈에게 채근하듯 말했다.
“빨리 말해, 밥 나오면 바로 먹게.”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원하는 답을 이야기 해줬다.
“국토해양위로 가신다면 사회간접자본, 그러니까 SOC를 당양으로 따오는데 이득이 있겠죠.”
“그럼 좋은 거 아니냐? 거 뭐냐 선진그룹이랑 병원 짓기로 양해각서도 써놨는데.”
“문제는 의원님 아버님께서···.”
지훈의 입에서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정현석의 얼굴은 굳어갔다.
“아버지가 왜?”
“건설사를 운영 중이시니 이권이니 뭐니 말 나오기도 할 것이고···. 이런 부분은 언론이 파고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부인해도 연결고리가 있어서···.”
“있어서? 아 거 새끼 겁나 뚝뚝 끊네.”
“여론은 무언가 있다고 심증을 굳힐 겁니다.”
지훈이 말을 마치고, 정현석의 눈치를 살폈다.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왔지만 두 사람 모두 밥을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듯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거기로 해.”
“의원님···.”
“거기로 해. 병원 지으려면 돈 필요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네가 말했잖아. 내가 실수해도 보좌진이 수습한다고. 2년? 세월 참 빠르게 지나가겠네.”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곰탕에 밥을 말아 한 숟갈 크게 퍼먹는 정현석을 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었네, 정현석’
끝
ⓒ 네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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