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
015. 행정비서관, 박주미 >
어느새 국정감사와 첫 회기가 끝이 나고,
정현석 의원실에서는 한창 아침 보좌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 다음은 지훈 씨, 지역구엔 별일 없고?”
강승태의 물음에 지훈은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군에서는 본격적으로 성산의료원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벌써요?”
“네, 제가 지금 드린 건 사업계획서 초안입니다. 당양 군이 가지고 있는 소유지를 20년간 무상으로 임대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습니다.”
“흠, 그래요? 위치가 어디쯤인데?”
“시가지와 산업단지를 잇는 중간 지점쯤에 있습니다.”
“주변 앰뷸런스 소음 민원 없겠어요? 거기면 그래도 마을이 좀 있는 편인데.”
“일단 사업계획서에는 그곳과 아예 시 외곽지로 빼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지훈의 보고에 강승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성산재단 쪽은요?”
“군의 말에 따르면 SOC(사회간접자본)가 투입되면 구체적인 계약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좋아요, 그 건은 지훈 씨가 계속 팔로우하고.”
강승태는 지훈에게 그렇게 지시를 하고 다음 순서인 김용일에게 주문했다.
“용일 씨는 영감님이 국감 때 문제를 제기한 거 어떻게 진행되나 잘 챙겨주고요.”
“네, 알겠습니다.”
“자, 다음은 우리 박 행비 차례네.”
강승태가 그렇게 말을 하자 박주미는 이 시간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전투적인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바라본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정현석 의원실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강 수석님, 우리 사무실 운영비 좀 아껴요. 왜 그렇게 특근매식비 영수증을 많이 제출하세요.”
“아니, 그건 다른 의원실 보좌관들이랑 밥을 먹다 보니까···. 그게 다 영감님한테 도움이 되니까···.”
“그럼 사지 마시고 얻어 드세요. 이제.”
“아이, 어떻게 그러나.”
“안 되도 되게 만드세요! 이제 하루에 식비 두 건만 받을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
박주미의 엄포에 강승태는 할 수 없다는 듯 쓴 입맛을 다셨다.
박주미는 고개를 돌려 다음 타겟을 향해 폭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막내 너희들! 너희 간식 너무 자주 먹는 거 아니니?”
“에이, 박 비서님 애들 간식 먹는 거 가지고···.”
“먹어도 너무 많이 먹으니까 그러지!”
지훈이 나서 막내들을 방어해 주려고 했으나, 박주미의 전투력 앞에 백기를 들듯 입을 꾹 다물었다.
“너네, 잘 들어 이제 내가 매주 한 번씩 탕비실에 간식을 대용량으로 사다 놓을 거야. 그거 이외엔 자비로 사 먹거나 끊어. 알았어?”
“네···.”
박주미의 엄포에 막내들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김용일 보좌관님 담뱃값까지 영수증 처리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세요?”
“아니, 이전에 사무실에서는 그렇게 했는데···.”
“거기 어디예요? 내가 감사실에 고발해버릴 거니까. 우리 사무실에선 안 돼요. 보좌관님도 끊으시던가, 본인 돈으로 사서 피세요!”
정현석 의원실의 실세는 행정 비서인 박주미였다.
보통 다른 사무실에서는 9급이 맡는 일이지만 기형적인 이곳의 모습은 6급 실세 행정 비서가 목소리가 제일 컸다.
다른 의원실에서 보면 기겁할 장면이었고,
행정 비서들 처지에서는 박주미의 모습이 속 시원했을 것이다.
본인들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으니까.
회의가 끝나고, 모두 제자리를 향해 찾아갔다.
다들 국감이 끝난 후라 지쳐있었지만, 며칠 후부터는 사무실 인원이 돌아가며 휴가를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었다.
의원실의 문이 열리고 양손에 종이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오는 정현석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어어, 하던 일들 계속하시고, 김지훈이 너 내방으로.”
지훈은 정현석이 무슨 사고를 쳤나 싶어 빠르게 따라 들어갔다.
지훈이 들어오자 테이블 위에 종이가방을 올려둔 정현석이 말했다.
“야, 저거 네 거야. 한번 봐봐.”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쇼핑백을 확인했다.
쇼핑백에서는 웬 상자와 옷들이 나왔다.
“열어봐.”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상자를 열었더니 시퍼런 색의 축구화가 나왔다.
“뭡니까?”
“새끼, 띠껍기는 내가 너 휴가 가기 전에 선물 준다고 했었잖아. 그거 선물이다.”
“선물치고는 너무 받는 사람의 취향이 안 담긴 거 같은데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뭐가 그리 웃긴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야, 다음 주 주말에 공 차러 가자.”
“저, 축구 안 좋아합니다.”
지훈은 본인이 선천적으로 운동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잠깐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축구라니.
“국정감사 끝나고 입법, 사법, 행정 부처들 모여서 축구 경기한다는데, 글쎄 영감들이 나보고 나가란다.”
보통 국정감사가 끝나고 서로 날이 서게 공격했던 입법부 대표, 사법부 대표, 행정 부처 대표들이 모여 단합대회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축구인가보다.
정현석의 말을 들은 지훈은 점점 더 나가기 싫어졌다.
이전 삶에서 국회 축구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공을 찰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나 간혹가다 한 명씩 섞인 선수 출신들이 문제였다.
그 사람들은 진짜였다.
축구 실력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났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축구를 너무 열심히 한다.
저럴 거면 축구인이나 계속하지 왜 이 길로 왔나 싶은 인간들이었다.
“하여튼, 입법부 대표에 국회의원 한 명 나가는데 그게 나다, 내가 나가는데 네가 안 나간다고?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정현석의 엄포에 지훈은 최준호를 데려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이내 생각을 거뒀다.
“그리고, 너 승진시켜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저요?”
“그래, 김용일 4급으로 올려주면서, 너도 6급 정도는 달아도 되잖아?”
지훈은 이전 삶에서도 1년 만에 6급으로 승진했었다.
보통 7급이 수행비서를 수행하다보니, 사무실내에서 직무를 맡는 직원은 9급 다음 6급으로 승진하고는 했다.
아마 공무원 중 가장 승진이 빠른 직책이 국회 별정직 공무원일 것이다.
9급에서 6급까지 가는 데만 해도 2~3년이면 충분하니까.
국회 밖에서 본다면 너무 빠른 승진에 놀라곤 하지만 보좌직의 특성상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면 보좌직원의 신분도 끝이 난다.
일종의 기간제 공무원 같은 것이다.
물론 모시던 영감님이 재선한다거나, 다른 의원실로 갈아탄다거나 직업을 유지할 방법은 있었지만, 소수의 사례였다.
“아직 좀 이른 거 아닐까요?”
“야, 내가 강승태 보좌관님한테 물어보니까 옆 의원실 9급은 벌써 6급 달았다더라. 인턴들은 너 때문에 평생 인턴 하게 생겼다.”
“그래도 너무 빠른 게 아닐지···.”
“어허, 그냥 어른이 하자면 하지 말이 많아. 이번 국감 때 네가 제일 고생했다고 강 수석님이 승진시켜주라더라.”
지훈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현석이 그만큼 자신을 챙겨주고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승진시켜주신다는데 제가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야, 보통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냐?”
“감사합니다. 의원님.”
지훈이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이자 정현석은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파주 NFC, 국가대표 축구팀의 훈련장이라고 하는데 주말 아침 이곳까지 불려 나온 지훈의 표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새꺄, 인상 펴. 누구 하나 잡아먹겠네.”
옆에서 실실 웃으며 시비를 걸어오는 정현석 때문에,
더더욱 올라오는 화를 지훈은 억지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정현석이 아니라 자신과 정현석을 바라보며 이상한 전의를 불태우는 국토해양부 소속의 공무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 진짜 조졌네. 발목 보호대 확실하게 해야겠다···.’
지훈은 정현석이 사다 준 발목 보호대의 성능이 좋기만을 바랐다.
입법부 대표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간 지훈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옆에 있는 정현석은 거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다른 보좌진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해오는 인사를 받고 있었다.
“의원님, 아직 젊으시니까, 많이 뛰셔야 합니다.”
“걱정 붙들어 매요. 축구가 뭔지 보여 줄 테니까, 나 윙 자리에서 뜁니다. 그리고 얘는 내 밑에 뛸 거고. 자 잘들 해봅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보좌관에게 자기가 뛸 포지션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정현석을 보고 있던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바지를 입고 있는 정현석의 모습은 누가 봐도 운동이라곤 안 해본 남자의 하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삑-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에 선 지훈은 어린 시절 운동회 때 달리기 하기 전의 기분이었다. 배가 살살 아파져 올 정도의 긴장감.
“어이, 어이!!! 여기!!”
지훈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정현석이 손을 치켜들고 공을 내놓으라 당당하게 요구하는 정현석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정현석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날랬고, 골도 넣는 등 제법 준수한 활약을 하며 입법부의 우승을 이끌었다.
“아이고, 의원님 젊으셔 그런가? 엄청나게 잘 뛰시던데. 서정원 보는 것 같았어요.”
“에헤이, 서정원이 뭡니까? 메시지, 메시 아시죠? 그 왜 요즘 요즘 핫한 애, 내가 이래 봬도 중학교 때 우리 반 대표로 학교 축구대회에서 득점왕까지 했어요.”
정현석은 다른 의원실의 보좌관 앞에서 한껏 자신의 공치사를 해댔다.
“우승 상금은 기부하는 게 전통인데, 요번에 기부할 때 ‘국회의원 정현석 및 국회 보좌관 일동’이라고 제가 크게! 박아서 기부하겠습니다.”
“캬하, 누구네 보좌관인지 내 방으로 데려오고 싶네. 고맙습니다. 저도 여기 금일봉 드릴 테니까 여러분들 회식하고 가세요.”
“의원님은 안 가십니까?”
“저기, 제 비서가 죽으려고 해서 좀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정현석은 구석에서 다 죽어가는 지훈을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야, 인마 일어나 집에 가게.”
정현석의 발길질에 지훈은 느릿하게 일어났다.
“평소에 운동 좀 해라.”
“이건 운동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요, 근 한 달을 국정감사 자료 준비하느라 밤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지훈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새끼, 엄살은···.”
“엄살이 아니라 휴가 기간에 축구 하러 나오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야야, 알았어. 내가 운전할 테니까 가, 아주 그냥 비서가 국회의원 부려 먹으려고.”
지훈은 투덜거리며 앞장서는 정현석을 보고 웃으며 따라나섰다.
**
어느덧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왔으며 달력도 한해의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지훈은 승진한 이후에도 업무의 양은 줄어들지를 않았는데, 오히려 본인이 일을 더 만들고 있었다.
지훈은 최근 정현석의 이름으로 페이스북까지 개설하여 정현석의 의정활동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여전히 주류는 미니홈피였지만 그래도 최근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었다.
여론의 반응은 최근 있었던 국감 때 정현석의 모습 덕분에 호의적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숙여야 했다.
국회 중진들도 신인이 튀는 걸 싫어하지만, 국민 여론 또한 마찬가지다.
속된말로 나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현석 본인에게도 여러 번 직접 SNS 계정에 글을 남길 것을 권유했지만,
정현석은 가끔 들어가 자신을 칭찬하는 댓글을 보고 기뻐할 뿐이었다.
“지훈 씨 여기 좀 와봐.”
김용일의 부름에 지훈은 한달음에 달려갔다.
“당에서 내려 온 건데, 이번 국무총리 청문회에 우리 영감님이 나가라는데?”
“네? 웬일로요? 보통 이런 거는 중진들이 서로 하려고 할 텐데요?”
“당 대표 오더야, 이번 국감 때 우리 영감님 덕분에 당 지지율이 조금 올랐잖아, 한 건 더 하길 기대하는 거 같아.”
정현석의 활약으로 당 지지율이 10%까지 오르자, 당 내부는 한껏 정현석을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자릿수 지지율의 군소정당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 대통령의 스캔들로 여당인 보수당 지지자에서 이탈한 보수층이 보수연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일단, 강 수석님이랑 의원님께 한번 말씀드려볼게요.”
“그래, 지훈 씨가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지훈은 김용일에게서 서류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서류에는 ‘국무총리 후보자 박홍주 청문회’라고 적혀 있었는데,
현 대통령은 자신의 스캔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식을 줄 모르자 총리 교체와 함께 소규모 개각을 통해 국정쇄신을 꿈꾸고 있었다.
‘이 양반, 낙마한 그 양반이잖아.’
박홍주는 지훈의 이전 삶에서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낙마했었다.
‘이 양반 덕분에 임기 초기부터 레임덕이 오니 어찌하니 말이 많았지.’
박홍주는 벤처 기업인 출신으로 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자문하던 인물이었다.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세간의 평가도 훌륭했다.
천만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달성해 ‘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으니까.
‘그때 뭐 때문에 낙마했더라, 아 권력형 비리!’
박홍주는 한 임대사업자를 서울지방국세청장과 만나게 해주고 두 번에 걸쳐 2천만 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뭐, 일단은 당 대표의 오더니까 최선은 해야겠지.’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석의 방문을 두드렸다.
끝
ⓒ 네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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