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3
132. 직진 (2)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허훈의 선언에 정현석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생각해 다시 한번 되물었다.
“장관직에서 사임하려고 합니다.”
허훈의 입에서 다시 한번 똑같은 말이 흘러나오자 정현석은 표정을 굳히고는 허훈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입니까? 아니 그보다 허 장관님이 그만두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는 정무 장관직이 허 장관님의 천직이라고 생각을······.”
“슬슬 내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훈이 입을 열자 정현석은 허훈의 입장을 듣고 싶은지 입을 꾹 다물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지방선거는 승리해왔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무승부라는 평을 듣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여당의 당 대표도 사퇴한 마당에 국회와 정부를 잇는 정무 장관이 버텨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먼저 내려와 개각의 물꼬를 트고자 합니다.”
이미 결심은 끝난 듯 말해오는 허훈을 보며 정현석은 침묵을 깬 후 입을 열었다.
“당에서도 허 장관님의 입장을 헤아려 정부를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제가 부족하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는군요.”
“하하, 대표님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저를 돕기 위해 여당 2중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꽤 많은 법안의 처리를 지시하셨다는 걸요. 하지만, 이젠 제가 내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마음을 먹으셨나 봅니다.”
정현석의 물음에 허훈은 답변 대신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장관님의 결정이 그러시다면 당으로서도 막을 명분이 없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아휴, 무슨 소리 하십니까? 오히려 당이 더 고마워해야지요. 당의 이익을 위해 그 자리에 올라가신 분인데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아주 보람이 없는 마무리는 아니군요.”
허훈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늘 국회에 오면서 대통령님께 받은 명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법과 국정원법이 이번 정기 국회에 통과되어서 하루빨리 국가 개혁 임무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쟁점만 수정한다면 저희도 큰 틀에선 공감하고 있으니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대표님, 늘 고맙습니다.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정현석과 허훈은 손을 맞잡은 후 오랫동안 눈빛을 주고받았고 허훈은 뒤를 돌아 대표실을 벗어났다.
허훈이 대표실에서 나간 후 잠시 간 혼자 멍하니 앉아 생각하던 정현석은 전화를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
‘똑똑’ 두 번의 노크 소리에 정현석은 생각을 멈추고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어, 빨리 왔네.”
“네,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에 있었습니다.”
“세미나 때문에?”
“네, 아무래도 도움을 받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아서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허 장관님 장관직 내려오신다더라고.”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의외라는 듯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허 장관님이요?”
“그래, 오늘 느닷없이 찾아오셔서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하셨어.”
“이유를 따로 말씀하셨습니까?”
“여당에서 지방선거 패배로 받아들이고 당 대표도 내려왔으니 개각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본인부터 내려오는 게 맞는 거 같다고 하셨어.”
정현석의 입으로 전해진 허훈의 생각을 들은 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나도 이상하긴 했는데 본인은 오랫동안 생각해오신 것 같던데?”
“생각은 오랫동안 하셨을 수도 있지만, 말을 전해 오시는 것이 허 장관님답지 않으십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지훈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겠다는 듯 아무런 대꾸 없이 지훈을 바라보았다.
“오늘 장관님의 국회방문일정은 여당 대표와의 만남이셨습니다. 현재 여당의 대표는 공석이니 한정수 원내대표와의 만남이었죠.”
“그렇지.”
“아무래도 이번 정기 국회 때 정부의 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러 오셨을 텐데 그 이후 먼저 약속도 되지 않은 대표님을 찾아와 갑작스레 사퇴하겠다는 말을 전해오시는 것은 너무······.”
“그래, 방식이 이상하긴 하지. 보통 저런 말들은 따로 약속을 잡거나 조용한 곳에서 하곤 하니까.”
정현석은 지훈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지훈의 말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네. 그리고 한정수 원내대표를 만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한 원내대표는 진보당 내의 반(反) 조라고 불리는 조진규 대통령을 반대하는 계파의 일원입니다.”
“그렇지.”
정현석은 소파의 팔걸이를 두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듯했다.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게 아니네.”
“맞습니다.”
“그래, 허 장관이랑 조용한 곳에서 따로 뵙자고 약속을 잡는 게 맞는 거지?”
“네. 그리고 속마음을 다 들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느닷없는 사퇴 통보입니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진보당에서 허 장관에서 사퇴를 종용했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
“대통령을 이용해야겠죠.”
“이용?”
“정확히는 대통령의 결정을 종용하는 겁니다. 협치의 의지를 계속해서 보일 것이냐 여당 내의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 무릎을 꿇을 것이냐 말이죠.”
“대통령이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 또한 뒷일을 예상하고 진보당 내의 움직임을 차단해야 합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예상은 네가 해야 하겠지만 말이야.”
**
「[단독] 연정의 상징, 허훈 정무 장관 사임?」
「허훈 장관 측근, 여당 내의 지선 패배 평가에 정무 장관으로서 책임감 느끼는 듯.」
「사민당 출신의 양진숙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사퇴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틀 후, 한정수 쪽이 흘린 허훈의 사퇴설이 보수지의 단독 기사로 보도되었고 순식간에 정국은 혼란해져 가고 있었다.
“형님, 언론의 보도 이후 양쪽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던 그림이야. 계속해서 개각 이슈가 갑론을박 된다면 청와대와 허훈은 결국 부담을 느끼게 될 테고 말이야.”
진보당의 대표 대행 타이틀을 달게 된 한정수는 만족한다는 듯 껄껄 웃으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의 생각인데 받아들일까요?”
“흠······ 조진규의 성격이라면 고민 또 고민하겠지.”
“아무래도 아직 개혁법안이 남아있으니 보수당과 사민당의 도움을 얻으려면, 연정을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건데요······.”
“그렇긴 하지······.”
“보수당은 애초에 우리랑 성향이 다르고 원래 우리랑 치고받는 사이니 계속 떠들라고 두더라도 사민당은 아시잖습니까? 저놈들 지독한 놈들인 거? 한번 딴죽걸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물어뜯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웃음기를 거둔 한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민당은 강성 운동권 출신들이 모인 당이기도 했고, 또 지금은 연정이라는 이름 앞에 조용히 있지만, 진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있으므로 언제고 진보당과 거리를 두기 위해 보수당보다 더욱더 심한 반대를 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우리 당의 입장부터 정리해야겠지. 대변인 입장 기다리라고 말했지?”
“네. 따로 논평하지 말고 형님의 입장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아직은 공식 발표도 아니고요.”
“잘했어.”
한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는 듯 보이자 비서실장은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허훈의 결단을 환영한다고 발표하지.”
“네?”
“대통령한테 우회적으로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거야. 비록 지금 공식적인 발표도 아니고 우리가 흘린 언론 보도일뿐이지만 이럴 때 우리가 선수를 쳐야 대통령도 허튼 생각 못 할 거 아닌가.”
“너무 강하게 나가는 거 아닙니까? 원용희가 그만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당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의원들이 있는 계파예요.”
“아아,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마. 초선들이랑 원용희 몰아낼 때 당분간 대통령이랑 각을 세우기로 했으니까, 초선들도 지금 한창 튀어야 할 타이밍 아니야? 다음 총선이 걸려있는데.”
진보당 내의 초선 모임은 원용희를 몰아내자는 한정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음 총선을 위해 당장 당권을 잡은 한정수의 의견에 따르고 있었다.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는 관계는 참 좋아 배신을 잘 안 하거든.”
“그야 그렇지요. 대안당 김민수 대표를 만난 것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떻게 되기는 대안당은 지금 정현석이한테 약이 올라 죽으려고 하고 있어.”
“그 정도입니까?”
비서실장의 물음에 한주성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는 씩 웃었다.
“그래, 적의 적은 동지라고 내가 정현석이 얘기를 꺼내니까 알아서 술술 풀어내더라고 김민수 그 양반도 대선주자나 한 양반이 새파란 놈한테 못 이겨 먹어서 징징거리는 꼴을 보니 참. 나보고도 정현석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속으로는 ‘아이고 이놈아······.’하는데 대놓고는 말 못 하고 알겠다 하고 말았어.”
한정수는 김민수를 떠올리며 혀를 쯧쯧 차더니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대통령의 행보를 가둬둘 필요가 있어.”
“알겠습니다. 시키신 대로 대변인에게 전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이 그렇게 얘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을 나가자 한정수는 만족스러운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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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허훈 장관의 결단 환영.” 청와대에 개각 요구.」
「진보당, 개각 필요한 장관직 세 자리 직접 제시. 경제 부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정무 장관직 개각 요구.」
「靑, 진보당 논평에 유감, 허훈 장관 사표 공식적으로 제출된 바 없어 확인.」
지훈은 의원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오늘 보도된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진보당이 먼저 선제공격을 내질렀어.’
지훈은 내심 허훈 사퇴가 제 뜻이 아니길 빌고 있었고, 한정수 본인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그저 설에 불과한 측근의 보도마저 대변인이 공식 논평을 할 정도로 진보당은 청와대와 힘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지훈은 정현석의 방으로 다가가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지훈이 들어오자 중앙당의 보고서를 확인하던 정현석은 지훈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했고, 지훈이 앉자 입을 열었다.
“그래, 뭔가 떠올랐어?”
“네. 어제오늘 진보당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청와대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 장관님 또한 갑작스레 그리 결정하셔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그래, 나도 진보당의 반응 봤어. 청와대가 유감을 표시했다지?”
“네. 그렇습니다.”
“제삼자인 내가 봐도 당혹스러운 논평이었으니까, 청와대와 힘겨루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맞습니다. 제 생각도 의원님과 같습니다. 일단, 약속 시각이 다가왔으니 허훈 장관님을 만나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허 장관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보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정현석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