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25
124. 탈환 (4)
“오랜만에 보수당 후보 뽑을 생각이 드네. 평소에 좀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아이고, 네네. 아버님 저희가 그동안 마음을 몰라드리니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말도 말아요! 대통령 측근이다, 어디에서 일했다 하면서 내려보내는 양반들은 제주에 대해서 도민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어요.”
정현석은 고희종과 함께 한 대형할인점 앞에서 출정식을 진행한 이후 지역주민들과 손을 맞잡으며 유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 제가 또 여기 계신 고 후보가 잘하겠습니다.”
한 도민의 푸념에 정현석은 민심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고 고희종이 멀뚱멀뚱 서 있자 그의 손을 끌고는 주민들과 손을 맞잡도록 이끌었다.
“아이고! 대표님 이거 한 번 드시고 가세요.”
한 상인은 정현석을 붙들고는 거의 강제로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고, 그것을 받아먹은 정현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장님, 이거 왜 이렇게 맛있습니까?”
“제주에 오셨으면 빙떡은 한 번 드시고 가셔야지! 아니면 서운해요.”
“정말 맛있습니다. 보자.”
정현석은 뒤를 돌아서서 손으로 인원을 세더니 상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스무 명이 먹으려면 얼마나 포장해야 합니까?”
“인당 두 개면 되지 않겠어요?”
“좋습니다. 숫자대로 포장해주십시오!”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다가가 정현석에게 지갑을 건넸다.
“사장님 맛있게 잘 먹었고, 다음번에 제주에 오거든 또 들리겠습니다.”
“대표님 방문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그저 제주에 대해 좀 더 생각해주시고 잊지만 말아 주십시오.”
정현석은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를 빠져나와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지훈에게 건넸다.
“준호도 챙기고, 우리 도와주시는 경찰분들도 챙기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현석과 고희종은 같이 선거운동을 진행해나갔고 첫 일정을 마칠 시간에 고희종의 수행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헐레벌떡 일행에게 다가왔다.
“후보님······!”
급해 보이는 표정과 말투에 고희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고희종의 물음에 수행비서는 다가가 귓속말을 전했고, 지훈과 정현석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비서에게 설명을 들은 고희종은 일행에게 다가와 작게 말을 건넸고 이유를 들은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았다.
“고 후보님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오후 퇴근 시간 전에 잠시 캠프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일정입니다.”
고희종 수행비서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대표님께서는 어차피 제주 일정이 끝나셨으니 지금 바로 공항으로 향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너는?”
“저는 저녁 비행기로 올라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한번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희종을 바라보았다.
“제 참모입니다. 뛰어난 사람이니, 의견을 듣고 행동하시면 절대 후보님한테 피해는 가지 않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 후보님, 중앙당에서 열심히 지원할 테니 어떤 일이 있어도 후보님만 꺾이지 않으시면 됩니다.”
정현석은 고희종의 두 손을 맞잡고는 확신에 찬 대답을 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고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에서 아낌없이 지원해주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서 당선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정현석은 고희종의 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인사를 마쳤고, 지훈은 정현석을 최준호가 대기시켜놓은 미니밴까지 안내했다.
“방법 있어?”
“아니요. 일단 상대가 원하는 것은 이전에 말씀드린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인지도?”
“네. 그래서 대표님께 바로 공항으로 가시라 말씀드린 겁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올라올 거지?”
“일단 상황을 보고 전화하겠습니다. 별일 없으면 저녁 비행기로 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고생 많아.”
정현석은 지훈의 등을 두드려 주었고, 지훈은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준호 씨, 차는 주차장에 세워두면 도당 직원이 회수한다고 했으니까 바로 공항으로 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주변에 누가 붙으면 잘 경계하고.”
“네. 김 보좌관님 고생하세요.”
지훈은 그렇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뒤돌아서 자신을 기다리는 고희종의 차에 올라탔다.
**
고희종의 선거 캠프 앞에 도착한 지훈은 표정을 찌푸리며 광경을 바라보았다.
[부용환, 고희종 후보 단일화 촉구 단식 농성!]급하게 준비한 것인지 엉성한 텐트에 급조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훈은 이런 유형의 인간들을 왕왕 봐왔지만,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단식은 힘이 없는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요구를 할 때 자신의 몸을 버려가며 하는 것이지 지금과 같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보님, 일단 텐트로 가셔서 상대 후보를 한 번 만나보시죠.”
지훈의 말이 고희종은 놀란듯한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꼭, 그래야 합니까?”
“네. 상대는 후보님이 정도 없고 매몰찬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이 행동을 벌이는 겁니다. 가셔서 그냥 손잡아주시고 말만 듣고 나오시면 됩니다. 어떠한 확답도 해주지 마시고 안타깝다는 듯 말입니다. 그저 지켜만 보자고 답해주십시오.””
“그거면 됩니까?”
“네. 단일화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네.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희종은 지훈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텐트를 향해 다가갔고, 지훈은 뒤에서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식 장면을 취재하던 기자는 재밌는 장면이라는 듯 고희종과 부용환을 취재했다.
“고 후보님 단일화 정말 안 하실 겁니까? 정녕 우리가 표를 나눠 먹고 남 좋은 일 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부용환은 고희종의 등 뒤에 있는 기자의 눈치를 살살 보며 고희종에게 물었고, 고희종은 지훈이 말한 것처럼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
“부 후보님, 다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건강 생각하셔야죠.”
“건강 얘기 나와서 그런데, 제가 당뇨가 있습니다. 저혈당 문제로 위험한데도 이렇게 단식을 결정했단 말입니다.”
뒤에서 부용환의 말을 듣던 지훈은 어이가 없어졌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정현석 대표도 너무하시지 제주에 내려오셨으면 어떻게든 결단을 지어주시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대표님 얘기하는 것은 좀 그렇고, 일단 돌아가시지요. 흐름을 지켜봐야 뭐라도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부용환은 상대가 욱하기를 바랐지만, 그저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는 고희종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물러납니다. 고 후보님께서 결단을 내려주시던지! 정현석 대표를 데려와서 담판을 지어주든지 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보수 진영 분열의 책임은 두 분께 있습니다. 그거 아세요!”
부용환의 말도 안 되는 생떼에 고희종이 욱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자 지훈은 비집고 들어가 고희종에게 말을 걸었다.
“후보님, 다음 일정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순간 욱하는 심정에 입을 열려던 고희종은 지훈의 목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보았고, 지훈의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 후보님, 식사는 하세요. 몸 망가지십니다. 저는 그럼 이만 일정이 있어서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희종이 일어나자 부용환은 손을 뻗어 고희종을 잡았다.
“결판 지어주고 가시래도!”
“죄송합니다. 좀 더 두고 보지요.”
고희종은 그렇게 말하며 부용환의 손을 뿌리치고는 사무실 캠프로 들어가 버렸고 기자들 또한 고희종을 따라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용환은 자기 생각과 다르게 고희종이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고, 그냥 안타깝다는 듯한 말을 하며 자리를 떠나니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상대 후보는 모든 책임을 대표님과 후보님께 전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순간 화가나 한마디 쏘아버릴 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니 제가 없더라도 감정을 컨트롤 하셔야 합니다.”
지훈의 말에 고희종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후보님께서는 다음 일정에 대한 것을 숙지하시면서 휴식을 취하시죠.”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옮겨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통화연결음이 시작되자마자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지금 상황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를 줄 상대였다.
-웬일이야? 소스 줄 거 있어?
지훈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장영수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얻으려고.”
-야! 내가 무슨 흥신소도 아니고! 그래서 뭔데?
“너희 제주에 마크맨 어디 어디 보냈어?”
-제주도? 잠시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무언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장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지사한테 한 명 나가 있고, 보수당, 진보당 한 명씩.
“현 도지사 움직임은 어때?”
-보자······ 이상한데? 오전엔 도정을 보고 오후 선거운동 일정도 취소했다는데?
“그래? 이상한데······ 확실하지?”
장영수의 말에 지훈은 확실하냐는 듯 다시 한번 되물었다. 부용환과 도지사 사이에 교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지사는 딱히 선거에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도지사는 부용환이 아닌 다른 쪽과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지훈이었다.
-오늘 선거운동 시작되자마자 들어온 동정(動靜) 보고야. 앞으로 일정도 보니까 도정밖에 없네? 냄새가 나는데, 너넨 아니지?
“야, 우리는 아니야. 연락도 안 왔어.”
-그럼 진보당 쪽인가 보네. 오케이 고맙다. 덕분에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네.
장영수의 말에 지훈 또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선거기간에 그것도 후보가 뜬금없이 도정에 집중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해.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도지사 측근 비리 재판 상황은 어때?”
-현재까지는 도지사가 엮인 게 없지. 그것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너무 조심스러운 행보인 것 같은데.
“맞아. 진보당이랑 뭔가 물 밑에서 오가는 얘기가 있나 보다. 일단 끊자 뭔가 있으면 연락 줘.”
-그래, 알겠어. 너 안 올라올 거냐?
“나 당분간 제주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끊어.”
-그래, 그럼 수고하고. 냄새 맡은 거 있으면 연락해주고.
지훈은 장영수와 전화를 끊고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지사는 후보로 등록하고도 선거운동 첫날에 도정을 본다는 건 확실히 이번 선거에 생각이 없다는 건데······.’
현 도지사가 부용환을 움직였다면, 그는 지금 한창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야 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국면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지훈은 답을 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고희종에게 다가갔다.
“캠프 메시지 담당자분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지훈의 말에 고희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캠프 사무장과 대변인을 불렀다.
“지금 캠프에서 나가는 상대 후보에 대한 메시지가 어떻습니까?”
지훈의 물음에 캠프 대변인은 고희종을 바라보았고, 고희종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보당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거 멈춰 주시고 도지사에 대한 의혹으로 바꿔주십시오.”
“도지사는 지지율이 10%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도지사의 아침 선거 유세 일정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훈의 말에 모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현직 도지사라고 치더라도 후보가 유세 첫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도정에 집중하는 것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겁니다.”
“다른 생각이라면······?”
“우리 쪽에 따로 단일화 연락 들어온 게 없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진보당 후보밖에 없습니다.”
지훈의 말에 캠프 사무장은 놀란 표정을 짓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밖에 있는 부용환 후보는?”
“선거판이 원래 혼란스럽습니다. 부용환 저 양반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부용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겁니다. 부용환과 대안당에 대한 논평은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풀에 지쳐 나갈 겁니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제 예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보당과 현 도지사는 단일화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우리는 그 전에 도지사 주변 인물들의 비리 사실을 가지고 도지사의 도덕성을 흔들어야 합니다. 도지사 또한 의혹이 있지 않습니까?”
“네. 평소 공무원들에게 욕설을 자주 한다는 소문이 있고 또, 측근 비리에 직접 관여되어 있다는 소문 등 좋지 않은 소문이 많습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진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훈의 말에 고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뭘 하면 됩니까?”
“후보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저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표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유권자들을 좀 더 많이 만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공격성 발언은 캠프 차원에서 나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자리로 향하자 지훈은 오랜만에 의욕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