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13
112. 인정
“그래서 너는 그냥 그대로 보좌관이니?”
다음날, 주말을 맞아 오랜만의 휴일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지훈은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 정혜의 뜬금없는 물음에 지훈은 밥을 먹다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 의원님은 이제 대표님이 되셨는데 네 직책은 그대로냐는 말이지.”
지훈은 자신을 향해 알 듯 모를 듯 서운하다는 말투로 말해오는 어머니를 보며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서운하셔?”
“그냥 엄마는 우리 아들이 잘됐으면 싶어서 그런 거야.”
“엄마 당 대표 보좌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엄마 아들은 이미 엄청 잘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대표님이 성공하시는 게 내가 성공하는 거야.”
“그건 엄마도 알지. 엄마가 불만인 건 너는 몇 년 동안 주말도 없이 의원님, 의원님 하면서 일만 하고 있잖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나중에요. 다 엄마 아들 알아서 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훈은 어머니를 달래듯 말을 건넸고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서운함에 빠진듯한 표정이었지만 지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한과 정말 맛있네.”
지훈이 능청을 떨며 정현석에게 받아 온 한과를 한 입 베어 물자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졌다는 듯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한과를 하나 들어 베어 물었다.
“이게 정말 영부인님 솜씨니?”
“네. 맛있죠?”
“그래. 색도 어쩜 이리 고우니 먹기 아깝게.”
“이게 다 당 대표 보좌관인 아들을 둬서 영부인 선물도 받아 보는 거예요.”
지훈은 어머니에게 자랑하듯이 얘기했고, 어머니도 피식 웃으며 지훈을 한 번 흘겨보았다.
“사실 대표님께서 따로 얻어다 챙겨 주셨어요. 엄마 가져다드리라고.”
지훈의 말에 어머니는 감동했다는 눈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정말 정 의원님, 참 이제 대표님이라고 해야 하니?”
“편하게 불러요. 우리 둘만 있는데 어때요.”
“우리 의원님은 정말 사람 챙기는 게 정말 어쩜 그리 정이 많니? 매년 새해에 선물 보내 명절 때마다 전화해.”
“원래 그런 분이야. 한 번 마음 준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잘하는······ 입장이 바뀐 것 같지 않아요? 대표님께서 엄마를 모시는 것 보면 마치 내가 국회의원이고 대표님이 보좌관인 것처럼 느껴져요.”
지훈은 자신보다 더 친어머니 모시듯 어머니를 대하는 정현석에게 마음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너도 참! 하나뿐인 아들 몇 년째 연애도 못 하도록 일 시키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자신을 향해 강하게 말해오는 어머니의 말에 피식 웃어버린 지훈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엄마는 우리 아들이······.”
“엄마.”
지훈은 어머니의 말을 끊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저도 알아요. 엄마는 절 걱정하신다는 거. 하나뿐인 아들이 매일 밤늦게 오지 아니, 집에 들어오는 건 그나마 낫지. 집에 못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고 그러니 걱정하시는 엄마 마음도 이해해요.”
“…”
“근데 엄마 저는 지금 일이 너무 즐거워요. 몸도 힘들고 가끔은 정말 지치는데 한 계단씩 성장해나가는 의원님을 보고 있으면 너무 즐거워서 그래요.”
지훈의 말에 어머니는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체 지훈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이 일을 즐기려고 해요. 엄마 마음 정말 무슨 마음인지 아는데 엄마가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아셨죠?”
지훈의 말에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셨다. 지훈은 자신이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한 것 같아 순간 불편해져 왔다.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위에 어질러진 식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머니의 방문이 열리고 가볍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지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해? 앞장 서.”
“어디 가시는데요?”
“어디를 가긴 의원님이 김치 다 떨어져 간다고 하셨다며 얼른 장 보고 와서 담가야 내일 가져가지.”
어머니의 말에 지훈은 굳었던 표정을 풀고는 피식 웃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참.”
지훈은 못 말린다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어머니를 모시고는 집을 나섰다.
**
고풍스러운 한옥저택의 식당에는 원목으로 된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평소완 달리 오늘은 테이블에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참이나 참석자들이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으며 그저 식사에 열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었다.
“이번 일은 면목이 없구나.”
그때 상석에 앉아 내심 말을 꺼낼 기회를 찾던 정필상이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현석은 한참 아무 말 없이 식사에 집중하다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아버지 정필상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놀란 듯 되물었다.
평소 볼 수 없던 아버지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때 회사의 일이 너의 발목을 잡을 뻔하지 않았더냐.”
“그래. 아버지가 많이 걱정하셨어.”
자신의 형 정현민까지 자신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걱정했다는 말을 건네오자 어안이 벙벙한듯한 표정만을 짓고 있던 정현석을 바라보고는 정현석의 아내 김선영은 정신을 차리라는 듯 테이블 밑으로 정현석의 옆구리를 찔러왔다.
“회장님 걱정하셨습니까?”
정현석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정필상을 향해 물었고, 정필상은 대답 대신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식사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버지한테 많이 혼났어. 내가 노조와 단체협상을 너무 쉽게만 하려고 했었다. 미안해.”
정현민이 미안하다는 듯 얘기해오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정현민을 바라보았다.
“심각한 문제야 형. 회사 차원에서는 사소한 문제라고 봤겠지만, 불법이기도 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아.”
“그래. 안 그래도 이번 단체 협상 때는 차라리 연봉을 인상하는 안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다행이네. 내가 회사 일에는 개입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웬만하면 편법도 줄였으면 좋겠어. 다시는 태산에 대해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형과 회장님을 위한 거야.”
정현석이 진지하게 말해오자 정현민은 고개를 주억이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개입해도 된다. 너는 그럴 자격 있어.”
정현석은 다시 한번 자신의 귓전을 때려오는 정필상의 목소리에 상석에 앉은 정필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도 내 핏줄을 타고난 내 아들이야. 태산에 개입할 자격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정현석은 오늘따라 자신을 향해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정필상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 듯 그저 동그랗게 두 눈을 뜨고는 정필상을 주시했다.
“저는 회장님께서 제게 회사엔 관심을 끄라고 하셔서 그렇게 마음먹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태산과 저는 가는 길도 다르고요.”
“알고 있다. 네 놈은 이제 다시는 태산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됐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요구할 것이 있다면 이번처럼 당당하게 해라.”
정필상은 그렇게 말하며 정현석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정필상의 눈빛을 받은 정현석은 고개를 들어 정필상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이젠 고개를 숙이지 않는구나.”
“아버지의 눈에서 저를 한심하게 보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정현석의 말에 정필상은 고개를 주억였다.
“좀 더 이런 시간이 빨리 왔다면 하고 후회하고 있다.”
정현석은 아버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후회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네 어머니를 일찍 보내고 그때부터 점점 약한 모습만을 보이던 네가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인제 와서 보니 내가 아주 잘못 봤던 거였어.”
“회장님이 보신 제 모습이 본래 저의 모습이 맞습니다. 다만, 지금은 저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저는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고요.”
“그 회장님 소리 좀 그만하거라.”
“…”
“아비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만,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회장님 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정현석은 정필상을 향해 웃으며 대꾸했고, 정필상 또한 자신을 부르는 정현석의 호칭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끝나고 선영이는 나를 좀 보자.”
정필상은 며느리인 김선영을 향해 그렇게 말했고, 김선영 또한 처음 있는 일이라는 듯 정필상을 향해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대답이 없어? 네 남편이랑 네 약을 좀 지어놨으니 설명은 듣고 가져가야 할 것이 아니냐?”
“예, 예! 아버님.”
정현석은 놀랍다는 듯 정현민을 바라보았고 정현민은 씩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그날 저녁, 정현석의 소집연락을 받은 정현석 의원실 보좌진들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여있었다.
“다들 주말인데도 이렇게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
정현석이 미안하다는 듯 말해오자 김용일이 대표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평소 주말에는 어떤 터치도 안 하시는 분이 갑작스레 연락하셔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았습니다. 장소를 듣고 안심하긴 했지만요.”
정현석은 김용일의 말에 씩 웃고는 지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식당 한편에 준비해둔 선물세트를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모레 국회에 출근하면 줄까 했지만, 여러분들한테 밥도 사고 싶고 해서 이렇게 주말에 불렀습니다.”
지훈이 나눠준 선물 세트에 모두가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청와대 가서 얻어온 선물입니다. 영부인께서 직접 만드신 한과예요. 대표님께서 저희 생각해서 몇 개 더 얻어오셨고요.”
지훈의 설명에 모두가 다시 한번 놀랐다. 청와대에서 선물세트가 의원실로 오는 경우는 왕왕 봐왔지만,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을 위한 선물이었지 국회의원이 보좌진들을 위해 직접 선물을 얻어 온 경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거, 얻어다 주고 생색 좀 내면 내가 이득 아닌가?”
정현석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매번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뭐라도 생색내야겠다 싶었어요. 오늘 식사도 당연히 내가 사는 거니 다들 양껏 먹고 일이 힘들어도 얻어먹은 밥값 한다 생각해요.”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밑에서 보좌진 각자의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하나씩 꺼내 건넸다.
“이건 내가 따로 준비한 선물입니다. 다들 각자 필요한 것 같아서 직접 고른 거예요.”
“열어봐도 돼요?”
박주미의 물음에 정현석은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정현석에게 받은 선물을 개봉하자 김용일은 아이들 옷이 들어 있었고, 박주미는 안경이 지훈은 가죽으로 된 명함 지갑이 들어 있었다.
“김 수석 책상 위에 놓인 아이들 사진 보고는 매번 가슴 아팠어. 아빠가 집에 자주 들어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애들 옷은 우리 와이프가 골랐고 영양제는 내가 고른 거야.”
정현석의 말에 김용일은 감동한 듯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해왔다.
“우리 박 비서관 안경은 특별히 박 비서관이 좋아하는 빨간색 테로 했어. 그거 그 브랜드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정현석은 한명 한명 선물을 고른 이유를 말해왔고 박주미는 감동한 듯했다.
“우리 김지훈 보좌관은 명함 꺼낼 일이 많지? 명함 넉넉하게 들어가는 놈으로 샀으니까 잘 쓰고.”
지훈 또한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저는 솔직히 선물이 마음에 안 듭니다.”
말석에 앉아 있던 최준호가 손을 들고는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현석은 최준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실실 웃었고, 보좌진들은 궁금하다는 듯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다른 분들은 다 필요한 것만 받은 것 같은데 저는 이게 필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최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 가득 책들을 들어 올렸다.
“글쎄, 나는 최 비서에게 그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지훈이 따라잡으려고 누구보다 노력 중인 거 아냐?”
“그건······.”
“지훈이 따라가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 그냥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만 잘하면 되는 거야. 그 책은 좀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줄 책들이고.”
최준호는 잠시나마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쳤다.
“아!”
잠시 후, 최준호의 놀란듯한 목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끌었고 최준호의 손에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의원님 감동했습니다.”
“아깐 마음에 안 든다며.”
“그건······.”
책 안에 끼워져 있던 백화점 상품권을 확인한 보좌진들 모두가 웃으며 정현석과 최준호를 번갈아 보았다.
“그걸로 양복 해 입어. 요즘 살이 좀 빠져서 헐렁이는 게 영 맘에 걸렸으니까.”
최준호는 정현석의 말에 감동한 듯 고개를 숙이고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모습을 본 보좌진들은 정현석의 세심함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참, 다다음주 내 주최로 행사 하나 열어야 하는데 말이야.”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던 보좌진들 모두가 정현석을 향해 미묘한 표정을 보냈다.
“왜? 내가 말했잖아. 얻어먹은 밥값 한다고 생각하라고.”
“어우, 산통 깨는 데는 정말······.”
박주미가 그렇게 말해오자 정현석은 크게 웃었고 보좌진들 또한 그런 정현석의 웃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정현석의 웃음소리에 크게 같이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