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68
167. 대권가도 (4)
“그게 무슨 소리야? 보도자료 쓸 게 늘었다니?”
지훈의 말에 이승호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어왔고, 지훈은 휴대전화를 다시 윤도경에게 건넸다.
“아, 거참 답답하네. 도경 씨, 도경 씨가 얘기해줘요.”
이승호는 여전히 답답하다는 듯 윤도경을 향해 보챘고, 윤도경은 지훈이 건넨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무언가를 읽어 내려갔다.
“학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정치인 개인에 대해 평가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나온 뉴스 기사를 보니 20년 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 음해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시만 SNS야?”
“네. 이분은 연성대학교 철학과 김동재 교수님이세요.”
“계속 읽어 줘.”
“대학생 시절 1년 선배였던 그분은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강의실에서 마주쳤지만,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수업만 조용히 듣고 사라지던 선배였죠.”
윤도경이 계속해서 SNS의 글을 읽어내려가자 지훈을 포함한 네 사람은 가만히 윤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어느 날, 학교 벤치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저는 가정형편 때문에 다음 학기에 등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뭐야? 갑자기 친구가 왜 나와?”
“들어보세요.”
이승호가 급하게 굴자 지훈은 이승호를 만류하고는 윤도경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매일 강의실에서 조용했던 그 선배가 저에게 다가와 잠깐 보자며 밖으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는 한참 아무 말이 없다가 오해하지 말라며 저에게 노란 봉투 하나를 건넸습니다.”
이승호는 이제야 눈치챘다는 듯 지훈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고, 지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선배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고, 벤치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네가 내 옆에 와서 말한 거야.’라며 말했고, 직감적으로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던 저는 받을 수 없다며 선배에게 봉투를 돌려주려 했습니다.”
윤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해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선배는 기어코 봉투를 제 손에 쥐여주고는 ‘너 우리 과 수석이라며? 공부는 너 같은 애가 해야 해. 돈은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라고 말하며 급히 자리를 떴고, 저는 한참 동안 선배가 건넨 노란 봉투를 쥐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덧 얘기에 빠져든 것인지 이승호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제게 그런 큰돈을 주고 제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데 선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조용히 수업을 듣던 선배는 어느 날 저에게 밥을 사주며 군대에 간다고 말씀하시고는 정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시고는 군대에 입대하셨습니다.”
“멋있는 사람이네.”
이승호가 그렇게 말하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제가 졸업할 때까지 그 선배를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성공해서 보답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제가 모든 걸 잊고 살던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국회의원 최연소 당선자라는 사람을 보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뉴스에서는 오래전 저를 도와줬던 그 선배, 정현석 후보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훈과 이승호는 이야기를 듣다 정현석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두 팀장은 놀랍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선배는 제게 그랬듯 낮은 곳을 바라봤고, 모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배가 음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언론에서 또 특정 후보가 얘기하는 것처럼 선배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으니까요.”
“크······.”
이승호가 감동한 듯 이상한 추임새를 냈는데, 윤도경은 살짝 웃고선 마지막 줄을 읽어 내려갔다.
“항상 고마웠던 선배에게 있었던 마음의 짐을 이렇게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정치적 발언에 놀라셨을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정치 얘기가 아닌 제가 살아왔던, 또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동재 올림.”
윤도경은 그렇게 김동재 교수의 SNS를 다 읽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는데, 모두 감상에 젖은 것인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가끔 정 대표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러나 싶었는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네.”
정적을 깨는 이승호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생방송 토론회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 의원님께서는 빠르게 보도자료 준비해주시고, 나머지 분들도 제가 말씀드린 것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 후보한테 연락은 해줘야지?”
“네. 구윤서가 토론회 때 이 얘기를 해올 것 같습니다. 대응책을 전해야겠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자신이 맡은 일을 하러 걸음을 옮겼다.
**
“인터넷 생중계 아직인가?”
구윤서의 캠프, 5분 뒤 열릴 보수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생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모두가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지역 민방이다보니 방송 시작과 동시에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된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다들 오늘 토론회 보고 우리 후보가 고쳐야 할 점과 상대 후보들이 당황한 점, 또 주요 공격지점을 생각해보고 가감 없이 제게 말해주십시오. 이번처럼 생중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토론회가 3회 더 남았습니다.”
구윤서 캠프 총괄팀장 박성환은 모두에게 그렇게 명령하고는 자리에 앉아 생중계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토론회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화면과 함께 토론회가 시작되자 박성환은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박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박성환의 집중을 깨오는 큰 소리가 캠프 내에 울려 퍼졌고, 박성환은 표정을 찌푸리며 상대를 바라보았는데 공보팀장이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공보팀장님, 지금 생방송 토론회 막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팀장님, 지금 토론회고 나발이고 큰일 났습니다.”
공보팀장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에 박성환은 표정을 찌푸리고는 공보팀장이 건넨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는데 화면을 확인하던 박성환의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제가 이래서 마타도어는 안된다고 했던 겁니다!”
“이게 뭡니까? 정현석 쪽에서 기획한 겁니까?”
“아닙니다. 먼저 김동재란 교수가 SNS에 글을 썼고, 두 시간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분 전에 정현석 캠프에서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공보팀장의 말에 박성환은 불안한 듯 책상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공보팀장을 바라보았다.
“기획 아닌 거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김동재 교수는 시작입니다. 당시 정현석 후보의 교수부터 동기까지 증언이 담긴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조용히 학교에 나왔던 사람이고, 실제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졸업은 했다고요. 교수라는 분은 만약 그 성적이 청탁받은 성적이라면 자신이 돈값을 못 한 거라고 우리 캠프를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사이즈 줄일 수 있습니까?”
이미 터진 사건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박성환은 뒷수습을 생각한다는 듯 말해왔고, 공보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또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이보세요. 공보팀장님! 이제 경선 시작입니다. 벌써 포기하자는 말입니까? 우리도 제보받은 거라고 하든 어떻게든 둘러대란 말입니다!”
박성환은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자신도 놀란 듯 공보팀장을 향해 손을 뻗고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순간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어떻게든 덮어야 합니다.”
박성환의 사과에 공보팀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이 일을 꺼렸을 박성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 후보님께서는 오늘 나온 기사를 보셨습니까?] [무슨 기사 말입니까?] [정현석 후보님께서 대학교에 부정입학 하셨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또 학점도······.] [그것은 제가 답변드릴 게 아니라고 봅니다.] [아니! 정 후보님, 본인이 연루된 일인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이미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구윤서 후보님께서도 이 토론회가 끝나고, 뉴스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그때, 캠프 중앙에 있는 화면에서는 박성환이 원하지 않았던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공보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박성환을 바라보았다.
“이젠, 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보팀장의 말에 박성환은 고개를 푹 떨궜다.
**
[보수당 대통령 후보 경선 소식입니다. 정현석 전 대표는 구윤서 의원의 텃밭이라 불리는 대구, 경북 지역경선에서 67.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3선 대구 시장 출신인 구윤서 후보와 나머지 후보들을 누르고 압승을······.]이틀 후, 정현석 캠프.
“이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제게 말씀 주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물론 이용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제게 말씀 주지 않으셨겠지만, 제가 알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 일입니다.”
대구, 경북지역 경선을 마치고 올라온 정현석은 아침부터 뉴스를 보며 지훈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까먹었었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해오는 정현석을 바라보며 지훈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인마, 그냥 그때 내 용돈이 많았었어. 왜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
“용돈에 관해 얘기하신 적이······.”
“얼씨구, 똑똑한 척은 다 하는 놈이··· 기억 안 나냐? 똘똘아.”
오랜만에 정현석의 입에서 똘똘이란 소리가 나오자 지훈은 기억났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기억나나 보네. 왜 그때 곱창전골집에서.”
“네. 기억납니다. 그 이상한 단어를 들으니 단번에 기억이 나네요.”
“이상한 단어라니.”
“저도 이제 나이가······.”
“얼씨구, 어쨌거나 김동재 그 녀석 교수 됐다는 얘기는 동창회 때 들었는데, 한 번도 안 나오길래 그냥 잊고 살았나 했더니······.”
정현석은 코끝을 훔치며 쑥스러운 듯 얘기해왔다. 자신이 칭찬받는 상황에 놓이면 늘 쑥스러워하는, 지훈이 알던 평소 정현석의 모습이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선한 행동은 언젠가 돌려받는다는 것을요. 대표님을 만나 늘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 인마 착하게 살어.”
정현석은 지훈의 칭찬이 쑥스러운지 농담 투로 얘기해왔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도 내심 걱정했는데, 대구에서 이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
정현석은 그간 꽤 속앓이했다는 말투로 지훈을 향해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다.
“고소, 고발 취하하라는 얘기는 아닌데. 대응 수위 적당히 하도록 하는 게 어때?”
정현석이 조심스레 말해오자 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흑색선전은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하는 나쁜 버릇이니까 고발은 그대로 두고 우리 캠프 차원에서 언론에다 대고 대응하는 건 좀 줄이자. 구윤서 지지자들은 어쨌든 본 게임에 가면 우리 당 후보를 지지할 사람들이잖아. 그 사람들이 뭔 죄겠어? 속앓이하는 건 좀 덜어줘야지.”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딱 한 번 이겼으니 모두 느슨해지지 않도록 네가 캠프 내에서 악역 좀 해주고 내가 믿는 건 너뿐이야.”
“늘 악역이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새끼······.”
지훈의 대답에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의 믿음에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